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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일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명예로운 말년을 보내다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 1935~)는 일본 클래식의 자존심이다. 그는 인도의 주빈 메타(79), 한국의 정명훈(62)과 함께 아시아 출신 지휘자 가운데 세계적 반열에 오른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미국의 명문악단인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1973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9년간 음악감독을 맡았으며 2002~2010년 세계 최정상급 오페라 하우스인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 수석지휘자로 활약했다. 다만 2005년 하반기부터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더니 2006년 대상포진과 2010년 식도암 등의 질환으로 종종 휴식기를 가져야 했다.
빈 슈타츠오퍼에서 물러난 그는 완전히 일본으로 돌아와 자신의 마지막 음악 여정을 불태우고 있다. 2000년 설립한 오자와 세이지 음악 아카데미에 좀 더 힘을 기울이는 한편 2013년부터는 이바라키현 미토시에 있는 미토예술관의 2대 관장으로 취임했다. 또한 올해 8월엔 자신의 이름을 딴 음악제인 ‘오자와 세이지 마츠모토 페스티벌’을 시작할 예정이다.
최근 그의 건강에 그다지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지만 일본에선 고령인 그가 언제 다시 포디움에서 내려올지 걱정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신문과 방송, 음악잡지에선 지난해부터 앞다퉈 그의 음악인생과 지휘법, 레코딩 등 전반을 조명하고 있다. 또 오자와 자신이 쓴 자서전과 음악관계자가 그에 대해 쓴 평전도 잇따라 나왔다.

l 세계에서 활약하고 돌아온 자랑스러운 거장

오자와에 대한 일본인의 사랑은 거의 절대적이다. 서구의 전유물로 간주되던 클래식계에서 처음으로 주류 무대에 서서 일본의 자존심을 드높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노쇠한 몸을 이끌고 고국으로 돌아왔으니 그를 바라보는 마음은 존경심과 애틋함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자와는 어린 시절 일찌감치 미국 유학을 떠났던 주빈 메타나 정명훈과 달리 일본에서 대학까지 마쳤다. 치과의사 아버지를 둔 그는 10살 때 처음으로 접한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다. 가족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그는 중학교 때 럭비를 하다 큰 부상을 입고 포기하였으나 고등학교 입학 후 사이토 히데오(齋藤秀雄)의 지휘교실에 다니면서 지휘자를 목표로 삼게 된다.
첼리스트 겸 지휘자인 사이토는 교육자로서 오자와를 비롯해 일본의 지휘자들을 다수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만 해도 지휘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던 사람은 사이토가 거의 유일했기 때문에 오자와는 사이토가 교편을 잡고 있던 2년제 전문대학인 도호학원단기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사이토의 추천으로 군마 교향악단에서 지휘봉을 잡기도 했던 그는 좀 더 지휘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선택했다.
24살이던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그 해 ‘젊은 지휘자의 등용문’ 프랑스 브장송 지휘 콩쿠르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그를 눈여겨본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샤를 뮌슈의 초청으로 버크셔 음악센터(지금의 탱글우드 음악센터)에서 지휘를 배웠다. 이듬해 가장 뛰어난 지휘 전공자에게 주는 쿠세비츠키상을 수상한 그는 부상으로 독일 베를린필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카라얀을 사사하던 그는 레너드 번스타인에게 인정받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를 맡게 됐다. 그리고 1962년 1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를 지휘하며 미국에 데뷔했다. 이후 시카고의 라비니아 페스티벌,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컴퍼니의 음악감독을 역임하였고 1973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됐다. 약 30년에 걸친 긴 인연의 시작이다. 1994년 새로 지어진 탱글우드 홀은 그의 이름을 따 ‘세이지 오자와 홀’로 명명됐다. 사실 이 홀을 지을 때 소니, NEC 등 일본 기업들이 건축비의 대부분을 부담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그는 활동 기반을 미국에 뒀지만 런던의 로열오페라하우스, 밀라노 스칼라극장, 빈 슈타츠오퍼 등 유럽의 주요 오페라하우스와 베를린필, 빈필, 런던 심포니 등 메이저 오케스트라에서도 자주 지휘봉을 잡았다. 지휘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그가 클래식계의 인기 있는 지휘자가 된 데는 공연마다 객석을 매진시키는 ‘재패니즈 머니 파워’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2002년 빈 슈타츠오퍼의 예술감독 부임은 결과적으로 그에게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오페라 지휘가 그리 탁월하지 않았던 데다 독일어와 이탈리아어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는 이곳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2005년 말부터 건강이 악화되면서 포디움 위에 서지 못했던 시간이 꽤 길었다. 결국 2007년 그는 2009-2010시즌을 끝으로 빈 슈타츠오퍼에서 퇴임한다고 발표했는데, 2010년 1월 식도암이 발견되면서 퇴임을 앞당겨야 했다. 치료를 위해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사실상 세계 클래식 무대에서 은퇴했다.

한국보다 지휘자 층이 두터운 일본의 경우 이탈리아 만토바 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인 요시다 히로후미(吉田裕史)나, 2009년 브장송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내년 몬테카를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에 취임하는 야마다 가즈키(山田和樹) 등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지휘자가 꽤 있긴 하지만 아직 오자와에 필적하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따라서 오자와의 은퇴는 일본으로서도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l 오자와 세이지 페스티벌 8월 출범

그는 미국에 기반을 둔 채 유럽에서 자주 지휘를 했지만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연주회를 가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젊은 시절 그와 NHK 교향악단과의 불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뉴욕필 부지휘자였던 1961년 NHK 교향악단과 방송녹음을 한 그는 이듬해 객원지휘자로 계약했다. 하지만 그와 NHK 교향악단 단원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교향악단은 그의 불성실한 자세를 비난했고 그는 서로의 스타일에 대한 몰이해를 지적했다. 이것은 당시 사회적 문제로도 비화됐다. 음악계 관계자들의 주선으로 양측 사이에 화해의 장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가 다시 NHK 교향악단을 지휘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는 무려 32년이 지난 1995년 NHK 교향악단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그가 일본 음악계에 다시 돌아오게 된 계기는 1984년 스승인 사이토 히데오 서거 10주년을 맞아 친구인 아키야마 가즈요시(秋山和慶) 등 100여 명의 동문들과 함께 기념 콘서트를 열면서부터다. 이 콘서트 이후 사이토 기념 오케스트라로 만들어졌고, 1992년부터 매년 8~9월 나가노현 마츠모토시에서 사이토 기념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그는 페스티벌 발족 때부터 예술감독을 맡고 있으며, 페스티벌 기간에는 대개 오페라 1편과 10편 안팎의 콘서트가 열린다. 특히 청소년들이 클래식과 오페라를 좀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은 매년 빠지지 않는다.
그가 일본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오페라를 통해 젊은 음악가들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2000년 ‘오자와 세이지 음악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후배 음악가들에게 자신의 음악 경험을 전달하고 있다. 그는 은사인 카라얀이 이야기했던 “교향곡과 오페라는 음악이라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것”이라는 말을 지론으로 삼았는데, 일본이 서구에 비해 오페라의 전통이 약하기 때문에 그동안 오페라에 주력해 왔다. 일본의 반도체 회사인 롬(ROHM)의 후원 및 지역 공공극장의 협력을 얻어 2000년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시작으로 매년 봄 오페라 1편을 제작하고 관련 콘서트를 열고 있다. 특히 올해는 지난 3월 교토에서 초등학생 2,000명을 대상으로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 행사를 개최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2005년부터 도쿄에서 해외 주요 오페라하우스와 공동제작한 오페라와 콘서트를 즐길 수는 ‘도쿄 오페라의 숲’ 페스티벌도 열었다. 당시 그가 빈 슈타츠오퍼의 예술감독이었던 만큼 연출가나 성악가 등 참가하는 아티스트의 면면이 화려했지만 재정적으로 매년 이런 축제를 여는 것이 어려웠던 탓에 이듬해부터 규모가 축소됐다. 그리고 그가 예술감독에서 물러난 2009년부터는 ‘도쿄 봄 음악제-도쿄 오페라의 숲’으로 축제 이름이 바뀌면서 주로 콘서트 위주로 열리고 있고, 오페라 역시 무대 공연이 아니라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열리고 있다. 처음엔 NHK 교향악단이 핵심 오케스트라로 활약했지만 최근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바뀌었다.
한편 마츠모토시에서 열리는 사이토 기념 페스티벌이 올해부터 그의 이름을 딴 ‘오자와 세이지 마츠모토 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 사실 이 페스티벌의 경우 예술감독인 그의 네트워크에 의지해 세계적인 지휘자, 연주자, 성악가, 연출가 등을 초청해 왔다. 그가 없이는 축제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생존해 있는 동안 이름을 바꾸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8월 9일부터 9월 15일까지 열리는 올해 축제의 프로그램 구성은 예년과 비슷하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수석지휘자이자 스위스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인 파비오 루이지, 미국 애틀랜타 심포니 상임지휘자인 로버트 스파노가 사이토 기념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예정이다. 오자와는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베아트리스와 베네딕트’(연출 콤 드 베르시즈)를 지휘한다. 이외에 5편의 실내악 콘서트가 있으며 금관 앙상블 워크숍도 열린다.
올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꼽자면 바로 9월 1일 80세 생일을 맞는 오자와를 위해 ‘마에스트로 오자와 80세 생일 축하 콘서트’가 열린다는 것이다. 참가하는 아티스트가 그동안 비밀에 부쳐지다가 최근 공개됐는데, 그 면면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 독일 가곡의 명장으로 불리는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등 클래식계의 거장들은 물론이고 진지한 가사와 어쿠스틱 기타로 대표되는 70년대 감성적인 싱어송라이터의 대명사 제임스 테일러, 1990년대 모던재즈의 대표주자인 마커스 트리오도 참가한다.

일본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오자와의 노년은 어떤 클래식 지휘자보다 명예롭고 화려하다.


  • 자서전 『끝나지 않은 음악』
    자서전 『끝나지 않은 음악』
  • 지난해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하는 모습 ©사이토 기념 오케스트라
    지난해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하는 모습 ©사이토 기념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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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