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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동규의 이심전심
‘피플 퍼스트(People 1st)’
직원 존중이 먼저다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 ‘피플 퍼스트(People 1st)’-직원 존중이 먼저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소위 ‘갑질’에 대한 문제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심각한 것은 갑을 관계에서뿐 아니라 을 사이에서도 유사 갑질이 성행하고 있으며, 땅콩 비행기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같은 회사 내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런 문제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주 업무인 서비스업에서 더욱 현저하다.

그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 CS(고객만족) 이론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맹목적인 도입에 있다. 지난 90년대 후반 관련 개념이 도입된 이래, 현재 국내 경영 현실에서 CS는 하나의 신흥종교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손님’이라는 정겨운 단어 대신 ‘고객’이라고 불리는 막강한 신분상 위력 앞에 직원들은 몸을 낮추고 무제한적인 친절을 생산해왔다. 고객만족을 절대가치로 신봉해온 부작용과 후유증은 업종을 불문하고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차장 안내 직원의 뺨을 때리는 등의 막무가내 고객과의 분쟁 발생 시 조차도 직원들은 월급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조직의 보호는커녕 일방적인 굴종을 강요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한마디로 고객은 왕이고 직원은 봉이 되어버린 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원만족도(ESI)는 형편없는 직장이 고객만족 대상을 수상하는 코미디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평가 시스템이나 모니터링 제도 등을 도입하고 교육 훈련을 강화해서 고객만족도(CSI)를 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기조가 절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열 받은 직원이 만족한 고객을 계속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불친절이 대명사일 정도로 고객 개념이 취약한 국내 업계에 서구 CS 이론의 전파는 고객의 지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키고 전문적인 서비스 품질 체계를 견인해 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업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고객을 만족시켜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재 월/일 단위로 평가받고 있는 대부분 조직의 고객만족도 담당자들이나 콜센터 직원들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이젠 공공 부문까지도 PCSI라 하여 민간 부문 못지않은 수준에 접어든 지 오래다.

사실 직원 개개인이 업무에 필요한 감정을 모든 고객에게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말투, 표정, 몸짓 등 드러나는 감정 표현을 마치 배우의 연기처럼 해내야 하는 이들 근로자의 상당수는 이른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에 걸려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우울한 상태가 이어지거나 식욕 등이 떨어지는 증상을 말한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수많은 ‘감정 노동자(emotional worker)’ 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은 선진 서비스 국가 진입이라는 국가적 과제 수행에도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여기서 ‘고객(customer)’이란 말은 18세기 유럽의 관세청(customs)에서 유래한 말이다. 당시 매일 국경을 통과해야 하는 무역업자들로서는 관세를 징수하는 사람들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사업의 흥망이 결정되는 분위기에서 이들을 상전으로 대접했다고 한다. 이 말은 그 후 자신이 가장 신경 써야 할 상대인 ‘고객'이라는 뜻으로 발전되어왔다. 그러나 현대의 전문 서비스 경영 이론은 맹목적인 고객만족은 넌센스에 불과하며, 경우에 따라선 고객 거절도 고려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자신의 타깃 고객에게 유니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국내 기업들이 ‘블랙 커스터머(black customer)’라 불리는 진상고객을 다루는 매뉴얼을 개발하는 등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고객의 갑질에 체계적인 대응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세계적인 서비스 기업의 성공요인은 바로 ‘인간존중’이라는 최고의 기업 경영 원리에 기인한다. 여기서 그 출발점은 바로 ‘피플 퍼스트(People First)’, 즉 직원존중에 있다. 세계 유수의 기업은 예외 없이 이 원칙을 경영의 제1조 제1항으로 삼고 있다. 맥도날드의 창업자 레이 크록(Ray Kroc)의 경영이념 역시 ‘인간존중’이다. 거대 기업 맥도날드의 성공은 바로 이런 원칙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고 평가되고 있는데, 직원들은 그들의 회사를 ‘사람들이 만드는 햄버거 회사가 아니라 햄버거를 만드는 사람들의 회사’라고 부른다. 업계 전설로 꼽히는 리츠칼튼호텔은 경영원칙을 집대성한 핵심가치로서 서비스의 ‘황금 표준(Gold Standards)’을 운영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우리는 신사 숙녀를 모시는 신사 숙녀다"라는 문장은 직원들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물류 부문의 세계적 거인 페덱스의 창업자인 프레드릭 스미스(F. Smith) 회장 역시 일찍이 직원-고객-주주로 이어지는 서비스업의 선순환 구조를 간파하고, 창업 철학으로서 그 유명한 ‘PSP’ 원리를 내세운 바 있다. 그는 "최고의 직원에게 최고의 보상을 해줌으로써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을 전략의 핵심으로 하여 위대한 성공을 일구어냈다. 페덱스는 소유한 항공기만 700여 대에 이르며 하루 400만 개의 소포를 처리하는 거대 기업이다. 그러나 365일 소포를 실어 나르는 화물 비행기에 붙어 있는 수많은 애칭이 바로 직원들의 아이들 이름인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자기 자식의 이름이 붙은 비행기를 모는 직원들의 심정은 직원만족이란 수준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웨그먼 슈퍼마켓은 한술 더 떠서 '직원 먼저, 고객은 다음(Employees first, Customers second)’이라는 우리로선 입이 벌어질 문구를 내걸고 있다. 애완견을 데리고 출근하는 구글이나 식사시간에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SAS 같은 회사는 더 말할 여지도 없다.

그들이 가진 철학은 간단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만족한 직원(people)이 만족한 고객(customer)을 만들고, 만족한 고객이 만족한 주주(stockholder)를 만든다는 최고의 경영 선순환 원리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다. 고객이 왕이면 직원도 왕이다. 고객만족을 그토록 강조해온 우리나라에서 그 근간이 되는 직원존중을 소홀히 해온 결과, 종국에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여기서 ‘직원존중’ 하면 대개 물질적인 보상을 떠올리는데, 사실 물질적인 것이 차지하는 비율은 2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정(recognition)이다. 신뢰와 자부심에 기초한 인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 자존심이 유달리 강한 한국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기업 경쟁력의 바로미터는 결국 직원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 직원들의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태도는 경영현장에서 사업의 초기 성공을 좌우하기도 한다. 직원들이 의구심을 갖거나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제품과 서비스는 실패한다. “종업원은 최초의 시장이다(People is the first market)”란 생생한 교훈이 탄생하게 된 이유다.

모든 고객이 왕이 아니듯이 직원 또한 종이 아니다. 고객은 결코 갑이 아니며, 직원 또한 을이 아니다. 서비스란 원래 일방적 거래가 아니며,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자 쌍방 커뮤니케이션 게임이다. 고객은 웃고 있는데 정작 우리 직원은 뒤에서 울고 있는 건 아닌지 모든 경영자의 필수 점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동규
이동규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경영·정책 자문 교수, 행자부 정부혁신관리위원(대통령 표창),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평가위원을 거쳐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정부경영평가단 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생산관리학회 부회장, 품질경영학회, 서비스경영학회, 문화예술경영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기타 행정자치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철도공사(KR) 경영자문단 CS위원장, LG 그룹 경영 자문 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의 경영코드』(21세기북스) 외 품질경영과 서비스 분야에 관한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기사입력 : 201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