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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식

[제주] 거로마을과 ‘문화공간 양’, 그곳의 사람들

황치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호남권 문화협력관)

  • 거로마을 당충대 모자이크 벽화 〈삶의 빛〉
    거로마을 당충대 모자이크 벽화 〈삶의 빛〉
  • 거로마을 주민 등 64명이 작업한 벽화 세부 모양
    거로마을 주민 등 64명이 작업한 벽화 세부 모양


제주공항에서 서쪽으로 8km 거리에 제주시 화북동 거로마을이 있다. 제주의 많은 지역이 4·3사건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듯이 거로마을에도 그 기억이 남겨져 있다. 거로마을에는 현재 70세 이상 어르신들이 150명이 넘게 살고 있다. 그 거로마을에서 제주의 역사를 함께한 동네 어르신과 자손 등 64명이 정현영 작가와 8개월간 ‘주민참여 벽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2014년 6월 11일에 거로마을을 찾아가보니 퐁낭(팽나무)이 서 있는 ‘당충대’의 아래를 둘러싸고 있는 제주 현무암 벽면에 세련된 벽화가 장식되어 있었다. 벽에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타일에 그린 것을 붙여 놓는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쉽게 상상했는데, 흔한 작업을 넘어선 작품이 완성되어 있었다. 당충대에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자리한 ‘문화공간 양’의 전시실에는 작업과정과 결과물이 ‘거로마을 사람들 삶과 빛’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를 보니 세련되고 의미 있는 작품이 어떻게 탄생됐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진정성으로 즐겁게 빚어낸 산물이었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친 정현영 작가가 ‘문화공간 양’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로 참여하여, 8개월간 제주 거로마을에 머물면서 주민과 소통하며 작업하였고, 주민들도 흥미롭게 자신의 창의력을 일깨우며 직접 작품을 정성스럽게 만들었으며, 이런 프로그램이 완성되도록 끌어주고 밀어준 ‘문화공간 양’의 김범진 관장과 김연주 기획자의 열정이 합쳐진 것이다.

  • 거로마을 당충대 모자이크 벽화 〈삶의 빛〉 전시
    거로마을 당충대 모자이크 벽화 〈삶의 빛〉 전시

l 주민참여 벽화 프로젝트의 진행과정과 의의

‘문화공간 양’은 벽화를 제작하기 전부터 마을 주민들과 소통을 시작하고, 벽화 제작에 주민들을 참여시켜 공공성을 획득하는 주민참여 벽화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벽화 제작 전에 실물 벽화와 흡사한 시안을 만들어서 벽화 제작의 의미와 방법들을 마을 주민들에게 충실히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정현영 작가는 미국 필라델피아 시청 공공벽화 프로젝트 등 다수의 벽화를 제작하였던 경험을 최대한 살려 최대 수명이 10년 정도인 아크릴 벽화 대신에 비와 바람이 많은 제주 기후에 적합하며 반영구적인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타일 모자이크 벽화 제작 방식을 채택했다. 화려하지만 가볍지 않은 타일의 색은 벽화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주변의 느낌과 의미를 바꿀 수 있었다.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던 장소였지만 현재는 그 기능이 퇴색해 버린 당충대를 벽화의 설치 장소로 정했다. 도로가 포장되기 전에는 퐁낭이 있는 당충대에 현재의 현무암 둘레석이 없어서 접근하기 용이했으나 도로 공사로 퐁낭의 뿌리가 잘리고 둘레석이 생기면서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이러한 퐁낭의 현무암 둘레석 위에 주민들이 참여한 벽화를 설치하여 당충대를 이야기가 되살아나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다. 
‘문화공간 양’ 입주 작가를 마친 후에도 제주현대미술관 입주 작가로 선정되어 현재도 제주에 머물고 있는 정현영 작가는 “제주 풍경 안에 제주도민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고 해석하여 벽화이미지로 재현하였다. 비에 젖은 현무암이 더욱더 깊은 검은색을 발현하는 점에서 화북 포구의 바다를 떠올렸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어선의 강렬한 불빛을 거로마을 사람들의 삶의 빛으로 해석하여 벽화 안에서 74개의 크고 작은 원들로 나타냈다. 참여한 64명의 주민들은 각자가 생각한 색채와 모양을 자유롭게 구성하여 각자의 삶의 빛을 표현했다. 심지어 문자로 표현된 것들도 있는데, 이런 문자들이 거로 주민의 소망을 더욱더 잘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벽화가 설치된 현무암 둘레석의 일부를 남겨 놓음으로써 바다와 돌과 함께 살아가는 거로 주민들의 질박한 삶을 나타냈다”고도 말했다.
주민들이 벽화 제작에 참여하면서 나눈 이야기들은 ‘문화공간 양’ 전시실에 세 부분으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었다. 한 부분은 작가의 스케치, 벽화 시안, 작가와의 대담 영상을 전시하여 벽화 이미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벽화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설명해준다. 다른 부분은 참여한 주민들의 사진을 하나의 띠처럼 연결하여 각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현재 거로마을 중심으로 이어져있음을 표현했다. 또 다른 부분은 제작 과정에 대한 설명, 제작 도구들이 같이 전시되고 있으며, 특히 관람자 중에서 원하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원에 타일을 가지고 자신의 작품을 제작할 수 있게 체험 과정도 마련했다.
벽화는 제작 과정과 방식이 중요하다. 거로마을 당충대에 설치된 주민 참여 모자이크 벽화는 ‘누가’, ‘왜’, ‘어떻게’, ‘얼마 동안’과 같은 기본적인 질문 가운데 수립된 제작 원칙이 충실히 지켜지고 있는 벽화의 모범사례를 보여준다. 작품의 의미, 제작 과정, 추후 관리 방안 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 공공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l ‘문화공간 양’의 탄생, 그 의미


‘문화공간 양’은 김범진 관장과 김연주 기획자가 ‘삶과 더불어 함께하는 예술’에 대한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의 하나로 2013년도에 설립하였다. 이제 1년여 지난 새내기인 셈이다. 첫 번째 사업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협력하여 지원하는 2013년 레지던시 프로그램 〈함께하는 예술 제작소〉를 2013년 6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진행했다.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깊이 있게 교류할 수 있도록 가급적 분야가 다른 국내외 작가들을 선정하였고 작가와 이론가의 교류를 위해 미술이론가도 참여시켰다. 이론가, 작가, 지역사회 사이의 다양한 소통구조 형성, 입주 작가들을 대상으로 미술계 활동에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육 제공, 제주도 신진작가의 발굴 및 육성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실천하여, 1년 만에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공공미술의 실천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한 16개 시·도 지역협력사업 사례발표대회에서 대표적 우수사례로 선정되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상을 수상하였다
'문화공간 양'은 장소성과 역사성, 현재성에서 큰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거로마을이 있는 화북에 공업단지가 들어서면서 거로마을 주변은 변해가고 있지만, 제주 시내가 가까운 곳에서 여전히 제주 전통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거로마을이다. 거로마을에 있는 '문화공간 양'은 김범진 관장의 외가이다. 1950년대 4·3사건으로 흩어졌던 마을 사람들이 손으로 돌을 하나하나 쌓아 집을 지은 곳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소중한 기억을 쌓아가는 공간이 되었고 감나무, 하귤나무 등 여러 과실수도 집과 함께 성장하였다. 또한 똥도새기(돼지)가 있던 통시(화장실) 등 추억의 공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고서와 생활 도구들도 남겨져 있어 제주도민의 삶의 흔적들을 느끼게 해준다. 낮은 천정의 제주도 전통가옥 구조를 그대로 간직한 전시공간은 현재 작가들에게 도전의 공간이기도 하다. 독특하고 난해한 공간 구조가 작가들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여 예술성을 갖춘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게 하는 현재성도 보여준다. 이렇게 ‘문화공간 양’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남겨진 것들과 만들어지는 것들이 공존한다.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에 재해석되는 공간에서 작가, 이론가, 지역주민, 일반 관객들이 예술을 매개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 ‘문화공간 양’의 전시공간
    ‘문화공간 양’의 전시공간
  • ‘문화공간 양’의 작가 거주공간
    ‘문화공간 양’의 작가 거주공간
  • ‘문화공간 양’의 열린공간(감나무)
    ‘문화공간 양’의 열린공간(감나무)

김범진 관장과 김연주 기획자 인터뷰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등에서 문화콘텐츠산업 진흥을 위해 연구, 지원하는 일을 하다가 문화 현장의 중요성을 느끼고 홍익대 미학과에서 새롭게 공부를 하면서 2013년에 ‘문화공간 양’을 설립한 김범진 관장과, 홍익대 예술학과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술비평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주로 서울에서 다양한 전시기획을 해왔던 김연주 기획자를 공동 인터뷰하였다.

Q. ‘문화공간 양’으로 이름 지은 이유와 공간적 의의는 무엇인가요?


‘양’ 은 사람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제주어입니다. 문화와 예술로 사회에 말을 건다는 의미로 공간의 이름을 ‘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역주민, 작가, 기획자 등이 더불어 함께한다는 의미의 ‘양’이기도 합니다. 또한 김범진 관장의 외할머니 성인 ‘양’을 따서 강인한 제주 여성에 대한 오마주를 보여주고자 하며, 김범진 관장과 김연주 기획자 ‘두 사람’이 함께한다는 의미도 담았습니다.
‘문화공간 양’은 긴 역사를 간직한 거로마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공간들이 서귀포나 중산간 지역에 있는 것과 달리, 제주시에 자리하고 있어 제주도민이 쉽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주 전통가옥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어 작가들에게는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제주도에 정착한 분들에게는 제주 전통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합니다.


Q. 두 분이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제주로 내려와 '문화공간 양'을 운영하며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추진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김연주 : 서울에서 공공미술과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전시기획을 했습니다. 공공미술 관련해서는 주로 거리에 한시적으로 작품을 설치하거나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여 작품을 완성시키는 형태의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했는데, 점차 관람객들과 소통하기에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김범진 관장님이 제주도 거로마을이라는 역사 깊은 마을에 외가집이 있는데, 그곳이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기존 활동과 달리 예술을 매개로 마을 분들과 친밀하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김범진 : 공공기관에서 일할 때 문화를 산업 측면으로만 바라보는 것에 대한 한계를 절감하였습니다. 문화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한 김연주 선생을 만나게 되어 제주 문화 현장에 직접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 ‘문화공간 양’은 제 어릴 때 기억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귤밭에서 일을 마친 마을 분들이 현재 전시공간인 집에 모여 제 동요를 들으셨습니다. 이곳에서 마을 분들이 모여 소통하던 것의 의미를 현재에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Q. '문화공간 양'이 문을 연지 1년 밖에 안됐는데도 전국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뽑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상을 수상하였는데, 그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라고 생각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마을 분들과 잘 화합하고, 마을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에서 ‘문화공간 양’의 가능성을 보신 것 같습니다.


Q. ‘문화공간 양'이 작년에 추진한 사업 중 대표적 프로그램과 금년도 추진하는 사업 중 가장 중점을 두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약 8개월간 거로마을 주민 등 64명을 참여시켜 정현영 작가가 제작한 모자이크 벽화 〈삶의 빛〉은 벽화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존성을 고려한 재료와 제작 방법뿐만 아니라 마을 회의를 거쳐 지역주민의 동의를 구하고 참여하는 과정에 큰 중점을 두었습니다. 또한 작년에 제주도 내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기획자가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문화기획자 양성 프로그램-시각예술 기획자를 위한 세미나’를 12강 진행한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올해는 ‘공간과 기억’이라는 큰 주제 아래 거로마을의 역사를 재해석하고 현재를 기록하는 작업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판화가, 패션 디자이너, 전통침선 공예가, 재즈 피아니스트 사이의 협업 작업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Q. '문화공간 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홍보는 어떻게 하며, 지역민 등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처음 시작하는 문화공간의 활동을 알리기 위해 각 신문사, 잡지, TV 등 다양한 매체에 보도자료를 지속적으로 발송했습니다. 그리고 시각예술 관련 전문 인터넷 홍보매체인 ‘네오룩’을 통해 전국적으로 홍보될 수도 있게 했습니다. 또한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전시, 강좌 등의 행사뿐만 아니라 ‘문화공간 양’의 일상적인 모습도 소개해 왔습니다. 특별히 보도자료를 자세하고 심도 있게 작성하여 기사가 많이 실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 제주 MBC 생방송 출연 인터뷰를 비롯하여 제주 KBS와 신문 등 여러 매스컴에 집중 보도되었습니다.
지역 분들과의 소통은 ‘문화공간 양’ 프로그램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문화공간 양’에서 마련한 프로젝트의 예술 활동을 통해서도 지역 분들과 소통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도 교감하고 있습니다. 작가 분들과 함께 경로잔치, 효도관광, 단합대회 등 마을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거로마을 운동장에서 마을 분들이 저녁 먹으라고 부르시면 편하게 놀다 옵니다. 마을 분들이 저희 공간에 찾아오셔서 놀다 가기도 하시고, 김치나 채소 등 다양한 먹거리들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마을 분들과 교분을 쌓게 되어 마을위원회의 추천으로 2014 창작공간 프로그램 지원사업인 ‘함께하는 예술 제작소-공간과 기억’에 참여한 작가도 있습니다.


  • 김범진 관장과 김연주 기획자(왼쪽)
    김범진 관장과 김연주 기획자(왼쪽)
  • 문화기획자 양성 프로그램: 시각예술 기획자를 위한 세미나
    문화기획자 양성 프로그램: 시각예술 기획자를 위한
    세미나
  • 거로마을 총회에 참석해 봉사하는 김연주 기획자
     거로마을 총회에 참석해 봉사하는 김연주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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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