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건물 안팎을 장식하고 있는 타일들이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아줄레주(azulejo)라고 불리우는 포르투갈 타일 장식은 일반 주택부터 성당, 궁전, 그리고 공원의 가로시설물(urban furniture)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시각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침 리스본의 국립 아줄레주 박물관에서는 건축가 시자 비에이라(Siza Vieira)가 지금까지 그의 작품에서 사용해온 아줄레주에 대한 특별전이 열리고 있고, 포르투의 상벤투 기차역 앞에는 아줄레주를 이용한 설치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를 통해 포르투갈 아줄레주의 어제와 오늘, 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l 포르투갈의 아줄레주(azulejo)
포르투갈에서 아줄레주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가 지나고 나서이다. 아줄레주(azulejo)는 모로코의 기하학 문양 테라코타 타일인 젤리지(zellige)와 같은 어원에서 탄생한 단어로, 어원은 ‘반짝이는 돌’이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던 아랍 문화의 영향이다.
16세기 모사라베(mozarab) 양식에서 ― 이슬람의 문화를 받아들인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문화 예술 양식을 일컫는다 ― 직물이나 도기와 같은 소품의 경우, 아랍 문화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아줄레주에서도 제작 방법은 물론이고 아랍적인 기하학 문양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 후 이탈리아 도기의 기술이 유입되면서 포르투갈 아줄레주는 점차 고유한 방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17세기부터는 흰 바탕에 파란색 안료를 이용하여 문양을 만드는 것이 한 흐름으로 나타났고, 일정한 문양의 반복만이 아니라 종교적이거나 역사적인 기록화를 담아 제작되기에 이른다. 이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이후 재건기를 맞으면서 아줄레주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게 되었고 모양과 색에서도 다양하게 발전을 이어나갔다.
20세기에 들어섰을 때 포르투갈의 많은 문화예술계 지식인들이 시대에 뒤처진 장식이라며 아줄레주의 전근대성을 비판했었다. 장식을 거부했던 근대적 미학에서는 당연한 비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화적으로 비슷한 맥락을 겪으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비교적 빨리 아줄레주를 지워나갔던 것을 생각해보면 마찬가지 비판이 있었음에도 포르투갈에서 오늘날까지 아줄레주가 살아남은 것은 매우 독특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누구나 전통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를 지켜나가기 위해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노력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리스본 대학 산하의 아줄레주 연구소(http://redeazulejo.fl.ul.pt)와 같은 곳의 아카이브를 보게 되면 역사적 건축물에 대해 모든 타일 유형이 벽면 별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연구와 복원을 돕고 있다. 공공 건축만이 아니라 개별 주거의 경우에도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아줄레주가 손상된 경우, 복원 비용의 일부를 시에서 지원하고 있다.
l 국립 아줄레주 박물관(Museu Nacional do Azulejo)
국립 아줄레주 박물관이 위치한 곳은 1509년 여왕 도나 레오노르(Rainha D. Leonor)에 의해 지어진 마드레 드 데우스(Madre de Deus, 주의 어머니)라는 수도원이다. 어머니 혹은 수녀를 뜻하는 마드레(Madre)라는 이름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듯이 수녀들이 거주했던 수도원이다. 외관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빛이 아름다운 작은 내부 중정과 창문을 둘러싸고 있는 내부의 아줄레주를 비롯하여 여성적 공간성을 보여주는 지점들이 많다.
이곳 상설전시 하이라이트는 1755년 대지진 전에 제작되어 리스본의 옛 모습을 담고 있는 파노라마를 들 수 있다. 총 1,300여 장의 아줄레주로 구성되어 그 길이는 무려 36미터에 이른다. 또한 박물관 내에 자리한 레스토랑 벽에는 옛날 훈제 가게에서 생선과 고기가 걸려있던 모습을 담은 아줄레주가 붙어있는데, 장소에 딱 걸맞은 섬세한 표현이라 전시실에서 본 종교적이거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아줄레주들 이상으로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전시 공간으로만 기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줄레주 연구와 복원에서도 큰 역할을 맡고 있어서, 관람객들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회랑 건너편으로 복원을 위해 각지에서 올라온 아줄레주들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l 시자 비에이라의 《내부의 예술》 전시
건축가 시자 비에이라(Siza Vieira, 1933-)가 리스본 엑스포’98의 포르투갈 파빌리온부터 포르투 메트로 역사들에 사용해온 아줄레주들이 특별전 《내부의 예술》을 통해 한 자리에 전시되었다. 이번 전시가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음에도 언론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이제는 전통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이 재료를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가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다시 환기시키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시자 비에이라는 인터뷰를 통해 오래전부터 아줄레주를 어떻게 디자인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특별한 기회가 없었다가, 20년쯤 전 마르코스 카나베즈(Marco de Canaveses, 포르투 동쪽으로 60km 거리에 위치한 북부 포르투갈 도시)의 산타 마리아 성당(Igreja de Santa Maria)의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아줄레주 전문가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아줄레주는 아주 매력적인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험이 없으면 사실 쓰기가 참 어렵습니다. 마치 보호막으로 덮어놓은 예술작품 같아요. 그 천을 걷는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으로 시자가 그린 세례 받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6미터에 이르는 아줄레주로 제작되어 예배당 한쪽 벽에 자리한다. 그렇게 시자의 아줄레주 작업은 산타 마리아 성당을 시작으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이루어진 근작들까지 이어지고 있다.
건축가 타보라(F. Távora)가 포르투갈의 토속적인(vernacular) 건축물에서 보이는 화강암 기단이나 박공지붕을 새롭게 인식하고 근대 건축의 언어로 번역해냈던 것과 유사한 맥락으로, 시자는 아줄레주라는 전통적 재료를 자신의 새로운 건축 언어로 쓰고 있는 것이다. 특히 평면적 활용을 넘어선 원형 기둥(포르투 상벤투 지하철역)이나 곡면 터널(리스본 치아도 지하철역)에서 그 시도를 살펴볼 수 있다.
l 비우바 라메고(Viúva Lamego)
이번 특별전에 선보인 아줄레주에는 비우바 라메고(Viúva Lamego)라는 이름이 찍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비우바 라메고는 1849년에 세워진 포르투갈의 아줄레주 회사로, ‘라메고의 과부’라는 다소 독특한 이름은 창립자였던 안토니우 다 코스타 라메구(António da Costa Lamego)의 사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리스본에 위치한 비우라 라메고의 옛 공장 건물도 외부 입면의 아줄레주로 유명하다. 알미란트 헤이스 길(Avenida Almirante Reis)과 인텐덴트 광장(Largo do Intendente)광장 쪽에서 보이는 입면 모두 리스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아줄레주 건축 입면으로 꼽히고 있다.
핸드 페인팅과 복원 작업에 있어서는 더 오랜 역사와 명성을 자랑하는 다른 아줄레주 공방이 있지만, 비우바 라메고는 1940-50년대에 접어들어 시각 예술가들과 협업을 이루어 지하철이나 대학건물 등의 벽을 장식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아줄레주를 만들면서 큰 명성을 얻었다. 시자 비에이라와 함께 만들어나간 작업들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된 배경에도 다른 것을 만들어온 여러 경험이 쌓여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기존 형식을 반복 재현하며 원형을 유지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더 긴 역사를 위해서는 새로운 세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l '치대진 기억(kneaded memory)'
두 달 전부터 포르투의 상벤투(São Bento, 성 베네딕토) 기차역 앞에는 〈치대진 기억〉이라는 조형작업이 시에서 기획한 도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되어 있다.
상벤투 역 자체도 내부의 아름다운 아줄레주 벽화로 유명한 건축물이다. 항해왕자 ― 사실 포르투갈어로는 정관사가 붙은 '그' 항해사인데, 한국어 번역에서는 항해왕자로 통용되고 있다 ― 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엔리케 왕자(Infante Dom Henrique de Avis, 1394-1460)의 세우타(Ceuta) 점령 전쟁을 묘사한 아줄레주 벽화 등이 있다.
〈치대진 기억〉은 포르투 기반 작가 달릴라 곤살베스(Dalila Gonçalves, 1982-)의 작업으로 콘크리트와 아줄레주라는 단단한 재료들이 유기적인 모양으로 어그러진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조형물이다. 어떤 절대자가 이곳의 아무 건물 한 귀퉁이를 떼어내어 반죽을 하다가 잠시 내려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접근성이 좋은 곳에 설치되어 있고 오랜 시간을 간직한 것 같은 표면은 익숙한 친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어서, 직접 쓰다듬어 보면서 도시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느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관련 링크]
국립 아줄레주 박물관 http://www.museudoazulejo.pt/
[기사입력 : 2015.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