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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영국] 어서와, 이렇게 당혹스러운 놀이동산은 처음이지?
뱅크시의 디즈멀랜드 

황정원 (영국 통신원)
  • 디즈멀파크 Photo by Jimmy - S
    디즈멀파크 Photo by Jimmy - S


스트리트 아티스트라는 모호한 타이틀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전방위적으로 영역을 넓혀 가던 뱅크시가 지난 8월, 자신의 고향 브리스톨 근처 웨스턴-수퍼-메어에 다미안 허스트를 비롯한 16개국 50여 명의 아티스트들을 모았다. 즐거움이 가득한 놀이동산(Amusement Park), 디즈니랜드가 아닌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곳(Bemusement Park), 음울한(dismal) 디즈멀파크 (Dismalpark)의 탄생이다. 디즈멀파크가 자리 잡은 트로피카나는 뱅크시가 어린 시절 매해 찾던 야외 수영장으로, 이미 15년 전 관객감소로 문을 닫은 이후 방치되어왔다. 철저한 익명으로 활동하는 뱅크시는 자신의 사비를 들여 6개월에 걸쳐 완성한 이 대규모 프로젝트의 보안 유지를 위해 이곳을 ‘회색 여우’라는 영화 촬영장으로 둘러대어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디즈멀랜드에서 일하는 우울한 얼굴의 직원들(특별히 교육받았다고 한다) 역시 영화 엑스트라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한 사람들이다.

l 뱅크시가 이 테마파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테마

‘테마파크’라면 진정한 ‘테마’가 필요하다는 뱅크시는 기후변화, 전쟁과 같이 당면한 재난과 불평등으로 가득한 세상에 대한 신랄한 블랙 유머로 디즈멀파크를 가득 채웠다. 디즈멀파크에 입장하려면 누구나 먼저 미국 아티스트 빌 바민스키의 보안대 검색을 통과해야 한다. 보드지로 만든 CCTV부터 몸 스캐너까지 디테일하게 재현된 이곳에서 디즈멀랜드를 찾은 관광객들은 ‘총이나 수류탄, 유니콘을 소지하고 계십니까?’라는 비현실적인 질문들에 얼떨떨할지라도 진지하게 응해야 한다. 철저한 보안검색을 통해 우리가 솎아내려고 하는 적은 실재하는가라는 질문이 입구에서부터 던져지는 셈이다.

2009년 큰 성공을 이뤘던 ‘뱅크시 vs 브리스톨 미술관’ 이후 처음으로 영국에서 활동을 재개한 뱅크시는 스스로도 열 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추상미술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그의 말마따나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작품들이다. 놀이동산에는 정말 꿈과 희망이 가득하고 동화 같은 삶을 사는 듯 보이는 사람들의 삶은 실제로도 환상적일까? 변기에서 튀어나온 범고래가 조련사가 들고 있는 자신의 몸보다 작은 훌라후프를 통과해야 한다. 놀이공원 내 동물들이 겪는 열악하고 잔인한 환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폐허가 된 신데렐라의 성 안에는 전복된 마차의 창문 너머로 신데렐라의 몸이 축 늘어져 있다. 파파라치들은 그 앞에서 경쟁적으로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고 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선데이〉 지와의 인터뷰에서 만일 총리가 된다면 가장 먼저 ‘상속제’를 철폐하겠다는 뱅크시는 번복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디어의 발달로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처한 비참한 사정들이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전달되는 가운데, 어른들은 양심에 눈을 감아 안락한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한테까지도 이런 둔감함을 물려 줄 수는 없다. 나른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파크 내 연못에는 수면에 떠오른 사체들 옆으로 난민들이 빽빽이 들어찬 보트들과 그 보트를 쫓는 경비정이 떠다니고 있다. 관람객은 1파운드를 넣으면 리모트 컨트롤로 그 보트들을 조정할 수 있다. 경제적 약자들을 타깃으로 한 소액 고금리단기사채, 페이데이론(Payday Loan) 역시 최근 대두되고 있는 큰 사회문제 중 하나이다. 이같이 빚 조장하는 사회를 비꼰 ‘용돈 대출(Pocket Money Loan)’ 창구는 특별히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된 전시장이다. 전시장에는 ‘대출받아 빚에서 벗어나렴’이라는 문구와 함께 천진한 표정의 아이가 돈을 움켜쥐고 있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포스터 한쪽에는 작은 글씨로 ‘연금리 5,000%’라는 조항이 쓰여있다. 또한 키 작은 어린아이들은 창구 앞에 설치된 탬버린 위에서 폴짝폴짝 뛰다 보면 높은 곳에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진 대출 관련 조항들을 간신히 발견하게 된다. 대출이 필요 없는 아이들은 석유전쟁을 희화화한 미니 골프를 칠 수도 있고, 기름을 뒤집어쓴 채 연못 위에 떠다니는 오리 낚시를 할 수도 있다.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포스터를 파손하기 쉽게 도와주는 도구들을 5파운드에 판매하는 창구도 있다. 안내원은 음울한 얼굴로 버스 정류장의 기존 포스터를 제거하고 본인이 원하는 포스터로 바꿔끼는 방법을 시연과 함께 설명해준다. 이쯤 되면 ‘어린아이들에게 부적합한 가족 테마파크’라는 디즈멀파크의 안내문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간다.  

l 진정한 디즈멀랜드는 어디인가

뱅크시의 이번 프로젝트 디즈멀랜드는 이 테마파크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 런던 시내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에는 런던에서 9월 15일부터 3일간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무기박람회(The Defense and Security Equipment International Arms Fair)를 강하게 비판하는 광고물들이 부착됐다. ‘비할 데 없는 사업기회’라는 광고문구들이 사용된 이 무기 박람회는 세금지원을 받아 진행되며 121개 참가국 중에는 심각한 인권유린이 일어나고 있는 국가로 규정된 나라들도 있다. 특히 올해는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전역이 대규모 폭격으로 파괴된 블리쯔(Blitz) 75주년을 기념하는 해여서 무기 박람회의 유치는 더더욱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런던 시내 곳곳에 퍼진 광고물들은 일견 런던 교통관리당국(TFL: Transfer For London)이 만들어낸 공식 포스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디즈멀랜드에 참가한 한 아티스트의 정식 승인 절차를 받지 않은 게릴라성 반전 포스터들이었다. TFL 측은 발견 즉시 해당 광고물들을 제거할 것을 지시했다.
진정한 디즈멀랜드는 어디인가.

[관련 링크]
https://www.flickr.com/photos/jimmysymons/sets/72157657417864300


  • 디즈멀파크 Photo by Jimmy - S
    디즈멀파크 Photo by Jimmy -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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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