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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호경윤(월간 art in culture 수석기자)
세 명의 공동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 <파동, the forces behind>전이 열렸다. 이들은 김민애, 정윤석+강정석+스클라벤탄츠, 옥인콜렉티브, 이완 총 4팀의 작가를 초청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다소 썰렁한 느낌이 드는 것이, 어떤 ‘공백’이 있는 듯했다.

이 전시는 두산갤러리에서 신진 기획자를 양성하는 취지 아래 2011년부터 시작한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의 결과물로, 약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 강소정, 김수영, 조은비 이상 3인의 큐레이터는 당대의 사회현상과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연결짓는 키워드로 ‘공백’을 선택했다. “사회 구조에는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공백’과 같은 것들이 있다. 주민등록 말소자와 같이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존재나 급변하는 산업사회에서 제 기능을 상실해 버려진 공간은 ‘공백’이다.” 공동 큐레이터의 기획 글 중 일부다. 특히 이들은 요즘 세대의 ‘잉여’라는 독특한 문화현상에 착안했다. 경제적 생산활동과 무관해 ‘쓸데없이 남아도는 것’으로 치부되는 ‘잉여적’ 행위들은 단지 청년 실업자의 할 일 없는 인터넷 활동 같은 것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조금은 떨어져 발생하는 ‘예술’ 역시 근본적으로 ‘잉여’에 가깝다. 기획자들은 다소 부정적이면서도 희화화된 뉘앙스를 풍기는 ‘잉여’라는 용어 안에 머무르지 않고, 인터넷 방송이나 촛불시위 등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사건으로 폭발되어 나오는 구체적 현상에 더욱 주목한다.
달리 표현하면 ‘잉여’라는 가치는 신자유주의 이후 강조되는 경제성이나 효율성에 대한 반작용 현상과 저항 의지로 발현되는 것이며, ‘잉여짓’은 그들 나름대로의 주체적 모색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잉여적 존재들의 공동체적 연대, 혹은 잉여문화 자체에 내재한 ‘숨은 세력(the forces behind)’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조망한다. 작가 겸 영화감독 정윤석, 도시음악가 그룹 스클라벤탄츠, 강정석의 공동작업 <Siren Night>는 서울 변두리의 폐쇄된 빗물 펌프장에서 즉흥적으로 벌인 사운드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공간의 조건과 제약을 이용해 다양한 소리의 울림을 만들어 내어 버려진 공간을 위한 진혼곡을 연주한다. 공간 안에서 그 공간을 연주하는 것이다.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쇳소리와 무언가를 내려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오히려 소리를 통해 공간이 명확해 진다. 죽어 있던 공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퍼포먼스는 사제나 무당이 벌이는 제의식과 같다. 작품 속에서 강정석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콩알탄’은 작은 소음과 불꽃을 튀기며 젊은 무직자인 친구들의 신세를 상징한다. 이 퍼포먼스 혹은 공연은 사전 협의나 리허설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되었고, 녹음도 원테이크로 진행되었다. 세 팀의 작가들의 협업은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어둠 속에서 일시적 연대와 교감의 정서를 만들어 낸다.

옥인콜렉티브는 옥인 인터넷 라디오 스테이션[STUDIO+82]의 신년 특집 기획 방송 <바닥의 노래를 들어라>를 선보인다. 전시 기간 중 다양한 게스트를 초대해 총 5회에 걸친 방송녹화를 진행, 인터넷 라디오로 순차 방송한다. ‘예술과 생계’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생을 모색해야 하는 예술생산자들의 삶과 그 이면을 주목한다. 전시장 바닥에 놓인 설치 작업은 방송녹화 시 스튜디오로 변모하는 구조물로, 옥인콜렉티브는 전시 기간 동안 이 구조물의 안쪽의 바닥은 왁스와 광택기로 ‘광’을 내면서 관객들을 초대/환대한다. 김화용 이정민 진시우로 구성된 옥인콜렉티브는 종로구 옥인동 옥인아파트의 지명을 딴 작가 그룹이다. 2009년 7월 옥인아파트의 철거 현장에서 시작된 옥인콜렉티브는 이번 라디오 스테이션에서 2011년 4월 철거 투쟁의 현장인 두리반에서 발기한 자립음악생산조합의 박다함과 한받을 초대하는 등 ‘바닥’과 ‘노래’에 관한 대화의 장을 펼친다.

이완은 불가항력적으로 부과된 구조 체계를 또 다른 기준으로 전환시켜 모종의 역설과 모순을 만들어 낸다. 이번 전시에서 이완은 <절대적 기준에 대한 내면의 불가항력적 엔트로피>를 선보인다. 전시장의 벽면과 천정을 이용해, 국기봉 형태의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나 전신주의 콘크리트 소재로 된 길쭉한 막대를 기울여 놓았다. 또한 오래된 이발소 그림, 미술 관련 서적 등 주변에 있는 일상적 사물을 천정까지 쌓아 올렸다. 이 작품들은 언뜻 보기에는 꿋꿋하게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손 끝 하나로 살짝 밀기만 하면 무너져 내릴 만큼 불안한 상태다. 작가는 설치 과정 중 붕괴 직전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함을 즐기며, 절대적인 불안정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즉 사회 구조가 그러하듯 겉으로는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안정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이면에는 절대적인 불안정함이 내재되어 있으며, 나아가 개체의 사소한 일탈에도 붕괴될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작가는 구조 속에 은폐된 불안정성과 내부의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표출하여, 그것이 야기하는 위험하지만 동시에 잠재적인 가능성에 대한 상상을 제안한다.
김민애의 작업 <gallery in the>는 전시 공간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화이트큐브다. 흰 벽과 조명 등으로 구성된 구조물은 실제 전시 공간의 안내데스크와 마주보고 있다. 이 작업은 구조물 위에 놓여 있는 인쇄물을 가져가고 방명록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등 기능적 측면이 있다. 김민애는 공간을 활용하는 특유의 구조물들을 통해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거나, 친숙했던 것을 낯설게 만드는 새로운 시선을 제안해왔다. 이번에는 갤러리 안에 또 하나의 갤러리 만들어, 실제로 체현되지 않는 존재에 대해 시각화함으로써, 전시공간은 물론 사회 전체를 둘러싼 구조에 대해 논평하는 것이다. 특히 이 작업 안으로 관객이 들어가게 되면 원래 갤러리를 지키고 있는 직원과 마주하게 된다. 미대생 혹은 큐레이터 지망생의 주된 수입원인 ‘지킴이 알바’ 역시 미술계 인력구조에서 볼 때 ‘공백’에 속한다. 하루 종일 멀뚱히 앉아 갤러리를 지키다 보면, 오히려 미술계의 일원이 바라던 꿈을 갉아 먹는 기분이 든다.
‘잉여 문화’를 조망한 이번 전시를 기획한, 즉 두산갤러리의 공모에 응한 신진 큐레이터들 역시 청년 백수가 아닐까 싶지만 사실 기획자 3명 모두 직장이 있다. 잡지사 기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한 명은 국내 메이저 화랑의 갤러리스트, 또 다른 한 명은 공기업에서 운영하는 비영리 전시기관의 큐레이터라는 점에 고개가 갸우뚱하게 된다. 하루 종일 전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쪼개 외부의 기획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것은 마치 지킴이 알바와 다를 바 없이 이들 역시 일터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전시를 만들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나. <파동, the forces behind>전의 가장 큰 미덕은 그러한 전시기획자로서 펼치고픈 담론의 갈급함을 달래는 데 있어 서두르지 않고, 욕심을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하여 단 한 명의 총괄 지도 큐레이터(김현진)를 내세운 큐레이터 워크숍의 구성 방식 역시 이러한 결과에 중요한 작용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로 사용된 ‘공백’은 전시장에서 절제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현대 사회가 쏟아 내는 화려한 이미지들과 엄청난 정보량은 오히려 이 시대의 주인공인 젊은이들이 더욱 맥을 못 추게 하는 장애물이다. 우리는 좀 더 선택의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기사입력 : 2012.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