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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중국] 대륙의 실수, 비엔날레의 실수

김새미 (아트인아시아 특파원)

  • 2015년 베이징비엔날레 국외작가 리영국(북한)의 참여작과 국내작가 위샤오덩의 참여작

비엔날레는 피곤하다. 규모가 크니 전시 관람도 피곤하고, 참여 작가가 많으니 정보를 파악하는 일도 피곤하다. 비엔날레를 보겠다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일도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해외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만 해도 이런저런 다양한 비엔날레가 수시로 열리니 어떤 비엔날레를 봐야 할지 결정하는 일조차 피곤하다. 하나의 비엔날레를 이해하는 일도 이렇게 피곤할진대, 비엔날레계의 역사와 추세를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월드 비엔날레 포럼(World Biennial Forum)을 주관하는 독립비영리기구 비엔날레재단(Biennial Foundation)에 등록된 비엔날레만 169개다. 등록되지 않은 비엔날레, 잠정 중단된 비엔날레, 잘 되는 듯하더니 소리 없이 사라진 비엔날레, 싹수부터 노랗더니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진 비엔날레도 부지기수다. 한국의 경우 5개의 비엔날레가 등록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비엔날레라는 이름을 달고 개최된 전시가 이 5개에 한정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 모든 겹겹의 피곤함을 무릅쓰고 비엔날레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비엔날레라는 단어에 내포된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비엔날레라는 명칭에는 응당 그에 걸맞은 수준의 국제성과 규모성이 따르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비엔날레들이 비엔날레라는 명칭을 쓰는 이유는 그들 조직의 생존보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보하고 발전하는 새로운 모습을 2년에 한 번씩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얼리어답터가 되고픈 관람자는 비엔날레라는 플랫폼에서 요즘 잘 나가는 작가, 잘 팔리는 작가, 각 나라에서 밀어주는 작가, 큰 손들이 눈독 들이는 작가가 누구인지를 살펴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백몇십 개의 국가와 도시들은 국제미술계에서 손꼽히는 비엔날레를 만들어 그 위상을 드높이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1990년대에 시작하여 비교적 역사가 짧은 아시아 지역 비엔날레의 고군분투는 더욱 심하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명 큐레이터를 모셔오는데 갖은 애를 쓰고, 누구나 알만한 유명 미술가를 참여작가 명단에 올리기 위해 졸작도 마다하지 않는다. 비엔날레를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문화 패권주의를 실현하며 예술과 상업주의를 결탁하는 공간으로 비판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비엔날레라는 말은 본래 어원의 뜻을 넘어서, 복잡다단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의미와 현상을 내포하는 용어가 된 지 오래다.

l 중국 비엔날레의 흥망성쇠

비엔날레재단에 등록된 중국의 비엔날레는 총 8개이다. 베이징국제미술비엔날레(中国北京国际美术双年展, Beijing International Art Biennale), CAFAM비엔날레(CAFAM双年展, CAFAM Biennale), 청두비엔날레(成都双年展, Chengdu Biennale), 광저우트리엔날레(广州三年展, Guangzhou Triennial), 상하이비엔날레(上海双年展, Shanghai Biennale), 션젼홍콩도시건축비엔날레(深港城市\建筑双城双年展, Shenzhen Hong Kong Bi-City Biennale of Urbanism\Architecture), 션젼조각비엔날레(深圳雕塑双年展, Shenzhen Sculpture Biennale), 서부국제예술비엔날레(中国西部国际艺术双年展, Western China International Art Biennale). 이 중에는 직접 보지 못했음에도 좋은 평판을 전해 들어 익히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소위 듣도 보도 못한 비엔날레도 있다. 마지막의 것이 대표적인데, 이 비엔날레는 닝샤(宁夏) 회족(回族) 자치구의 정부 소재지 인촨(银川, 베이징에서 서쪽으로 약 1,000km)에서 2010, 2012년 두 번 열렸다. 그러나 2014년 전시에 대해서는 10월 개막 준비 중이라는 소식만 있을 뿐, 개막에 관한 보도가 없다.
비엔날레재단에 등록되지 않은 비엔날레와 이미 없어져 버린 비엔날레에 관한 소식도 차고 넘친다. 예술창샤비엔날레(艺术长沙双年展;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정상 개최), 베이징사진비엔날레(北京国际摄影双年展; 2013, 2015), 신쟝비엔날레(新疆国际艺术双年展; 2014년, 2012년의 新疆双年展에서 개명), 지난영상비엔날레(济南摄影双年展; 2006년부터 정상 개최), 난징국제청년예술비엔날레(南京国际青年艺术双年展; 2015), 창쟝국제영상비엔날레(长江国际影像双年展, 2015), 타이유엔국제조소비엔날레(太原国际雕塑双年展; 2015년 12월 예정), 샨동국제미술비엔날레(山东国际美术双年展; 2014), 칭다오국제예술비엔날레(青岛国际艺术双年展; 2014), 충칭청년미술비엔날레(重庆青年美术双年展; 2009, 2011, 2013), 따통국제조소비엔날레(大同国际雕塑双年展; 2011, 2013), 중국동맹예술비엔날레(中国东盟艺术双年展; 2013), 798비엔날레(798双年展; 2009), 난징트리엔날레(南京三年展; 전신은 2002년과 2005년의 中国艺术三年展,2008년에 이름을 바꾸고 제3회를 개최) 등등. 2015년 5월 24일 자 경향신문 한윤정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4월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上海喜玛拉雅美术馆, Shanghai Himalayas Museum) 관장으로 취임한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 이용우 관장 또한 2018년 비엔날레를 개최할 뜻을 밝혔다. 게다가 유화, 수채화, 수묵화, 일러스트레이션, 건축예술, 애니메이션, 공예미술, 전각, 포스터 등 특정 장르 비엔날레도 많아서 ‘双年展’의 정보는 끝도 없이 나온다. 중국에서 열렸던, 그리고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에 관한 정보만을 가지고도 하나의 비엔날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면적의 97배를 자랑하는 대륙의 땅 곳곳에서 비엔날레가 우후죽순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비엔날레 다발 현상은 1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데, 2002년 비평가 페이다웨이(费大为)가 미술잡지 『예술당대(艺术当代)』에 발표한 기사 「1,096개의 비엔날레」는 이 기현상에 대한 통렬하고도 유머러스한 선견지명이었다. 총 6,733자로 완성된 이 기사를 쓰는 데에는 단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글은 허구의 비엔날레 이름 1,096개를 마구잡이로 나열한 가상 비엔날레 명단이기 때문이다. ‘双年展’이 무한히 반복되는 페이지를 보고 있노라면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어지럽다. “비엔날레라는 주제는 확실히 골치 아픈 주제이며, 전 세계에 2~3개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페이다웨이는 비엔날레 피로증후군을 적확하고 절묘하게 ‘저격’했다. 1,000여 개라고 해도 믿을 만큼 많은 수의 각종 비엔날레들이 판을 치고 있지만, 그들 앞에 놓인 딜레마는 비슷하다. 지역성과 소수민족의 문제를 껴안고 가자니 촌스러움이 들러붙고, 국제성과 현대성을 강조하자니 각종 단체와 집단의 반발이 뒤따른다. 정부 지원금을 받자니 검열과 간섭이 걱정되고, 안 받자니 돈이 부족하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비엔날레들은 특히 ‘2선 도시(二线城市)’에서 개최되는 것들이다. 중국의 도시는 정치적 지위, 경제 실력, 도시 규모, 지역 영향력을 기준으로 1~4선 도시로 나뉜다. ‘1선 강(强)’에 속하는 도시가 베이징과 상하이이고, ‘1선’에는 광저우와 심천이 속한다. ‘준(准) 1선’ 도시는 톈진이다. 난징,시안, 청두, 칭다오, 충칭, 항저우, 대련, 쑤저우 등이 속하는 ‘2선 강’ 이하 등급의 도시들에서 각종 비엔날레의 생산과 폐기가 반복된다. 도시 이미지를 제고하고 문화적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비엔날레 개최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오히려 2선, 3선 도시들에서 앞다투어 비엔날레 유치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비엔날레라는 말이 무색하게 첫 행사 개최 후 2년이 지나도 무소식인 경우가 많다. 행사의 지속적 개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 찬조금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짙거나, 개인 출자금 투자자가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면 망하기 십상이다.



  • 비엔날레재단에 등록된 8개 중국 비엔날레의 포스터: (상단 왼쪽부터 순서대로) 베이징국제, CAFAM, 청두, 광저우, 상하이, 션젼홍콩도시건축, 션젼조각, 서부국제예술비엔날레

l 살아 있는 비엔날레 확인하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비엔날레는 충분히 피곤한 것이기에 모든 중국비엔날레를 세세히 알고자 하는 마음은 전연 없다. 그렇다면 주목할 만한 비엔날레를 골라내는 수고가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8개를 살펴보자. 중국 비엔날레계의 양대산맥은 광저우트리엔날레와 상하이비엔날레다. 광저우트리엔날레는 1992년 비엔날레로 시작하여 2002년 트리엔날레로 변화했으며 2005, 2008, 2011년에 걸쳐 네 번 열렸다. 이 전시는 올해 꽤 대단한 일을 벌인다. 첫 번째 아시아 비엔날레(1st Asia Biennial)와 제5회 광저우트리엔날레의 연합전을 준비 중인데, ― 이는 대만국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아시안 아트 비엔날레(Asian Art Biennale)와는 다른 것이다. ― 지금까지의 행보가 눈여겨볼 만하다. 2014년 3, 5, 10월, 2015년 4월 네 번에 걸쳐 학술컨퍼런스를 개최했고 2014년 10월, 2015년 3, 7월 세 번의 큐레토리얼컨퍼런스를 진행했다. 장칭(张晴, 제6회 상하이비엔날레 디렉터), 루오이핑(罗一平, 광동미술관 관장), 헹크 슬라거(Henk Slager, 네덜란드 위트레히트 비주얼아트 및 디자인 대학원 원장), 사라 윌슨(Sarah Wilson, 런던 코톨드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교수), 피터 파케쉬(Peter Pakesch, 오스트리아 요한네움 유니버설미술관 관장), 우테 메타 바우어(Ute Meta Bauer,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 컨템포러리아트센터 디렉터), 김홍희(서울시립미술관 관장) 등이 사전 행사에 참여했다. 첫 번째 아시아비엔날레가 1992년 중국에서 비엔날레의 물꼬를 튼 전시를 만나 어떤 모습을 드러낼지 퍽 기대가 된다.
상하이비엔날레는 1996년 시작되었으며 2000년 후한루(侯瀚如, Hou Hanru)가 기획을 맡으면서 명실상부한 국제성을 갖춰갔다. 2012년 행사는 ‘도시 파빌리온’ 개념을 도입하여 30개의 파빌리온이 각자의 큐레이터와 예술가들에 의해 구성된 전시를 선보이도록 했고, 이때까지 주전시공간은 상하이미술관(上海美术馆, Shanghai Art Museum)이었다. 2014년 제10회 전시는 2012년 개관한 공립미술관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上海当代艺术博物馆, Power Station of Art)에서 열렸다. 9회의 ‘도시 파빌리온’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여 민생미술관(上海民生现代美术馆, Minsheng Art Museum), K11쇼핑아트센터(上海K11 购物艺术中心), 상하이신천지프라자(上海新天地) 등 도심 번화가에서 4개의 전시를 열어 비엔날레의 전시장을 미술관 밖으로 확장시켰다. 세 번째는 션젼조각비엔날레다. 중국에서 관광 및 레저 산업으로 가장 유명한 업체인 화치야오청(华侨城, 본명은 深圳华侨城控股股份有限公司, Shenzhen Ovreseas Chinese Town Holding Company, 약칭 OCT)은 베이징, 상하이, 션젼, 우한, 청두에 중국 최초로 테마파크를 만든 대기업이다. 이 그룹은 OCT Contemporary Art Terminal(OCT当代艺术中心, 약칭 OCAT)이라는 미술관을 베이징, 상하이, 션젼, 우한, 시안에 세우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에서 본부의 역할을 하는 곳이 2005년 가장 먼저 설립된 OCAT 션젼미술관이다. 2012년 개관한 OCAT 상하이미술관은 미디어아트와 건축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OCAT 션젼미술관은 ‘OCT LOFT 션젼화치야오청 창의문화원(OCT LOFT 深圳华侨城创意文化园, OCT LOFT Creative Culture Park)’이라는, 다양한 쇼핑 및 식음료 매장과 문화공간이 밀집해 있는 예술상업구의 중심부에 있다. OCAT 미술관그룹은 전시, 공연, 영상제 기획, 당대미술 연구, 소장품 컨설팅, 레지던시 운영, 출판, 교육 등 다방면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주요사업 중 하나가 조각비엔날레 개최이다. 작년 비엔날레는 런던 테이트 모던의 퍼블릭 프로그램 의장 마르코 다니엘(Marko Daniel)을 큐레이터로 임명하여 국제성을 높였다.
셴젠의 두도시건축비엔날레는 세계 유일의 도시성·도시화(Urbanism & Urbanization) 건축 전문 비엔날레임을 자랑하는 특수화된 비엔날레로, 개혁개방 30년 동안 중국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는 중국 최대의 경제중심지 광동성 주장 삼각주(珠江三角洲, Pearl Liver Delta)의 급속한 도시화와 여기서 파생된 사회문제 연구를 기본 목표로 삼고, 이 맥락에서 다양한 국제 사례들을 리서치한다. 스위스의 ETH Zürich(Swiss Federal Institute of Technology)가 비엔날레의 학술 자문 단체이며, 올해는 멜버른대학과 협업하고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등 국제적 행보가 화려하다. CAFAM비엔날레는 베이징의 홍익대라 할 수 있는 중앙미술학원에서 열리는 것이니 젊은 작가에 관심이 있다면 볼만할 것이다. 청두비엔날레는 2001년부터 2013년까지 2003년을 제외하고 정상 개최되었고, 2013년에는 청두현대미술관(都当代美术馆, Chengdu Museum of Contemporary Art)의 주관 아래 청두세기성신국제회전중심(成都世纪城新国际会展中心, Chengdu Century City New International 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er)에서 열렸다. 중앙미술학원 교수 짜오리(赵力)가 총괄한 《만류인력》 주제전, 신인특별전, 10년 엄선전 등으로 구성했으며 ‘신인재를 발굴하고 신인재를 추천한다’는 기조 아래 젊은 작가를 대거 소개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올해 7회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자,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베이징국제예술비엔날레(이하 베이징비엔날레)다.

l 베이징비엔날레의 총체적 난국

한 나라의 수도 이름을 단 비엔날레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비엔날레여야 할 필요는 당연히 없고, 현재 잘나가는 대부분의 비엔날레는 수도가 아닌 다른 대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사실 수도에서 열리는 대규모 미술행사로는 아트페어가 더 효과적이고 성공적이다. 한국, 일본, 중국이 그러하고 런던의 프리즈(Frieze Art Fair London), 프랑스의 피악(Foire Internationale d’Art Contemporain, FIAC)과 파리포토(Paris Photo), 스페인의 아르코마드리드(ARCOmadrid)도 이러한 사례에 속한다. 그러나 수도의 이름을 붙인 비엔날레가 다른 비엔날레들보다 뒤쳐져야 할 이유라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2014년 8회를 맞은 베를린비엔날레(Berlin Biennale for Contemporary Art), 2006년 시작된 싱가포르비엔날레(Singapore Biennale), 2014년 9회 행사를 마친 타이페이비엔날레(Taipei Biennial) 등은 수도의 이름을 달았음에도 불구하고(?) 10년 이상 개최를 계속해 오고 있고, 그 내용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수도의 저주’라도 있는 것인지 1963년 창설된 도쿄비엔날레는 내부역량 부족으로 3회로 그치고 말았고, 1959년 시작된 파리비엔날레(Biennale de Paris)는 1959년부터 1985년까지 10회의 행사를 마치고 중단되었다가 2004년 부활을 시도, 다각도로 재기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베이징비엔날레가 이 수도의 저주로부터 직격탄을 맞은 것 같다.
베이징비엔날레는 고립무원 속의 수도승처럼 최근 비엔날레의 경향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자신만의 아집을 굳건히 지켜나가고 있다. NEWS 중 S, the South로만 눈을 돌려봐도 시류를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한결같은 뚝심에 박수를 보내기에는 그 내용과 구성이 너무나 한심하다. 2014년 7월 15일 자 99艺术网에 실린 멍위(孟语)의 기사 「중국비엔날레의 4대 괴현상(国双年展四大怪象)」에 따르면, 큐레이터이자 평론가인 양웨이(杨卫)는 “베이징 비엔날레는 전국미술작품전람 (全国美术-作品展览)의 재판본에 지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전국미술작품전람이라니? 이게 무슨 고대유물 소환시키는 소리인가? 중국의 전국미술작품전람은 한국의 국전과 동일하게 1949년에 태어난, 국가주도의 작품 선별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수상전이다. 어떤 협회의 회원전이 2년마다 정기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비엔날레라는 명칭을 쓴대도 문제될 것은 없지만, 그런 비엔날레는 우리가 알고 있는 비엔날레가 아닌 어떤 정기전에 지나지 않는다. 베이징비엔날레가 국전의 재판본과도 같다는 이 충격적인 평가는 왜 이 전시가 이렇게도 재미없고 예스러우며 오합지졸의 분위기를 풍기는지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양웨이는 나아가 베이징비엔날레의 운영에 대해 “네 안에 나 있고, 내 안에 너 있다(你中有我、我中有你中)는 식의 미협회원 간 근친교배(近亲繁殖)나 마찬가지”라며 혹평을 쏟아냈다. 미협의 간부들이 자리를 차지하느라 모든 결정을 자기네들끼리 추진해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분석은 최근 어느 나라의 정치계를 연상시킨다. 기득권 세력자들끼리 공모하여 자기 사람으로 자리를 채우고, 쇄신을 주장하면서 신인 등용을 저지하고, 내 자리를 뺏길까봐 무고한 사람마저 끌어내겠다는 식의 독선은 모든 조직과 사회를 막론하고 발전의 최대 장애물 아니던가. 
2015년 9월 24일부터 10월 15일까지 중국미술관에서 열리는 제6회 베이징비엔날레는 2003년 창설되었으며 중국문학예술계연합회, 베이징시인민정부, 중국미술가협회가 주관한다. 올해 주제는 “기억과 몽상(记忆与梦想, Memory and Dream)”. 자문 4명, 총기획자 5명, 기획위원 20명, 국제전시기획인 3명으로 구성된 32명의 거대 기획팀이 참가작 중 일부는 추천하고 일부는 공모를 통해 선발했다. 각국 미술가들이 참여하는 주제전과 동남아, 에콰도르, 캐나다, 남아프리카, 아르메니아, 칠레 등 6개 국가/지역 특별전으로 구성됐다. 80개국에서 600여 점의 작품을 가져왔지만 작품 선택의 눈은 협회 고위층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베이징비엔날레는 2006년 중앙공산당중앙관공서(中共中央办公厅)와 국무원관공서(国务院办公厅)가 공포한 ‘국가 제십일 5개년 문화발전기획’(国家“十一五”时期文化发展规划纲),― 1953년부터 추진된 5개년 발전계획으로 제11기는 2006~2010년이다. ― 의 주요 지지사업 중 하나였고 지금까지도 예산의 대부분이 정부 지원금이기 때문에 재정상의 어려움은 없지만, 그만큼 정부의 입맛대로 차려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첫회부터 상하이비엔날레 지원금액을 매번 늘려가고 있는 상하이시는 2010년 지급금을 20억까지 늘렸으며 베이징시와는 달리 해외 큐레이터 영입 등을 적극 지지하고 전시 기획의 독립성을 보장한다. 그런데 베이징비엔날레는 중앙공산당의 관리를 받는 것도 모자라 문학예술계연합회와 미술가협회를 주관단체로 모셨으니, 나라님들과 폐쇄적 중국 미술계 원로들이 지휘하는 그들만의 잔치가 될 수밖에 없다. 주관단체와 운영방식에 변화를 주지 않는 한, 베이징비엔날레는 그야말로 노답이다. 이 핵노잼 비엔날레의 반전은 최근의 유명 현대미술전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작품들을 보는 재미에 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게 돼버린 현대미술에 질린 사람들은 직설적인 시각적 전달 화법에서 아스트랄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겠다.
의도된 조롱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9월 10일부터 10월 9일까지 중앙미술학원 미술관(中央美术学院 美术馆)에서 열린 재학생창작전의 제목은 “현실과 몽상(现实与梦想, Reality and Dream)”이다.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기억이 아닌 현실을 봐야 한다는 도전적 선언으로 읽힌다. 현실을 외면하는 한 베이징비엔날레는 중국 정부의 현대미술에 대한 인식 수준을 가늠케 하는 지표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베이징’, ‘국제’, ‘예술’, ‘비엔날레’라는 엄청난 네 가지 단어로 명명된 이 전시의 의미가 그런 미미한 기능에서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태여 국제성을 강조하지 않아도 좋고, 비엔날레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아도 좋다. 사회주의국가로서의 정치적 정체성을 미술작품에 담아내겠다는 경향성을 포기하지 않아도 좋고, 미술작품을 수단으로 삼아 56개 민족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기조를 바꾸지 않아도 좋다. 올해로 12년째가 되는 베이징비엔날레에서 어찌 120년 역사의 베니스비엔날레의 수준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각국의 비엔날레가 벌이는 경쟁의 홍수에 뛰어들겠다는 욕심은 과감히 버리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 여타의 비엔날레들과는 차별화되는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베이징비엔날레가 당면한 숙제다. ‘대륙의 실수’가 베이징비엔날레에서도 갑자기 툭 튀어나올 수 있을까?

(사진: 베이징국제비엔날레조직위)


[기사입력 : 201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