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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누구나 꿈꾸는 세상을 꿈꾸다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영화 비긴 어게인의 옥상 연주 장면
    영화 〈비긴 어게인〉의 옥상 연주 장면
  • 비틀즈의 애플사 옥상 공연(1969)
    비틀즈의 애플사 옥상 공연(1969)

2014년, 영화 애호가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영화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은 한물간 프로듀서가 우연히 무명 가수의 노래를 듣고 숨은 재능과 가능성을 발견하여 우여곡절 끝에 성공으로 이끈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진부하고 식상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은 누구나 속을 뻔히 들여다볼 수 있는 뼈대에 탱탱한 살을 입히고 붉은 피를 돌려 숨을 쉬고 살아 움직이게 만든 작가와 연출자, 연기자와 스태프들의 뛰어난 능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였다. 영화에 삽입된 음악의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이었기에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을 꼽으라면 대부분이 노래를 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들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만을 고른다면 아마도 뉴욕의 어느 빌딩 옥상에서 펼쳐진 연주가 아닐까 싶다. 녹음에 필요한 스튜디오 사용료를 마련하지 못한 두 주인공은 뉴욕의 시내 곳곳을 다니며 녹음을 하기로 한다. 아이들이 노는 뒷골목에서 시작한 작업은 어느덧 어느 건물의 옥상에서 펼쳐지는 연주와 녹음에 이르러 끝이 난다.
                    
그런데 비틀즈의 발자취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이 장면이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 또한 비틀즈를 추억하고 그들의 정신을 다시 살리고자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뿌듯하고 뭉클했을지도 모른다. 1969년 1월 30일 점심 시간 무렵, 비틀즈 멤버들은 답답한 스튜디오를 벗어나 애플 본사가 있는 빌딩의 옥상으로 올라가 예정에 없던 연주를 시작했고 경찰이 출동해서 멈추기까지 42분 동안 공연 아닌 공연을 계속했다. 공교롭게도 그날 연주한 다섯 곡의 노래들 가운데 마지막 곡은 〈Get Back〉이었지만 그들은 끝내 그들이 있던 그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날의 옥상 공연이 비틀즈 멤버들이 함께 한 마지막 공연이었던 셈이다. 그들의 결별은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무명의 밴드였던 그들을 발굴하여 전대미문의 성공으로 이끌었던 매니저 엡스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구심점을 잃은 비틀즈 멤버들은 서로 다른 각자의 관심사와 그동안 쌓인 서로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더 이상 함께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폴 매카트니는 새로운 매니저를 영입하는 대신 애플사(Apple Corps, Ltd.)를 설립하여 그들의 연주와 음반 작업을 전담시키는 한편, 이 회사를 통해 그들처럼 가능성은 있지만 무명의 젊은 음악가들을 발굴하여 기회를 주고자 생각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비틀즈의 해체를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폴의 생각과 의욕이 너무 앞서는 데다가 회사의 실적이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제대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재능 있는 무명의 음악가를 발굴하여 기회를 주겠다는 애플사의 정신만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살아 있고 어쩌면 그것은 〈비긴 어게인〉과 같은 영화를 통해서 되살아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바로 그 애플사의 옥상에서 펼쳐진 비틀즈의 마지막 연주를 기억하도록 영화의 한 장면을 그렇게 연출했을 것이다. 비틀즈의 열렬한 팬이라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사의 이름과 로고를 그대로 사용하고자 그토록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여서 소송까지 마다하지 않은 까닭 또한 비틀즈의 음악이 아니라 애플사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자신이 젊은 시절 차고에서 먹고 자는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성공에 이르렀기에 그와 같이 남다른 생각과 패기를 가진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지난 런던 올림픽의 폐막식에 폴 매카트니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비틀즈의 팬이라면 누구나 폴 매카트니가 만든 수없이 많은 명곡들 가운데 어떤 곡을 그가 선택했을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나타나 〈헤이 주드(Hey Jude)〉를 불렀을 때, 그토록 오랜만에 세상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무대에 오르는 순간 하필 그 곡을 선택한 까닭이 무엇인지 짐작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흔히 알려진 그대로라면 이 곡의 제목에서 주드(Jude)는 존 레논의 아들 줄리안(Julian)의 애칭이고 이 노래는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줄리안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그러나 사실 폴 매카트니가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했던 주드는 친구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줄리안과 같이 음악의 길을 걷고자 하는 어린 지망생들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애플사를 설립하여 처음 발매한 싱글 앨범에 이 곡을 앞세웠을 것이다. 런던 올림픽의 폐막식 무대를 제안받았을 때 아마도 그는 이 곡 말고 다른 곡은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 대부분은 자유와 평등을 건국이념의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내세운다. 세 번째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데, 프랑스의 경우는 누구나 아는 것처럼 박애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미국의 건국이념은 자유(Liberty)와 평등(Equality), 그리고 기회(Opportunity)이다. 그렇다. 나라를 세운 지 이제 겨우 200년이 조금 넘은 나라가 벌써 오래전부터 세계의 질서를 앞장서서 이끌게 된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의 가슴속에 기회의 땅 미국이라는 믿음, 즉 아메리칸 드림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 끝에 하버드 대학의 재학생은 학생 본인, 혹은 보호자가 미국 시민권자로서 연 소득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성적과 관계없이 누구나 학비를 면제받기에 이르렀다.       

기회는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 폴 매카트니의 〈헤이 주드〉, 비틀즈의 애플, 그리고 영화 〈비긴 어게인〉은 모두 무명 음악가들의 꿈을 응원한다. 누구나 꿈꾸는 세상을 꿈꾼다.   




홍승찬

서울대 음악대학 작곡과 이론전공과, 서울대 대학원 음악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서울대 대학원 서양음악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의전당 공연예술감독, 예술의전당 이사, 대통령실 문화정책자문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 운영위원장, KBS교향악단 운영위원, 국립발레단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 기획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예술경영입문’과 ‘예술경영의 이론과 실제’,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생각의 정거장’, ‘그땐 미처 몰랐던 클래식의 즐거움’, ‘인문학 명강, 서양고전편(공저)’이 있고 지금까지 다수의 논문과 연구용역, 비평 등의 저술활동과 공연기획, 해설, 문화예술 강좌, 방송해설, 컨설팅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아르코로고

[기사입력 : 2015.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