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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 공공미술 시범사업 ‘지역재생+예술’

[종로] 창신동 Re야기

임옥상 (미술가, 임옥상미술연구소 대표)
  • 창신동 전경
    창신동 전경


   “무엇인가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멈추자 사람이 보였다.”
   일본의 커뮤니티 아티스트 야마자키 료의 저서에 언급된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만들지 않는 디자인’이라!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 나의 ‘업(業)’이 아닌가.
   나는 의식이 전복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느낀 이 문장의 울림에서 ‘창신동 Re야기’는 출발한다.


문화예술이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삶은 비범한 한 사람의 예술적 역량과 가치만으로는 바꿀 수도, 바뀌지도 않는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규정된 세계로부터 벗어나려는 자발적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세계를 새롭게 만드는 원자들이며, 이 원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l 창신동, 모든 것이 다 모여 있는 동네

창신동은 역사가 오랜 주거지로서 특히 해방 이후 그 전개 양상이 매우 다이내믹하며 서울시 주택정책에 따라 시대별로 대표적인 주거 형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한 곳이다. 또한 청계천 변에 밀집해 있던 의류 생산업계가 점차 이곳으로 스며들어 현재는 동대문 패션타운에서 팔리는 의류 대부분을 생산하는 봉제마을이기도 하다.

‘창신동 Re야기’는 자생성을 기반으로 한 지속성장 가능한 패러다임을 찾는 지역재생 예술사업이다. 지역 거주민들과 본 사업 이해관계자들과의 수많은 만남과 토의, 그리고 발품을 팔아가며 마을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 창신동의 좁은 골목길들은 기능적인 연결로서 사용되는 것을 넘어서 이미 문화와 지역 커뮤니티가 살아 숨 쉬는 공공공간으로 역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주거공간과 생산공간이 긴밀히 연계·복합화되어 있는 창신동에서 이 길들의 네트워크는 24시간 작동하는 생산라인을 연결하는 ‘컨베이어 벨트’이며, 가내 공장에서 일하는 부모들을 기다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놀이터이고, 이국땅에서 시름을 달래는 외국인 노동자와 어르신들, 지역 주민들이 교류하는 마을의 거실로써 작동하고 있다.  

l 골목길은 땅의 무늬(地紋)다

서울 창신동의 골목길은 땅의 무늬-지문(地紋)이다. 골목길은 물길이자 바람이 지나는 길이고, 사람의 길이자 소리의 길, 그리고 빛이 흐르는 길이다. 창신동에는 비공식적으로 약 3천여 개의 소규모 봉제공장이 들어서 있다. 많은 물류를 빠르게 유통해야 하는 의류 산업의 특성상 창신동 골목길의 풍경엔 여유란 찾아볼 수 없다. 빠른 속도로 좁은 길을 질주하는 오토바이들, 그 틈바구니 속에 사람이 있다. 우리는 창신동이라는 공간 속에 사람 중심의 유기적이고 생태적인, 모두가 행복한 골목길을 그려 보려 한다.  
그동안 길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사업이 대로의 바닥 포장이나 가로변 시설물 디자인 위주의 사업이었다면, ‘창신동 Re야기’는 길과 길 주변의 공공공간에서 어떤 종류의 경험과 행위를 디자인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조금 더 주민들의 경험에서 그들의 일상과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 골목길에 인문학적, 예술적 호흡을 불어넣으려 한다. 그들이 살아오던 방식을 버리고 새롭게 걸어 보라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으며 길을 음미하고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l 함께 만드는 공작소

박물관이 복원, 기억의 ‘결과형’ 공간이라면 공작소는 창작, 제작의 ‘진행형’의 공간이다. 창신동 붙박이로서 한평생 봉제기술로 살아온 이들에게 어떤 제약이 없는 공간과 재료를 주고 마음껏 놀아보자 한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창신동 주민들이 생산 다운 생산을 할 수 있는 곳 ― 창작의 공간, 소통하고 나누는 공간, 치유와 공유의 공간 ― 창신동 ‘소통 공작소’를 제안한다.

  - 공작소(工作所)_ 뚝딱뚝딱 만들고 도모하는 곳
  - 공작소(空作所)_ 주민이 채워나갈 지금은 비워진 곳, 비움을 세우는 곳
  - 공작소(公作所)_ 함께 하는 곳, 즉 나누고 돕고 공유하는 곳

목 공작소, 철 공작소, 봉제 공작소, 기린(대화) 공작소, 흙 공작소, 미디어 공작소, 인문학 공작소…. 창신동은 모든 것의 공작소가 될 것이다.

  - 마을은 사용되고 있다. 내가 창신동에 들어서기 전까지 작건 크건 쌓여진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인다. 마을은 지금까지도 주민 스스로의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일이 벌어질 장소 즉, ‘공간’을 마련할 뿐이다.
  - 마을 내 잉여의 공간을 없어서는 안 될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 만드는 방식을 만든다. 공간에 접근하는 방식, 일을 벌이는 방식에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 생활을 디자인한다. 문화예술을 통한 의식의 작은 변화를 꾀한다.
  - 커뮤니티 디자인으로 관계를 복원한다. 나는 늘 예술의 힘을 믿는다.
  - 사용하는 사람이 스스로 만든다. 정답은 없다. 서로 다른 가치와 방향이 있을 뿐이다.
  - 사람이 모이고 미래를 만든다. 이것이 곧 교육의 힘이고, 사람과 관계의 힘이다.

수많은 차이와 기능성을 담고 있는 골목길 위에 그려진 소통과 연대의 공작소에서 ‘화해’, ‘연계’, ‘확장’을 통해 창신동 특유의 공공공간의 온전한 모습이 건강한 싹을 돋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함께 만드는 이야기의 가능성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주길 바란다.


  • ‘창신동 Re야기’의 거점 공간이 될 창신동 제1공영주차장
    ‘창신동 Re야기’의 거점 공간이 될 창신동 제1공영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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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