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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일본] 오페라 나비부인 110주년 맞은 일본 풍경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 후지와라 오페라단 〈나비부인〉
    후지와라 오페라단 〈나비부인〉
  • 후지와라 오페라단 〈나비부인〉

  • 신국립극장 〈나비부인〉
    신국립극장 〈나비부인〉

일본 오페라계는 올해가 매우 의미 있는 해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오페라단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후지와라 오페라단(藤原歌劇団)이 8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테너’로 불릴 만큼 당대 최고 인기 성악가였던 후지와라 요시에(1898~1976)가 1934년 설립한 후지와라 오페라단은 일본 오페라사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일본 초연을 포함해 80여 개의 작품을 올렸으며, 일본에서 1986년 처음으로 자막을 사용하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올해 80주년을 맞아 지난 1월 로시니의 〈오리 백작〉을 시작으로 내년 3월까지 7편의 기념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또한 올해는 너무나 유명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마담 버터플라이)〉이 초연된 지 1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일본 나가사키를 무대로 게이샤 초초(나비라는 뜻의 일본어)와 미국 해군 장교 핑커톤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나비부인〉은 일본을 소재로 한 수많은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비부인〉은 1904년 2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의 초연이 실패로 끝났지만 수정을 한 후, 같은 해 5월 브레라에서의 재공연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올해 110주년을 맞아 일본 오페라계에서는 〈나비부인〉 공연은 물론 관련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l 오페라 〈나비부인〉 기념 공연 봇물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도 유명 예술가의 탄생과 서거 또는 작품의 탄생을 기념하는 편이다. 일본 오페라계 역시 오페라 〈나비부인〉 110주년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올해는 시작부터 끝까지 〈나비부인〉이다.  

올 초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나비부인〉은 1월 30일~2월 8일 신국립극장에서 공연되었다. 1997년 개관한 신국립극장은 오페라, 발레, 연극 제작 극장으로 구미의 주요 오페라극장과 마찬가지로 레퍼토리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매년 기존 프로덕션과 신작을 반반 정도 무대에 올리는데, 이번 〈나비부인〉은 2005년 초연된 버전이다.

원래 신국립극장에는 개관 당시 만든 버전도 있는데, 두 개 모두 연출은 신국립극장 연극 부문 예술감독이었던 쿠리야마 타미야가 담당했다. 1997년 버전이 무대 등을 일본 전통에 맞춰 충실하게 구현했다면 이번에 공연된 2005년 버전은 무대 전환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객석을 향해 성조기가 끊임없이 휘날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성조기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을 물리친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에 대한 일본의 변함없는 동경을 보여준다. 쿠리야마의 연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일부 있지만 이미 전통적인 연출을 수없이 봐왔던 관객들에게는 대체로 신선하면서도 핵심을 찌른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올해 공연에서는 신국립극장 오페라 최초로 여성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의 양대 민간 오페라단인 니키카이(二期會)와 후지와라 오페라단도 올 상반기 〈나비부인〉을 나란히 무대에 올렸다. 후지와라 오페라단이 주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공연하는 것에 비해 1952년 설립된 니키카이는 독일 오페라에 주력하는 편이지만 올해 〈나비부인〉 110주년을 맞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니키카이는 4월 23~27일, 후지와라 오페라단은 6월 27~29일 〈나비부인〉을 공연했는데 두 무대 모두 일본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두 오페라단 모두 수백여 명의 성악가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긴 하지만 후지와라 오페라단이 해외 성악가를 일부 캐스팅하는 반면 니키카이는 일본 성악가들로만 캐스팅하는 것이 다르다.

이외에 오사카, 히로시마, 고베 등 여러 도시에서 〈나비부인〉의 공연이 이루어졌거나 예정되어 있는데, 특히 주목을 모으는 것은 오는 9월 19~21일 세계문화유산인 교토의 니조성(二條城)에서 공연되는 〈나비부인〉이다. 교토에서는 지난해 또 다른 세계문화유산인 기요미즈데라(淸水寺)에서 처음 오페라를 공연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가을 교토의 명소에서 오페라를 공연하는 ‘소리의 수도-오페라 제전’(영어명은 교토 오페라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이 페스티벌은 지난 2012년 이탈리아 볼로냐 극장의 프란체스코 에르나니 극장장이 교토를 방문했을 때 아름다운 사찰과 궁궐에서 오페라를 공연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일본예술진흥협회와 볼로냐 극장 합작으로 페르골레시의 〈음악선생〉과 마스네의 〈돈키호테〉가 공연돼 호평을 받았다. 이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은 일본인으로는 처음 이탈리아 오페라극장(만토바극장)의 음악감독이 된 지휘자 요시다 히로후미(吉田裕史)가 맡았다. 당시 일본 언론은 유럽의 명승지에서 열리는 유명 오페라 페스티벌을 교토에서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소리의 수도-오페라 제전’은 일반에 티켓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회비를 내고 회원이 되어야 티켓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는데다 공연이 열리는 니조성에 만들 수 있는 객석이 100여 개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회비는 매우 비싸다. 예를 들어 올해 〈나비부인〉의 경우 개인 회원은 1구좌 10만 엔(약 100만 원)을 내야 초대장 1장을 받을 수 있으며, 기업 회원은 1구좌 100만 엔에 초대장 4장을 받게 된다.

가격은 만만치 않지만 일본 오페라 팬들은 니조성에서의 〈나비부인〉 공연에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음악선생〉이나 〈돈키호테〉의 경우 전통 일본 가옥으로 된 무대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지만 〈나비부인〉이야말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 소프라노 미우라 타마키
    소프라노 미우라 타마키
  • 1920년대 나비부인에 출연한 미우라 타마키
    1920년대 나비부인에 출연한 미우라 타마키
  • 미우라 타마키와 푸치니
    미우라 타마키와 푸치니

l 최초의 일본인 초초 미우라 타마키 재조명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4년 오페라 〈나비부인〉 탄생 100주년을 맞았을 때도 일본에서는 붐이 불었다. 당시엔 〈나비부인〉을 일본인의 시각에서 다시 보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2003년 성악가 오카무라 타카오는 〈나비부인〉에서 잘못된 부분을 고친 버전을 처음 선보인 뒤 이듬해 개정판을 다시 무대에 올렸다. 즉 푸치니의 원작은 무사도와 게이샤, 할복 등 당시 서양인에 비친 일본의 단편적인 인상을 담은 작품이다. 그래서 불교 신도의 혼용, 게이샤에 대한 편견, 일본인조차 모르는 단어 등이 등장한다.

〈나비부인〉이 서구에서 공연될 때 의상이나 머리 스타일 등 잘못됐던 부분은 일본식으로 고쳐지곤 하지만 원작 자체에서 잘못된 부분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오카무라는 이런 부분을 수정하는 한편 리얼리티를 위해 이탈리아어와 일본어를 배역에 따라 나눴다. 즉 초초는 핑커톤을 여러 차례 만난 덕분에 이탈리아어(원작대로라면 영어)를 할 줄 알지만 초초의 친구들이나 결혼을 반대하는 삼촌 등은 일본어를 쓴다. 당시 이 작품은 일본 내에서 호평을 받았고 2011년 이탈리아 토레델라고에서 열리는 푸치니 페스티벌에 초대되기도 했다. 다만 당시 저작권을 가진 푸치니의 손녀가 오카무라의 버전을 반대해 3곳만 고친 채로 공연됐었다. 오카무라 버전 〈나비부인〉은 올해 10월 오디션을 거쳐 내년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다시 공연될 예정이다.

또 2004년엔 초초의 죽음 뒤 핑커톤에게 맡겨진 아들을 주인공으로 한 〈주니어 버터플라이〉도 나왔다. 일본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 작곡가 사에구치 시게아키가 만든 이 작품은 아들 벤자민 핑커톤 주니어와 그 후손들을 통해 일본의 근현대를 다루고 있다. 2006년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일본 캐스트로 공연돼 주목을 모은 바 있다.
2004년에 비해 110주년인 올해는 〈나비부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시도로 인한 논란은 없다. 오히려 한국 국립발레단이 강수진이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발레 〈나비부인〉을 내년 라인업에서 뺀 것이 일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을 정도다.
다만 올해는 일본 성악가 최초로 〈나비부인〉의 초초 역을 연기해 국제적 명성을 얻은 미우라 타마키(1884~1946)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올해 탄생 130주년을 맞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많다.

20세기 초 일본 여성으로는 드물게 성악으로 유럽 유학을 떠났던 미우라는 영국 런던에서 콘서트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나비부인〉에 캐스팅됐다. 1904년 초연 이후 〈나비부인〉의 초초는 모두 서양 소프라노였고, 그는 1915년 동양인 최초로 주역을 맡았다. 작은 몸집과 가냘픈 목소리의 미우라는 부서질듯한 초초에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작곡가 푸치니도 미우라의 공연을 보고는 “〈나비부인〉은 미우라 타마키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그는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나비부인〉을 2,000회 이상 출연하며 ‘초초’의 대명사가 됐다. 덕분에 그는 당시 세계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 등과 협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나비부인〉 외에는 일본을 배경으로 한 마스카니의 오페라 〈이리스〉와 므싸제의 오페라 〈국화부인〉에 출연한 것이 전부다. 당시 동양 소프라노에겐 동양 여성배역 외엔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리스〉와 〈국화부인〉이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 〈나비부인〉으로만 기억되게 됐다.

그는 1936년 귀국한 뒤 〈나비부인〉을 조국의 관객들에게 선보이려고 했으나 하필 2차 대전 발발로 모든 음악 활동을 금지당했다. 당시 일본 군부는 서구에서 오래 활동한 그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감시했고, 그는 성악가로서의 활동은 접고 제자 양성에 몰두했다. 하라 노부코, 야나기 카네코, 세키야 토시코, 고바야시 치요코, 유리 아케미 등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활약한 성악가들이 바로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일본 오페라단 니키카이는 지난 6월 〈나비부인〉 공연에 앞서 미우라의 삶을 그린 낭독극 〈어느 갠 날에-오페라 가수 미우라 타마키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전설적인 소프라노 미우라의 파란만장한 삶은 오페라 팬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미우라는 일본에서 성악가로서뿐만 아니라 편견을 깨는 근대 여성의 표상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미우라 사후 50년째인 1996년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시즈오카 국제 오페라 콩쿠르 역시 새삼 주목받고 있다. 3년마다 열리는 이 콩쿠르가 마침 올해 11월 열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 2013 교토 오페라 페스티벌
    2013 교토 오페라 페스티벌

    (사진: 신국립극장)


  • 교토 오페라 페스티벌 지휘자 요시다 히로후미
    교토 오페라 페스티벌 지휘자 요시다 히로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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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