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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동규의 이심전심
“생각의 패러독스”

이동규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 “생각의 패러독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는 어디일까? “그건 병원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80%가 거기서 죽기 때문이다.” 천재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답이다.  

‘역설(paradox)’이란 사람들이 믿어온 것과 반대되는 현상을 보고 만들어진 말이다. 그러면 통설은 진실일까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최근에는 더욱 누구에게나 진리로 받아들여졌던 단단한 믿음도 송두리째 깨지는 일이 자주 생겨나고 있다. 견고함의 대명사이던 독일 폭스바겐 사태가 좋은 사례다.  

현대 사회현상학 이론 중에 ‘블랙 스완(Black Swan)’이란 용어가 있다.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일, 상상하기 힘든 일이 갑작스럽게 우리 곁에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용어는 원래 서양고전에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 또는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상상’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되어 왔다. 17세기 말 서구인들은 ‘백조(스완)’라고 하면 누구나 흰색을 생각했다. 그런데 1697년 호주를 방문했던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그곳에서 검은색 백조(흑고니)를 봤다. 이를 본 유럽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검은색 백조가 있다고 말하자, 이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검은색 백조를 본 일이 없는 유럽인들에게 ‘백조는 희다’는 경험상의 법칙이자 정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도 마찬가지였다. 태양이 돈다는 천동설이 당시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 패러다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뉴욕 월가의 투자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그의 저서 『블랙스완』에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를 예언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또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동명의 영화에서 주인공 발레리나 ‘니나’ 역의 나탈리 포트만(영화 〈레옹〉에서 아역 마틸다 역할을 맡았던 배우)은 소름 끼치는 연기로 대중에게 유명해진 바 있다. 탈레브에 따르면 “블랙 스완의 등장은 과거 경험과 데이터, 통계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직도 과거 사례에 집착하기 때문이다.”고 분석한다. 결국 이 말이 주는 메시지는 개인은 물론 기업, 국가의 미래에도 갑자기 전혀 다른 좋은 혹은 나쁜 운명으로 바뀔 ‘블랙 스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 운영에서도 그 메시지는 매우 유효하다. 수많은 조직의 리더들이 자신의 논리를 맹신하다가 저지른 커다란 실수들과도 그 맥락이 닿아 있다. 사실 논리와 현실의 괴리는 인류의 영원한 테마이다. 수천 년 역사의 서양 논리학에서도 사고의 오류(fallacy)들을 객관 유형화하여 그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현대 경영학으로 이어져 다양한 이해집단 간의 갈등 조정 등 집단의사결정(group decision making) 이론으로 발전되어왔다.

실제로 어떤 기존의 관습이나 사고를 바꾸어 적용해본 결과가 긍정적이면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역발상’이라 추켜세운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러한 생각을 전에는 한 번도 못했다는 이야기에 다름없다. 또한 조직의 업무수행 과정에 있어 ‘전례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 말에 좌절한 젊은이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사실 그 전례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전례가 없던 일이었음에도 말이다. 이러한 과거의 인습과 관행, 무지와 편견, 고정관념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는 끊임없이 계속되어왔다. 경영학, 산업공학 등에서 말하는 전략적 사고, 시스템 사고, 창조도구와 기법 등은 이러한 문제해결의 중요성을 시사해준다.

실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현상, 즉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목적 자체가 되어 버린 현상은 자주 목격된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규칙이 너무 세세하고 번잡하여 비능률적인 현상을 번문욕례(繁文縟禮)라 일컬어 왔는데, 일반 행정에서는 이러한 조직 내 비능률적인 병리행태를 ‘전치현상(轉置現象)’이라고 한다. 흔히 현대 관료제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공무원들이 업무 수행의 절차나 규약에 지나치게 얽매여 정작 업무의 효율성이라는 목표를 소홀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K. 머튼은 이를 ‘레드 테이프(Red Tape)’라고 명명하였는데, 방대한 양의 공문을 묶어 저장할 때 붉은 띠를 썼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공공부문에서 흥미로운 역발상이 시도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는 혼잡한 도로를 넓히지 않고 거꾸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도로 줄이기는 선진국에선 이미 일반화되어 있다. 현재 미국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에선 차로 줄이기 공사가 한창이다. 차로를 줄이면 교통량이 감소해 차가 덜 막히고, 보행자가 늘어나 거리 경제가 살아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 번화가인 오모테산도 역시 ‘주차장 없는 상권’이란 콘셉트로 재개발된 사례다. 실제로 불법주차가 줄면서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도로 줄이기의 이론적 근거는 ‘브라에스의 역설(Braess’ paradox)’이다. 이는 원래 독일의 디트리히 브라에스 교수가 주창한 가설로서 도로를 줄이면 오히려 교통량이 감소한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1999년 보수공사를 위해 남산 2호 터널을 폐쇄했을 때 터널 주변의 차량 평균 속도가 시속 29.53㎞에서 30.37㎞로 개선됐다고 한다.

노동시장에서 자주 쓰이는 것 중 하나가 ‘해고의 역설’이다. 유럽 노동조합들이 노동자 보호를 위해 해고를 어렵게 한 결과 실업률이 더욱 높아진 결과를 두고 생겨난 말이다. 지금도 국내에서 진행 중인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파행 결과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 전형적인 사례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옛말은 바로 이럴 때를 두고 한 말이다.

역발상으로 대표되는 전략적 사고란 과학적 분석력에 통찰력(insight)을 겸비할 때 비로소 작동되는 성질의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주관에만 입각한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창의적 발상이 나올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진보주의 교육가인 루돌프 플레쉬(Rudolf Flesch)는 “늘 해오던 방식을 고수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깨달음, 그것이 바로 창의력이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고력은 사물의 원리를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학교생활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모범생이 아이디어가 많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소 엉뚱한 생각을 하는 괴짜형 인간이 발상의 전환의 단초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경영에는 연습이 없다. 치열한 현장에서 논리적 인식과 현실의 차이를 모르면 의사결정에 큰 낭패를 겪기 십상이다. 세상일이란 논리적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하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블랙 스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요즘이다.


이동규
이동규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경영·정책자문 교수, 기획예산처 정책자문 위원, 행자부 정부혁신관리 위원(대통령 표창),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평가위원을 거쳐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정부경영평가 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생산관리학회 부회장, 품질경영학회, 서비스경영학회, 문화예술경영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기타 행정자치부 정책자문위원(창조정부 3.0), 코레일 경영자문단 마케팅위원장, LG그룹 경영자문 교수, 금융소비자원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저서인 『한국인의 경영코드』(21세기북스) 외 품질경영과 서비스 분야에 관한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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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