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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본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다카라즈카 100주년일 것이다. 공연예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다카라즈카는 미혼 여성들만 출연하는 일본의 가극단 또는 그 장르를 가리킨다.
일본의 전통 공연예술인 가부키에서 온나가타(女形), 즉 남성이 여성 역할을 맡는 것과 반대로 다카라즈카는 여성이 남성 역할을 맡는 오토코야쿠(男役)가 핵심이 된다. 현재 꽃, 달, 눈, 별, 하늘 등 5개의 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조는 오토코야쿠 주역을 정점으로 80여 명이 속해 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작품은 대체로 2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에서는 사랑을 다룬 뮤지컬을 공연하고 2부에서는 화려한 레뷔(revue, 쇼)를 선보인다.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배우들의 과장된 분장과 오색찬란한 의상 및 무대는 얼핏 유치해 보이지만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팬덤을 자랑한다. 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에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꿈의 세계와 이상적인 남성상을 보여줌으로써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지난 4월 5일 역대 단원들이 총출동한 기념식을 여는 한편 도쿄에 있는 전용극장에서 1년 내내 다양한 기념 공연을 펼치고 있다. 또한 언론과 학계 역시 100년을 이어온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역사와 위상, 발전의 원동력 등을 잇달아 조명하고 있어 주목된다.

| 온천의 여흥거리로 시작해 일본의 독특한 장르로 자리 잡다

다카라즈카는 원래 일본 오사카 인근 소도시 이름이다. 1911년 한큐전철주식회사의 전신인 미노아리마 전기궤도가 이곳 온천에 대규모 풀장을 갖춘 오락시설을 개설했지만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사장인 고바야시 이치조는 오락시설과 철도의 이용객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소녀들만을 모은 ‘다카라즈카 가창대’를 만들었다.
1913년 소녀들을 모집할 당시 대졸 남성 수준의 월급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에 지망자가 꽤 많았다. 그리고 뽑힌 소녀들을 교육시켜 이듬해 4월 1일부터 두 달간 온천장의 풀장에서 공연을 했다. 프로그램은 일본 전래 동화 ‘모모타로’를 소재로 한 음악극 〈돈브라코〉를 비롯해 춤, 합창, 관현악 연주 등으로 다양하게 펼쳐졌다. 〈돈브라코〉는 일본 최초로 서양음악을 활용한 음악극이라는 점에서 뮤지컬의 시초로 간주된다.
다카라즈카 가창대는 큰 인기를 모았고, 온천장에는 손님이 급증했다. 이후 다카라즈카는  극장에서도 공연을 가지게 됐으며, 1918년에는 일본 최고의 극장이라는 도쿄 제국극장 무대에도 서게 됐다. 이듬해 다카라즈카 음악학교가 설립된 데 이어 가창대는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공연 횟수가 많아지면서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은 1923년 2개(꽃, 달)의 조로 나누는 한편 1924년 3,000명을 수용하는 전용극장을 지었다. 가극단은 이후 1933년 도쿄에도 2,000석 규모의 전용극장을 만들게 되며 1940년엔 이름을 다카라즈카 가극단으로 바꿨다.
‘가극단’이란 이름에서 드러나듯 다카라즈카는 기본적으로 음악극(뮤지컬)을 지향한다. 하지만 특별한 줄거리 없이 노래와 춤을 보여주는 버라이어티쇼인 ‘레뷔’ 역시 다카라즈카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카라즈카는 1부에서 뮤지컬을 공연한 뒤 2부에서는 반드시 레뷔를 선보이는데, 관객 중에는 레뷔를 더 좋아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레뷔는 1920년대 유럽과 미국 등에서 크게 유행한 장르로 당시 다카라즈카에 도입돼 일본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브로드웨이 등 본고장에서는 1940년대부터 대형 극장에서는 사라지고 나이트클럽이나 카바레 등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 일본에서는 다카라즈카를 통해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다카라즈카 피날레에 출연진 전원이 등에 하늘거리는 색색의 깃털 날개 장식을 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또한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 무렵에는 다카라즈카를 상징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인 ‘오토코야쿠’가 등장해 인기를 끌게 된다. 그리고 이 무렵 가극단은 아예 연출부를 만들어 다카라즈카 특유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발전시킬 수 있는 연출가와 극작가, 안무가 등 스태프들을 내부에서 육성하기 시작한다.
다카라즈카는 1930년대 말부터 일본이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일으킨 제2차 대전의 영향으로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군수공장 등으로 위문공연을 다녀야 했으며 일본의 진주만 침공 이후에는 군국주의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전쟁 막바지엔 아예 극장이 폐쇄되어 일본 해군에 귀속되기도 했다. 특히 도쿄 극장의 경우 전쟁이 끝난 뒤에도 10년 동안이나 미군 진주군에 접수됐었다.

1956년 도쿄 극장을 돌려받은 다카라즈카는 가극단과 음악학교를 다시 한 번 정비한 뒤 발전을 구가하게 된다. 특히 일본 현대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장르이자 문화상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가부키, 분라쿠 등 일본 전통 공연예술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고도의 양식화’를 이뤄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양식화된 전통 공연예술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지만 그 집요함과 정교함에서 일본을 따라가기 어렵다. 다카라즈카는 바로 20세기 들어 단시간에 고도의 양식화를 이뤄냄으로써 독자성을 가지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가극단은 일본에서 여배우의 등용문으로 각광을 받게 됐다. 이에 따라 2년제인 다카라즈카 음악학교는 매년 수십 대 일의 입학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TV나 영화에서 활약하는 유명 여배우들 가운데 아마미 유키나 구로키 히토미처럼 다카라즈카 출신들이 적지 않다. 뮤지컬의 경우엔 더더욱 많아서 토호나 호리프로 등에서 제작하는 뮤지컬의 주역은 대부분 다카라즈카 출신이다. 설령 다카라즈카에서 오토코야쿠를 했다 하더라도 퇴단한 뒤에는 다시 여자 역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카라즈카도 1970년대 초반 TV의 보급으로 인기가 떨어지면서 극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적자가 쌓이는 등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이때 다카라즈카를 구원한 것이 바로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원작으로 한 동명 뮤지컬이다. 당시 가극단의 전속 작가였던 우에다 신지가 공연 대본을 쓰고, 배우 겸 연출가였던 하세가와 가즈오가 연출한 뮤지컬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다카라즈카를 대표하는 레퍼토리가 됐다.
1980년대에 들어 가극단은 각 조의 주연배우가 오토코야쿠로 고정되는 스타 시스템을 확립했다. 대체로 신입 단원에서 톱스타로 승격되는 과정은 평균 10년 안팎인데, 그 과정에 필수적인 조건들도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 무렵부터 팬들은 누가 스타가 될지 예상하며 장기적으로 후원하는 특유의 팬덤으로 스타 시스템을 지탱하게 됐다.

| 100주년이 된 다카라즈카, 새로운 도약을 꿈꾸다

다카라즈카는 2000년대 후반부터 관객이 많이 줄었다. 2010년 신문 보도에 따르면 다카라즈카 시와 도쿄의 전용극장을 방문하는 관객 수가 평균 250만 명 정도였는데 무려 20%나 감소했을 정도였다. 철저한 스타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가극단에서 관객을 매혹시키는 카리스마 있는 배우들이 과거에 비해 준 데다 젊은 관객 개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여성이 절대 다수인 다카라즈카 팬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관극한 것을 계기로 충실한 지지자가 되는데, 요즘엔 어린 소녀들이 아이돌 그룹이나 인터넷 등에 더 마음을 뺏기고 있어서 공연을 보러 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20년 안에 문을 닫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맞은 100주년을 계기로 가극단은 새로운 도약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기념비적인 해를 앞둔 지난해에는 다카라즈카의 대표 레퍼토리인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원작자 이케다 리에코와 함께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는 만화 원화를 비롯해 애니메이션의 셀화 등 300여 점을 비롯해 동명 다카라즈카 가극의 의상과 사진 등도 선보였는데, 일본의 매체들이 앞다퉈 취재를 하는가 하면 발 디딜 틈도 없이 관객들이 몰리면서 대대적인 주목을 모았다. 덕분에 지난해부터 ‘베르사이유의 장미’ 붐이 다시 불면서 다카라즈카를 보러 오는 관객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올해 100주년을 맞아 다카라즈카는 또한 풍성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우선 지난 4월 5일 다카라즈카 시에 있는 전용 극장에서 다카라즈카 출신 1,500명을 포함한 관계자 2,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기념식을 열었다. 현재 다카라즈카 단원 460명이 모두 무대에 등장해 유서 깊은 작품을 갈라 공연했는데, 이것은 도쿄 전용극장에서도 동시 생중계되었다. 당시 도쿄 극장에도 다카라즈카 출신 400명을 비롯해 관계자 2,000명이 운집했다. 역대 다카라즈카 졸업생은 4,426명인데, 타계했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을 제외하곤 거의 출석한 셈이다. 70~80대의 고령자들도 꽤 출석해 후배들과 100주년을 축하하는 훈훈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 기념식 앞뒤인 4월 4일과 6일엔 현역 톱스타들과 과거 톱스타들이 모여 합동공연을 펼쳤는데, 티켓을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다.
가극단은 또 지난 3월부터 일본 전역을 돌며 100주년 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올해 공연하는 작품마다 레뷔로 유서 깊은 ‘다카라즈카 오도리(춤)’와 ‘다카라즈카 꽃 시집’을 준비해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이외에 〈태양왕〉, 〈나폴레옹〉 같은 신작을 무대에 올리는 한편 〈베르사이유의 장미〉 등 대표 레퍼토리를 공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외에 다카라즈카 가극단과 모기업이 같은 오사카의 우메다 예술극장은 다카라즈카 출신 배우들과 함께 기념 공연을 열고 있다. 20대부터 80대까지 과거 톱스타였던 배우들 20여 명이 등장하는 ‘셀러브레이션 100! 다카라즈카’ 콘서트는 도쿄와 오사카 등에서 2개월 넘게 공연됐는데, 극히 소수만 볼 수 있었던 다카라즈카 100주년 기념공연을 대신해 팬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또한 우메다 예술극장은 10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올가을 뮤지컬 〈시카고〉를 여자들만 출연하는 버전으로 올릴 예정이다. 과거 다카라즈카 출신 톱스타들이 캐스팅된 상태로 브로드웨이에서도 이번 프로젝트가 소개되기도 했다. 다카라즈카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일반 뮤지컬과 다른 장르로 인식되기 때문에 이미 남녀 배우가 출연하는 버전이 있어도 그와 상관없이 라이센스를 얻어 공연되는 일이 적지 않다.
한편 다카라즈카는 100주년을 맞아 해외 시장 개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대만에서의 공연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이 계기가 됐다. 그동안 다카라즈카는 2005년 서울을 포함해 17개국 24개 도시에서 공연됐지만 이것은 모두 문화교류 차원의 초청이었다. 그래서 현지 공연에서는 초대권이 주로 뿌려졌다. 하지만 지난해 대만 공연은 자체 기획한 것으로 12회 공연, 1만 8,000장 티켓이 모두 팔려나갔다. 대성공에 고무된 다카라즈카는 2015년에도 또다시 대만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100주년을 계기로 고령화된 팬층의 외연을 확산함으로써 부활할 수 있을지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