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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 공공미술 시범사업 ‘지역재생+예술’

[성북] 미아리(彌阿里) 고개
역사·장소·일상 그리고 예술

정기황 (건축가, 사단법인 문화도시연구소장)
  • 미아고가도로 현황 사진(왼쪽부터 성신여대입구역 방향, 동선동 방향, 미아리 방향 모습)
    미아 고가도로 현황 사진(왼쪽부터 성신여대입구역 방향, 동선동 방향, 미아리 방향 모습)


대지에 발을 굳건히 디딜 수 있는 사람만이 설 수 있고, 걸을 수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이다. 하지만 대지라는 사실과 실제에 기초한 합리성이 사라진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부유한다. 대지에서 부유된 이들로 하여금 대지를 느끼게(Aisthesis)1) 하는 것이 예술이 해야 할 일은 아닐까.

l ‘미아리 고개’의 이야기

‘미아리 고개’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지명이다. 하지만 누구도 현재의 ‘미아리 고개’를 상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아리 고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로, 자연의 고개에서 인공의 고가도로로 변했다. 이런 도시화 과정은 오로지 ‘경제적 합리성2)’을 바탕으로 한 개발로 이루어졌다. 고가도로는 최대한 공사하기 편한 공법으로 빠르게 만들어지고, 물류의 이동과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최대한 자동차가 빠르고 많이 지나갈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이렇듯 ‘경제적 합리성’에 기초한 개발에 사람과 마을 그리고 경관 따위는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고가도로는 이곳을 빠르게 지나치는 지역으로 만들어 놓았고, 하나였던 마을을 둘로 갈라놓았다. 또한 고가도로 하부는 음침하고, 걷기 힘들고, 위험한 길이 되었다. 이렇게 수십 년이 흘러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냈으니, 어쩌면 우리가 ‘미아리 고개’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 마을 사람들에게도 ‘미아리 고개’ 또는 ‘미아 고가도로’는 음침한 우범지대, 콘크리트 덩어리, 비워진 곳, 버려진 공간으로 전락해버린 곳일 뿐이다. ‘미아리 고개’는 급격한 산업화·자본주의화·도시화를 겪은 서울의 모습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의 역사·장소·일상의 의미적 가치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잠식당해버렸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이곳에 공공성이나 미적가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논리에 빠져 사람을 버렸고, 마을을 버렸고, 도시를 버렸다. 이 기획은 이곳에서 예술은 ‘무엇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현실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l ‘미아 고가도로’와 ‘장소 특정적 예술(Site-specific Art)’의 현재로의 소환

‘미아리 고개의 역사’와 ‘미아 고가도로의 공간’ 그리고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이곳의 ‘장소’로서의 가능성을 보고, 듣고, 느꼈다. 그렇다면 주민들로 하여금 대지에 발을 디딜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우리 사회를 유행처럼 스쳐 가고 있는 또는 스쳐 간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찾아보려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자본주의에 포섭되어 또다시 상품화되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역사·장소·일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 것 또한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장소 특정적 예술’의 흐름은 더욱 그렇다. ‘장소 특정적 예술3)’은 일상의 공간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소비자와 생산자(예술가)를 가깝게 연결해주었고, 우리의 일상을 재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에게 예술가(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는 여전히 고지식한 벽이 존재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이 철 지난 사조로 폐기되어야 하는 대상이기보다는 우리 현실에 맞는 의미론적이고, 맥락적인 고민이 필요할 때다. 미인도 프로젝트는 이런 고민을 통해 예술이 ‘심미화된 공간의 조성’ 또는 ‘미적인 상품 생산’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과의 ‘하나 됨4)’을 통해 서로가 자극을 주고받는 실천적이고,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로 진행하려 한다.

l ‘미인도(彌人道) 프로젝트’, 일상을 위한 예술을!

‘미인도 프로젝트5)’의 우선적인 목표는 미아 고가도로 주변을 어둡고, 위험한 곳에서 밝고, 재미있는 곳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먼저 고가도로 하부로 단절된 마을과 마을을 작품화된 굴다리로 연결하여 커뮤니티 회복에 기여하고, 예술과 쉽게 만나는 장이 되도록 한다. 비워진 하부공간에는 기존에 있던 환경미화, 마을방범 시설을 예술화하여 일상에 재미와 편의를 부여하고, 공연장·갤러리·연습실 등의 주민과 함께하는 예술적 놀이공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로 하여금 상주하는 사람과 이동하는 사람이 많아짐으로써 주변 골목길이 밝고, 안전한 생활로로 탈바꿈할 것이다. 더불어 지속적인 지역 프로젝트로 자리 잡기 위해 주변 지역의 아리랑아트홀·동선동주민센터 등의 물리적 자원과 시각장애인단체·점집·대학교 등의 인문적 자원 그리고 예술단체·예술가·주민 등의 인적 자원이 어우러지는 즉, 하드웨어·소프트웨어·휴먼웨어의 적극적인 연계 작업으로 작품과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우리가 대지를 지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현실에 발을 딛는 첫걸음이다. 그들로 하여금 공간을 느끼게 하는 것이 예술이 해야 할 일이다. 즉, ‘미인도 프로젝트’는 버려진 미아 고가도로에 숨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일상6)의 공간을 주민들과 함께 예술화하는 과정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 미인도 프로젝트 개념 다이어그램
    미인도 프로젝트 개념 다이어그램



1) 우리가 주로 ‘미(美)’ 또는 ‘미학’으로 번역하거나 사용하는 ‘Aesthetic’의 어원인 ‘aisthesis’는 대상을 지각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의 근원이 대상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현실에 대한 지각과 이에 따르는 실천이 가능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예술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2) “우리나라의 경우 유일하게 공공영역에서 소통되는 공유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경제논리에 바탕을 둔 기능적 합리성일 것이다. 여기서는 경제지표와 통계 숫자가 공통의 언어다. 반면, 공공영역의 합의된 미적 규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소통되는 미적 가치가 있다고 하면 새로움과 특이함이라고나 할까.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새로움이나 최신유행을 반영하는 듯한 디자인이 관심을 받는다. 이것은 18세기 미학적 개념으로 보면 현대의 서브라임이다. 그러나 이것은 공유된 미적 규범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이미지의 끝없는 소비라는 자본주의적 상품시장경제 논리의 반영에 다름 아니다.” 이상헌, 「공공영역과 공공건축, 공공디자인」, 『건축과 사회 통권11호』, 새건축사협의회, 2008, 62-63쪽.
3)“〈행동하는 문화〉는 이전의 공공미술 모델들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카고 시 전체를 무대로 삼아, “미술 작업의 창작에서 다양한 공동체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초점을 맞췄다.” -중략- “〈행동하는 문화〉는 도시 지향적인 조각 전시 장르 안에서 새로운 표현 양식을 정립했다. 그것은 공공의 참여와 상호작용의 영역, 행동하는 사회 세력으로서의 미술가의 역할을 시험하고, 미술가가 주도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작품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하며, 단지 잠시 동안 보는 데 그치는 관람 중심의 작품들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하는 프로젝트를 지향했다.”“ 권미원, 김인규·우정아·이영옥 역, 「4장. 장소로부터 공동체로-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장소 특정적 미술』, 현실문화, 2013, 160쪽.
4) ‘하나 됨’은 주민들의 생산과 소비에의 주체적 참여를 통한 공동체성의 회복과 실천적 공간으로서 장소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으로서 예술가와 주민, 주민과 주민, 주민과 마을을 연계하는 것을 말한다.
5) 미인도는 미아리 고개의 ‘彌’, 사람을 뜻하는 ‘人’, 길을 뜻하는 ‘道’의 합성어이다. ‘미’는 역사, 예술, 프로그램, 지역성 등의 소프트웨어를, ‘인’은 주민, 예술가, 지역예술단체 등의 휴먼웨어를, ‘도’는 고가도로, 건물, 도로, 골목길 등의 하드웨어를 의미하고, 이것들이 조화되어 신윤복의 그림 ‘미인도’처럼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프로젝트 명이다.
6) “만약 예술의 종말이 상품이 되는 것이라면, 상품의 종말은 예술이 되는 것이다. 일상적인 소비생활에는 쓸모없고 사용 불가능하게 된 상품이나 친숙한 물품이 예술에게는 한 역사를 나타내는 물건이자 ‘무관심한 쾌감’의 대상으로서 유용한 것이 된다. 그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심미화된다. ‘이질적으로 감각적인 것’은 도처에 있다. 일상생활의 산문은 거대한, 환상적인 시가 된다. 어떤 대상이든 경계선을 넘어서 미감적 경험의 영역에서 다시 거주할 수 있다.”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미학 혁명과 그 결과-자율성과 타율성의 서사 만들기」, 『뉴레프트리뷰』, 도서출판 길, 2009, 4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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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