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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독일 시각미술계를 알려면 모노폴을 보시라
: 편집장 홀거 립스(Holger Liebs)와의 인터뷰

최정미 (독립 큐레이터)
  • Cover Monopol May(2014)
    Cover Monopol May(2014)
  • Cover Monopol March(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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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ver Monopol Kunst und Kultfuhrer Rheinland(2014)
    Cover Monopol Kunst und Kultfuhrer Rheinland(2014)


통용되는 모노폴의 독일어 원명 〈Monopol, Magazin fur Kunst und Leben(모노폴, 마가찐 표 쿤스트 운드 리븐)〉 을 직역하면 “예술과 인생을 위한 잡지”인데 모노폴 특성상 예술과 라이프스타일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월간지 모노폴은 핵심 테마인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디자인, 건축, 패션, 문학 등의 기사를 함께 다룬다. 2004년에 처음 출간한 모노폴이 까다롭고 경쟁이 심한 독일 미술월간지 시장을 비교적 단시간에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깔끔한 편집, 베를린 스타일 레이아웃, 시사성과 심도를 적절하게 다룬 기사 등인 것 같다. 구색 갖추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모노폴을 여성, 주부, 패션, 시사, 여행, 건강 등이 주를 이루는 가판대에서 찾는 것도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이기도 한 편집장 홀거 립스 씨의 역할 또한 컸다고 본다. 그는 1991년부터 쥐드도이체 차이퉁,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 독일 주요 일간지 외에 프리즈, 아트뉴스페이퍼, 아르테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였고, 2010년 5월부터는 모노폴 편집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립스 씨는 약간은 낡아 보이는 듯한 스웨터와 청바지를 입고 필자를 맞이했는데, 40대 중후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큼한 훈남이었다. 1998년 출장차 서울에도 가 본 적 있으며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립스 씨를 통해 모노폴의 스피릿을 들어 보았다.







  • 편집장 홀거 립스(Holger Liebs)

    편집장 홀거 립스(Holger Liebs)
    ⓒJuno Kunstverlag GmbH

Q. 미술월간지 시장이 만만치 않다. 독자에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고자 하는가?

미술지뿐만 아니라 영어권이 아닌 잡지 인쇄물에 영어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용한다. 이 부분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봤으며 Art & Economy는 Kunstmarkt로, Book은 Bucher로 바꾸는 등 바꿀 수 있는 단어는 독어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번째 방법으로는 전시 정보, 책 소개, 미술 시장 소개 외에 매달 주제를 정하고 그 특징을 확실하게 살렸다. 가령 지난 5월호에는 예술의 도시 뉴욕에 중점을 두었으며 영화배우 제임스 프랭코의 뉴욕 페이스 갤러리 개인전 소개와 비평 그리고 예술 활동을 겸업하는 스타들이 어디서 먹고, 자고, 어디에 가는지를 실었다. 2006년부터는 독일 예술도시를 부록 형식으로 특별 소개했다. 베를린, 뮌헨, 프랑크푸르트 같은 도시를 들 수가 있는데 대략 12개 도시를 소개하고 나서는 소재거리가 미약해졌다. 그래서 외국 문화예술 도시로 눈을 돌렸으며 그 도시와 관련된 대형행사를 부록이 아닌 특별호 형식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3월에는 에모리 쇼, 5월은 프리즈 아트 페어 뉴욕과 아트 바젤 홍콩, 가을에는 런던 그리고 12월에는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 등 이들 도시와 관련된 행사를 집중 조명한다. 다른 아시아 국가의 행사도 알려 주고 싶지만, 아직은 홍콩에 그치고 있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1년에 4번, 3개월 마다 최고 주요뉴스를 선정해 영어본으로 발행한다. 6월에는 아이패드 애플리케이션으로도 나올 예정이다. 외국인 독자서비스 외에 세계적 브랜드 광고주를 겨냥해서이기도 하다. 모노폴 광고주들 중에 세계적인 기업이 많은데 이들은 독일 외에 자국에서도 자사 광고를 보고 싶어 한다. 세 번째 방법으로는 파트너와의 협업이다. 영어본이건 독어본이건 간에 외국 도시 특별본을 만들고 홍보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그 도시 파트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Q. 모노폴 영어본을 만들 계획은 없는가? 한국 지인에게 선물해주고 싶을 때가 있는데 독어로만 돼 있어 좀 난감하다.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전자제품 설명서가 아닌 미술 관련 문맥의 미묘한 부분까지 제대로 번역이 되는 것도 어렵고 또 이를 제대로 감수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간, 자금과 공이 무척이나 많이 들어간다. 지난번 베니스 비엔날레 때 행사가이드를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로 번역본을 만들었다. 잘 만들어졌고 반응도 좋았다. 이탈리아어본은 잘 모르겠는데 영어본은 자신감이 있었고, 불어본도 칭찬을 많이 들었다.

Q. 시각예술전문지이지만 패션도 자주 다루는 것 같다.

꼭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현대미술 외에 스타일 칼럼이라고 해서 예술 관련 행사나 인물을 소개하곤 한다. 모델로 종종 활동하는 작가들이 있어 그 이유를 물어봤다. 돈이 필요해서거나, 콘셉트가 그렇다거나, 쿨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내 생각에는 예술가들은 일종의 롤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 보통 직장인이 보기에 예술가는 여러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예술가가 모델과 같은 젊고 아름다운 외양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그들만의 특별한 매력 때문에 기업에서 이들을 종종 광고모델로 사용한다. 약간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과거에는 게하르트 리히터가 커버보이가 되기도 하였다.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재단에서 열린 회고전을 기념하여 게하르트 리히터 독점 인터뷰가 실렸다.

Q. 기자로 활동 당시 인터뷰도 많이 했는데 누가 제일 인상에 남는가?

1996년 대학 졸업 후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쥐드도이체 차이퉁 문화부 기자로 일할 때였는데 작고한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전화인터뷰가 잡혀있었다. 나름 심도 있고 전문적인 질문을 준비했다. 드디어 전화가 연결되어 질문했는데 그녀는 내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물 좀 갖다 주세요. 모르겠어요.”가 전부였다. 인터뷰해 봤자였다. 아마 30초 인터뷰였던 것 같다. 가장 어렵고 좋았던 인터뷰는 스위스 건축가 자크 헤르조그(Jacques Herzog)였다. 당시 신생 기자였던 나는 헤르조그 씨를 인터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바젤로 날아가 한 방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반이 지났는데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사무실로 내려갔는데 그는 거기서 느긋하게 신문을 읽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문을 부서져라 닫고 나와 버렸다. 그렇게 나오고 나서 기자로서의 경력은 끝이 났구나 생각하며 마구 울었다. 당시 살던 퀠른에 돌아오니 응답전화기에 그가 사과하는 내용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또한, 다시 인터뷰하자는 요청도 했다. 하지만 다시 회사 돈으로 바젤을 갈 수는 없어 전화로 인상에 남는 인터뷰를 했다.

Q. 저널리즘 비평이 미술 시장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

미술 시장은 모노폴이나 프리즈 같은 미술지가 없어도 잘 나간다. 저널리즘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일종의 서비스업이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는 비평도 하고 전시 논평도 쓴다. 하지만 미술 시장의 실세는 컬렉터들이다. 소위 상위 1%의 컬렉터 부자들이 마음먹고 한 작가를 띄우려고 작품을 구매하기 시작하면 다른 컬렉터들도 다 따라온다. 그렇게 해서 스타는 만들어지기도 한다.

Q. 2010년 홀거 립스 씨가 온 후 모노폴 스타일이 변한 것 같다.

주위에서 신중성이 더해졌다고 얘기해 준다. 모노폴 초창기는 실험적이며 다소 자극적인 성향이었다. 이 부분이 신선하다고 평가되기도 하지만, 신중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가령 논쟁의 여지가 크고 대중성이 있는 작가 테렌스 코 등이 자주 등장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후 편집장 자리를 맡게 됐다. 나도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거품이 걷힌 후 무엇인가 내공 있고 질적인 면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었다. 좋은 작가에게 수필을 부탁하고, 꾸준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에게 사진 포트폴리오를 부탁했다. 시각미술계에 비중 있고 현장감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Q. 모노폴은 베를린 시각예술지인가?

이 부분에 대하여 약간 묘한 느낌이 든다. 만약 뮌헨에서 모노폴이 만들어진다면 지금 레이아웃과는 달라 보일 것이다. 우리는 비교적 중도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베를린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노폴을 베를린 잡지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적어도 독일어권에서는 베를린이 현대예술의 중심지라고 생각한다. 아트 바젤 갤러리 선정 심사위원회도 그렇고 사실 베를린 영향력이 크고 활동분야도 넓고 많다. 베를린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당연히 이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노폴에 베를린 정신이 들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Q. 발행 부수가 약 35,000부인데 만족하는가?

물론 발행 부수가 더 많아지면 좋겠지만, 우리는 보그 같은 대중잡지가 아니다. 광고주가 우리한테 오는 이유는 발행 부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계층의 독자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직 종사자나 패션, 건축, 영화, 음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노폴이 쿨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다른 소비자층을 형성하며 다른 종류의 잡지를 원한다.

Q. 맞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요즘 연예인들은 셀러브리티 파티 외에 미술전시회 오프닝에서도 그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그렇다. 대형 클럽보다는 작지만 격이 있는 클럽을 선호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작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사에서 개최하는 파티가 약 12개였다. 이들은 현대미술과 자꾸 엮이고 그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Q. 예술과 종교는 어떤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과거에는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요즘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몰려든다. 예술이 종교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과거에 예술은 종교인, 왕정 그리고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공화정 정치 체제가 들어서면서 서민도 예술을 접하고 소유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컬렉터층이 형성되었고 제프 쿤스의 고가작품도 능력이 된다면 소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교회가 아닌 미술관을 통해 이를 접할 수 있다. 예술이 굳이 종교를 대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요즘에 교회나 성당을 가는 사람 수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미술관은 여전히 방문객의 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독일인은 문화에 언제나 관심이 깊었으며 축구경기장보다는 미술관을 더 많이 간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축구경기장보다는 미술관을 더 자주 간다는 시민이 사는 나라. 아무리 베를린이 빚더미에 앉아 있어도 예술지원에는 인색하지 않은 나라. 또 이를 불평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국민. 이러한 분위기에서 모노폴은 성장하고 이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립스 씨처럼 의욕에 넘쳐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Monopol May(2014)
    Monopol May(2014)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4.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