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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동규의 이심전심
“말주변이 없다구요?”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 “말주변이 없다구요?”


“저들이 말하는 핵심 요약을 30분째 듣고 있는데, 그들이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수많은 프리젠테이션 현장에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불평이다. 일찍이 저명한 광고회사 테드 베이츠의 대표였던 로서 리브스(Rosser Reeves)는 ‘고유판매제안(USP: Unique Selling Proposition)’이라는 신개념을 제안했다. 이것은 ‘이 제품을 구입해야 하는, 경쟁사보다 우월한 단 한 가지 이유’라는 의미로서, 그는 각각의 상품은 변하지 않는 고유한 단 하나의 콘셉트를 가지고 광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입에서만 녹고 손에서는 녹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초콜릿 회사 M&M의 슬로건처럼 말이다.

비즈니스에서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개념은 매우 효과적이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용어 중에 ‘Elevator Pitch’가 있다. 이것은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는 1분 정도의 짧은 시간 내에 자신만의 사업 아이디어를 설명하여 중요한 투자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매우 복잡한 것 같으나 따지고 보면 결국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말하기, 듣기, 그리고 쓰기가 그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피를 잉크로 찍어 쓰는 것이며, 말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전달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듣는 기술이다. 특히 경청은 매우 중요한 경영 커뮤니케이션 기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경청이란 듣는 기술이 아니라 두 귀로 타인을 설득하는 기술임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국내 굴지의 대기업 현장에서 팀장들로 하여금 말수를 확 줄이고 대신 팀원들의 이야기를 무조건 경청하도록 한 결과,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직원들도 몇 달이 지나면서부터 자신의 의견이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자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엄청난 성과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한편, 커뮤니케이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말 재주가 없다고 둘러대며, 자신의 불통의 원인을 딴 데로 돌리는 것을 흔히 경험하게 된다. 특히 학벌이나 지식의 계단이 높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배울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당수 그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게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대개 상대방이 자신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거나, 또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야구에서 피처만 있고 캐처가 없는 것을 상상해보라. 말귀를 못 알아듣게 한 책임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우치지 못하면 이러한 ‘만성 소통장애증’의 치료는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보다 쉽고 단순하게 핵심을 말해야 한다. 이것은 전문적인 분야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 상대방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 내용보다도 전달하는 과정에 있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이야기에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안하느니만 못한 것이 되고 만다. 이는 부부간이나 자식과의 대화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에서 10년 이상 살았다고 하는 어느 외국인 작가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면서, 자신들이 의사소통할 수 없는 이유로 문화적 장벽, 언어 장벽을 들먹이지만 한마디로 그건 핑계라고 일축한다.

사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는 대화는커녕 비즈니스나 연애가 이루어질 리 없다. 우리나라에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심지어는 ‘절에 가도 말만 잘하면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는 말도 있다. 말을 잘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자격증이라 할 수 있다. 말이란 것이 결국 그 사람의 가정교육이자 살아온 인생의 향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말 한마디 잘못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소위 필화보다 설화(舌禍)가 더욱 자주 발생하며 그 파괴력도 훨씬 큰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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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을 잘한다고 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보통은 달변가를 두고 “그 사람 말 한번 참 잘 한다”고 하기 쉽다. 그러나 달변가가 반드시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은 아니다. 언행의 신뢰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달변가들은 역으로 입만 번지르르 하다고 하여 약장수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오히려 눌변(訥辯)이라 해도 얼마든지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상대방에게 얼마나 자신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결국 말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의학이 사람의 병을 다루는 것이라면 경영학은 조직의 병을 다루는 학문이다. 인간의 병이 대부분이 내부 순환 계통의 질병이듯이 조직의 병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커뮤니케이션 문제다. 조직 커뮤니케이션의 3가지 차원은 동료 간, 상하 간, 부서 간 문제다. HP, 인텔, DHL 같은 세계적 기업의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상징하는 것은 ‘오픈 도어 정책(Open door policy)’이다. 글로벌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사장과 직원의 공간을 구분하는 것은 낮은 칸막이가 전부다. 임원은 물론 사장도 직원들과 한 공간에서 일한다. 업무성과가 우수한 직원에게 CEO가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하기도 한다. 역시 최고의 리더는 최고의 커뮤니케이터임에 틀림없다.

국내 조직들의 경우 널찍한 사무실과 화려한 소파로 상징되는 임원실의 대부분은 주로 닫혀 있다. 많은 외국인 CEO들은 한국 기업의 가장 큰 문제로 상하를 나눠놓는 벽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부서 간 소통을 저해하는 기능적 장벽 또한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사장실이나 임원실을 없앤다고 소통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유형의 벽을 허무는 것보다 무형의 벽을 부수는 게 더욱 중요하다. 기껏 열린 공간을 만들어 놓고 마음의 벽을 허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조직 내 실핏줄이 막혀 대사가 원활하지 못하고 장차 동맥경화나 고혈압, 당뇨, 뇌출혈 등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은 인간과 마찬가지다. 회사의 주가나 시장가치도 따지고 보면 그 회사 CEO를 비롯한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조직에서 소통의 핵심가치는 이미지가 아니라 행동이며, 말이 아니라 태도이자 마음이다.

반도체 업종에서 ‘무어의 법칙(Moore’s Law)’으로 유명한 미국 인텔사의 고든 무어 명예회장은 평소 조직 내외부와의 소통을 가장 중시하였다.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 폭주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질주했다간 낭떠러지로 추락할 게 뻔하다. 사방에서 들리는 경고음을 귀담아들어야 할 때다.” 결국 소통은 입이 아니라 귀의 문제인 것이다.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두 개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동규
이동규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경영·정책 자문 교수, 행자부 정부혁신관리위원(대통령 표창),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평가위원을 거쳐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정부경영평가단 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생산관리학회 부회장, 품질경영학회, 서비스경영학회, 문화예술경영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기타 행정자치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철도공사(KR) 경영자문단 CS위원장, LG 그룹 경영 자문 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의 경영코드』(21세기북스) 외 품질경영과 서비스 분야에 관한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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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