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호보기
  • 구독신청
  • 구독자의견
  • 아르코발간자료
  • 인쇄
  • 맨위로 이동

해외통신

[일본] 일본 연극계,
두 거장의 탄생 80주년을 축하하다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 생전의 테라야마 슈지(좌)와 니나가와 유키오(우)
    생전의 테라야마 슈지(좌)와 니나가와 유키오(우)


2015년은 일본 연극계의 두 거장이 탄생한 지 8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극작가, 연출가, 영화감독, 시인으로 일본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테라야마 슈지(1935~1983)와 아시아 출신으로 세계 연극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확립한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1935~)가 바로 두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모두 일본 현대연극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앙그라(언더그라운드) 연극’ 세대다. 언더그라운드의 일본 발음에서 따온 앙그라 연극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일본 연극계의 조류를 가리킨다. 당시 번역극과 사실주의 연극이 중심인 기성 연극, 소위 ‘신극’에 반발한 젊은 극작가와 연출가들이 대거 등장했다. 앙그라 연극은 신극이 2차대전 패전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일본 사회를 담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며 새로운 표현 양식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문학적인 텍스트인 희곡을 중시한 신극과 달리 배우의 육체와 연기를 강조했다. 형식과 함께 내용 면에서도 새로운 시대의 비판 정신이 짙게 깔렸다. 특히 1960년대 미국 제국주의에 격렬하게 반대했던 학생운동의 경험을 공유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들어 앙그라 연극은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극단을 이끌던 세대들이 40대에 접어든 이후 뒤를 이를 후배들과의 세대교체가 잘 이뤄지지 않은 것과 극단을 대표하던 배우들이 잇따라 TV나 영화 등으로 옮겨간 것, 앙그라 연극이 공격하던 기존 권력의 존재가 희미해진 것 등이 대표적인 이유로 꼽힌다. 결국 앙그라 연극은 테라야마 슈지가 1983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막을 내리게 됐다. 대신 앙그라 연극 멤버들은 앞다퉈 제도권으로 들어오게 됐다. 일본이 경제적 호황을 구가하는 등 사회 환경이 변하면서 이들은 대학교수와 지역 공공극장의 예술감독을 맡아 연극계 주류로 활동하게 됐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니나가와 유키오다.
일본 연극계가 올해 탄생 80주년을 맞은 두 거장을 조명하느라 분주하다. 기사 및 출판물이 쏟아지고 있으며 기념 공연도 잇따라 열리고 있다.

l 일본 아방가르드의 선구자, 요절한 테라야마 슈지

테라야마 슈지는 1983년 사망할 때까지 30년 가까이 일본 문화예술계의 총아로 군림했다. 대학 시절부터 이미 시인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평생 극작가, 연출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수필가, 평론가, 배우, 소설가, 작사가, 사진작가로서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와세다 대학 시절에 일찌감치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졸업 이후 라디오와 TV, 영화를 오가며 정력적으로 대본을 썼다. 그리고 1967년 일본 연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극단 텐죠사지키(天井棧敷)를 창단했다. 그는 극단 상황극장의 카라 주로, 극단 와세다소극장의 스즈키 타다시, 극단 쿠로텐트의 사토 마코토와 함께 앙그라 연극의 4대 천황으로 불리며 1970년대까지 소극장 붐을 일으켰다.
1960년대 앙그라 연극은 상황극장과 와세다소극장처럼 대학 연극을 모체로 한 그룹과 니나가와 유키오의 현대인극장처럼 신극에서 출발한 그룹의 둘로 나뉜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텐죠사지키는 당시 ‘볼거리의 복권’을 내세우며 무대 위에서 다양한 실험을 했다. 관객이 등장인물을 찾아서 헤매는 미로연극이나 길거리에서 대규모 행렬극을 시도하는가 하면 편지연극, 밀실극, 전화연극 등 연극을 연극으로 성립시키는 기존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며 그 비판 자체를 연극화했다. 이런 텐죠사지키의 작업은 당시 큰 주목을 받았고, 프랑스 낭시 연극제 등 해외 연극제에서도 자주 초청돼 호평을 이끌어냈다.
사실 전방위 예술가였던 그를 연극 분야로 한정해 바라보는 것은 일본 문화예술계에 미친 그의 영향을 생각할 때 너무 단편적인 접근이다. 우선 그는 1971년 첫 장편영화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가 산레모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적지 않은 수의 영화를 남겼다. 직접 쓰고 연출한 장편영화 7편과 단편영화 15편, 시나리오(연출 제외)가 9편이나 된다. 그래서 오는 10월 일본의 권위 있는 도쿄영화제는 그의 탄생 80주년을 기념해 1974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전원에 죽다’ 등 그의 작품을 특별상영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테라야마의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했으며 현재 극단 연극실험실 만유인력을 이끄는 작곡가 겸 연출가 J.A.시저(본명 테라하라 타카아키)가 중심이 된 콘서트가 10~12월 여러 곳에서 열린다. 테라야마는 생전에 음악을 자주 활용한데다가 노랫말을 많이 써서 인연이 있는 아티스트들이 꽤 많다.
출판과 전시 쪽에서도 테라야마가 인기다. 올해 테라야마가 남긴 수많은 저서가 다시 발매되고 있으며, 10여 건의 사진과 포스터 전시회도 열렸다. 참고로 일본에서 연극 포스터는 텐죠사지키의 등장을 전후로 나뉠 만큼 테라야마는 당시 독창적인 포스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가 47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간경변과 패혈증으로 세상을 뜬 뒤 그의 예술적 유산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희곡이다. 천재성이 넘쳤던 그에 대한 동경과 실험정신이 가득한 희곡의 매력 때문에 매년 많은 연출가들이 그의 희곡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80주년이라 전국적으로 너도나도 공연에 나서서 수십 편이 오르내린다.
연극의 경우 테라야마의 저작권을 담당하는 ‘테라야마 슈지 월드’가 올해 공식적인 행사로 인정된 것만 보더라도 지난 7월 테라야마 기념관이 있는 아오모리현에서 열린 연극제(6편)를 비롯해 고시바키 코우 연출 〈아오모리현의 곱사등이 사내〉, 류잔지 쇼 연출 〈호두까기인형〉, 다카토리 에이 연출 〈바보들의 배〉, 다카노 미유키 〈인력비행기 솔로몬〉, 김수진 연출 〈천일야화〉, 니나가와 유키오 연출 〈파란 종자는 태양 안에 있다〉, 후지타 슌타로 연출 〈인어공주〉, 후지타 타카히로 연출 〈책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자〉, 마츠모토 유키치 연출 〈레밍〉, 카노 유키카즈 연출 〈모피의 마리〉 등 16편이나 된다. 하나같이 일본 연극계를 대표하는 간판 극단과 연출가들이 나선 작품으로 신진의 작품은 포함되지도 않은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 받은 것을 꼽자면 단연 지난 8월 도쿄 분카무라 오차드홀에서 공연된 〈파란 종자는 태양 안에 있다〉이다. 분카무라 연극 부문 예술감독으로 테라야마와 친구이기도 했으며 올해 80살이 된 니나가와 유키오가 연출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니나가와는 1995년 〈신토쿠마루〉를 시작으로 1~2년에 한 편 정도 꾸준히 테라야마의 희곡을 무대에 올려 왔다. 〈파란 종자는 태양 안에 있다〉의 경우 테라야마가 20대 시절 쓴 음악극으로 그동안 자주 공연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평단과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l 일본 연극계의 거장, 쇠약해진 니나가와 유키오

우리나라에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2011년)와 〈무사시〉(2014년) 공연으로 잘 알려진 니나가와 유키오는 명실상부한 일본 연극계의 1인자다. 사이타마 예술극장과 분카무라 시어터의 예술감독을 20년 가까이 역임하고 있는 니나가와는 해외에선 가부키와 노 등 일본 전통예능 기법을 활용한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비극으로 유명하지만 일본에선 자국의 현대 연극을 자주 올린다.
젊은 시절 화가를 꿈꾸다 연극에 입문한 그는 앙그라 연극 시절 극단 현대인극장과 사쿠라샤에서 극작가 시미즈 쿠니오와 함께 일련의 투쟁극을 선보였다. 하지만 연극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나 관객의 취향이 변하고 있었고, 때마침 상업연극 제작사 토호의 의뢰로 그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출하게 됐다. 작품은 큰 인기를 끌었지만 그는 단원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사쿠라샤가 해산되자 아예 상업 연극을 주된 활동의 장으로 삼게 됐다. 당시엔 그를 배반자로 비난하는 분위기였지만 돌이켜보면 앙그라 연극의 희곡들이 그의 손에서 꾸준히 무대화되면서 생명력을 이어가기도 했다.
워낙 무대에 공을 들이는데다 스타급 배우들을 캐스팅하기 때문에 그가 연출한 작품은 제작비가 많이 드는 것으로 악명 높다. 그러나 높은 티켓 값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그의 작품은 거의 매진을 기록한다. 그의 작품이 매년 빠짐없이 일본의 주요 연극상을 수상하거나 노미네이트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도쿄에 있는 극장 분카무라야 그렇다 치더라도 도쿄를 벗어난 사이타마현에 있는 사이타마 예술극장이 현대연극의 메카로 각광받는 것은 그의 힘이 절대적이다.
관객을 단번에 사로잡는 스펙타클한 무대로 정평이 난 니나와가는 해외에서도 각광을 받으며 ‘세계의 니나가와’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첫 해외공연이었던 1983년 〈메데아〉의 그리스 공연이 호평을 받은 이후 유럽의 주요 극장이 앞다퉈 그의 작품을 초청했다. 특히 1985년 셰익스피어의 본고장 영국 런던에서 공연된 〈맥베스〉는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후 꾸준히 해외 주요 극장의 러브콜을 받아 작품을 올리고 있는 그는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1992년 런던 글로브극장 예술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위촉됐으며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여러 차례 연출을 맡기도 했다.
그는 배우를 혹독하게 조련하기로 유명하지만 그의 부름을 받은 배우들은 거절하는 법이 없다. 그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진정한 스타로 인정받는 관문처럼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SMAP, 킨키키즈, 아라시 등 아이돌그룹을 거느린 대형 연예기획사 쟈니즈조차도 소속 연예인이 그의 작품에 캐스팅되는 것엔 언제나 환영한다고 한다.
1984년부터 ‘니나가와 스튜디오’에서 젊은 배우를 양성하고 있는 그는 2006년부터는 사이타마 예술극장에 55세 이상의 연극집단인 ‘사이타마 골드 시어터’를 창설했다. 그가 예술감독 수락 조건으로 창설한 사이타마 골드 시어터는 노년기에 접어든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진 대상이었다. 사이타마 골드 시어터는 노인들이 단순히 예술을 감상하는 관객에서 벗어나 예술을 창조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아티스트로 만들었다.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에서 사이타마 골드 시어터는 화제를 모으며 노인극단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두 극장 및 해외를 오가며 신작과 재연을 포함해 평균 10편을 무대에 올릴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중순 사이타마 골드 시어터와 함께 홍콩 공연을 갔다가 갑자기 쓰러져 일본 연극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 노인 단원들의 건강 문제 때문에 투어에 동반하는 의료진이 있어서 바로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일로 그가 협심증으로 예전에 심장 혈관을 갈아 끼우는 수술까지 받았던 것이 새삼 알려졌다.
건강 문제 때문에 올해 그가 두 극장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햄릿〉, 〈해변의 카프카〉, 〈베로나의 두 신사〉, 〈리차드 3세〉, 〈맥베스〉, 〈파란 종자는 태양 안에 있다〉 등 6편으로 예년에 비해 줄었다. 〈해변의 카프카〉의 경우 뉴욕, 런던, 서울, 싱가포르 등 해외 4개 도시 투어를 가지며 한국에서는 11월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말 입원 중에도 “빨리 작품 연습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한 뒤 1월 초 TV에 등장해 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지난 3월 휠체어를 타고 코에 산소흡입용 튜브를 낀 채로 공식 석상에 등장해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8월 초 〈파란 종자는 태양 안에 있다〉의 제작발표회에도 살이 많이 빠져서 핼쑥한 모습이었다.
쇠약해진 그가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일까. 지난 6월 그가 재능 있는 젊은 극작가 후지타 타카히토(29)와 함께 내년 2월 사이타마 예술극장에서 자기 자신을 소재로 한 연극 〈니나의 솜〉을 선보이겠다고 발표했다. 60세나 나이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협업이 흥미롭긴 하지만 일본 연극계는 노거장의 행보에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해변의 카프카> (사진 : LG아트센터)
    〈해변의 카프카〉 (사진 : LG아트센터)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