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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일본] 한국 연극계와 인연 깊은 소극장
타이니 알리스 폐관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 타이니 알리스
    타이니 알리스
  • 폐관하는 날 공연 뒤 기념 사진
    폐관하는 날 공연 뒤 기념 사진

최근 한국 연극계의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는 소극장들의 잇단 폐관이다. 올 들어서만 상상아트홀, 김동수 플레이하우스, 대학로극장, 꿈꾸는 공작소 등이 급격히 오른 임대료 때문에 경영난을 겪다 폐관을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연극인들은 지난 3월 “소극장은 죽었다”는 의미로 꽃상여를 들고 대학로를 행진하기도 했다.  
그런데 소극장의 위기는 비단 한국 연극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지난 몇 년 동안 도쿄의 유서 깊은 소극장들이 재정난 때문에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2006년 재단법인 현대연극협회가 운영하던 300인극장(1974년 개관)이 폐관됐고, 2013년엔 명문 극단 전진좌가 소유했던 전진좌극장(1982년 개관)을 매각했다. 올 들어서도 지난 1월 아오야마 극장 및 아오야먀 원형극장(1985년 개관)에 이어 4월 타이니 알리스 극장(1983년 개관)이 폐관되었으며, 사사즈카 팩토리 극장이 내년 3월 폐관을 앞두고 있다. 특히 타이니 알리스는 그동안 일본에서 한국 연극을 소개하는 데 앞장섰던 곳이라 국내 연극계에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l 도쿄의 소극장 현황

도쿄의 전체 극장 수는 약 500여 개지만, 절반 정도는 스튜디오에 가까운 것으로 정식 극장은 25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중 50개 정도는 500석 이상의 중대형 규모의 극장이다. 이 같은 수치는 인터넷 티켓 예매사이트인 티켓피아나 연극 잡지인 씨어터가이드의 극장 데이터베이스에 따른 것이다.
도쿄에는 서울 대학로처럼 150여 개나 되는 소극장이 모인 거리는 없다. 대신 소극장이 골고루 산재해 있다. 다만 도쿄에서 ‘연극의 거리’로 불리는 지역을 꼽자면 세타가야구(區) 북동쪽에 자리한 시모키타자와다. 근처에 대학 캠퍼스가 많아서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많은 이곳은 소극장과 라이브 하우스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0여 개의 소극장은 젊은 연극인들의 홈그라운드다.
시모키타자와에 있는 소극장들은 서울 대학로의 소극장처럼 매우 작고 시설도 열악하다. 혼다 극장이 386석으로 가장 크고 나머지는 70~150석 사이다. 이곳이 연극의 거리가 된 것은 극장 8개를 가지고 있는 혼다극장그룹의 대표 혼다 가즈오(81) 덕분이다. 젊은 시절 배우였던 그는 장사로 큰돈을 번 뒤 1980년 배우 양성소인 혼다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이듬해 젊은 연극인들을 위한 연습실 겸 극장인 ‘자 스즈나리’를 만든 그는 1982년 정식 극장인 혼다극장을 오픈했다. 혼다극장은 재능 있는 젊은 연극인들의 작품을 잇달아 공연하며 일본 연극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 마침 1980년대 말부터 노다 히데키, 와타나베 에리 등으로 대표되는 소극장 연극 열풍이 다시 불면서 그는 소극장을 차례차례 오픈했다. 현재 소극장 8개가 혼다극장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모키타자와에는 혼다극장그룹 소속 외에 APOC 시어터, 아틀리에 건전지, 시모키타자와 타운홀, 연극 파라타 등 여러 개의 소극장이 있다. 그리고 매년 2월에는 혼다극장그룹을 중심으로 한 달간 연극 페스티벌이 열린다.
독특한 위상을 가진 혼다극장그룹 외에 도쿄 소극장들은 민간, 특히 극단들이 운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일본의 유서 깊은 극단인 배우좌와 청년좌는 각각의 극단 이름을 딴 극장을 가지고 있다. 또 국내에 ‘조용한 연극’으로 잘 알려진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가 이끄는 극단 청년단 역시 고마바 아고라 극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 극장들은 대체로 극단 공연을 우선으로 하되 남는 기간은 대관하고 있는데, 고마바 아고라 극장은 한국의 게릴라극장처럼 단순 대관을 지양하고 공동주최로 작품을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극단 혼자서 극장을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스토어 하우스처럼 50여 개의 극단이 공동으로 출자해 유한회사 형태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도쿄의 소극장 현황을 볼 때 서울과 비교해 눈에 띄게 다른 특징이 있다. 바로 공공이 운영하는 소극장이 많다는 것이다. 신국립극장이나 도쿄예술극장(도립)에 있는 소극장은 물론이고 씨어터 트램, 자코엔지, 키치조지 시어터, 그리고 아울스폿 등 구(區)들이 운영하는 소극장들이 많다. 이들 극장은 거의 연극 전용극장으로 제작 공연의 비중이 꽤 높다. 한국의 경우 구 단위 지자체에서 연극 전용 소극장을 지원하거나 운영하는 경우는 없다.
또한 기업들이 운영하는 소극장이 많은 것도 한국과 다른 점이다. 엄밀히 말해 소극장이라기보다는 500석 안팎 중극장에 가까운 규모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대형 출판사 겸 서점 체인인 키노쿠니야서점이 1964년 신주쿠 본점 안에 만든 키노쿠니야홀(418석)이다. 이곳은 개관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극단들의 공연이 이뤄지고 있다. 키노쿠니야서점은 1996년 신주쿠 분점을 설립하면서 키노쿠니야 사잔 시어터(468석)라는 또다른 극장을 오픈했다. 이곳은 젊은 극단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덧붙여 1966년 시작된 키노쿠니야 연극상은 일본 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극상이기도 하다.
PARCO 백화점, 도큐 백화점, 미쓰코시 백화점 등도 500석을 조금 웃도는 연극 전용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각각 PARCO 극장, 분카무라 씨어터 코쿤, 미쓰코시 극장으로 유명 극작가나 연출가들의 ‘웰메이드 연극’이 주로 공연된다. 그리고 미쓰코시 극장은 부유한 노년층이 고객인 미쓰코시 백화점에 자리한 만큼 신파를 주로 공연하고 있다.
또 부동산 관리회사인 쓰카사주식회사는 1998년 180석짜리 소극장 포켓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90석의 극장 모모(2000년), 120석의 테아트로 봉봉, 70석의 극장 HOPE(이상 2009년)를 오픈했다. 4개의 극장이 모인 조그만 극장가는 포켓 스퀘어라고 불리며, 시모키타자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소극장 거리가 됐다.  
일본에서 볼 수 있는 또다른 극장 운영 형태로는 NPO가 있다. ‘Non-Profit Organization’의 약자인 NPO는 민간비영리조직을 의미하며 공익성을 인정받아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다. 예를 들어 페스티벌 도쿄, 요코하마 미팅스 등 일본의 수많은 문화예술 단체와 각종 극장의 운영 주체가 바로 NPO다. NPO가 운영하는 소극장으로는 타이니 알리스가 대표적이다. 1983년 설립된 타이니 알리스는 객석이 50석 안팎으로 매우 작은 극장이지만 젊은 연극인들에게 첫 무대를 제공하는가 하면 제3세계 연극을 일본에 소개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 지하로 들어가는 타이니 알리스 입구
    지하로 들어가는 타이니 알리스 입구

l 타이니 알리스의 폐관

타이니 알리스는 일본의 일반적인 연극 관객이 자주 찾는 곳은 아니지만 연극계에선 독특한 입지를 가진 극장으로 유명하다. 개관 이래 수많은 젊은 극단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으며 한국, 중국, 북한, 중동 등 구미 이외의 연극을 일본에 꾸준히 알리고 교류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관련해서 오태석, 이윤택, 채윤일, 김광보 등의 작품이 일본에 소개될 때 처음 교두보가 됐던 곳이 바로 타이니 알리스였다. 그리고 신주쿠양산박이나 아랑삶세, MAY 등 재일교포가 중심이 된 극단들의 작품도 이곳에서 많이 공연됐다.
타이니 알리스는 32년 전인 1983년 일본 극단 민예 출신 배우 겸 연출가인 니와 후미오와 연극평론가 겸 교수인 니시무라 히로코가 의기투합해 만든 소극장이다. 1970년대 일본에서 위력을 떨치던 앙그라 연극(언더그라운드 연극)의 영향을 받은 데다 미국 유학파답게 당시 실험극 열풍의 세례를 받은 두 사람은 일본에서 새로운 연극을 창조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극장의 이름인 ‘타이니 알리스(Tiny Alice)’는 루이스 캐럴이 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왔다. 워낙 키가 작아서 ‘Tiny’라는 별명이 있었던 니시무라 교수는 극장을 만들고 동분서주하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알리스(일본식 표기) 같아서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타이니 알리스는 개관한 해부터 매년 연극 축제 ‘타이니 알리스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1회 페스티벌부터 도쿄 극단들 외에 지방도시 나고야의 극단을 초청하는 등 도쿄 중심에서 탈피해 연극의 다양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미지의 재능을 발견한다’는 타이니 알리스의 목표를 알려주는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연극을 통해 소통하려는 국제 교류 역시 이러한 목표와 일맥상통한다.
국제 교류와 관련해 한국 연극은 타이니 알리스를 통해 일본 연극과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었다. 니와 후미오 대표는 최근 타이니 알리스의 폐관에 맞춰 발행한 책자인 ‘소극장 타이니 알리스-이곳은 연극의 이상한 나라’에서 한국 연출가 이윤택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980년대 말 부산에서 우연히 ‘산씻김’을 본 그는 이윤택과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됐고, 이후 매년 페스티벌에 한국 극단을 초청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4월 초에 막을 내린 마지막 페스티벌에서도 극단 골목길의 ‘만주전선’, 극단 후암의 ‘흑백다방’ 등이 초청돼 일본 연극계 관계자들의 주목을 모았다.


그런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운영되던 타이니 알리스는 올해 폐관하기로 지난해 가을 결정을 내렸다. 니와(80) 대표가 지병으로 수술을 받은 뒤 요양이 필요한 상황에서 연로한 니시무라(78) 교수 혼자서 극장을 꾸려나가기가 너무 벅찼기 때문이다.
비록 극장은 폐관됐지만 타이니 알리스가 추구해온 꿈은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니와 대표 및 니시무라 교수에 깊은 감화를 받은 후배 연극인들에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배우 겸 연출가 김세일의 활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산 출신인 그는 2002년 니와 대표가 기획한 한일합작연극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으로 유학을 왔다. 현재 도쿄대학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그는 일본에서 극단 세아미를 만들어 활약하는 한편 한일 연극 교류 코디네이터로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동안 이윤택 등 한국 연극인들의 일본 작업을 도왔던 김세일은 아예 2013년부터 타이니 알리스에서 오세혁, 정소정 등 한국의 신인 극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한국신인극작가시리즈’를 선보여 왔다. 또한 지난해부터 시작된 후쿠오카와 부산의 연극교류 프로그램인 ‘하나로 프로젝트’의 코디네이터를 맡아 희곡 교환 공연을 주도하고 있으며, 일본 배우들을 대상으로 연기 워크숍까지 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인인 그가 아내인 배우 이지영과 함께 책자 ‘소극장 타이니 알리스-이곳은 연극의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타이니 알리스의 폐관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그는 일본 연극계 관계자들의 협력을 얻어 극장 운영을 이어받으려고 했으나 이미 건물주가 새로운 임대인과 계약을 마친 뒤여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 타이니 알리스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극단 후암의 대표인 차현석 역시 소통과 실험을 추구해온 타이니 알리스의 취지에 공감한 인물이다. 대학로에서 스타시티 극장을 운영하는 그는 “소극장 1개에 타이니 알리스라는 이름을 붙이는 한편 타이니 알리스 페스티벌을 이어가고 싶다고 니시무라 선생님께도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내년 여름 대학로에 ‘타이니 알리스 서울’이 등장할 전망이다.


  • 타이니 알리스 폐관을 아쉬워하며 열린 전시회
    타이니 알리스 폐관을 아쉬워하며 열린 전시회
  • 시즈오카 예술감독
    시즈오카 예술감독
  • 집필한 한국인 연출가-배우 부부 김세일과 이지영
    집필한 한국인 연출가 배우 부부 김세일과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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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