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2013년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라는 주제로 컨퍼런스가 열렸을 때 ‘프로듀서’라는 용어는 마치 시기적 트렌드처럼 보였고, 한국, 일본, 대만, 호주에서 온 토론자들은 자신을 기획자, 프로듀서, 큐레이터,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등 제각기 지칭하며, 서로 다른 이해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불과 2년이 지나지 않아 프로듀서에 대한 이해는 높아지고, 국내외 공연예술환경 속에서 프로듀서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한 높은 요구가 보이는 듯하다. 이는 아시아 공연예술환경에서 더 뚜렷이 보이는 현상이다.

작년 12월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캠프(APP CAMP)가 대만에서 열렸다. 2014년 서울에 이어 두 번째 열린 캠프이다. 한국, 일본, 대만, 호주, 마카오, 홍콩,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호주, 뉴질랜드에서 40여 명의 프로듀서들이 참가한 APP CAMP 대만의 핵심 키워드는 아시아 네트워크와 국제공동제작/협력이었다. 물론, 지난 십여 년간 줄기차게 이야기해 온 주제이기에 별반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 키워드일 수 있다. 하지만 대만에서의 일주일을 보내고 난 후 대만을 비롯한 중국어권 공연예술환경 변화 속에서 지금만큼 협력과 네트워크 그리고 프로듀서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는 없어 보인다. 아시아 공연예술시장의 새로운 문이 열리고 변화가 시작되었다.
 
아시아 국가 중 최근 가장 많은 변화를 안고 있는 곳은 대만과 홍콩이다. 대만은 향후 2년 안에 새로운 예술센터 4곳이 문을 열게 된다. 먼저 2016년 타이베이에 개관하는 대만 시취센터(Taiwan Xiqu Center)는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창조 문화콘텐츠 개발의 엔진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1,055석의 메인극장과 300석의 실험극장을 오픈한다. 같은 해 타이베이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타이중시에서는 그랜드 씨어터(2,014석), 플레이 하우스(800석), 블랙박스(200석), 야외극장까지 4개 극장을 갖춘 대만 타이중극장(National Taiching Theatre)이 문을 연다. 2017년에도 두 개의 극장이 개관되는데, 하나는 대만 남쪽 가오슝의 군사기지였던 곳에 설립하는 국립가오슝아트센터(National Kaohsiung Center for the Arts) 이고 또 하나는 타이베이의 야시장 자리에 새롭게 설립하는 타이베이 퍼포밍아트센터(Taipei Performing Arts Center)이다. 내년부터 차례로 문을 열게 될 이 4개 베뉴(venue)의 12개 극장은 총 13,000개의 새로운 좌석을 갖게 되며, 이는 현재 대만국립극장(National Theatre and Concert Hall)의 4배에 달하는 좌석 수다. 이쯤 되면 갑작스럽게 불어난 공간과 좌석에 채울 프로그램과 관객을 어찌하려고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홍콩도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준비를 시작해 2012년 공간 설계에 들어가 2018년이면 첫 번째 건물개관을 시작으로 15개의 예술공간을 차례대로 열게 될 홍콩의 서구룡 문화지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WKDC)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대만과 WKDC의 센터들을 보면 극장 또는 예술센터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 한차례 건축붐이 일어나 무수히 지어졌던 극장들과는 분명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먼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건물의 디자인을 맡아 건물 자체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타이베이 퍼포밍아트센터는 국제공모전을 통해 렘 쿨하스가 이끄는 OMA에 건축디자인을 맡겨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 무대도 실험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타이중극장은 일본 건축가 Toyo Ito가 디자인을 맡아 흐르는 듯한 자연 곡선의 유연하면서도 강한 모습을 통해 초현실이 아닌 새로운 현실을 컨셉으로 극장을 짓는 중이다. 타이중극장 예술감독은 사람들의 눈을 매료시켜 예술가들, 지역민들, 관광객들이 “아! 너무나 멋지다.”라며 직관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극장을 짓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예술센터를 단순히 공연이 올라가는 극장 공간이 아닌 도시의 랜드마크로,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이 찾을 수 있는 휴식장소이며, 삶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홍콩의 WKDC도 마찬가지이다. 홍콩은 활기 넘치는 항구 주변에 건물을 짓고 있으며, 전체 40헥타르 중 23헥타르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설계되어 있다. 접근성이 좋은 개방형 공공장소로 설계해 WKDC를 주변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계하고자 함을 볼 수 있다.

타이중극장은 ‘예술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극장(A Theater for Arts and New Lifestyle)’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타이베이 아트센터의 핵심가치는 “Play Different”이다. 이 모든 것은 관객 개발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아트센터 공간에서 쇼핑을 하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공연장으로 이끌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각 극장들은 지역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래밍도 구상 중이다. 예술 교육 아웃리치 프로그램부터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디지털 테크놀러지를 이용해 혁신적인 공연 경험을 통한 삶의 경험을 확장시켜주고, 연령별, 대상별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축제를 기획하는 등 무대 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작품을 넘어선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삶에서 분리된 예술이 아닌, 생활과 연계되어 새롭고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이끄는 예술이 중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WKDC 프로젝트도 현재 물리적 공간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야외 음악 콘서트, 해외예술가들과 함께하는 워크숍,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거리예술 프로젝트 등 WKDC는 무료 야외 프로그램과 워크숍 등을 꾸준히 개발 중이다. 이를 통해 미래의 공간을 채우게 될 예술 프로그램에 지역민들은 조금씩 익숙해진다. 야외에서 극장 로비로, 로비에서 극장으로, 그리고 무료 관람에서 자연스럽게 공연 관람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순차적이고 장기적인 관객 개발 프로그램인 것이다.

관객 개발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프로그램 개발과 예술가 개발이다. 사회구조의 변화와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한 삶의 변화, 소득의 격차, 고령화, 점점 짧아지는 산업 구조 등 현대 사회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변화 속에서 관객은 변화하게 되고, 그에 따라 다양하고 수준 높은 작품들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존 아트센터들이 이름 있는 작품들을 프리젠팅하는 데 그 역할을 다했다면, 앞으로는 극장 제작, 국제협력 및 국제공동제작에 더 많은 관심과 역할이 주어질 것이고, 작품에 있어서도 다 장르적이고 혁신적인 콘텐츠의 요구가 많아질 것이다. 홍콩은 아직 시간이 좀 남아 보이지만 대만은 한시가 급하다. 대만 시취센터는 대만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국제공동제작 아이디어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며, 국립극장은 2017년 이노베이션 시리즈 오픈콜을 곧 시작하며, 타이베이 아트센터 또한 새로운 시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국제공동제작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

이러한 갑작스런 베뉴(venue)의 증가와 수준 높은 작품 제작 요구 및 프로그래밍과 관련해 대만은 전문 프로듀서 양성에 집중한다. 앞으로 프로듀서가 중심이 되는 작품 제작 방식이 공연예술산업에 있어서 넓게 받아들여지게 되고 이것이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 잡게 되리라는 것을 인지하고, 정책적으로 전문적인 프로듀서들을 키워내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대만이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의 주요 기획팀으로 두 번째 APP CAMP를 주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라고 볼 수 있다.   

전문 프로듀서 양성은 홍콩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홍콩 또한 APP의 멤버로, 2014년 APP CAMP 참가 후 2015년 중국어 사용 권역 중심의 프로듀서 네트워크를 새롭게 만들었다. 바로 ‘Producers’ Network Meeting and Forum’이다. 향후 5년 내 중국, 홍콩, 마카오, 대만에서 문을 열게 될 아트센터들과 공연예술시장의 변화 속에서 전문적인 프로듀서들의 필요성은 대만의 정책적 요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WKDC는 아직 국제교류가 활발하지 않고, 프로듀서의 개념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 중국과 홍콩의 프로듀서들을 양성하는 목적을 설명함과 동시에, 아시아는 유럽과 비교해 더 다양하고 거대해 유럽의 IETM(유럽공연예술네트워크)과 같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가지기는 어려우며, 여러 개의 네크워크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네트워크 간의 제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의 캠프는 2013년을 시작으로 5년간의 프로젝트이다. 대만에서 40여 명의 프로듀서들은 5년 후 APP의 미래와 비전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향후 5년은 지속될 아시아의 아트센터 건축붐 속에서 프로듀서들의 역할과 네트워크, 이동성은 확장되고 아시아 내 협력과 국제 공동제작은 더욱 활발히 진행될 것이라 기대한다. 물론, 새로운 아트센터들의 다층적이고 열린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APP는 프로듀서가 중심에 있다. 그리고 프로듀서 개개인이 플랫폼이 되는 구조를 지향한다. 즉 40개의 플랫폼이 개별적으로 또는 통합적으로 작용하는 플랫폼으로 그 안에서 다양한 예술가와 작품,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지역 관객을 넘어 아시아 관객 개발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