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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페르시아의 정원에서 길을 묻다
3부 - 격동기를 온몸으로 부딪쳐온 작가들
  • 마흐무드 돌라타바디
    마흐무드 돌라타바디와 함께
  • 파리바 바피
    파리바 바피와 함께
  • 무스타파 마스투르
    무스타파 마스투르와 함께


l 이슬람 혁명과 마흐무드 돌라타바디(1940~)
 
도서관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첫마디가 ‘나 돌라타바디요’하는 게 아닌가. 페르시아 문학과의 K 교수가 준 연락처로 메시지를 남긴 지 보름 만이었다. 독일 작가 낭독회가 열리는 테헤란 북쪽의 북시티 서점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슬람 혁명 시기 이란인의 고통을 기록한 소설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였다. 게다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어릴 때부터 집을 나와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 글을 써온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 『대령(Colonel)』은 쓴지 30여 년이 지나도록 정작 자기 나라에서는 아직 출판 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가 혁명 시기에 체포되어 2년간 감옥생활을 한 것은 뉴욕타임스에도 날만큼 유명한 일화이다. 경찰에 체포되자 그가 물었다.
 “내가 죄 지은 게 있소?” 그러자 경찰이 대답했다.
 “없소. 단지 요즘 체포된 인사들이 모조리 당신 책을 갖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당신이 혁명에 도발적이라고 볼 수 있소.”
그는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잘 구사했다. 나는 『대령』의 일부만 읽었는데도 혁명 당시 주인공의 시련이 너무 참혹해 가슴이 아팠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대령』은 혁명기에 서로 다른 정파에 가담했던 자식들의 죽음을 하나하나 목도해야 했던 어느 가장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란의 작은 마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비가 쏟아지는 밤. 대령은 자신의 자식들을 생각해 본다. 하나는 샤(왕)를 지지하다가 죽음을 당했고, 또 다른 아들은 아야톨라(호메이니)를 위해 싸웠고, 또 다른 자식인 열네 살짜리 딸은 반체제 전단지를 돌리다가 체포되었다. 집안엔 쥐죽은 듯한 고요가 흐른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린다. 두 명의 경찰관이 나타나, 고문 받다가 죽은 딸의 시신을 수거해 동트기 전까지 매장하라고 명한다. 역사상 어느 혁명이나 마찬가지로 이슬람 혁명도 그 자신의 아이들을 잡아먹고 있다. 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독일에서 처음 출판된 『대령』의 첫 구절이다. ‘지난 50년간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혁명에 대한 이 충격적인 발언은 그때까지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금기를 통째로 깨트려 버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란 문학사에서 혁명기의 공백을 메우는 작품으로 인정받아 맨아시아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30여 년 전에 쓴 작품을 아직도 출간하지 못하고 있다면 해외로 망명해 페르시아 어로 출간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여러 가지 조건을 대면서 초청한 나라도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작가는 조국에서 견디면서 지금 이곳의 삶을 써야 하기 때문이라고. 비록 작품은 출간 허가를 받지 못했지만 이란 정부는 지난해(2014년) 그의 평생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그다음으로 만나고 싶었던 골리 타라기(1939~)는 외국에 체재하는지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석류부인과 그 아들들』이라는 소설집이 해외에서 출간되어 유명해진 작가였다. 이 소설집에서 작가는 이슬람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창설된 무소불위의 혁명수비대나 엄격한 복장 규제와 같은 공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제약으로 얽매인 개인적인 삶의 이중성도 파헤치고 있다. 「다른 장소에서」라는 단편에서 작가는 한 여성의 삶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녀는 두꺼운 화장 뒤로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는 다리가 마비되는 순간에도 그것을 펴서 뻗기를 거부한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2천 개의 규칙과 2천 개의 헤아림과 조심성으로 인해 구속당하고 있다. 뼛속 깊이 새겨진 자존심이 그녀의 손과 발을 꽁꽁 묶고 그녀의 움직임을 제한한다.


또 다른 단편 「석류 부인과 그 아들들」에는 아들을 찾아 스웨덴으로 먼 여정을 떠나가는 노파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노파의 남편이 투덜댄다.
‘우리 아들은 유목민이 되어 버렸다오. 뿌리가 뽑혔어요. 어디에 가서 살든, 이방인으로 살아갈 거요.'
그러나 끝내 작가는 고향으로의 회귀를 잊지 않는다.

어느 편안하고 행복한 날이 오면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해가 잘 들고 자그마한 뜰이 딸려 있는 집을 마련할 것이다. 거기에 기차에서 만난 할머니가 준 석류 씨앗을 뿌리고 가꿀 것이다. 석류가 익으면 이웃에게 나눠줘야지. 석류 맛을 본 사람들은 모두가 형제자매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그들의 가슴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채워져, 영혼이 안식을 찾게 되리라.

l 여성의 주체적인 삶 그린, 파리바 바피  

정치적인 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으면서도 소설이 정치적인 측면을 지닐 수 있을까? 평론가들은 파리바 바피의 소설이야말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라고 말한다. 『나의 새(My Bird)』라는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여성작가 파리바 바피(1963~)를 샤리아티 거리에 있는 북시티 서점에서 만났다. 그녀의 작품을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주로 여성의 삶을 다루는 페미니즘 작가인 듯했다.
그의 출세작으로 여러 나라에 번역, 출판된 장편 『나의 새』에는 35세의 젊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의 남편은 끊임없이 외국으로 나갈 궁리만 한다. 지금 사는 곳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녀대로 이제 모든 것에 지쳐버렸다.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의 역할도 더 이상 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집에 들어오면 자신이 마치 사슬에 묶였거나 새장에 갇힌 철새라는 느낌에 괴로워한다. 날아가고 싶지만 아무데도 갈 데가 없다. 그녀는 남편과 살을 맞대고 있는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딴 생각을 한다.


‘이 남자는 내가 하루에도 100번씩 자기를 배신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거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치를 떨면서 내가 이 생활에서 하루에도 100번씩이나 떠나고 있다는 것을.’


견디다 못한 화자는 결코 다시는 주어진 역할에 매어 살거나 누구에게든 의지해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펜을 들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글을 쓰기로 작정한다. 안락한 가정, 누군가를 끝없이 보살펴야만 하는 여인의 삶과 같은 것은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모든 인간관계를 재정립한다. 이제 자신의 새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것은 펜으로 자신의 날개를 키워나가는 과정이 된다.

 “이제 내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내 주위의 세상에 대해서 글을 쓸 거야.”

작가는 화자를 통해 해결책은 어디로 떠나는 데 있지 않고 지금 있는 곳에서 자신의 의지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디아스포라의 시린 삶을 각오하면서도 떠나기만을 갈망해온 이란인들에게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었다.
 
l 이란의 미니멀리스트, 무스타파 마스투르

이튿날은 시내 중심가에 있는 북시티 본사에서 여성 독자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무스타파 마스투르(1965~) 작가를 만났다. 레이먼드 카버의 번역자이기도 한 마스투르는 독자에게 행간을 메우게 하는 스타일의 글을 쓰는 미니멀리스트로 정평이 나 있었다.
대표작인 『돼지 뼈와 문둥이 손(Pig's bone and Leper's hand)』은 온갖 범죄와 부조리를 안고 있는 거대도시를 그린 작품이었다. 테헤란을 상징하는 그 작품에서 혹시 결말에는 희망을 담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다. 작가는 자신을 카버와 같은 비관주의자라고 말했다. 인간은 한쪽으로는 선한 척하지만 다른 한쪽은 악을 행하고 있다는 거였다.
혹시 검열에서 문제 된 적은 없었느냐고 물어보았다. 자신은 정치나 섹스와 같은 주제를 다루지 않다 보니 문화부의 검열에 별로 저촉되는 부분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출판을 허가받기 위해 제출한 원고에서 63곳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금주의 나라이니 ‘술’은 ‘커피’로, ‘연인들이 손잡는 장면’은 다른 건전한 표현으로 바꾸는 식이었다.  
이란에서 전업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그는 번역과 창작을 쉴 새 없이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어 건설회사에서 토목 기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단연코 ‘No.'라고 답했다.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는 공감하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는 거였다. '문학이 세상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바르가스 요사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 D. 샐린저나 체홉처럼 인간의 그런 이율배반을 통렬하게 까발리는 것에 매혹되어 글을 계속 쓰게 된다고 말했다.
 
l 문학사학자, 하산 아미르아베디니

다음 날에는 이란의 문학사를 정리한 학자로 알려진 하산 미라베디니를 페르시아 어문학아카데미에서 만났다. 젊은 여성작가 베흐나즈 알리푸르가 동석해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이란 단편소설 80년사』로 이란 문학을 세계에 알린 학자였다. 혁명 이후 이란 작가들이 어떻게 엄격한 검열을 극복해가며 작품을 쓰고 있는지, 특히 그 점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여성작가들을 조명한 책이었다. 소설 한 권이 겨우 5천 부 정도 팔리던 출판계에서 여성 작가들의 소설은 10만 부 넘게 나가기도 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것은 여성 작가들이 정부나 사회가 묶어놓은 어떤 금지 구역을 남자 작가들보다 좀 더 능숙하게 헤쳐가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 파리바 바피를 들었다. 그녀 역시 소설 쓰기를 전문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남편과 오랜 실랑이 끝에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란은 여성 교육열이 매우 높아 테헤란 대학의 경우 입학생의 60%가 여학생이다. 전통과 근대적 가치관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여성들이 이제는 과감하게 주체적으로 독립적인 삶에 눈뜨게 되었고 그런 현실은 소설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l 에필로그
   
이제 곧 핵 협상이 완전히 타결되면 오랜 세월 한 국가를 옥죄었던 제재도 풀리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호전된 상황에서 테헤란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나는 이 챙 넓은 모자를 쓴 우아한 여인을 얼마나 사귀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손 정도는 잡아도 될까, 싶었다. 상대의 반응이야 어떻든 내 마음은 마치 시집보낸 딸을 두고 돌아가는 친정 어미의 심정이 되어 있었다. 처음 왔을 때의 막막함과 불안감은 이제 석별의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모두들 내게 다시 이란에 돌아올 거냐고 물었다. 나는 ‘물론’이라고 답했다. 이유는 구구절절 대지 않았다. 단지 머릿속으로 싱그러운 페르시아의 정원과 키아로스타미와 다리우스의 꽃, 그리고 아득하면서도 애틋했던 사막이 하나씩 지나가고 있었다. 그 위로 하이얌의 무덤에서 목이 터져라 시인의 이름을 부르던 청년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내 가슴엔 올 때와는 전혀 다른 기대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다음에 왔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밝은 얼굴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그리하여 머지않은 장래에 다시 테헤란 공항에 내리는 내 모습은 쉽게 그려볼 수 있었다.


  • 페르시아의 정원
    페르시아의 정원
  • 하이얌의 묘에서 시를 읊는 청년들
    하이얌의 묘에서 시를 읊는 청년들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