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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프랑스]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파리에 울려 퍼진 판소리의 감동

김동준 (재불음악평론가, 피아니스트, 르 쉐네 음악원 교수)
  • 안숙선 명창 ©Lang Communication, tous droits réservés, Lee mea hoon
    안숙선 명창 ©Lang Communication,
    tous droits réservés, Lee mea hoon

프랑스인들은 지적인 호기심이 무척이나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3년을 파리에서 살아보니, 반드시 그렇지마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음악원에서 거의 매일 같이 프랑스인 동료 교수들과 부딪히며 지내면서, 연주회장이나 페스티벌 등지에서 만난 다양한 프랑스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사실 쌓여가는 것은 프랑스인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포기’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예들은 일상을 통해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카페나 상점에 들어가면 관광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짜고짜 일본어를 하거나, 중국어로 인사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니까 일본어를 조금 배운 사람들에게 파리의 모든 아시아 사람들은 일본인이고, 중국어를 조금 배운 사람들에게는 중국인인 것이다. 한국영화가 프랑스에서 알려지고 극장에 올려 지면서 최근에 한국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많이 나아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기는 하지만, 프랑스인들 대부분은 사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우리가 우리 고유의 언어인 한글을 사용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태반이다.
클래식음악 분야에서 보면 이 사실은 조금은 낫다. 국제적인 음악 콩쿠르에서 한국인들의 입상자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고 있다. 종종 음악회나 페스티벌 등지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들의 한국 음악가들에 대한 시선은 대부분의 경우 존중이나, 인정보다는 의아함이나 의구심이 더 크다. 도대체 어떻게 준비를 하기에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에서 지속적으로 입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한국의 연주자들이 드뷔시, 라벨 등의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자신들보다 더 잘 연주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한다. 이들이 한국 음악가들의 독특한 음악성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힘든 일이고, 또한 사실 부정적인 관점일는지 모르지만, 이들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한국 음악가들이 지닌 폭넓은, 다른 차원의 음악 사고를 프랑스인들에게 이해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독일의 가장 대표적인 작곡가인 바흐의 음악을 프랑스 사람들은 매우 좋아한다.


또한 깊은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 또한 매우 좋아한다. 음악에 상당히 민감한 사람들이고, 음악이 생활과 매우 밀접한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악이 독일이나 헝가리, 체코 등의 동유럽 국가들처럼 일상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어쩌면 프랑스인들에게 음악은 샴페인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크고 작은 축제를 너무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음악은 축제로서 필요한 것이다. 음악은 샴페인처럼 상기된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매개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미술에서의 색채를 말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연주자들의 ‘소리’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들 방식의 표현으로 어떤 음악이나 연주가 만족스러울 경우에는 ‘소리가 있었다’라는 단순한 듯하면서도 함축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여지는 것을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방식과는 달리 이들에게는 연주회장에서의 감상 역시 그저 개인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과 음악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생각을 다소 길게 이야기했는데, 이들에게 한국의 전통 음악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한국과 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지난 9월 21일 파리의 주요 극장 가운데 하나인 테아트르 데 부프 뒤 노르에서 안숙선의 판소리 공연이 열렸다. 테아트르 데 부프 뒤 노르는 파리의 연주회장 가운데서도 특색 있고,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원형의 형태를 지닌 연극 전용 극장으로 지어지기는 했지만, 독특한 음향 덕분에 오늘날에는 클래식음악이 자주 연주되는 극장으로 파리지앙들에게 애호를 받고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세계적인 쳄발로 연주자였던 귀스타프 레온하르트는 파리에서 쳄발로 독주회를 할 때 테아트르 데 부프 뒤 노르만을 고집하기도 했다.
안숙선과 남상일, 두 명창이 입체창으로 〈수궁가〉를 올렸는데, 조영수가 고수와 북을 맡았던 이 날 공연은 테아트르 데 부프 뒤 노르의 공연으로서는 드물게 매진되었다. 대개의 클래식을 비롯한 음악공연이 매진되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판소리가 이들에게도 상당히 알려진 편이고, 또한 애호가층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파리의 ‘세계 문화의 집’에서 매년 열리는 ‘상상의 페스티벌’에서 한국 전통음악 관련 공연이 열리면 대부분의 공연은 청중으로 가득했다.
9월 21일에 테아트르 데 부페 뒤 노르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 안숙선의 목소리는 판소리의 예술성과 독창성을 필자에게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기회였다고 말할 수 있다. 10년 넘게 파리에서 거주하는 동안 파리의 팔레 가르니에와 바스티유, 그리고 오페라 코미크에서 올려진 오페라 공연 대부분을 들었지만, 안숙선이 들려주는 판소리와 비견할 만한 것은 없었다. 판소리는 정말로 독창적이며 고유한 것이다. 이야기를 말하는 형식과 노래를 섞어서 매우 다양한 속도와 음색으로 들려주는 판소리는 그 변화무쌍함에서 그 어느 문화권의 성악예술과 비교해도 경지에 이르기에 가장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판소리가 지니는 흡입력은 대단한 것이다. 조금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지만, 백 명에 가까운 오케스트라와 수십 명의 합창단과 독창자들이 빚어내는 오페라의 감동을 단 한 사람의 명창이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예술이지만 판소리가 주는 감동의 폭은 정말로 대단하다. 테아트르 데 부프 뒤 노르의 관객들은 바로 이러한 경이로운 판소리의 발견에 감동과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안숙선 명창은 관객들의 오랜 박수 뒤에 아리랑을 들려주었다. 테아트르 데 부프 뒤 노르의 높은 천정을 지닌 원형극장은 새로운 울림과 새로운 감동으로 진동했다. 사람들은 언제 또 판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를 이야기했고, 이러한 공연이 훨씬 더 자주 파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판소리가 관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예술임을 공감한 것이다. 혹자는 판소리 공연을 듣고서 마치 천국에 다녀온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관객은 아마도 안숙선 명창이 들려주는 유려함과 장대함 속에서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황홀경을 체험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속에서 형성되었고, 또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하는 판소리에 대한 예술성의 발견, 혹은 재발견에 프랑스인들은 환호성을 높였다. 전 세계는 현기증이 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모든 사람들이 비슷비슷해지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차이가 있을 때에 교류가 가능해진다. 차이가 없다면, 교류라는 것은 필요치도 않으며, 의미가 없어진다. 고유한 것을 지킬 때 교류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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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