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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서희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서희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이하 ABT)의 수석무용수 서희(29)가 올여름 제12회 대관령국제음악제 무대에 섰다. 음악제 사상 처음으로 안무를 위촉한 〈볼레로〉에 출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난 8월 1일 프랑스 출신의 ABT 발레리노 알렉산드르 암무디와 함께 미국의 현대무용 안무가 그레고리 돌바시안이 안무한 〈볼레로〉를 선보였다.
서희는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출연한 것을 포함해 올해 한 달 가까이 한국에 체류했다. 평소 ABT에서의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매우 적었던 것을 생각하면 극히 이례적이다. 내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한국에서 필요한사항을 조사하고 관련 법률 등의 자문을 얻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의 재능 있는 10대 발레 전공 학생들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주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선화예중 출신인 그는 2003년 로잔 콩쿠르 입상에 이어 같은 해 유스 아메리칸 그랑프리 국제 발레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산하 발레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ABT의 입단 제의를 받았다. 2005년 ABT에 연수단원으로 입단한 그는 이듬해 정단원이 됐고 지난 2012년 수석 무용수로 승급했다.
올 시즌 ABT에서 줄리 켄트 등 선배들이 줄줄이 은퇴하면서 그는 명실공히 간판 발레리나로 올라섰다. 지난 6월 ABT에 객원 무용수로 온 마린스키 발레단의 김기민과 그가 〈라바야데르〉의 남녀 주역으로 함께 춤을 춘 것은 한국 발레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발레리나로서 전성기를 달리는 그를 만나 지난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Q. 대관령국제음악제가 그동안 작곡을 여러 차례 위촉했습니다만 안무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번 〈볼레로〉가 처음 계획되고 공연되기까지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예술감독인 정명화 선생님께서 3년 전부터 음악제에 한번 와 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했는데 그동안 바빠서 못 오다가 올해 오게 됐어요. 음악제 측에서 라벨의 춤곡 〈볼레로〉를 정한 뒤 제게 안무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힙합을 바탕으로 한 현대무용 안무가인 돌바시안과의 작업은 제게 하나의 도전이었어요. 약 8개월 동안 저와 암무디 그리고 돌바시안이 시간 날 때마다 만나서 작품을 만들었던 만큼 결과보다 과정 자체가 재밌었습니다.

Q. 현재 ABT의 수석무용수지만 올 시즌은 유독 존재감이 정말 두드러졌던 시즌이었습니다. 공연 포스터의 중심에 등장하는 경우도 많았고, 여러 작품의 개·폐막 공연 주역을 맡았는데요. 이제 ABT의 간판 무용수의 반열에 오른 것 같습니다.

주역으로서 기반을 쌓아가고 있는 지금이 제겐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ABT의 한 시즌은 봄과 가을로 나눌 수 있는데, 올봄 시즌엔 줄리 켄트 등 시니어 프린시펄(선배 수석무용수)들이 잇따라 은퇴한 데 이어 폴리나 세미오노바와 나탈리아 오시포바가 줄줄이 부상을 당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들 몫까지 하느라 다른 시즌에 비해 출연 횟수가 많았어요. 무용수로서 포스터의 중심을 차지하고 개·폐막 공연 주역을 맡는 것이 명예롭긴 했지만 정말 힘든 시즌이었습니다.

Q. 지난 6월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가 된 김기민과 함께 〈라바야데르〉에 남녀 주역으로 출연한 것은 한국에서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세계 최정상급 두 발레단의 한국인 수석무용수가 한 무대에서 주역을 맡는 것은 그동안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요.

지난해 제가 마린스키 발레단에 객원 무용수로 갔을 때 후배인 기민이가 “누나, 우리 언제 한 번 같이 추자”라고 얘기했는데,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습니다. 기민이의 원래 파트너였던 세미오노바가 부상당하면서 제가 기민이의 파트너까지 맡게 된 겁니다. 당시 뉴욕타임즈 등 언론과 평단의 리뷰도 좋아서 정말 뿌듯했어요.

Q. ABT에서 입단 7년 만에 수석무용수에 올랐는데요. 상당히 빠른 편입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산하 존 크랑코 발레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돼 그만두고 ABT에 입단한 것이 결과적으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로잔콩쿠르에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리드 앤더스 단장님을 만났어요. 당시 단장님이 “강수진을 아느냐. 너를 강수진처럼 만들고 싶다”고 말씀해 주셔서 존 크랑코 발레학교를 선택했는데요. 발레학교 입학 직전 참가했던 유스 아메리칸 그랑프리 국제 발레콩쿠르에서 우승하자 ABT가 절 눈여겨봤던 것 같아요. 발레학교에 다닌 지 반년 정도 됐을 때 단원 제안을 받았고, 부모님과 상의 끝에 입단을 결정했죠. ABT는 영국 로열발레단이나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와 비교해 정해진 스타일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안무가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 뉴욕처럼 시즌 공연이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에요. 이번 봄 시즌만 보더라도 8주 동안 11~12개의 전막발레를 올리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긴장감을 주는 이런 분위기가 제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Q. ABT 입단 후 힘들었던 경험은 없었나요?

입단 후 얼마 동안은 생지옥 같았어요. 발레단에 적응하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도움받을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발레단은 무용수 스스로 제 몫을 하길 기대했거든요. 그래서 밤새도록 ABT 레퍼토리들의 영상을 보면서 역할을 모두 외웠어요. 처음 2~3년 정도는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되돌아보면 ABT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당시엔 아예 그런 생각조차 못 했어요. 그래도 이런 시간들이 쌓인 덕분에 지금의 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ABT에서 승급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솔리스트가 된 지 1년 만에 수석무용수가 됐는데요.

ABT는 코르드발레(군무), 솔리스트, 프린시펄(주역)의 3단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파리오페라발레처럼 승급 시험이 있는 발레단도 있지만 저희는 따로 없어요. 발레단 측에서 무용수의 평상시 모습과 공연 성과를 보고 결정해요. 그래서 무용수들 중에는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며 차라리 승급 시험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제 경우 솔리스트에서 1년 만에 수석무용수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빨리 된 케이스가 없었거든요. 당시 한국 시간으로 새벽이었는데도 너무 기쁜 나머지 서울의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승급 소식을 알렸던 기억이 나네요.

Q. 그동안 출연한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또 발레리나로서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케네스 맥밀란 안무)은 제가 ABT에서 처음 주역을 맡았던 작품이라 잊을 수 없습니다. 2009년 제가 아직 코르드발레였을 때 주역으로 발탁됐거든요. 이 작품은 저작권을 가진 케네스 맥밀란 트러스트 관계자들이 직접 캐스팅 합니다. 수석무용수라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물론 당시 제가 완벽하지 않았어요. 수석무용수가 된 이후 이 작품을 자주 공연하는데, 처음 주역으로 섰을 때를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역시 〈백조의 호수〉에요. 발레리나에겐 마지막 관문 같은 작품인 〈백조의 호수〉는 표현력과 테크닉 모두 최고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프린시펄이 된 이듬해 〈백조의 호수〉에 주역으로 데뷔했을 때 비로소 ‘내가 진짜 발레리나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컨템포러리와 고전 가운데 어떤 쪽을 선호하나요? 그동안 출연했던 작품 리뷰를 보면 고전에 특히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저는 절제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고전을 더 좋아해요. 마치 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고전 발레는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무용수가 찾아낼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컨템포러리 발레는 아직 어렵게 느껴져요. 컨템포러리 발레의 경우 안무가가 새로 작품을 만들 때 제가 뮤즈가 되어서 영감을 줘야 하는 것은 물론 기본 스텝 외의 나머지 부분을 채워나가야 하잖아요. 오랫동안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작품에 출연하다 보니 이런 작업 과정이 익숙지 않은 편입니다.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제가 춤춘 〈비가 올 확률〉(리암 스칼릿 안무)은 지난해 세계 초연됐는데, 사실상 안무가의 창작 작업에 제가 처음으로 깊숙이 들어갔던 작품이에요. 예전에는 ‘이 박자에는 이 동작’처럼 음악을 박자로만 들었어요. 그래도 컨템포러리 발레를 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느낌을 음악 안에 실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Q. 컨템포러리가 어렵다고 이야기하지만 올해 ABT의 다니엘 심킨 등 수석무용수 5명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인텐시오’를 만들어 지난 7월 보스턴에서 첫 공연까지 가졌는데요. 레퍼토리가 모두 새롭게 안무된 작품이었습니다.

발레단 일정이 워낙 빡빡해서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제 또래의 주니어 프린시펄(후배 수석무용수) 가운데 심킨이 3년 전 “새로운 춤을 춰보자”며 앞장서서 계획했어요. 제작비를 마련하고 연습실 대관 및 극장 예약까지 과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만 마치 친구들끼리 놀러 가는 것처럼 재밌었어요. 아무래도 발레단 작품보다는 압박감이 적으니까요. 레퍼토리 4개 모두 신인 안무가들에게 직접 안무를 의뢰한 신작이었어요. 지난 8개월간 시간을 쪼개 연습했고 7월 첫 무대를 가졌습니다. 앞으로 미국, 아르헨티나, 프랑스 등에서 투어공연 할 예정인데 한국에서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조만간 오길 기대합니다.

Q. 최근 한국의 발레 전공 학생을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는데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품게 됐나요?

저는 발레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발레리나로서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동안 주변에서 받았던 것을 이제는 후배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었어요. 예전부터 서른 살이 되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발레 하는 아이들을 돕자고 생각했는데, 내년이면 서른이 되요. 제가 현역에 있고 네트워크가 가장 많을 때 후배들에게 도움을 줘야지요. 발레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선보이려면 해외 콩쿠르에 나가서 1~3위 안에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콩쿠르에 출전하지 않았거나 3위 안에 들지 못했다고 해서 좋은 무용수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재능 있는 아이들을 뽑아서 해외 발레단이나 발레학교에 연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요. 솔직히 재단 준비 과정에서 법적인 부분 등 온갖 문제를 해결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지만 마음은 즐겁습니다.

Q. 미국의 경우 개인이 재단을 만들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예술 기부는 어떤가요? ABT 홈페이지의 무용수 소개란을 보면 무용수마다 누구누구 후원자를 가지고 있다고 적혀 있던데요.

ABT만 보더라도 수많은 발레 애호가들로부터 기부를 받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무용수를 지정해 발레단에 기부하는 제도입니다. 제 경우 골드만삭스 파트너를 역임한 사업가 데이비드 B 포드 부부가 후원자입니다. 발레리나인 저를 좋아하기 때문에 발레단에 기부하는 거죠. 미국에선 개인이 예술에 기부하는 것이 자부심이 되고 사회적 지위를 높여준다는 인식이 있어요. 그래서 부자는 물론이고 일반인 역시 예술 후원에 적극적입니다. 저 역시 넉넉해서 재단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발레리나인 저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기부해주실 것 같아요.



  • 대관령국제음악제 〈볼레로〉

  • 〈지젤〉

  • 〈라바야데르〉

  • 〈로미오와 줄리엣〉

(사진: 아메리칸발레시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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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