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04년 공연 도중 프리마돈나가 눈물을 흘릴 정도의 야유를 받았던, 푸치니의 3대 오페라 중의 하나인 〈나비부인(Madama Butterfly)〉. 1913년 무대 커튼이 오르자마자 괴성부터 난무하였던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 모음곡 중 하나인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 두 기념비적인 작품 모두 초연 당시 혹독한 비평의 대상이 되었고 청중들의 반감으로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재연을 통하여 작곡가의 확고한 음악 세계가 재조명받았고,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청중들의 환호가 이어지고 있다.
연주 규모가 큰 창작관현악곡은 오케스트라 단체가 작곡가에게 위촉하거나 국내외 유수 작곡 콩쿠르에서 선정되어 공연된다. ‘초연이 곧 마지막 연주’라는 우리 창작음악계에서, 후대의 청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일회성 연주로 사장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이런 상황을 바꿔보고자 하는 도전의식이 함께 담긴 지속연주지원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l 지속적인 두드림(Do Dream)

2012년 ARKO한국창작음악제 추진위원회의 출범과 함께 ‘지속연주지원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사업은 첫해에 두 차례 시행된 뒤 이듬해인 2013년에는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고, 지난해 5회로 크게 늘면서 사업 방향이 제자리를 잡아 적잖은 성과를 낳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창제의 지속연주지원사업은 작곡가에게 초연 당시 아쉬웠던 음악적 어법을 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곡가는 재연을 통해 청중들과 활발한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올해 상반기에는 민간오케스트라 지원도 시작했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단체들은 새로운 창작곡 레퍼토리를 구성할 수 있으며, 잠재적인 연주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창제의 우선적인 공모기준이었던 ‘한국 정서를 표현하는 작품’과 ‘실험적인 작품’들이 해외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작년 체코와 루마니아에서 진행된 해외 지속연주지원사업을 시작으로 올해 터키에서 진행되었던 곡들은 한국적인 색채가 뚜렷한 작품들과 국악기와 서양오케스트라 협연 작품들이다. 익숙하지 않은 선율과 국악기의 음색들은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에서 기존의 음악에 익숙해져 있던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여섯 차례에 걸쳐 아창제(구 창작관현악축제 포함)에서 선정되고 연주(발표)된 곡은 총 81곡. ‘셀프홍보’가 중요한 오늘날, 수동적인 위치에 있던 작곡가들은 능동적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홍보할 수 있는 채널로 본 지원 사업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까지는 아창제에서 선정된 작품 중에서만 선택 가능했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음악분야 사업인 ‘오작교 프로젝트’와 ‘생애 첫 작품발표회’지원에 발표된 작품들도 포함되는 지속연주지원사업은 단체들이 재연할 작품 선택의 폭을 보다 넓혀갈 것이다. 더 나아가 큰 편성의 창작관현악곡에만 한정적으로 지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실내악 작품까지 다방면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올 하반기에도 아창제에서 선정된, 실험적이고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낸 창작관현악곡들이 국내외의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2015 하반기 지속연주지원사업 일정〉

l ‘형제의 나라’ 터키의 밤을 수놓은 한국 창작곡의 선율 : 지속연주지원사업 ver. 2.0의 시작

지난 5월 22일, 터키의 중서부에 위치한 에스키셰히르(Eskişehir)시에서 ‘한-터 친선음악회’란 주제로 한국창작곡들이 현지 청중들에게 감동을 선물하였다. 예술감독 겸 지휘를 맡은 김성진(현 락음국악단 지휘자,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단장 역임)과 한국을 대표하는 신구(新舊)연주자인 거문고 명인 정대석,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소속 대금 연주자 류근화, 해금 연주자 여수연이 협연자로 터키 에스키셰히르 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아름다운 한국적 선율을 연주하였다.
작년 해외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지속연주지원사업은 해외 악단이 요청한 작품의 악보 및 작품에 대한 음악적 해석과 현지단체와의 소통을 위한 작곡가의 일부 경비를 지원했다. 그러나 올해에는 한국 창작관현악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고자 국내 협연자와 지휘자의 일부 경비까지 지원을 확대하였다.
다음은 지속연주지원사업이 창작곡+지휘자 지원형태로 확대된 첫 프로젝트의 주역 김성진 예술감독과의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Q. 지속연주지원사업에 참여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2011년부터 음악적 사명을 갖고 지속적으로 한국창작음악을 알리고자 터키와 더불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등 한국음악의 미개척 지역에서 꾸준히 교류를 진행했습니다. 현지에서도 한국 지휘자가 연주하는 한국 작품의 수요가 많았기에, 한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우수한 창작관현악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선정하여 지원하게 됐습니다.

Q. 현지에서의 반응은 어땠는지요?

터키를 대표하는 교향악단과 한국의 최고 연주자들이 함께 만드는 하모니는 터키 관중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선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오히려 청중보다 오케스트라 연주단원들에게 호응을 얻었던 점입니다. 훈련된 예민한 ‘귀’를 소유한 이들의 한국 작품들에 대한 이해를 통한 진실성 있는 연주, 그리고 따뜻한 배웅은 큰 기억으로 남습니다. 또한 백영은의 ‘오케스트라와 대금 협연곡 〈하늘 들꽃〉’의 새로운 대금 선율은 청중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2012년 아창제 초연 당시 협연자였던 류근화의 성숙되고 재해석된 연주는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Q. 이번 공연 중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공연 전, 호른 연주자가 선물한 조그만 터키 병사인형을 턱시도 안쪽 주머니에 넣고 한국-터키 친선음악회를 지휘했습니다. 앙코르를 연주하기 전 가슴 속의 인형을 꺼내 들고 “65년 전 6.25 한국전쟁 파병과 숭고한 희생에 감사드리며, 먼 한국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는데, 이때 받은 감동과 보람이 매우 컸습니다.

Q. 본 사업의 발전방향을 제안해 주신다면?

아창제에서 발표된 곡들과 선정된 작곡가들의 수준을 높게 평가합니다. 한국 전통 음악만이 한국의 음악이라고 할 수 없으며, 세계 공통의 음악어법이 오케스트라에 있기에 우리의 멋진 전통을 재해석하고 재가공해 악보화 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그리고 해외교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현지 오케스트라와 국내 지휘자, 연주자들이 협연하는 방식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인원과 대규모의 자본을 통한 방법이 아닌 ‘COMPACT! IMPACT!’ 방식으로 새로우면서도 글로벌한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본 지원 사업을 통해 다양한 창작관현악곡들이 국내외의 공연장에서 더 많이 울려 퍼지길 바란다. 청중들에게 익숙한 기존의 클래식 음악과는 다른 새로운 레시피로 만들어지는 맛있는 음악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인 경험일 것이다. 창작관현악곡이 초연에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의 청중들에게 계속하여 감동을 주고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많은 작곡가, 연주단체 그리고 관객들이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