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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네덜란드]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 속 스토리텔링, 그 현재진행형
(On the Move: Storytelling in Contemporary Photography
and Graphic Design)

오민 (작가)
  •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 속 스토리텔링, 그 현재진행형》 展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 속 스토리텔링, 그 현재진행형》 展
  • 〈우리를 즐겁게 해 주오〉
    〈우리를 즐겁게 해 주오〉 ⓒ오민
  • 〈팬 아메리칸 고속도로〉
    〈팬 아메리칸 고속도로〉 ⓒKadirVanLohuizen


9월을 맞이하여 암스테르담의 미술계가 여름잠에서 깨어나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매년 이 무렵 암스테르담에서는 각종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전시 오프닝을 만날 수 있다.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도 예외가 아니다. 8월 마지막 주에서 9월 첫째 주에 걸쳐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서는 두 개의 전시가 막을 올렸다. 이번 해외뉴스에서는 그 중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 속 스토리텔링, 그 현재진행형(On the move: Storytelling in Contemporary Photography and Graphic Design)》 전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암스테르담 시는 2년에 한 번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이 주관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을 구매, 수집하는데,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 속 스토리텔링, 그 현재진행형은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전시이다. 네덜란드에서 작업하는 작가라면 누구든 이 프로그램에 작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인 작가들에게는 일종의 등용문이 되는 셈으로 암스테르담 시가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하나의 방안이다. 매회 새로운 주제로 기획되는 이 프로그램은, 주제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경쟁을 통해 일차적으로 선정하고, 선정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를 연 후, 암스테르담 시가 구매할 최종 작품을 결정하는 세 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지난해 가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은 사진 예술과 그래픽 디자인과 관련하여 새롭고, 비판적이며, 실험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내러티브의 형식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공개 모집하였다. 이미 발표된 작품부터 이 전시를 위해 완성될 작업까지 다양한 단계의 프로젝트들이 경쟁에 참여했고, 총 471개의 지원작 중 28개의 작품이 선발되었다. 시립미술관 그래픽 디자인 분야 큐레이터 캐롤린 글라젠버그(Carolien Glazenburg), 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아네 라우그트(Anne Ruygt), 아카베 세인트 요스트 대학(AKV St. Joost)의 사진 전공 학장 카린 크레이그스만(Karin Krijgsman),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러스트(LUST)의 공동창업자 드미트리 뉴웬하우젠(Dimitri Nieuwenhuizen)이 작품 선정 심사를 담당했다.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 속 스토리텔링, 그 현재진행형 전시에서는 현대 기술의 발달과 사진이라는 매체가 적절하게 엮여 있는 이야기 전개 방식, 즉, 컴퓨터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비디오와 오디오가 결합한 설치물, 웹사이트 등의 다채롭고 비선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시도하는 경향이 발견된다. 그에 수반되는 그래픽 디자인의 영역과 접근 방법의 변화도 자연스럽게 관찰할 수 있다.
 
사라 카를리르(Sarah Carlier)가 선보인 다중 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 〈우리를 즐겁게 해 주오 (Let us be cheerful)〉(2014)에서는, 작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정지와 움직임’의 장면을 재현한 열세 개의 비디오가 9개의 스크린을 통해 동시 상영된다. 정적인 사진 이미지에 움직임을 부여하고 시간이라는 개념을 첨가하는 방식은 많은 사진작가들이 실험해 온 방법이라 할 수 있지만, 여러 개의 스크린에 병치된 파편화된 장면들이 절묘한 시간적 리듬감을 통해 엮여 있어, 비선형적이면서도 선형적인 섬세한 구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 〈아이폰〉
    〈아이폰〉

엘스페트 디데릭스(Elspeth Diederix)의 작품 〈아이폰(iPhone)〉(2011)과 〈새로운 새벽의 장미(Rosa New Dawn)〉(2012)는 일상의 오브제들을 세심한 연출을 통해 초현실적이고 시적인 이미지로 전환하는 그의 작업 성향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이 전시에서 더욱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는 부분은 개별적인 이 두 작품보다, 이 두 작품을 포함하고 있는 사진집과 블로그일 것이다. 먼저 카차 판 스티파우트(Katja van Stiphout)가 디자인한 디데릭스의 사진집 〈그 모습 그대로의 물건들(Things as they are)〉(2013)의 경우, 원본 사진의 비율대로 각기 다른 판형을 가진 낱장의 페이지들이 날것처럼 묶여 있는 형태를 띠고 있는데, 한 가지 판형에 정갈한 이미지 레이아웃, 그리고 캡션 등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사진집 디자인에서 벗어나 새로운 책의 형식을 실험하는 현시대의 그래픽 디자인 경향이 사진 예술의 내러티브 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예시로 보인다. 다음으로, 디데릭스가 200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 〈스튜디오 정원(The Studio Garden)〉은 작가의 스케치북의 일종으로, 온라인으로 작품들을 공유함으로써 불연속적인 시간 흐름 내에서 미완결된 이야기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주어 관객과 작품 사이의 새로운 소통방식을 제시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작품을 접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모색한 작품으로, 카디르 판 로하우젠(Kadir van Lohuizen)의 〈팬 아메리칸 고속도로(Via PanAm)〉(2011-2013)를 들 수 있다. 이민자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기획된 〈팬 아메리칸 고속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판 로하우젠은 칠레 남부에서 시작하여 최종 목적지인 알래스카 데드호스에 이르기까지 두 개의 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팬 아메리칸 고속도로를 따라 15개국을 여행하면서 마주친 장면들을 기록했다. 칠레에서 일하고 있는 페루 여성,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라크 난민 등의 삶이, 라디오 방송, 블로그, 뉴스 칼럼, 그리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하여 전달된다.


올리비에 판 브루걸(Olivier van Breugel)과 시몬느 무데(Simone Mudde)는 신작 〈스크린들 사이(Between Screens)〉(2014)를 통해 현대인의 일상생활을 점령하고 있는 새로운 문명의 이기와 인간 행동을 관찰한다. 평소 공공장소에서의 사람들의 행위에 관심을 가져온 두 작가, 브루걸과 무데는 암스테르담 라익스미술관(Rijksmuseum)에 전시된 렘브란트(Rembrandt)의 〈야경꾼(Night Watch)〉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을 관찰한다. 명작을 앞에 두고, 감상하기보다는 휴대전화나 태블릿PC의 카메라에 이미지를 담아내기에 바쁜 관람객들의 모습에 주목하고, 그들의 카메라 스크린에 재현된 〈야경꾼〉 이미지를 다시 카메라 프레임에 담아 또 다른 이미지로 재생산하였다.

 
루네 페이터슨(Rune Peitersen)은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형태에 관해 생각한다. 그의 작품 〈안전한 거리(Safe Distance)〉(2014)에서는 폭동과 시위의 현장을 포착한 저해상도의 인터넷 이미지들이 사뭇 그럴싸한, 마치 그림 같은 모습으로 가공되어 있다. 현장의 폭력성을 인공적인 아름다움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통해, 폭력의 현장에서 휴대전화 등으로 생생하게 이미지를 만드는 생산자들과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서 안전하게 폭력을 목격하는 관람자 간의 거리를 극대화시킨다.
 
전통적인 이미지 생산 기술, 즉, 인쇄 방법에 초점을 맞춘 작품도 여전히 발견된다. 요하네스 슈와르츠(Johannes Schwartz)는 〈동물원(Tiergarten)〉(2014) 시리즈에서 인쇄 망점을 오히려 과장하고 이색적인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피사체의 인상을 재설정한다. 이런 기술적 전략은 사육되고 있는 야생동물들의 ‘야생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개인적으로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 속 스토리텔링, 그 현재진행형 전시에서 가장 흥미를 끌었던 작품은, 새로운 기술이나 매체를 이용하거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에 주목하는 작업들보다는, 마르티너 스티그(Martine Stig)의 작품 〈코시 경계 조건(Cauchy Horizons)〉(2012)과 같이 지극히 조형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내러티브 방식을 찾기 위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스티그는 미래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는 방법을 연구한다. 먼저 공상 과학 영화를 분석하여, 미래적인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사용된 조형과 감성을 추출한 후, 정치, 경제, 지식의 발달과 관련하여 중요한 국면을 맞고 있는 지역, 튀니스, 쉔젠, 아테네, 제네바를 방문하여 미래의 형태와 감각을 반영하는 장면을 수집한다. 〈코시 경계 조건〉을 통해 일상은 미래의 모습으로 둔갑한다.
 
사진 예술 속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비선형적으로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연결하는 형식과 소통 방식이 중요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 속 스토리텔링, 그 현재진행형 전시에 선정된 작품들이 다소 표면적 형식이나 기술적인 측면으로 관심이 기울어져 있다는 인상도 없지 않다. 현시대 사진 예술과 그래픽 디자인의 역동적인 모험과 실험을 기대한 것에 비해,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사진 예술과 관련한 그래픽 디자인의 적극적인 개입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시 기획에서도, 원작 사진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포함된 사진집과 더불어 그 사진집의 비디오 도큐멘테이션이 함께 전시되도록 구성한 탓에, 원작 이미지, 원작 이미지의 재현물, 원작 이미지의 재현물의 재현물들이 혼재되어, 감상 중 다소 방향을 잃을 여지도 있어 보인다. 그러한 전시 기획의 아쉬운 점들을 고려하더라도, 이 전시가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는 젊은 사진작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언어를 공유하고 네덜란드 현대 미술의 단면을 살펴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 속 스토리텔링, 그 현재진행형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서 내년 1월 18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 〈스크린들 사이〉
    〈스크린들 사이〉
  • 〈안전한 거리〉
    〈안전한 거리〉
  • 〈코시 경계 조건〉
    〈코시 경계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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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4.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