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호보기
  • 구독신청
  • 구독자의견
  • 아르코발간자료
  • 인쇄
  • 맨위로 이동

포커스

세계 축제 속의 우리 음악
전통의 보존과 진화의 현장

신현식 (앙상블시나위 아쟁 연주자)
  • 앙상블시나위 공연 모습
  • Kroke의 무대 인사 모습




유럽방송연맹(EBU)이 주최하는 ‘유로라디오 포크 페스티벌(Euroradio Folk Festival)’은 1980년에 시작되어 해마다 유럽 각국에서 돌아가며 열린다. 이 축제의 공연 실황은 유럽 전역에 1년 동안 라디오 방송으로 중계되는데, 유럽방송연맹의 준회원인 KBS 1FM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여 올해 앙상블시나위가 참가하게 되었다.  
올해 축제는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에서 ‘에트노크라쿠프 페스티벌(Etnokrakow Festival)’이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폴란드의 크로스로즈 페스티벌(Crossroads Festival)과 합쳐져서 더욱 큰 규모로 열린 것이다.
 
l 살아있는 역사, 크라쿠프

크라쿠프는 폴란드의 역사가 잘 보존되어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수도 바르샤바가 전쟁 때 폭격의 피해를 입은 데 비해 이곳은 옛 중심지답게 왕궁과 성당 등 도시 전체가 그대로 있었다. 한국에서는 직항이 없어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야만 한다. 자정이 다 되어 도착한 크라쿠프의 첫인상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유난히 가까웠던 커다랗고 하얀 달, 높은 성탑을 두르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 오래된 건물과 거리는 깔끔하여 시간을 거슬러 중세도시로 온 것만 같았다.

l Etnokrakow Day 1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비스와 강 왼쪽으로는 바벨성이 위엄을 자랑하고 강 건너에는 우리가 공연하게 될 ICE Krakow congress center가 자리 잡고 있었다. ICE는 모던한 양식의 건물로 바벨 언덕의 건축 자재를 암시하는 세라믹 타일과 유리 등이 모자이크 형태로 되어 있어 축제를 상징하는 이미지와도 잘 어울렸다. 드디어 Etnokrakow 개막식이 이곳 오디토리움홀에서 시작되었다. 첫 번째 순서로는 ‘Kroke’라는 폴란드 출신 팀의 축하 공연이 있었다. 1992년 결성된 ‘Kroke’ 팀은 크라쿠프 음악 학교 출신들로 동유럽에 뿌리를 둔 유대인들의 집시음악이자 춤곡인 클레즈머(Klezmer)를 바탕으로 하는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 Kroke는 Yiddish 말로 크라쿠프를 뜻한다고 한다. ― 메인 비올리스트인 토마쉬 쿠쿠르바(Tomasz Kukurba)는 놀라운 기교를 자랑하며 스스로 축제 그 자체가 되어 춤추듯 노래하며 연주했다. 그는 휘슬, 타악 등 다재다능함을 보였는데 반도네온의 예쥐 바보우(Jerzy Bowol), 베이스의 토마쉬 라토(Tomasz Lato)와 함께 음악의 균형을 맞추며 함께 어울려 즐거운 에너지를 뿜어내었다. 멤버들은 전부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처럼 보였으나 음악만은 젊음과 열정이 넘쳤다. 클레즈머를 기본으로 발칸, 중앙아시아 음악까지도 그들의 색깔을 확장하며 꾸준히 창작 활동해 온 이들은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도 팬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폴란드 민속음악 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클레즈머라는 것을 알고는 유럽에서도 가장 많은 유대인이 학살당한 이곳 폴란드의 슬픈 역사 속에 살아남은 음악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미어졌다.

개막식의 마지막 공연은 인도에서 온 팀, 자키르 후세인(Zakir Hussain)과 라케시 차우라샤(Rakesh Chaurasia)의 듀오 연주였다. 자키르 후세인! 앙상블시나위 팀이 평소에도 가장 만나보고 싶어 했던 아티스트였다. 세계적인 명성답게 타블라를 연주하는 모습 속에서 여유와 기교가 충만했다. 조율을 해가며 공명을 찾아가는 과정조차 음악 안에서 녹여내고 예민하게 악기를 다루는 솜씨는 입이 쩍 벌어지게 했다. 라케시의 반스리 연주도 긴 시간의 공간을 꽉 채우는 호흡으로 타블라와 멋진 듀오를 이루었다. 즉흥으로 점점 몰아가는 연주는 한국음악의 시나위나 산조의 흐름과 닮았으면서도 더 세분화되어있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몰입하게 했다. 이들의 음악 속에서 갠지스 강가의 풍경과 인도 특유의 향 내음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듯했다. 반스리 연주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가 하면 타블라 소리가 정신을 혼미하게 쏙 빼놓다가도 어느새 두 소리가 합쳐져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관객을 다 흡수하는 것만 같았다.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했고 공연장은 그 뜨거움으로 가득 찼다. 공연이 다 끝난 후에 무대 뒤에서 만나본 자키르 후세인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람들을 대하는 여유를 보였다. 그의 따뜻한 인품은 우리 모두가 닮고 싶은 아티스트의 모습이었고 연주의 감동보다 더 진한 여운을 남겼다.

l Etnokrakow Day 2

앙상블시나위 팀은 이튿날 저녁 7시에 같은 극장의 Theatre Hall에서 첫 번째 공연을 하였다. 폴란드 사람들은 애국심과 신앙심이 깊고 전통과 축제를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침략에 의해 나라를 잃은 설움이라던가 군사정부로부터 자유를 쟁취하는 등 역사적으로 한국과 매우 닮은 점이 많아 우리 정서와도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일 무대에서는 네 팀이 연달아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음향을 점검하는 시간이 여유치 않아 전날 숙소에서 미리 리허설을 하여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공연은 손님굿으로 시작하여 넋을 위로하는 의미의 시나위인 〈월식〉과 〈달빛유희〉, 〈영혼을 위한 카덴자〉를 연이어 연주하였고 전쟁과 이별의 아픔을 담은 노래 〈부용산〉과 축원하는 의미의 〈동해 랩소디〉로 공연을 마쳤다. 라디오 방송 시간에 맞게 진행해야 하는 제약이 있어서 곡 설명 대신에 영문 프로그램을 인쇄해서 가져가 배치해 두었다. 공연에 대한 호응은 매우 좋았으나 야외 공연장과 메인 장소인 극장이 떨어져 있어서인지 관객이 일반인보다는 기획자들이 많았다. 다음날 우리 공연을 본 사람들이 아름다운 공연을 보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 공연 실황은 KBS 1FM ‘세상의 모든 음악’을 통해 오는 추석에 방송될 예정이다.


  • 폴란드 크라쿠프
  • ICE Krakow congress center
  • 야외무대 모습


l 전통의 보존과 진화의 현장

야외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현지 팀들은 관객들과 즐기면서 밝은 음악 위주로 연주했으며, 유럽 민속음악 팀답게 대부분 fiddle 악기(바이올린, 비올라)를 중심으로 반도네온 혹은 아코디언이 화성을 담당하는 구성을 기본으로 했다. 연주 주법에서 민속적인 색채가 드러나는 시김새가 쓰인다던가 사운드의 확장을 위해 드럼 베이스가 추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유럽은 축제 자체가 전통이고, 민족마다 성향이 다르며 중앙아시아와 유대인들의 전통, 집시문화 등 여러 문화가 깊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처음 참가한 TAYF는 (‘spectrum’이라는 뜻의 터키어) 터키 민속음악 팀으로 중앙아시아 전통음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악기는 대부분 민속악기였는데 메인 보컬이 연주하는 baglama라는 악기는 비파 형태에 고음, 중음, 저음의 세 바디가 함께 붙어있어 아마도 직접 개량한 듯했다. 싯타르 비슷하게 생긴 tar, 해금을 닮은 kabak kemane 등 인도 악기 혹은 우리 악기와 비슷한 형태였다. 다만 폭넓은 다이나믹이나 농현을 통한 미세한 음정의 표현 등은 우리 음악에서 더 발달한 듯하다. 그 외에도 아이리쉬, 아프리칸, 몽골리안 등 멀티컬쳐 콜라보레이션 형태로 구성된 팀들도 있어 다양한 색깔로 음악적 표현을 확장해가는 모습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세계 음악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음악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 모든 민속음악 혹은 전통음악을 하고 있는 연주자들의 고민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전통이라는 흐름 속에 존재해 온 아름다움의 본질을 지키되 이 시대와 소통하고 노래할 수 있을지. 또한 그 열정은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아닐까. 그러나 대중문화와 달리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가지고 쉽게 다가서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는 딜레마에 부딪힌다. 이번 축제에서는 고유의 전통 색깔을 보존하면서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재해석, 재창조해 온 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좋은 경험이 되었다.

l 축제로서의 민속음악

유럽 민속음악에는 같은 악기에서 파생되는 클래식 음악과는 다른 자유분방함이 보인다. 함께 춤추고 즐기는 모습 속에서 사람들 속에 내재된 해방의 기쁨을 음악을 통해 분출하고 싶어 하고 단순한 감상은 원치 않는 듯했다. 이들은 이미 클래식 음악 역사를 주도해오며 격식 있고 수준 높은 감상 문화에 자연스럽게 젖어 있는 반면, 민속음악에 대한 인식은 제한된 공간에서의 만남보다 실제 삶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어울리는 장이 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극장으로 일부러 찾아오는 관객으로서의 선택보다는 야외무대나 길거리, 펍 등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쪽을 택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이것은 축제 자체의 공연 홍보나 티켓 판매와는 다른 이곳 사람들의 문화와 정서의 결과로 보여진다. 어쩌면 늘 광장 한 켠에 악기를 깔고 사람들이 듣든 말든 홀로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이 제일 풍요로웠는지도 모른다.

이제 축제 참가의 성공 여부는 유럽 전역에 방송될 공연 실황을 듣는 청취자들의 몫에 맡겨두는 일만 남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이곳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창작에 몰두하여 또 다른 무대를 준비하는 설레임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관념적으로 ‘우리 것은 이렇다’고 내세우는 것보다 자키르 후세인처럼 청중의 마음을 휩쓸고도 선한 인품을 지닌 여유가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다.


  • 크라쿠프 시내에서 본 길거리 연주자들


[기사입력 : 2015.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