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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휘자는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지휘자는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2014년 일본 프로야구의 최후의 승자를 가리기 위한 일본시리즈의 패권은 퍼시픽 리그의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일본시리즈를 석권하자마자 우승팀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아키야마 고지 감독의 사임 소식이 들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그 까닭이 투병 중인 아내의 병간호 때문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일본 열도는 물론 지구촌 곳곳에 잔잔한 감동이 널리 퍼져 긴 여운을 남겼다. 선수들이 전하는 바로는 일본시리즈를 앞둔 선수단 회식 자리에서도 조금도 힘들거나 흔들리는 내색 없이 “승패의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여러분은 스스로 어필하는 무대가 되길 바란다.”는 말로 선수들을 감싸고 격려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으니 문득 40년 전에 있었던 비슷한 일이 떠오르면서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의 남다른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1984년, LA 필의 음악감독이었던 이탈리아의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역시 아키야마 고지와 같은 이유를 들어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를 돌봐야 하기에 더 이상 음악감독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단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아내가 나를 돌봐주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아내를 돌봐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지휘자로서 이제 막 정상에 올라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그의 이러한 결정은 당시에도 충격이었지만 그보다 더 뭉클한 감동은 그로부터 11년이 더 지난 1995년, 부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밀라노 근교에 살면서 간병에 전념했다는 사실이었다. LA 필의 감독이었던 당시 줄리니가 부지휘자로 발탁하여 기회를 주고 길을 열어주었던 이가 바로 정명훈이었고 이후로도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정명훈은 중요한 순간마다 그를 찾아 의견을 구했다고 한다.   
줄리니 덕에 빛을 본 지휘자라면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도 빼놓을 수가 없다. 1956년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와 케루비니의 〈레퀴엠〉을 연주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줄리니가 갑작스런 병을 얻어 지휘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이팅크가 그를 대신하여 지휘대에 올랐고 그때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그다음 해에는 네덜란드 방송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었고, 1961년 마침내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발탁될 수 있었다. 이후 그가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는 동안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도 흔들리지 않는 성장을 거듭하였고 그 결과 그가 물러나고 한참이 지난 2008년 드디어 세계적인 음악잡지 그라모폰이 세계적인 음악평론가들의 투표로 선정한 “세계 최고 교향악단 톱20”에서 베를린 필과 빈 필을 젖히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하였고 지금까지도 그 위치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이렇듯 그가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오늘이 있기까지 기여를 한 여러 가지 역할을 살펴보면 당장은 음악적인 능력에서의 공헌이 두드러지겠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못지않게 단원들을 존중하고 그들에 대한 책임을 다한 결과였음을 깨닫게 된다. 한때 오케스트라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단원들의 수를 줄여 그 위기를 극복하려 했을 때 하이팅크는 그들보다 훨씬 많은 보수를 받는 자신부터 먼저 해고하라며 단호하게 맞서서 단원들을 지켜냈다.
카라얀이 죽고 그 뒤를 이어 누가 베를린 필에 입성하게 될지를 두고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수많은 지휘자들이 거론되었다. 한다하는 지휘자들의 이름이 다 오르내리다 결국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선택되었지만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베를린 필 단원들이 뜻을 모아 그들의 새로운 리더로 영입하려 했던 지휘자는 다름 아닌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지휘자라면 누구도 뿌리치지 못할 이 달콤한 제안을 하이팅크는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것이다. 자신은 이미 나이가 너무 많으니 더 젊고 의욕적인 지휘자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까지 덧붙였다고 한다. 이 사실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아니지만 당시 그 과정에 참여했던 베를린 필 단원에게 직접 들은 것이고 그 자리에 다른 단원들도 함께 있었으니 아마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음악적인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그렇게 뜻을 모았겠지만 무엇보다 신뢰와 의지할 만한 인품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리라 짐작해 본다.

이제 얼마 후면 베를린 필은 지금의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을 보내고 새로운 수장을 맞이해야 한다. 몇몇 단원들의 말에 따르면 래틀은 소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언제나 방문을 열어두고 있어 누구라도 그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새로운 상임지휘자로 거론되는 인물 가운데 다니엘 바렌보임에게 자꾸 마음이 기운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이스라엘에서 자란 그는 중동전쟁이 한참일 때 비행기로 날아가 포화 속에서의 연주도 마다하지 않았을 만큼 조국을 사랑했다. 그러나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조국에 맞서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유태인을 학살했던 히틀러가 좋아했기에 이스라엘에서는 연주가 금지되었던 바그너의 음악을 온갖 반대와 협박을 무릅쓰고 처음으로 조국 땅에서 연주한 것도 그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부당한 박해를 가하자 그에 대한 저항으로 팔레스타인 국적을 취득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은 두 나라뿐만 아니라 중동 모든 나라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중동 여러 나라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이끌어가고 있다.

아키야마 고지 감독의 사임 소식에 이어서 또 한 사람의 일본 야구인의 소식이 마음을 움직인다. 지난 시즌 서른여덟이라는 나이에 뉴욕 양키즈의 선발 투수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했던 구로다 히로키가 느닷없이 친정팀인 히로시마 카프스로 돌아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양키즈는 오랜 시간 히로키를 잡아두려고 설득을 했고 샌디에고 파드레즈는 198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36억 원을 제시한 히로시마 카프스와 계약했다. 그런데 198억 원을 마다하고 36억 원을 선택한 까닭이 정말 흐뭇하고 뭉클하다. 2007년 더 큰 가능성에 도전하기 위해 그가 줄곧 몸담았던 히로시마 카프스를 떠나 LA 다저스로 갈 때 그는 그를 응원했던 팬들에게 “힘이 남아 있을 때 히로시마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와 음악, 야구와 오케스트라, 같은 듯 같지 않고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세계이다. 같다면 그게 무엇이든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뜻을 모으고 있는 힘을 다하는 일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줌으로써 마치 그것이 스스로의 일인 듯 마음을 움직여 사로잡고 흔드는 일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깊숙이 와 닿아 감동이 되고 위로가 되려면 이끄는 사람부터 그러고자 하는 마음을 한결같고 굳게 지켜서 그를 따르는 다른 이들의 믿음을 얻어 모두가 하나가 될 때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그것이 전달되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세상을 움직이는 이치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데 단지 그것을 마음에 새겨 지키려는 이가 없어 이리도 복잡하고 혼탁한 것이다.




홍승찬

서울대 음악대학 작곡과 이론전공과, 서울대 대학원 음악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서울대 대학원 서양음악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의전당 공연예술감독, 예술의전당 이사, 대통령실 문화정책자문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 운영위원장, KBS교향악단 운영위원, 국립발레단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 기획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예술경영입문’과 ‘예술경영의 이론과 실제’,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생각의 정거장’, ‘그땐 미처 몰랐던 클래식의 즐거움’, ‘인문학 명강, 서양고전편(공저)’이 있고 지금까지 다수의 논문과 연구용역, 비평 등의 저술활동과 공연기획, 해설, 문화예술 강좌, 방송해설, 컨설팅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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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