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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문화예술 후원기업 벽산엔지니어링
김희근 회장과의 인터뷰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 ‘예술이 빛나는 밤에’ 행사에서 예술나무 후원기업상을 받은 벽산엔지니어링 김희근 회장
    ‘예술이 빛나는 밤에’ 행사에서 예술나무 후원기업상을 받은 벽산엔지니어링 김희근 회장

예술은 우리가 심고 가꾸어야 할 귀한 나무와 같다.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꽃을 피우기도 열매를 맺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위원회)는 2012년부터 소중한 문화예술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후원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부 캠페인인 ‘예술나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위원회의 ‘예술이 빛나는 밤에’ 행사에서 벽산엔지니어링은 예술나무 후원기업상을 받았다. 2010년 벽산문화재단을 설립해 문화예술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 높이 평가받은 결과다. 벽산엔지니어링이 문화예술 후원기업으로 손꼽히게 된 뒤에는 바로 소문난 문화예술 애호가이자 후원자인 김희근 회장이 있기 때문이다.

Q. 김희근 회장님은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이사장, 현대미술관회 부회장, 한국국제아트페어 운영위원 등 여러 문화예술 단체에 관여하고 계십니다. 기업보다 문화예술과 관련한 직함이 훨씬 많은 것 같은데요. 문화예술을 이토록 사랑하고 아끼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어릴 적부터 문화예술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오랜 외국 생활로 시야가 많이 넓어진 이후 미술은 컬렉터로서, 음악은 개인 후원자로서 자연스럽게 문화예술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후원과 관련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을 꼽자면 세종솔로이스츠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어렸을 적 친구들 가운데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그중에는 1995년 뉴욕에서 강효 줄리아드 음대 교수와 함께 세종솔로이스츠를 창단한 김태자란 친구가 있었어요. 나중에 세종솔로이스츠 이사장을 맡은 김태자가 당시 중동에서 일하던 내게 후원을 부탁했습니다. 처음엔 세종솔로이스츠에 단순히 후원금을 내다가 나중에 이사회 멤버가 됐습니다. 아무래도 세종솔로이스츠 때문에 클래식 음악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이후 김태자의 권유로 악기를 사서 세종솔로이스츠 단원 등 젊은 연주자들에게 장기 대여해주는 일도 하게 됐습니다.

Q. 문화예술 후원자들을 만나보면 대체로 선호하는 장르가 있는 편인데요. 회장님의 경우 클래식과 미술 모두 대단한 애호가라는 평가를 받고 계십니다. 미술과 관련해선 회화와 조각 등의 컬렉션이 700여 점에 달한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엔 벽산문화재단을 통해 연극 지원까지 하고 계신데요. 좋아하는 장르는 무엇인가요?

제가 문화예술에 대한 특출난 재능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후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주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아진 결과입니다. 게다가 관심도 지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한 가지 장르를 고르기 어렵네요. 음악의 경우 현대음악은 아직도 적응 단계입니다. 그리고 미술은 오래된 유명 작품보다는 현대미술에 더 관심이 가는 편이고요. 연극은 미술이나 음악에 비해 저보다는 벽산문화재단의 역할이 큽니다. 벽산문화재단은 설립 초기부터 설립자나 이사장의 기호만 따르는 문화재단이 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Q. 최근 벽산엔지니어링이 위원회의 예술나무 후원기업상을 수상했습니다. 회장님께서 2010년 벽산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지난해부터 1% 벽산나눔매칭사업을 전사적으로 추진한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봅니다. 회장님 개인적으로는 2011년 한국메세나협의회의 메세나인상, 2013년 몽블랑문화예술후원상을 받으셨는데요. 문화예술 후원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선 내가 문화예술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화예술을 후원함으로써 나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삶이 풍요로워지길 바랍니다. 내가 곧 70살이 되는데, 문화예술 후원이 내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나는 대중에 드러나는 후원 방식을 택하는데요. 물론 남몰래 후원하는 분들도 많고, 그런 후원도 박수 받을 일입니다. 하지만 후원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 사람들에게 나눔을 알리고 그들에게 나눔에 나서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 내가 좀 더 나서고 있습니다. 문화예술 후원에 대한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고, 다양한 상을 사양하지 않고 받는 것도 그런 취지입니다.

Q. 문화예술을 후원할 때 회장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장르마다 각각의 특성이 있듯 후원할 때도 다른 방식을 선택하시나요?

후원하고 싶은 예술가들이 너무 많지만 현실적으로 제한이 있기 때문에 그중 몇 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경우 세종솔로이스츠 등의 연주 단체와 함께 세계 무대로 나갈 만한 10대 연주자들을 지원합니다. 코리안심포니를 비롯해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들을 보면 단원들 대부분이 유학파일 정도로 수준이 높습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연봉이 적기 때문에 다들 학교로 가고 싶어 하는 게 현실이죠. 연주 단체 스스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금은 후원이 절실합니다. 그리고 미술은 실력과 함께 해외 진출 등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작가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요즘 해외 레지던시도 많은 데다 펀드레이징 등 다양한 플랫폼 역할을 하는 국제 아트페어들도 많습니다. 결국 작가들 자신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런 기회를 붙잡기 위해 노력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봐요. 덧붙여 벽산문화재단에서는 7명의 이사들이 각각의 장르를 맡아 사업 계획을 세우고 운영을 합니다. 다양한 분야와 상황에 맡는 후원이야말로 단순히 아티스트 개인이나 작품에 대한 후원을 넘어 그들의 철학까지 후원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Q. 메세나 활동을 하면서 국내외에서 롤모델로 생각하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 김영호 일신방식 회장 등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분들의 메세나 활동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다만 한 분 한 분 모두 각각의 스타일이 있고, 나 역시 나만의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분을 롤모델로 꼽기는 어렵네요.

Q. 한국의 기부 현황을 보면 기업은 4%, 개인은 0.1% 정도가 문화예술 후원에 참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문화예술 후원에 대한 인식이 넓지 않은 편인데요. 특히 개인의 소액기부가 외국에 비해 매우 낮습니다. 문화예술 후원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나 정책 또는 캠페인이 필요할까요?

문화예술 후원을 법으로 제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음악회에 가거나 미술관에 가는 등 문화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티켓 가격에 상관없이 돈을 내고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은 매우 제한적인데요. 경제적 여유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생활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 수준에 비해 아직 문화의 생활화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예술 후원 비율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우선 그 숫자를 따지기 전에 예술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술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높아지면 후원 비율은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입니다. 다만 문화예술 후원의 활성화와 관련해 한 가지 제안하자면 정부나 문화예술 단체가 후원자들을 치하함으로써 후원 동기를 올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후원자들이 생색을 낼 수 있게 해주라는 것이지요.

Q. 회장님은 위원회의 위원을 지내시기도 했습니다. 위원회가 문화예술 후원을 촉진하기 위해 펼치고 있는 예술나무 운동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그리고 문화예술 후원 동기를 올리기 위해 어떻게 후원자들에게 생색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건가요?

전문가들의 보고서에 의하면 개인 후원의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recognition, 즉 생색의 문제라고 합니다. 생색이란 단어가 너무 직접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정받는 걸 원하는 게 인간의 속성입니다. 실제로 해외 문화예술 기관에서는 후원자들이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씁니다. 예를 들어 세종솔로이스츠만 보더라도 후원자들을 상대로 별도의 콘서트를 열어 고마움을 표합니다. 위원회의 예술나무 운동은 기업과 개인이 좀 더 적극적으로 문화예술 후원에 나설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특히 개인의 후원과 관련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은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Q. 위원회가 예술나무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만 기업들 스스로도 문화예술 후원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예술을 경영에 도입해 기업 문화가 바뀌는 등 성과를 거두는 사례가 늘고, 기업의 브랜드 가치 향상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간혹 기업들 중에 메세나를 문화 마케팅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만 마케팅 수단으로 생각하다 보니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를 원하는 경우를 종종 접합니다. 회장님께서는 최근의 이런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업은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의 양(Quantity)을 늘리면서 질(Quantity)도 따져야 합니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점점 기업에 맞는 후원 시스템을 갖춰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기업에서 문화예술 지원을 마케팅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일부에선 그런 기업도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 문화예술 지원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겪는 시행착오라고 생각합니다.

Q. 한국 사회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이 확대되려면 국민의 의식 변화와 함께 예술가와 예술단체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예술가들 가운데 예술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원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진 경우도 있는데, 이런 점이 국민과 예술가 사이를 멀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자신을 예술계의 전도사라고 생각하고 활동하면 후원 문화가 좀 더 빠르게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술가와 국민의 관계는 재능기부 확산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벽산문화재단에서 후원하는 아티스트들의 경우 재능기부에 적극적으로 나서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에게 클래식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넥스트 클래식’엔 연주자들의 참가가 많았습니다. 또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이태원 도깨비 시장 프로젝트 역시 아티스트들의 재능기부 덕분에 어렵지 않게 해냈습니다.  

Q. 회장님은 한국메세나협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으신데요. 앞으로 기업의 문화경영과 문화예술 후원 확대 등을 위해 구상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기업들마다 경영방식이나 조직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제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긴 어렵다고 봅니다. 저희 회사의 경우만 보면 1% 벽산나눔매칭 운동을 펼치고 있는데요. 임직원들의 기부로 조성된 후원금을 문화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회사에는 문화 마일리지 시스템이 있는데, 직원들이 봉사활동을 할 때마다 받은 포인트를 문화생활을 향유할 때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즉 일정 포인트가 쌓이면 뮤지컬이나 연극 등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데요. 그 비용을 회사가 부담하는 것입니다. 회사 직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것은 물론 문화예술을 향유하게 되는 거죠.
 
Q. 끝으로 오랫동안 문화예술을 후원해 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회장님에게 가장 보람되고 의미 있었던 일을 꼽아 주십시오.

그동안 많은 일을 해 왔습니다만 과거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문화예술 후원을 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 ‘예술이 빛나는 밤에’ 수상자들과 함께
    ‘예술이 빛나는 밤에’ 수상자들과 함께

[기사입력 : 2015.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