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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문학을 통한 교감, 민들레 프로젝트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제3회 민들레 프로젝트는 작가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홈리스들의 문학적, 예술적 소양을 일깨우고, 창작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함으로써 작가, 대중, 사회와 교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을 사업 목표로 한 기획사업으로 서울노숙인시설협회, (사)빅이슈코리아, 서울시, 주거복지재단과의 협력으로 진행되었다. 민들레 문학특강, 민들레 창작레슨, 민들레 예술문학상 공모전, 토크콘서트 등이 이루어졌으며 그중 부대 프로그램인 민들레 문학특강에 참여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특별한, 너무나 특별한 민들레 문학특강

박경장 (문학평론가)
  • 민들레 문학특강 첫 수업
    민들레 문학특강 첫 수업

‘햇살 복음자리’엔 대낮에도 햇살이 없다. 영등포 시장 뒷골목 허름한 건물에 둥지를 튼 노숙인 쉼터. 하지만 해가 안 들어도 거리 선생님들에겐 따스한 복음자리일 것이다. 그래도 어디 내 집만 하겠는가. 민들레 문학특강 첫 수업에 오신 일곱 분 대부분이 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위해 이 강좌를 듣게 됐단다. 그만큼 거리 선생님들에게 내 집 같은 안정적인 주거 공간은 무엇보다 절실하다.     
하지만 10회 강의에 참석해야 하고 민들레문학상에 입선을 해야만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일곱 명으로 시작한 강의가 둘째 주엔 세 명, 셋째 주엔 한 명, 넷째 주엔 두 명으로 줄었다. 사실,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신청한 분은 세 명뿐이었다. 나머지 네 명은 센터장님이 강사 보기가 민망해 등 떠밀어 오신 분들이다. 하지만 일곱 명이면 어떻고 한 명이면 어떤가.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나와 피워낸 노란 꽃 한 송이가 수십 수백 생명의 환희를 날려 보내는 게 민들레 아닌가. 그러고 보면 문학은 어딘지 모르게 민들레를 닮아 있다. 척박한 자본주의 삶의 조건에서 여린 듯 질기게 피어나 종내에는 자신을 다 털어버리는 민들레 같은 문학. 문학은 결국 한 명을 위한, 한 명에 의한, 한 명의 문학이다. 그렇다. 민들레 문학특강은 한 명이면 족하다. 그런데 두 명 남았으니 나에겐 오히려 과한 편이다.
쉼터 강의 공간이 여의치 않아 강의는 옆 건물 일층 허름한 식당을 빌려, 영업이 끝난 시간을 이용해 진행됐다. 셋째 주 나는 족한 그 한 명과 과자 일곱 접시가 세팅돼 있는 식탁에 단둘이 마주 앉았다. 머리는 하얗게 세었고 수줍은 웃음 사이사이로 앞니 반은 안 보였지만 눈은 아이처럼 맑았다. 내 강의안을 읽어 내려가는 그의 목소리는 얼마나 안정되고 기름졌으며 리듬감이 있던지. 고른 호흡에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감정은 웬만한 독서량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선생님 책을 많이 읽으셨나 봐요?”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걸요.” 놀란 내 물음에 수줍은 듯 한 손으로 입을 가리시며 연신 미소 짓는다. 칙칙한 형광 불빛에 선생님의 까만 눈동자와 하얀 머리카락이 반짝반짝 빛났다. 꼭 흰 민들레 같았다.
선생님도 내가 편해 보였나 보다. 이런저런 물음에 대화 상대가 없어 수십 년 동안 묵혀 두었다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오십 대 중반쯤 돼 보이는 선생님은 어려서 고아원 신세를 졌단다. 어렵게 초등학교를 마친 후 혼자 서울로 올라와 이 공장 저 공장 떠돌다,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고 노예처럼 부려 먹는 고용주 밑에서 인간 벌레가 된 것 같은 열패감에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십 대 후반에 공장을 나왔단다. 그 길로 무작정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가 어느 암자에서 몇 개월을 머물게 됐더란다. 선생님은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뒤흔든 사람을 만나게 됐는데, 바로 최수철이었다. 물론 그땐 작가 최수철이 아니라 대학생 최수철이었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그가 최수철 작가와 특별한 교분을 쌓은 건 아니다. 그를 뒤흔든 건 최수철과 그 암자에 머물며 고시를 준비하는 다른 대학생들 간의 대화를 엿들으며 그가 받은 지적 세계에 대한 충격이었다.
 “뭐랄까. 그들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 같았어요. 다른 나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같았죠.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내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어요. 조근조근 나누는 대화에는 향내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훌륭하고 멋있었어요. 저들과 한 지붕 아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들의 대화에 단 한 마디도 끼어들 수 없는 내가 한없이 창피하고 부끄러웠어요.”
그 후로 선생님은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단다. 책은 말수 적고 외로움에 젖어 살던 선생님이 유년 시절에 유일하게 마음 주었던 것이었단다. 시골 초등학교 도서관에 몇 권 안 되는 책을 한 권도 빠짐없이 다 읽었고, 어떤 것은 수도 없이 읽어 지금도 줄거리를 줄줄 외고 있을 정도란다. “최근 읽은 것 중에 기억나시는 책 있어요?” “『황금 물고기』요. 2008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르 클레지오의 대표작이지요. 최수철 작가가 번역했어요. 『우연』도 읽었는데 그 작품도 최수철 씨가 번역을 했더군요.”
봇물 터지듯이 그가 읽었던 책과 작가를 나열하는데 마치 문학사 강의를 듣는 것만 같았다. “십여 년 넘게 각종 문학상 작품집을 빠짐없이 읽었어요. 그래서 우리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 성향, 동정까지도 꽤 상세히 알고 있습니다. 노벨문학상도 발표되면 빠지지 않고 읽었어요. 1976년일 거예요. 노벨문학상을 받은 솔 벨로라고. 신문에 났기에 읽어 봤죠. 『허조그』.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읽었어요. 그의 다른 작품 『Seize the day』도 찾아 읽었습니다. 이해되든 안 되든 내 식대로 읽었어요.” “솔 벨로라고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20여 년 전 박사과정을 밟던 중 미국 현대문학 강좌에서 읽은 유태계 미국 작가 솔 벨로. 두 번 다시 듣는 일은 없을 것 같던 그 종소리 같은 이름이 손님 없어 서둘러 셔터를 내린 영등포 시장 뒷골목 ‘군산식당’에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제가 이 쉼터 저 쉼터 잠자리를 옮겨 다니면서도 꼭 챙겨가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2만 원 넘게 주고 산 책인데, 제이콥 브로노우스키가 쓴 『인간 등정의 발자취』라는 문화인류학에 관한 책입니다. 틈만 나면 되풀이해서 읽고 있는데 내 사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데 매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그날 나는 강의를 접고 강의를 듣고 왔다. 선생님은 마치 민들레 홀씨를 날려 보내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로 자신을 툴툴 털어내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는 단 한 사람을 위한 ‘특별한 너무나 특별한 민들레 문학특강’이었다. 


  • 박경장 사진
  • 박경장전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현      성프란시스 인문학 대학 교수. 문학평론가
    저서    『사춘기를 위한 아름다운 영미 성장시』, 『지리산에 길을 묻다』
    역서    『굿바이 관타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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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