• 지난호보기
  • 구독신청
  • 구독자의견
  • 아르코발간자료
  • 인쇄
  • 맨위로 이동

지역 소식

[광주] 호랑가시나무 창작소에서 양림의 소리를 듣다

황치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호남권 문화협력관)
  • 태풍을 뚫고 찾아온 관객들
    태풍을 뚫고 찾아온 관객들
  • 이수은의 퍼포먼스 〈정추 에필로그〉
    이수은의 퍼포먼스 〈정추 에필로그〉
  • 〈양림의 소리를 듣다〉 정추 선생 추모 음악회
    〈양림의 소리를 듣다〉 정추 선생 추모 음악회


2014년 8월 2일 광주는 태풍 ‘나크리’가 강력한 비바람을 몰고 와서 밖으로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 날이었다. 그날 저녁 7시 30분 광주 양림동에서 이곳 출신의 천재 음악가 ‘정추’를 기리는 추모 음악회가 열렸고, 태풍을 뚫고 찾아온 150여 명의 관객들은 정추 선생의 험난했던 인생과 같은 태풍을 느끼며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공연 마지막 순서였던 이수은의 퍼포먼스 〈정추 에필로그〉가 펼쳐질 때는 거센 비바람으로 극적인 효과가 더해졌다.

이번 공연은 광주 양림동에서 다양한 공연을 펼쳐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공연예술 순수’가 〈양림의 소리를 듣다〉 프로젝트의 금년도 두 번째 프로그램으로 마련한 것이다. 원래 주최 측은 양림동의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적인 ‘우월순 선교사 사택’과 그 앞의 넓은 잔디밭을 활용해 음악·연극·모던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공연을 펼치려고 했으나 태풍으로 인해 바로 옆에 위치한 카페 ‘다이닝 다 디오’로 공연 장소를 옮겨 진행하게 되었다.
공연 타이틀은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로 이름 붙여졌다. 이는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김소월 시 〈가는 길〉에 나오는 구절로, 고향 양림동에서 잠들지 못하고 작년에 이국땅 카자흐스탄에서 영면한 디아스포라 정추 선생을 추모하는 뜻이라고 한다.
1923년 광주 양림동에서 태어난 정추 선생은 차이콥스키의 4대 제자였다. 그는 차이콥스키 음악원 졸업 작품으로 학교 역사상 최초 만점을 받은 〈조국〉을 작곡한 후 ‘검은 머리의 차이콥스키’란 별칭을 얻었다. 그는 카자흐스탄에서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추방된 고려인들을 찾아다니며 1,000곡이 넘는 구전가요를 채록했으며,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를 담은 교향곡 〈1937년 9월 11일 스탈린〉을 만드는 등 300여 편의 관현악곡과 실내악곡, 칸타타 등을 작곡했다. 카자흐스탄의 음악 교과서에는 그의 작품 60여 곡이 실렸으며, 1988년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공화국 공훈 문화 일꾼’ 칭호를 받았고 2005년엔 한국에서 문화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호랑가시나무 창작소’의 입주작가들이 함께한 글로벌 프로젝트라 더욱 값어치가 있다.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는 온기가 멈췄던 양림동의 근대 선교사 가옥을 단장하여 올해 문을 연 다원예술 창작 레지던시 공간이다. ‘호랑가시나무 창작소’ 정헌기 대표는 입주작가 이수은을 통해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재즈 뮤지션 피터 이발트에게 정추 선생의 음원을 보냈다. 피터 이발트는 영국로얄음악아카데미와 뉴욕시립대에서 작곡과 색소폰을 전공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재즈 연주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독일에서 한 달여 간 정추의 곡 〈봄〉, 〈묵상〉, 〈스케르초〉를 재즈로 편곡했고, 7월 17일 ‘호랑가시나무 창작소’에 입주한 후 인접한 호남신학대학 음악과의 교수 및 학생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이날 공연을 준비하였다. 이번 공연에서 발표한 3곡은 정추의 원곡에 충실하면서도 유럽적 감성과 즉흥성이 결합된 곡으로 초연되어 많은 호응을 얻었다.
정추 선생 추모 음악회와 더불어 ‘호랑가시나무 창작소’ 오픈식도 열려 이날의 행사는 더 큰 관심을 끌었다. 레지던시 창작공간에서 국내외 작가가 공동 작업하여 지역의 자원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든 글로벌 프로젝트의 성과를 보여준 날이었다.
〈양림의 소리를 듣다〉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공연예술 순수’와, ‘호랑가시나무 창작소’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아트 주’의 대표를 동시에 맡고 있는 정헌기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생명력 넘치는 양림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호랑가시나무 창작소’ 입주작가로 한국에 와 이번 공연에 출연한 피터 이발트와 이수은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예술의 다양한 얼굴을 보았다.


  • 정헌기 대표
    정헌기 대표

[정헌기 대표 인터뷰]

Q. 광주 양림동의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예술로 풀어내는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한 올해의 대표적 프로그램을 한두 가지만 소개해 주세요.

‘공연예술 순수’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양림동의 역사문화유적들을 거점 삼아 〈양림의 소리를 듣다 시즌 2〉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지난 6월 27일에는 올해 첫 공연으로 건립 100주년이 된 ‘오웬기념각’에서 90년 된 무성영화 〈신입생; The Freshman〉을 상영했습니다. 이것은 영화 상영 이상의 공연이었죠. 영화의 극적 흐름에 맞춰 라이브 연주가 펼쳐졌고 거기에 변사의 노련한 입담이 어우러져 매우 다원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퍼포먼스가 탄생했습니다. 관객들의 호응도 대단했죠.
8월 2일 저녁에 있었던 두 번째 공연은 작년 타계한 양림동 출신의 음악가 정추를 추모하는 공연이었습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원래 계획했던 우월순 선교사 사택 야외 공연 대신 사택 옆 실내 카페에서 공연을 진행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두 가지에 놀랐습니다. 하나는 태풍을 뚫고 정말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는 것, 다른 하나는 거센 비바람이 오히려 공연자와 관객들 모두에게 정서적 상승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Q. 양림동에 레지던시 공간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를 만든 계기와 의미, 그리고 앞으로의 운영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현재 양림동 호남신학대학교 내에는 20세기 초에 외국 선교사들이 살았던 사택 몇 채가 고스란히 남아있는데요. 그 중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것이 우월순 선교사 사택이고, 그 아래에 삼각형 구도로 원요한 사택과 유수마 사택이 꼭짓점을 이루고 있어요. 제중원(현 기독병원) 원장이었던 우월순 선교사의 사택은 191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양림동 탐방의 필수코스일 뿐만 아니라 그 이국적이고 고풍스런 풍경 덕에 예비 신혼부부들의 사진 촬영지로 인기가 높습니다. 그에 비하면 원요한과 유수마 목사의 사택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곳입니다. 1950년에 건축돼 1998년까지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이 붉은 벽돌 건물들은 그들이 한국을 떠난 후, 한때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었고, 학생들이 신축된 현대식 기숙사로 옮겨간 후에는 수년 동안 빈 집 신세가 되어 상당히 음침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 공간들을 눈여겨보다가 올해 3월에 운 좋게 호남신학대학교로부터 이 공간들을 임대하게 됐습니다. 먼저 근처의 낙엽과 나무 잔해들을 정리하고 무단 투척된 쓰레기들을 치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 넘게 대대적인 내부 수리를 거친 결과, 원요한 사택은 레지던시 창작 공간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로 재탄생했습니다. 바로 곁에 수령 400년이 넘은 광주시기념물 17호인 호랑가시나무가 있고, 또 주변에 크고 작은 호랑가시나무들의 군락이 형성돼 있어서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이죠. 외관은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화단과 주변은 전에 없이 깔끔해졌고 어둡고 비좁았던 실내 공간들을 밝고 실용적으로 개조했습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엌, 로비, 화장실은 현대식으로 구비해 총 8개의 산뜻하고 널찍한 창작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이곳이 결국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 된 것은 어쩌면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술가들이 소외된 공간, 이를테면 버려진 공단이나 구도심 지역에 들어가서 개척자나 수도승처럼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죠. 더구나 양림동은 광주 근대문화의 발상지이자 수많은 예술가들이 나고 자란 곳이 아닙니까? 이곳에는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을 견인할 수많은 정신적 물리적 소재들이 존재하고 있죠.
현재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는 미디어아티스트 정운학 작가가 큐레이팅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양화가 한희원, 판화가 김상연, 조각가 윤남웅, 시인 나희덕,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음악가 이수은, 플로리스트 그룹 ‘위메이크플레이스’, 그리고 단기체류 해외 아티스트로 독일 출신의 재즈 뮤지션 피터 이발트가 입주해 있습니다. 광주의 주요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셈이죠. 작가들은 양림동의 역사와 삶을 담은 개별적 창작 활동과 더불어 지역 주민과 끊임없는 스킨십을 통해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히 펼쳐가고 있으며, 미술, 음악, 문학, 공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예술가들이 한 건물에 있다 보니 그 교류와 협업이 꽤 색다른 결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물들은 올 가을 창작소 바로 옆에 신축 중인 ‘호랑가시나무 미술관’과 야외무대 ‘백일홍 스테이지’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반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아트 주’는 ‘호랑가시나무 창작소’와 그 주변 공간을 창작전시활동 뿐만 아니라 아트 상품개발, 제작 워크숍, 상시 야외공연 등의 다양한 예술이 풍성하게 제공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Q. 양림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더 많이 알리는 방법과 비전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 주세요.

광주근대역사마을 양림동은 선교사들의 유적, 전통 가옥 구조의 고택들, 예술가들의 생가터, 사직공원과 양림산 등 훌륭한 역사유적과 자연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몇 차례씩 방문객들이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이 공간들을 둘러보고 있기는 하지만, 이곳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콘텐츠들이 현장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양림의 소리를 듣다〉, 〈굿모닝! 양림〉과 같은 문화행사들이 몇 개는 더 생겨야 하고, 전국에 산재한 문화모험가들의 구미를 자극할 만한 명소들이 더 많이 조성되어야 하겠죠. 현재 가동 중인 레지던시 공간 ‘호랑가시나무 창작소’가 그러한 역할에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 피터 이발트 색소폰 연주, 뒤 배경 사진은 정추 선생의 모습
    피터 이발트 색소폰 연주,
    뒤 배경 사진은 정추 선생의 모습

[피터 이발트 작가 인터뷰]

Q.
한국에 처음 왔다고 들었습니다. 광주의 레지던시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베를린에서 ‘앙상블 ~수(Ensemble ~su)’와 함께 2년 전부터 한국 전통음악 작업을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장고, 꽹과리, 북을 연주하는 ‘앙상블 ~수’ 멤버인 뮤지션 신효진을 통해 연출가이며 무대미술가인 이수은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수은을 통해 광주와 광주 출신의 작곡가 정추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정추의 특별한 삶과 작업에 관심이 갔는데, 정헌기 대표가 양림동의 ‘호랑가시나무 창작소’에 와서 정추 음악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여 흔쾌하게 레지던시 작가로 오게 되었습니다.

Q. 반적인 레지던시는 미술작가 위주인데, 뮤지션으로서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는 어떠했는지, 음악가에게도 적합한지 궁금합니다.

양림동은 조용하면서도 친절한 동네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살았던 곳이어서 그런지 크리에이티브한 면을 양림동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호랑가시나무 창작소’에서의 생활은 정말 좋았고 감동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레지던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습관적이고 일상적인 생활 요소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감을 얻고 새로운 창작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지던시에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만나서 서로의 각기 다른 작업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감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정헌기 대표가 호남신학대학교 음대와 연결시켜준 덕에 레지던시 작가들 외에도 다른 뮤지션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음악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이수은 작가 인터뷰]

Q.
〈정추 에필로그〉를 기획했는데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췄습니까?

소 련 공군장교였던 유리 가가린이 지구인 최초로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한 뒤 정추의 곡 〈뗏목의 노래〉가 축하연에서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정추는 평소에 우주 미확인물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저는 세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았던 그의 탐험가적인 예술 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자그마한 동네인 양림동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유배되기까지 그의 힘든 일생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담고 있습니다. 힘든 이념 분쟁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음악 작업을 한 그의 열정을 우주탐험에 빗대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Q.
공연에서 컨템포러리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이런 류의 퍼포먼스는 관객의 호응을 얻기 힘든데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사 실 예술가로서 그러한 반응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알 수는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퍼포먼스의 드라마투르기(dramaturgie)가 좋았고, 공연장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행사를 방해한 태풍을 오히려 이용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뜻하지 않은 신선한 놀라움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행사가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가득 차 있었고 행사를 보러 온 양림동의 관객들이 아주 개방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낯섦에 대해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양림동의 관객들이었기에 더욱 좋은 반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호랑가시나무 충전소 외부 모습
    호랑가시나무 충전소 외부 모습

    (사진: 호랑가시나무 충전소)
  • 호랑가시나무 충전소 내부 모습
    호랑가시나무 충전소 내부 모습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