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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영국] 수고스러움이 만들어내는 매력
‘레코드 스토어 데이(Record Store Day: 음반가게의 날)’

황정원 (영국통신원)
  • 레코드 스토어 데이 ⓒEntertainment Retailers Association
    레코드 스토어 데이 ⓒEntertainment Retailers Association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자연스레 사라져가는 것들이 있다. 동네 음반가게에서 진열되어 있는 음반들을 뒤적이며 한 장 한 장 음반을 사 모으는 경험들도 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4월 18일, 나른한 토요일 오후 소호의 한 거리는 이러한 경험이 소멸된 과거가 아니라 지속중인 현재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레코드 스토어 데이’인 이 날, 음반가게들이 모여 있는 베윅 거리는 음반을 구매하려는 사람들과 음악을 즐기려 모여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l 레코드 스토어 데이

‘레코드 스토어 데이(Record Store Day: 음반가게의 날)’는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인디 음반가게들과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아날로그적인 음악문화를 기리는 행사이다. 영국은 2008년부터 동참하고 있으며 런던, 맨체스터, 리즈, 벨파스트 같은 도시에서 2백 여 개의 음반가게들과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 날을 축하한다. 이 날을 위해 특별히 새로운 음반이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발매되기도 하는데, 제한된 수량으로 인해 음반 가게 앞에는 전날 밤부터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이 축제 분위기를 더한다. 이와 더불어 아티스트들이 팬과의 만남을 갖고, 디제잉을 하거나 가게 안팎에서 콘서트를 하며 하루 종일 함께 음악을 나눈다.
이날 음반 가게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향수에 젖은 나이든 연령층이나 수집가들만이 아니다. 영국 내 한 조사에 따르면 2013년 LP를 구매한 소비자 층의 14%가 18세에서 24세 사이의 청소년들이었으며 이는 5%에 그친 35세에서 44세 사이 소비자의 세 배에 달한다. 작년에 이뤄진 같은 조사에 따르면 24살에서 35살 사이의 소비자 층이 전체 LP 구매층의 25%에 다다랐다. LP가 복귀하고 있는 것이다.

l LP의 복귀

‘레코드 스토어 데이’가 영국뿐 아니라 호주, 북미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흐름은 LP의 부활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비록 단 하루의 행사이지만 최근 미디어들이 이를 주의 깊게 조명하면서 LP 판매에 큰 도움을 줬고, 증가한 LP 판매는 역으로 음반가게들을 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선순환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LP로의 회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길지 않다. 음악을 듣는 방식은 최근 몇십 년 간 LP에서 카세트 테이프, CD, MP3 그리고 현재의 다운로드와 스트리밍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해왔다. 자연스레 영국 내 LP 판매량은 꾸준히 하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P가 완전히 사장되지 않은 것은 댄스 뮤직 디제이들이 이 포맷을 꾸준히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되는데, 그들조차 디지털 믹서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 LP 판매량은 최저점을 찍는다. 당시 영국 내 LP 판매량은 전체 음반 판매 중 단 0.1%, 약 20만 장에 그쳤다. 이대로 사장되는가 싶었지만 그 해부터 어쩐 일인지 8 년째 꾸준히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13년에는 전년 대비 두 배 가량의 폭발적인 판매량을 보였고, 현재는 음반 시장의 1.5%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영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호주에서도 CD와 디지털 다운로드가 모두 하락세를 보이던 작년, LP 판매량은 127% 증가했다. 미국의 경우 작년 LP 판매량은 전년 대비 52%가 증가하며 기록이 시작된 1991년 이후 최고치인 920만 장, 즉 전체 음반 판매량의 6%를 점유하고 있다.

LP의 부활은 여러 부수적인 현상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국내 음반 판매 차트를 발표하는 Official Charts Company는 꾸준한 LP 판매량 증가를 반영하여 지난 레코드 스토어 데이를 기점으로 ‘LP 주간 판매 차트’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유럽 최대 규모의 턴테이블 제작 회사 SEV Litovel은 작년 한 해만 9만6천 대의 턴테이블을 판매했다. 이는 2010년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로 체코의 이 회사는 턴테이블 생산량을 20% 증가시킬 것을 최근 발표했다.

l 수고스러움이 만들어내는 매력

때 아닌 LP의 인기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다. LP 특유의 음색이나 컬렉팅의 재미를 이야기할 수 있다. 손에 잡히는 것 없고 눈에 보이는 것 없는 디지털 음원과 달리 아티스트들의 개성이 묻어난 앨범 커버를 손에 쥐고 천천히 감상할 때 그 실체적인 느낌의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LP의 매력과 가치를 높여 주는 것은 LP가 요구하는 수고스러움이 아닐까 싶다. 원하는 LP를 찾아 헤매고, 손에 넣은 LP판의 먼지를 잘 닦아 원하는 트랙 위에 바늘을 올려놓는 수고로움, 그 수고로움이 청자로 하여금 음악에 귀 기울이게 한다. 컴퓨터 속 어딘가 저장해 놓은 테라바이트급 용량의 디지털 음원은 아무 생각 없이 패스트포워드를 눌러도, 지니어스 믹스로 자동 재생을 시켜놓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얼터너티브 락 밴드인 The Flaming Lips의 Zaireeka 앨범은 네 장의 음반을 동시에 듣도록 녹음되어 있다. 레코드 스토어 데이에 이 LP를 손에 넣은 청년이 눈을 반짝이며 네 개의 턴테이블을 한 자리에 모으기 위해 친구들과의 파티를 계획해야겠다고 이야기한다. 유튜브에는 이미 네 개의 앨범을 동시에 플레이해 놓은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의 음악에 더 매력을 느끼는가.


  • 레코드 스토어 데이 2015 ⓒRona Duthie
    레코드 스토어 데이 2015 ⓒRona Duthie
  • ⓒEntertainment Retailers Association
    ⓒEntertainment Retailers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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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