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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문학을 통한 교감, 민들레 프로젝트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제3회 민들레 프로젝트는 작가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홈리스들의 문학적, 예술적 소양을 일깨우고, 창작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함으로써 작가, 대중, 사회와 교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을 사업 목표로 한 기획사업으로 서울노숙인시설협회, (사)빅이슈코리아, 서울시, 주거복지재단과의 협력으로 진행되었다. 민들레 문학특강, 민들레 창작레슨, 민들레 예술문학상 공모전, 토크콘서트 등이 이루어졌으며 그중 부대 프로그램인 민들레 문학특강에 참여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여태 살았지만
정말 살았다는 느낌 한 번 들었던가*

금은돌 (시인)
  • 2014 민들레 문학특강(수송보현의집)
    2014 민들레 문학특강(수송보현의집)

1.
민들레 문학특강에 지원하게 된 이유에 그가 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짝사랑하던 그. 그는 과학 선생님이었다. 어슬렁어슬렁, 한마디로 느릿느릿 콧노래 부르며 울림이 큰 복도 사이를 뒷짐 지고 걸어 다니는 분이었다. 그가 무슨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무늘보처럼 부스럭거리며 걷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교실에 있던 여학생들이 갑자기 열심히 공부하는 척, 책을 보는 척, 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당시 학년 주임이었다. 교무회의가 있을 때마다 그는 교사들의 책상 위에 꽃 한 송이와 회의 메모를 올려놓았다. 가끔씩 교무실에서 교사들끼리 모여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그의 눈에 띄고 싶어 야간 자율학습을 하자고 졸라댔다. 신청자를 받고, 한 반이 결성되어 밤마다 그의 눈길을 받으며 공부를 했다. 그는 (말 그대로 자율적인)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학생 안전을 위해 안성 중심가인 광신 로터리까지 우리들을 바래다주었다. 한 손에 자전거를 끌고 가는 그 옆에서 우리는 참새 떼처럼 조잘거렸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그는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무엇인가를 끼적거렸다. 가끔 당신이 쓴 동화를 읽어주거나 당신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중 하나가, 당시 노숙자들을 만난 이야기였다. 그들을 만나 얘기해보니 인생철학이 담겨 있네, 배울 점이 많았어, 라고. 당신도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거리에 있겠노라고.

이 이야기 자락을 왜 잊지 않고 있었던가. 민들레 문학특강을 지원한 이유에 짝사랑이 숨어있다니.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회적인 헌신이나 봉사를 위해 민들레 문학특강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는 부끄러운 고백부터 해야겠다. 문학적 재료를 찾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내가 짝사랑하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서이다. 그것이 내 어린 가슴에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그분이 느끼셨던 배움의 깊이를 나는 찾을 수 있을 것인가?

2.
애초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20년 넘게 유치원생부터 초중고생, 대학생에서 70세 어르신까지 안 가르쳐 본 대상이 없을 정도로, 폭넓게 사람들을 겪어온 나였지만, 그래도 큰 맘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노숙자분들은 생각보다 말끔하고 또 드문드문 잘생긴 분들도 있었다. 뉴스나 여타 매체에서 보도되는 기존 이미지와 달랐다. 모두 멀쩡한 분들이었다.    

첫날 수업은 비교적 무난하게 넘어갔다. 인디언식 이름 짓기 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노숙자는 자신의 이름이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꺼려한다. 아픔과 좌절, 실패로 맺어진 사회적 이름 대신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그 이름으로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밀려오는 파도, 오색찬란한 물안개, 구름 위의 산책, 오솔길 샘물, 양고파, 채움, 사랑을 품은 바람, 백상어, 태평양 술고래, 전국구, 로또 1등, 無, 하늘을 나는 새, 야누스 커피, 그대가 구름, 진달래…. 우리 반 학생들의 이름이다.

수업 끝자락에, 새로 지은 이름을 불러드렸다. 식사 공간을 즉석에서 수업 공간으로 만든, 그 자리에서, 저녁 밥풀 냄새가 가시지 않은 그 공간에서 아름다운 이름들이 흘러나왔다. 파도와 새와 구름과 백상어, 사랑과 바람이, 커피향과 진달래, 물안개와 샘물이 고요히 울려 퍼지도록, 한 명씩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며, 정성껏 불렀다. 호명될 때마다 그들의 얼굴이 맑게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과장이겠지만) 부드러운 포말에 찰싹, 맺히는 촉촉함이 감지됐다.

우리의 만남은 새로운 이름을
얻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3.
민들레 문학특강 수업 전, 긴장감이 발뒤꿈치부터 올라오기 시작한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내용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까, 어떤 방식으로 한 문장을 쓰게 만들까. 이런 것 하나하나, 세세한 것들까지 신경 쓰이지 않는 게 없다. 모든 것이 과제다. 수업을 시작하는 순간까지, 망설인다. 백지 그 자체다. 단어카드 게임을 할까, 그림 그리기 수업을 할까, 색깔 수업을 할까, 여러 가지 수업 아이템들이 굴러다니는데,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인디언식 이름과 얼굴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입술에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빠져나오지 않을라치면, 그 머뭇거림을 잡아채어, 곧바로 서운해한다. 버거운 공기를 뚫고, 맘을 다지고, 다지며 말문을 뗀다. 그러나

발등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4.
9월 4일, 왜 그랬을까, 여러 편의 시 가운데, 이 시를 가지고 갈까 말까, 망설망설하다가, 그럼에도 결국, 이성복 시인의 시를 선택한다. 추석 연휴를 앞둔 목요일이었다. 

                       밤하늘 하도 푸르러 선돌바위 앞에
                       앉아 밤새도록 빨래나 했으면 좋겠다
                       흰 옥양목 쳐대 빨고 나면 누런 삼베
                       헹구어 빨고, 가슴에 물 한 번 끼얹고
                       하염없는 자유형으로 지하 고성소까지
                       왕복했으면 좋겠다 갔다 와도 또 가고
                       싶으면 갔다 오지, 여태 살았지만
                       정말 살았다는 느낌 한 번 들었던가

시 제목을 감추고 보여드려 본다. 무엇을 건드리고 싶어 한 것일까. 뭔가를 폭발하게 하고 싶어 한 것일까.

갑자기 '전국구'님이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밤하늘이 어찌 푸를 수 있습니까"
를 시작으로,
 "시라는 게 말입니다. 약간 정신 나간 사람들의 헛발질 같은 거 아닙니까?"
라면서 입술을 멈추지 않는다.
 "선돌 바위에 앉아 옥양목 빨고 삼베 헹구는 일은 죽음을 말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지하 고성소까지 갔다 올 수 있습니까? 죽지 않았는데, 죽은 것처럼 저승에 다녀올 수 있습니까?"
시를 낭독하면서 고성소의 뜻이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곳이라고 미리 설명해 드렸다. 사람이 죽지 않았는데도 어찌 사후 세계에 다녀올 수 있느냐고 강력하게 항의한다. 처음부터 날카로운 질문을 받아, 주춤거린다. 화제를 부드러운 곳으로 재빨리 돌리고 싶다. 문학에서는 그런 게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미리 대답하고 싶지 않다. (고얀 심보인지 몰라도) 끙끙 앓게 두고 싶다.

만약에 달 밝은 밤에 선돌 바위에 앉아 무엇을 해 보고 싶으냐고 말문을 돌린다. ‘양고파’님께서 "선돌 바위에 앉아 선구자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내가 원래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거든요." 라고 대답한다. 이 시에서 맘에 드는 부분이 어디냐고 질문해 본다. ‘밀려오는 파도’님은 "여태 살았지만 정말 살았다는 느낌 한 번 들었던가. 이 구절이 맘에 드네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런 문장이 맘에 들어요.”

그분의 눈빛을 본다. 속으로 감탄한다. 시의 기교와 화려한 수사보다는, 폐부를 찌르는 한 문장, 심장을 멈추게 하는 한 문장, 담백하면서도 기교가 없는, 절실함이 담긴 한 문장, 이런 문장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구나, 뭔가를 들끓게 하는구나, 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이어 붙여 말문을 이어나가려고 하는데, 학생들의 공기가 달라진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눈빛이 강해진다.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수업 시작한 지 두 번 만에 저들의 가슴 밑바닥을 치면서 너무 세게 나가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밀고 나가야지.

 “정말 살아있다고 느낀 적 있으시죠? 뭐 예를 들어 첫사랑에 빠질 때나….”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꺼냈더니, '전국구'님께서 봇물처럼 말을 터뜨린다.
 "선생님, 사랑이 뭔지 아십니까?"
어조가 강하다. 어떻게 답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하자. 나도 잘 모르는 단어 아닌가. 매번 실패하는 낱말 아니던가.
 "잘 모르겠는데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한다.
 “왜 모르는지 아십니까?”
‘전국구’님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미 자기 안에 정해진 답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선생님은 사랑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랑을 모르는 겁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랑 바깥에 있기 때문에 사랑이 얼마나 귀중한지 잘 압니다.”
이때 옆에 앉아계신 ‘오솔길 샘물’님이 한 마디 덧붙인다.
 “내가 원래 다른 사람 말을 안 들어주는데, 어제 저 친구가 속 얘기를 쏟아내더군요. 내 인생의 여자는 단 한 명이었다는 말을 하면서요. 그래서 말문이 터진 거예요. 지금”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대가 구름’ 님이 덧대어 설명한다.
 “아까 선생님이 말하던 얘기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좋아하는 겁니다. 사랑이라는 이 두 글자는 비록 글자 수는 몇 안 돼도 어마어마하게 큰 뜻을 가졌습니다. 내가 17살에 여자를 만나서 19살에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사랑이 아니었더라고요. 내 인생에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 한 번 절실하게, 진짜, 해보고 싶습니다.”

5.
그렇지 않아도 중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선생님 얘기를 꺼내며 은근슬쩍, 설레는 느낌, 살아있는 느낌을 에돌려 말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서울역의 노숙자들을 만나보니 거리의 철학자였더라는 말을 스치며 던지는 찰나였다. ‘사랑을 품은 바람’님께서 대뜸 말꼬리를 붙잡는다.
 “도대체 어디에 거리의 철학자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런 말들은 죄다 거짓부렁입니다. 그런 말씀하지 마셔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힌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나? ‘사랑을 품은 바람’님께서 계면쩍게 웃으며 다시 덧붙인다.
 “우리들이요, 맘만 먹으면 꼬투리 잘 잡아요.”
그리고는 시를 읽은 소회를 풀어놓는다.
 “이 시는 회한이 가득한 시네요. 극단적일 정도로 자기 회한에 빠져 있네요. 도대체 이성복이란 분은 어떤 분입니까? 나이가 몇 살입니까? 어떻게 이런 얘기를 합니까? 이성복이라는 분에 대해 설명 좀 해 주세요.”
그 옆에 앉아있던 ‘밀려오는 파도’님도 시에 대한 느낌을 짧게 덧붙인다.
 “굉장히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시네요.”
라고 말하고는 두 눈을 지긋하게 감는다. 두통이 있는지 두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고개를 숙인다.

학생들이 한 마디씩 던질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언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어의 무게를 맨몸으로 부딪치고 있는 느낌이랄까, 살갗 하나하나, 신경 세포 하나하나로 시어를 만나고, 시를 견디고 있는 느낌이랄까.

6.
뭉툭한 침묵이 흐른다.

그 알갱이를 깨고 제목을 알려드린다. 이성복의 〈추석〉. 시인에 대해 간략한 소개도 덧붙인다. 그랬더니 ‘양고파’님께서 “이 사람 참,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네” 한다. 추석인데 가족들끼리 모이는 얘기를 써야 하는데, 남들과 다른 얘기를 한다고 의아해 한다.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지난 시간처럼 유쾌하게 웃고 떠들면서 말문을 흐르게 두지 못하겠더라.

A4 종이를 드린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과거 얘기를 쓰고 싶지 않아 해요. 사랑 얘기도 그렇고요.”
‘밀려오는 파도’님이 글을 쓰기 직전의 고통을 토로한다.

막막하다. 어렵게 시작했구나, 싶었다. 후회가 밀려온다. 원래 주제가 있었지만, 뭐라도 아무거나 쓰고 싶은 얘기를 써 보라고 한다. 몇몇 분이 글을 쓴다. 그런데 제대로 된 피드백을 못해드리겠더라. 삶의 질곡, 실패와 좌절, 질병과 고난 앞에서 제대로 된 문장 몇 개 알려드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순간, 무너져 내린다. 자꾸만 무너진다. 왜 자꾸 허물어질까. 여기 계신 분들이 내가 겪은 몇몇 시련과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호통치고 있는 듯하다. 당신 얼굴을 보니, 별로 고생 안 해본 얼굴이야. 그런데, 당신이 무어라고 이 앞에 서서 우리들을 가르치는 거야, 사회 시스템 안에 있는 당신은 행복한 줄이나 알아, 라고 꾸짖는 듯하다. 노숙자 앞에 서 있기에, 나의 내공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솔직하게 고백해야 했다.
 "제가 여러분 앞에서 뭘 더 해드릴 수 있겠어요, 20년 넘게 글쓰기 관련 수업을 진행해 왔는데, 여러분들 앞에선 이상하게도 바보가 되네요. 백지가 되네요. 제가 자꾸 무너져요. 오늘 제가 유독, 버버 거렸네요. 죄송합니다."
‘전국구’님께서 나를 보시며 한 말씀 던진다.
 "우리가 왜 이 수업 듣는 줄 아세요? 내 나이 마흔 여덟인데, 지금 현재가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좀 더 잘 버티려고요. 우리한테는 망각이 훨씬 더 편해요. 망각이 약이에요."

침묵이 답변이었다.

 "추석이 서러워요."
‘전국구’님이 훅, 스치듯 속엣 것을 토해낸다. 
 “살아있다고 느끼는 이 심정은 세월호 생존 가족들이 느끼는 고통과 같을 거예요 아마.”
‘밀려오는 파도’님이 당신의 심정을 시에 잇대어 풀어놓는다.

7.
원래부터 가르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이분들 앞에 서 보니, 더더욱 가르칠 필요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귀와 눈빛만으로 서 있을 뿐이다. 입에서 쏟아지는 말에 마침표 찍을 수 없을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게다. 이들과 공감하기 위해 내어놓는 나의 자잘한 고통은 껌딱지에 불과하다.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실패자로 낙인찍는 기분은 어떤 걸까. 스스로 다시 일어서기 위해 보호 시설로 들어온 기분은 어떤 것일까.

추석 선물을 드린다. 올해부터 귀한 인연에게 찾아가 드리고 있는 선물. 직접 그린 부채 소품. 끼니도 못 챙겨 먹고 수업 하는 게 안타까웠는지, 좀 일찍 와서 저녁을 같이 먹자 한다. “선생님 얼굴만 봐도 좋은 걸요. 저희들은” 이런 말씀을 하는 분도 있다. 모두가 일시에 부채를 펴서 바람을 불러들인다. 조금 웃어본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막차 시간에 쫓기며 지하철에 올라, 이성복의 시 〈추석〉을 다시 읽는다. “여태 살았지만 정말 살았다는 느낌 한번 들었던가” 이것은 사실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힘이 쪽 빠진다. 그동안 써 왔던 나의 시어가 떠오른다. 뭉툭하면서도 예리하게, 투박하면서도 아프게 마음을 건드리는 시어를 선택해왔던가. 이성복의 시는 이들을 흔들고도 남음이 있었다. 시를 읽는 내내 짙게 내려앉는 공기까지 집어삼키고 있었다.

내려가는 버스 안으로 두툼해진 상현달이 따라온다.
추석이 아프다.

8.
한 번의 진통을 겪은 뒤, 딱히 뭐라 말할 수 없지만, 그냥 편안해졌다. 어떤 통과의례를 거친 기분이다. 밑바닥을 보여드린 탓에, 오히려 수월해졌다. 이분들과 내가 철썩거리는 파도 한 장을 공유한 기분이다. 이들과 내가 뭐가 다를 게 있겠는가. 나 역시 밑바닥으로 떨어질 뻔한 시절이 있었고, 10원 한 장에도 덜덜 떠는 생활을 해 오지 않았던가. 수업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나

몇몇 분들은 일정한 패턴을 갖고 생활하기 힘들어 했다. 지난주에는 글 쓰러 오신 분이 이번 주에, 갑자기 병원에 입원해 버리고, 또 어떤 분은 시설의 규칙을 어겨서 퇴출당하기도 했다. 하루 일당 벌이 때문에 출석이 정지된 분도 있다. 일정한 패턴을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리듬을 유지하는 일이 일상을 버티는 힘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더군다나 글을 쓰기 위해 규칙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참석하는 몇몇 분들 덕분에 민들레 문학특강이 진행된다. 우리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편들을 골라, 같이 낭독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를 써 본다. 당신들의 얘기를 풀어내 보라고. 무겁지만은 않게, 때로는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슬픔을 과장하지만 말고 담담하게 적어보라고 권유한다. 이제는 수업 시간 내내 노숙자와 웃고 떠드느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9.
인사동 거리에 흩어져 있는 돌의자에 앉아 긴 숨을 쉬어봅니다. 선생님도 이런 느낌이셨을까, 하고요. 요즘은 수업이 있는 수요일만 기다리고 있는 분도 있답니다. 글을 잘 쓰건 못 쓰건, 상관없이, 어울려 같이, 식판에 나누어 저녁밥을 먹고, 차를 마신답니다. 실토하자면, 제가 더 많은 것들을 받고 있답니다. 수업이 있는 날마다 커피에 쿠키에 사과에 송편에 한가득 선물을 주신답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실수할라치면, 깨알같이 지적해 주시는 분도 있고요.

‘선생님, 알고 계셨지요? 이런 느낌이란 걸요? 단 한 번만이라도, 이 순간을 당신과 함께 나눠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나의 어린 첫사랑!’

*이성복의 시 〈추석〉의 한 구절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