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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동규의 이심전심
“직(職)과 업(業)의 차이”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 “직(職)과 업(業)의 차이”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잘 드러났지만 의사라는 직업은 진정 사명감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분야다. 더욱이 이 와중에 동탄성심병원 김현아 간호사가 올린 글은 이 사회에 아직도 성스러운 나이팅게일 정신이 살아있다는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가족도 가까이하기 어려운 중환자를 치료해내야 하는 의료진의 현실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행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직업군 중에서 의사 본인이 생각하는 직업만족도는 10점 만점에 2~3점에 머무는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고 있어 충격이었다. 보람과 만족은 서로 다른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최근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 중에 〈프로듀사〉라는 드라마가 있다. 처음에는 프로듀서(producer)를 잘못 표기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소위 ‘사’자 직업에 대한 패러디적 작명이었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직업에 따른 계층적 질서가 분명히 존재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말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의 차이가 엄연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조선시대 이후 사농공상의 후유증으로 교수들이 선진국보다 훨씬 융숭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국내에 있는 수많은 직업명 맨 뒤에 들어가는 접미어로서 ‘부’, ‘원’, ‘사’, ‘가’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사’ 자의 의미는 주로 국가나 사회가 부여하는 일정한 라이선스를 가진 부류를 지칭한다. 수 천 년 동안 관직등용문으로 활용되어온 고시 합격이 대표적이다. 자기 자식은 기어코 ‘사’ 자가 들어가는 직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부모들의 노력은 거의 염원에 가깝다.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 ‘사’ 자라 하더라도 그 의미는 각각 다르다. 우선 변호사는 선비 ‘士’, 검사와 판사는 일 ‘事’, 대사는 시킬 ‘使’, 그리고 의사와 목사는 스승 ‘師’ 자를 쓴다.

여기서 우리는 직업에 대한 의미를 한번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직업이란 ‘직’과 ‘업’의 두 글자가 결합된 말이다.
우선 ‘업(業)’은 힌두어로는 ‘karma', 라틴어로는 ‘mission’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업이란 바로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이다. 따라서 업과 결합하는 단어는 무수히 많다.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업을 이루어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업은 하늘이 내게 주신 엄숙한 사명이니만큼 업을 주재하는 것은 인간이 하는 게 아니다. 업과 결합한 수많은 단어들 중에서 기업(企業)이란 말은 업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인데, 이는 원래 하늘이 해야 할 일인데 인간이 대행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분야다. 사람들을 뽑아서 일과 월급을 주어 그들의 가족을 부양케 하는 것이야말로 하늘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성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런 사람들을 칭하여 ‘기업가(企業家)’라 부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작은 소기업이라 할지라도 직원을 채용하여 가치를 만들어내는 이 땅의 수많은 자영업자 또는 중소기업 창업자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창업(創業)이란 옛날에는 한 국가를 건설하는 일을 일컫는데 요새는 벤처기업이나 프랜차이즈 식당 창업 정도로 쓰이고 있다. 하긴 작은 가게라 할지라도 그들에겐 자신의 소중한 왕국이고 나라일 것이다. 그 외에도 사업, 생업, 주업, 부업, 과업, 잔업 등등 우리 삶이란 결국 자신의 업을 발견해가는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반해 ‘직(職)’이란 잡(job)이고 타이틀이고 명함이다.
한쪽에선 일할 곳을 찾아 피눈물을 쏟고 있는데 또 다른 한쪽에선 일할 사람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실제로 중소제조업 중 3D 업종 사장들은 외국인 노동자 1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한다고 호소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일자리’를 원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리에만 침을 흘리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업과 직에 대한 근본의미의 차이는 인생 후반기에 들어가면서 부턴 더욱 절실해진다. 50대에 직장을 잃게 되면 한평생을 바친 애인한테 배신당한 듯 절망하며 좌절하고 심지어 목숨을 버리는 일도 벌어진다. 명함이 없다는 이유, 어깨에 견장이 떨어진 허무감 등등…. 그러나 사실 이것은 직을 잃은 것이지 업을 버린 건 결코 아니다.

바야흐로 국내에는 산업화시대를 일군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이들 인구는 710만 명에 달하고 있으며, 뒤이어 600만 명이 넘는 포스트 버블 세대가 뒤를 이을 예정이다. 이 두 세대를 합하면 전인구의 4분에 1을 넘어서는 대규모다. 사실 대한민국 노령화 문제의 핵심이 이것이다. 드디어 2020년부터는 지난 386세대의 좌장격인 1960년생의 은퇴를 시발로 향후 10년간 매년 80만 명씩의 은퇴자들이 이 사회에 쏟아져 나온다. 일본의 경우엔 전후 출생한 독특한 세대를 단카이 세대라 부르고 있는데, 전체 인구 중 5.4%를 차지한다. 항아리형 인구구조 중에서 덩어리처럼 툭 튀어나온 것을 가리켜 붙여진 '단카이(團塊)'란 말은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낸 경제평론가 사카이야 다이치의 소설에 처음 등장해 인구사회학적 용어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인생 전반기에 살아온 일은 대부분 자신의 업과는 동떨어진 호구지책으로 결정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직장을 관두고 난 후에는 비로소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난다. 서양에서는 이를 가리켜 '제3의 나이(Third Age)'라 부른다. 인생 3모작의 키워드는 바로 대화(talk)다. 자신과의 대화, 자연과의 대화 나아가 신과의 대화다. 이러한 내면의 영적 대화를 통해 일단 자신의 업을 알게 되면, 그다음에 직은 수없이 보이게 된다.

업을 찾는 일은 한마디로 ‘내 인생의 보물찾기’라 할 수 있다. 그때 만난 직을 가리켜 천직(天職)이라 부른다. 따라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루 빨리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의 최초의 사유명제가 바로 “나는 누구인가(Who am I)?"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위에서 보면 의외로 남보다 못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그리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속으로 이건 아닌데 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종국에는 후회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목표보다 방향이다.

문제는 젊은 청춘들 또한 유례없는 취업난 속에 업을 찾기는커녕 변변한 직도 구하기 어려운 경제 현실이다. 2013년 우리 젊은이들의 직장 선호도 중 1위는 바로 연봉이다. 그다음이 안정성, 그리고 그다음이 소질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경제적 요소가 중요하긴 하지만 길게 보면 자신의 DNA와 맞지 않는 일은 결국 문제가 생기고 만다. 결국 돈보다는 자신의 소질로 가는 것이 현명하다. 일전에 월드컵을 제패하고 귀국한 인터뷰 현장에서 김연아 선수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라는 기자의 질문에 “피겨를 더 잘 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녀는 어린 나이에 자신만을 보물을 일찍 찾았음이 분명하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쳐다보며 노력하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보지만, 사실은 그것은 직이지 업은 아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더욱 잘해나가는 것이야말로 행복이고 보람이며, 보물찾기 그 자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업으로 가면 직을 얻고, 직으로 가면 업을 잃는다는 것이다.


이동규
이동규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경영·정책 자문 교수, 행자부 정부혁신관리위원(대통령 표창),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평가위원을 거쳐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정부경영평가단 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생산관리학회 부회장, 품질경영학회, 서비스경영학회, 문화예술경영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기타 행정자치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철도공사(KR) 경영자문단 CS위원장, LG 그룹 경영 자문 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의 경영코드』(21세기북스) 외 품질경영과 서비스 분야에 관한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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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