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다
2003년, 수원시 인구는 100만이 넘었는데 시각예술 관련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행궁동은 세계문화유산의 화성 안 마을 임에도 불구하고, 슬럼화된 채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보상받아 떠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관에서는 그럴만한 예산도 없었고,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지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주민이면서 작가였던 나는 늘 이 두 가지 문제를 작가적 입장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고, 가족들과 협의하여 살고 있던 집을 전시공간으로 바꿔 마을을 변화시킬 대안을 제시해 보기로 결정했다.
젊고 실험적인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많은 젊은 작가들을 행궁동으로 불러들이고 작가, 주민, 관광객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골목을 변화시킨다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마을이 될 수 있으리라는 그림이 그려졌다.
다행스럽게도 근거리에 위치한 작업실에 기거할 수 있는 주거공간이 있어 살림살이를 옮기고 세입자가 이사 가기까지 1년을 기다려 2004년 3월 드디어 작업을 시작했다.
40여 년 전 부모님이 재활용 목재를 사용하여 직접 지은 집이었기에 더욱 의미 있는 곳이었다. 최대한 옛것을 보존하면서 작가들이 전시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지역에 대안공간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작가들에게는 희망이었고 비빌 언덕이었기에 많은 작가들이 신이 나서 힘을 보탰고 직접 힘든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이렇게 오래되어 낡고 허름한 주거공간을 전시공간으로 바꾸는 작업 자체가 ‘대안공간 눈’ 실험 작업의 시작이었고, 행궁동 예술마을 만들기의 시작이라 하겠다.
l 골목 안에 예술을 들여 놓다
골목 안이라 작품을 반입하고 반출하기에 불편했지만, 매년 기획전시를 통해 작가와 관람객을 골목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동안 5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골목 안에 예술을 들여 놓으니 마을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골목을 찾았다. 입구에 자리한 식당 골목집은 전시 오픈 날 저녁이면 늘 북적였다. 불량 청소년이 몰려다니며 담배 피우고, 침 뱉고, 패싸움하던 골목, 사람이 피해 다니고 떠나가던 골목이 일부러 찾아오고 머무는 공간이 되었다.
공간이 부담 없고 특별하니 많은 작가들이 이 공간에서 전시하기를 원했고, 관람하러 온 사람들이 골목 안에 웬 전시 공간? 그것도 아름답고 편안한 쉼터 같은 공간이 있다는 것에 탄성했고 스스로 홍보 대사가 되어 사람들을 데려왔다. 숨어있는 골목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관람객 한 명 한 명이 참 고맙고 소중했다. 단 한 명의 관람객이라도 최선을 다해 안내했고 일일이 메일 주소를 받아 소식을 보냈다. 그때 오셨던 분들이 지금은 거의 후원자가 되어 함께 공간을 지키고 만들어 가고 있다.
l ‘ 대안공간 눈’은 지역 밀착형 문화소통 공간이다
신진작가 발굴 및 전시, 리뷰 지원, 워크숍, 작가와의 만남, 예술체험, 교육 프로그램, 레지던시 프로그램 이외에 '대안공간 눈' 잔디마당, 골목길, 다리 밑, 건물 옥상, 경로당, 주민 센터 등 행궁동 곳곳에서는 다양한 재능기부 공연, 들썩들썩 골목난장, 옥상 콘서트, 골목에서 영화제, 현대미술 쉽게 읽기, 툇마루 야단법석, 공공예술 프로젝트, 찾아가는 미술관, 어르신 솜씨 발굴 프로그램, 커뮤니티 키친 프로그램,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바우처 사업, 사회봉사, 자원 활동가 프로그램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 주민, 관광객이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수시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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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화마을을 탐방하는 외국 대사관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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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유관단체의 탐방
l 행궁동 예술마을 만들기로 지역 활성화,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다
2010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비영리공간 지원을 받으며, '대안공간 눈' 중점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 프로젝트 ‘행궁동 사람들’〉의 결과물로 조성된 행궁동 벽화골목은 파워 블로거들을 통해 전국에 홍보되어 많은 방송, 책자, 일간지 등에 소개되었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가져왔다. 수원 화성, 행궁을 돌아보고 이제는 마을 깊숙이 골목으로 관광객들이 들어온다. 멀리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게는 지역의 볼거리, 먹거리 등 맛집을 소개해 마을에 오래 머물도록 유도했다.
2010년 행궁동 사람들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만든 '눈카페'와 2011년부터 추진한 마을기업 '행궁솜씨'의 역할이 매우 크다. 마을에 머무는 작가들의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고 수익은 마을에 재투자하며 벽화골목의 지속적인 보완과 탐방객의 재탐방을 위한 모자이크 벽화체험 프로그램도 상시 진행하고 있다.
수원시에서 민선 5기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마을만들기, 도시재생 사업과 사회적 경제 활동의 관심이 맞물리면서 대안공간 눈, 마을기업, 벽화골목 탐방은 재래시장, 타지역 사례와 연계한 주요 탐방코스가 되었다. 주민 스스로 마을을 가꾸면서 이웃과 어떻게 소통하는지와 예술을 통한 마을만들기를 위해 시민단체와 행정은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하는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아온 탐방객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이들을 위한 사례발표와 벽화골목 투어를 하고, 지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골목에서 사람의 가치를 배우고 재능을 어떻게 이웃과 나누며 살아갈 것인지 쉽게 체험으로 배우는 인문학 프로그램도 수원시와 함께 연중 진행되고 있다.
2011년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과 한국관광공사 창조관광사업 공모 우수상을 수상한 이후 미술대학뿐 아니라, 건축과, 도시계획과, 조경과, 사회복지과, 관광개발학과 학생들의 탐방이 많아졌고, 석·박사 논문을 쓰는 연구자들을 위한 인터뷰도 일상이 되었다. 최근에는 레슬리 바셋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와 일본 대학 교수들의 방문 등 외국인들의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생태교통 수원 2013' 행사 기간에는 많은 외국 대사와 수원시를 방문한 외국 손님들이 방문하였다.
주민으로서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서 행정에서 해야 할 일들을 제안하고 자문하는 역할도 지속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수원시 차원에서 공방길을 조성하고, 문화재단을 만들고, 미술관을 짓는 등 지역의 문화 인프라가 탄탄해지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l 집과 집을 연결하여 전시, 공연, 소모임 공간, 주거공간, 예술가와 후원인을 위한 방 등 소통, 실험공간으로 확장하다
'대안공간 눈' 뒷집에 사는 부부가 찾아왔다. 오랜 고민 끝에 이사를 결심하고 집을 팔고자 하는데 꼭 ‘대안공간 눈’에서 샀으면 한다고 했다. 그래야 세월이 흘러도 아깝지 않다고… 마을에 희망이 생기고 활성화되자 마을을 떠나려 했던 주민들이 다시 마음을 돌리는 상황에 이 부부는 집안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집을 팔아야만 했다. 최근 행궁동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고, 부동산에 내놓으면 바로 팔릴 수 있는데, 뻔히 가진 것 없는 우리를 찾아와준 것이 고마웠다.
그리고 2003년 ‘대안공간 눈’을 조성하기 위해 고민했던 때를 떠올렸다. 10년이 흘렀다. 나는 작품을 하듯 최선을 다해 일했다. 이웃들이 그 가치를 이해하는 것 같아 참 고마웠다. 방법을 모색하고 확장을 시도했다. 담장을 털고 전시공간부터 만들어 새로운 예술공간을 오픈했다.
앞으로 10년은 확장된 공간을 재생하고 가꾸며 더 많은 볼거리, 느낄거리, 체험거리를 생산하며 먼 훗날 행궁동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마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 중심에 '대안공간 눈'이 문 닫지 않고 잘 버틸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