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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네덜란드] 게릿 리트벨트 아카데미 졸업 전시 2015
(Gerrit Rietveld Academie Graduation Show 2015)

오민 (작가)
  • 게릿 리트벨트 아카데미
    게릿 리트벨트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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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 전시 안내판
  • 리트벨트 아카데미 상의 수상자들
    리트벨트 아카데미 상의 수상자들


예상치 못한 무더위가 갑작스레 찾아온 암스테르담의 7월 첫 주, 게릿 리트벨트 아카데미(Gerrit Rietveld Academie, 이후 리트벨트 아카데미)에서는 4년의 과정을 마친 학생들의 졸업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를 비롯한 다채로운 행사들이 진행되
었다.

네덜란드의 미술 대학들은 매년 7월이 되면 졸업을 위한 준비로 들썩인다. 올해 역시 리트벨트 아카데미의 대학원 과정 샌드버그(Sandberg Instituut)를 선두로, 리트벨트 아카데미, 로테르담 빌럼 드 쿠닝 아카데미(Willem de Kooning Academy)와 그 대학원 과정 피트 츠바르트 인스티튜트(Piet Zwart Institute), 헤이그 왕립예술학교(KABK, Royal Academy of Art), 브레다와 스헤르토겐보쉬 두 도시에 자리 잡은 세인트 유스트(AKV | St.Joost) 등 각 도시의 미술 대학들은 졸업생들을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해 문을 활짝 열고 그들이 졸업과 더불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들을 주최했다. 헤이그 왕립예술학교에서 졸업 전시와 관련 행사들을 묶어 ‘졸업 페스티벌’이라고 부르는 것을 볼 때, 각 학교들이 졸업 전시를 준비하는 태도와 에너지가 얼마나 열정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리트벨트 아카데미의 졸업 전시는 7월 1일부터 5일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186명의 졸업생, 1개의 온실과 3개의 빌딩, 5,000㎡의 공간, 800개의 전시 가벽, 2,500부 인쇄된 전시 구조도가 이 하나의 졸업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며 정확한 숫자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소개 글이 인상적이었는데 네덜란드 특유의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커다란 창문에 가리개나 커튼도 달지 않은 채 세간살이와 일상의 모습을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네덜란드 특유의 청교도적 자세와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유희적인 전시 디자인도 인상적이었다. 엉망진창의 커닝(kerning. 글자 간의 간격을 일률적인 규칙이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 그 모양을 고려하여 바로잡아 보기 좋게 만드는 과정)과, 무자비한 하이프네이션(hyphenation, 한 단어가 두 줄에 나뉘어 써지는 경우 하이픈을 이용해서 끊어진 단어를 연결하는 것)으로 디자인된 듯, 심술 맞은 인상을 풍기는 두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침착한 흥분(Sober Euphoria)’, ’자유분방한 통제(Wild Control)’, ‘고통스러운 기쁨(Painful Delight)’, ‘사나운 정숙함(Fierce Modesty)’, ‘힘이 넘치는 평온(Forceful calmness)’ 등과 같이 서로 이율배반적인 의미를 품고 엉켜 있는 두 단어를 보며, 오래전 학교에 다니면서 경험했던 질풍노도와 희로애락의 기억이 떠올라서인지 달짝지근하면서 씁쓸한 웃음이 났다.

미술 작가이자 리트벨트 아카데미 선배 졸업생인 조로 피글(Zoro Feigl)의 오프닝 연설과 퍼포먼스를 필두로 시작된 전시는, 파인 아트에서부터 사진, 영상/음향(VAV, Audiovisual), 그래픽 디자인, 보석 디자인, 공간 디자인(Inter-architecture), 유리 공예, 패션, 세라믹, 텍스타일(TxT), 이미지와 언어, 디자인 랩(design LAB), 그리고 파트 타임 과정(DOGtime)까지, 리트벨트 아카데미의 열세 개 학과별 독자적인 기획으로 구성되었는데, 주의 깊게 눈여겨보지 않으면 어떤 전공의 전시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학과의 이름이나 미디어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분방한 접근이 돋보였다.

전시는 각종 크고 작은 퍼포먼스, 전시 가이드 투어, 루시테 테르 보르흐(Lucette ter Borg)의 예술 평론 마스터 클래스, 시상식과 함께 진행되었다. 리트벨트 아카데미 상(GRA Awards)은 그해 두각을 나타낸 졸업생들에게 수여되는데, 올해는 드 아펠 아트 센터(De Appel Art Center)의 감독 로렌조 베네데티(Lorenzo Benedetti), 드 할렌 할렘(De Hallen, Haarlem)의 감독 잰더 카르스켄스(Xander Karskens), 한델스블라트(NRCHandelsblad, 네덜란드의 주요 일간 신문 중 하나) 소속 예술 비평가 산드라 스메츠(Sandra Smets) 등이 심사를 맡았고, 수상의 영예는 후안 드 포라스 이슬라 페르난데즈 라 카스타와 바우터 파이만스(Juan De Porras-Isla Fernandez La Casta & Wouter Paijmans, 파인 아트 전공) 팀, 라우라 클린켄베르그(Laura Klinkenberg, 보석 디자인 전공), 그리고 바하 괴르켐 얄림(Baha Görkem Yalim, 오디오 비쥬얼 전공)이 차지하였다. 수상자들은 상금과 함께 올가을 그룹 전시의 기회를 얻게 된다.

5일 동안 진행되었던 리트벨트의 졸업 전시는 행사의 마지막 순서인 졸업식과 함께 막을 내렸다. 졸업식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픽 디자인 학과 교수(한국에서의 교수 개념과는 차이가 있음)인 토마스 셀리즈나(Tomas Celizna)로부터 간단하게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전시와 마찬가지로 졸업식 또한 학과마다 독자적으로 기획되며, 엄격하게 양식화된 의례라기보다는 졸업생과 가족, 교수 모두 즐길 수 있는 유연한 파티와 유사하다. 올해 그래픽 디자인 학과의 경우는 가위바위보, 빙고, 카드 게임, 수학 문제 등의 미션을 완수해야만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간단한 서바이벌 게임 형식을 차용했다고 한다.

리트벨트 아카데미의 유희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졸업식에 대해 듣고 난 후, 2년 전 암스테르담 극예술학교(De Theaterschool)의 안무과(SNDO Choreography) 졸업식에 초대되었던 기억이 났다. 졸업 행사는 늦은 오후의 보트 투어로 시작했다. (학생 행사답게 저렴한) 와인과 스낵이 곁들여진 한 시간여의 암스테르담 투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자, 이듬해 졸업하게 될 후배 학생들이 올해의 졸업생 한 명, 한 명을 위해 만든 파격적인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각 퍼포먼스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 해당 졸업생이 무대로 초대되어 함께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 후 학장에게 인도된다. 학장은 각각의 졸업생에게 격려 및 당부의 말과 함께 졸업장을 전달했다. 공연/학위 수여식이 끝나면 저학년 동료들이 직접 요리한 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본격적인 파티에 돌입한다. 의식과 볼거리, 즐길 거리가 적절하게 조화된 축제와도 같은 졸업식을 보며 적지 않은 문화적 차이를 느꼈던 터였다.

90년대 말 직접 경험했던 한국 대학의 졸업식은 다소 전형적이고 일률적인 면이 있었다. 매년 크게 다르지 않은 식순에 따라 진행되는 졸업식은 건너뛰고 캠퍼스 구석구석에서 사진 찍기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참여하고 싶고 기대가 되는 행사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문득 현재 한국 대학들의 졸업식 풍경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 ©Laura Klinkenberg (Jewellery department)
    ©Laura Klinkenberg
    (Jewellery department)
  • ©Lovei Peopleslow (textile department)
    ©Lovei Peopleslow
    (textile department)
  • ©Niek Peterslow (ceramics department)
    ©Niek Peterslow
    (ceramics department)


(사진: Gerrit Rietveld Acade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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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