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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브로드웨이에서 위안부 소재 뮤지컬 올린 김현준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칼럼니스트)
  • <컴포트 우먼>이 개막한 극장 앞에서
    〈컴포트 우먼〉이 개막한 극장 앞에서
  • 김복동 할머니와 김현준, 출연 배우들
    김복동 할머니와 김현준, 출연 배우들

지난해 ‘뮤지컬의 본고장’ 미국 뉴욕에서 위안부를 소재로 한 뮤지컬 〈컴포트 우먼(Comfort woman)〉이 공연됐다. 〈컴포트 우먼〉은 7월 31일부터 8월 10일까지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주요 극장인 세인트 클레멘츠 극장에서 18회 무대에 올라 16회 매진을 기록했다. 그동안 뉴욕에서 위안부를 다룬 영어 연극이 몇 차례 공연된 적이 있지만, 영어 뮤지컬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우와 스태프를 합한 80여 명 모두 뉴욕 현지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로 이루어졌다.
작품을 기획하고 극작 및 연출까지 맡은 것은 뉴욕시티칼리지 연극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김현준(25)이다. 뮤지컬 연출가의 꿈을 품고 뉴욕에 유학 온 그는 일본의 아베 정권이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공연이 끝난 후 그는 전미 연출가 및 안무가 협회(SDC)의 가입 허가를 받았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고 협회에서 최연소다.
〈컴포트 우먼〉 이후 그는 한국인 유학생이 미국 시민권을 따기 위해 위장결혼을 감행하는 해프닝을 그린 코믹 뮤지컬 〈그린 카드(Green Card)〉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7월 뉴욕에서 이미 쇼케이스를 가진 이 작품은 올해 8월 세인트 클레멘츠 극장에서 3주간 본 공연을 올릴 예정이다.
그는 한·일 정부 간 위안부 문제가 타결된 지난 12월 28일 때마침 서울을 방문했다. 원래는 휴식이 목표였지만 〈컴포트 우먼〉과 〈그린 카드〉의 한국 및 중국 공연 관련 미팅으로 2주간을 바쁘게 지내다가 돌아갔다.


  • 공연전문잡지 ‘플레이빌’ 표지를 장식한 <컴포트 우먼>
    공연전문잡지 ‘플레이빌’ 표지를
    장식한 〈컴포트 우먼〉

Q. 아직 어린 나이에 학생 신분으로 뮤지컬 〈컴포트 우먼〉을 오프브로드웨이 극장에 공연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 유학하는 동안 틈틈이 뮤지컬 대본을 여러 편 썼는데요.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한 〈컴포트 우먼〉이 가장 먼저 오르게 됐어요. 작곡가를 섭외하고 배우 캐스팅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제작비 마련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500석 이하의 극장에서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작품을 주로 공연하는 오프브로드웨이에서도 작품을 한 편 제작하려면 대개 50만 달러(약 5억 8000만 원)가 투입되는데요. 〈컴포트 우먼〉은 준비 단계부터 최종 공연까지 모두 합해 8만9000불(약 1억 원)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작품의 취지와 저희 열정을 보고 도와준 분들 덕분입니다. 개인 투자자와 후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제작비를 모아줬고, 세인트 클레멘츠 극장은 대관료를 매우 저렴하게 받았습니다. 또 비싸기로 유명한 타임스퀘어 전광판 광고를 원래 가격의 십 분의 일 정도로 해결했는가 하면 여러 언론에서도 소개 기사를 많이 써주셨습니다. 그리고 배우 및 스태프들과 재능기부 또는 런닝개런티(흥행 수입에 따라 돈을 주는 방식) 계약을 해서 사전 제작비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공연을 마친 뒤 투자자들과 배우들에게 많진 않지만, 돈을 줄 수 있었어요. 솔직히 2012년부터 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해 3년 만에 오프브로드웨이 무대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Q. 〈컴포트 우먼〉의 내용을 보면 다른 위안부 소재 뮤지컬과 달리 탈출극인 게 독특합니다. 어떻게 이런 내용의 스토리를 쓰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은 1941년 높은 임금을 주는 직장에 취업시켜주겠다는 일본군의 말에 속아 인도네시아로 끌려간 소녀가 주인공인데요. 그곳에서 만난 다른 위안부 소녀들과 탈출하는 내용을 그렸습니다. 상업적 장르인 뮤지컬 안에 무거운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녹여 넣을지 고민하다가 나온 것인데요. 그동안 위안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보면 일본 군인의 겁탈이나 고문 등 감정을 자극하는 등 다큐멘터리 애국주의가 많더라고요. 미국인들 대다수가 위안부 문제를 모르는 상황에서 저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작가 2명과 공동작업을 하면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했어요. 저는 이 작품을 뉴욕에 있는 한국인 관객이 아니라 철저하게 미국인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들고 홍보했습니다. 또 공연이 끝난 후 미국 관객들에게 위안부 관련 책자를 나눠주면서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저희 작품이 일종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거죠. 그런데도 공연 중에 관객들이 많이 우시더라고요.

Q. 배우 캐스팅은 어떻게 했나요? 오디션에 많은 아시아 배우들이 몰렸다고 들었습니다.

뉴욕에 와보니 아시아 배우들의 역할이 너무 부족하더라고요.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왕과 나〉 같은 작품 아니면 출연할 길이 없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컴포트 우먼〉처럼 규모가 작은 작품의 오디션에도 좋은 아시아 배우들이 많이 옵니다. 2014년 11월 저희 작품 오디션에 860여 명 몰렸는데, 한국계와 중국계 배우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일본계 배우들도 150명 가까이 지원했습니다. 일본계 배우들의 경우 과거의 역사적 잘못을 젊은 세대가 바로잡기 위해 지원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실제로 작품을 연습하는 동안 배우들 모두 위안부 문제에 전문가가 됐을 정도입니다.

Q.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일본 극우단체들의 공격은 없었나요? 미국에서 위안부 소녀상 설립과 관련해 집요하게 방해하는 단체도 적지 않았던 만큼 뮤지컬 제작도 막으려고 하지 않았나요?

작품을 준비하는 3년간 일본 극우 단체들로부터 욕설이나 협박이 담긴 메일이나 문자를 받는 것은 예사였고요. 어떤 단체는 아예 소송을 걸어 뮤지컬 제작을 방해하려고 했어요. 아무래도 송사에 휘말리면 심리적으로 위축되니까요. 하지만 방법이 없으니까 결국 소를 취하했어요. 그런데 웃기는 얘기지만 〈컴포트 우먼〉을 홍보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된 인물은 일본 아베 총리였어요. 아베 총리가 위안부를 부정하는 등 문제 발언을 할 때마다 덩달아 저희 작품이 더 주목을 받았죠.

Q. 〈컴포트 우먼〉 공연을 앞두고 당시 미국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증언하러 간 김복동 할머니와 배우들이 만난 것과 극장 앞에 3D 컴퓨터로 제작한 소녀상을 세워 화제가 됐었는데요.

공연을 3주 남겨놓은 시점에 김복동 할머니가 워싱턴DC를 방문했을 때 배우들과 함께 찾아뵈었어요. 당시 배우들이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이후에 배우들의 연기가 확실히 달라졌어요. 배우들이 자신의 캐릭터에 더 집중하는 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소녀상의 경우 〈컴포트 우먼〉에 출연한 일본계 배우 에드워드 이케구치가 제작한 것인데요. 기존의 소녀상과 달리 밝은 모습으로 노랑나비를 하늘에 띄우는 동작을 하고 있어요. 공연하는 동안 극장 앞에 세워 놨는데, 많은 사람이 작품에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Q. 〈컴포트 우먼〉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나요?

이 작품을 기획할 때부터 한국에서 꼭 공연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한국어 공연을 염두에 두고 영어 대본과 가사를 썼어요.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어색하지 않은 단어만 썼고 음절 수도 고려했죠. 현재 협의 중입니다만 내년에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국, 필리핀 등 위안부의 아픔을 겪은 나라에서 공연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특히 중국 측과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주인공을 중국인으로 바꿨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서 수락했습니다. 중국도 한국 못지않게 수많은 위안부가 고통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앞으로 이 작품을 좀 더 키워서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공연하자는 제안도 받았는데,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Q. 뮤지컬 연출가로서 첫 작품인 〈컴포트 우먼〉으로 성공적인 출발을 보여줬는데요.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사실 〈컴포트 우먼〉을 만드는 동안 위안부 얘길 가지고 돈 벌어 유명해지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반응에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위안부 이야기는 제가 뮤지컬로 만들고 싶었던 여러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는데, 운 좋게도 가장 먼저 무대에 올려진 것입니다. 그동안 〈컴포트 우먼〉을 비롯해 한국 유학생이 비자 때문에 위장 결혼하면서 겪는 일을 그린 〈그린카드〉, 이휘소 박사에서 모티브를 가져오고 한국전쟁을 시간 여행으로 풀어낸 〈시나브로〉, 1990년대 한국 갱들과 중국 갱들의 싸움을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에 담은 〈플러싱〉, 아시아 작곡가들이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담은 코미디 〈레드 도어〉(가제), 소설가 이상의 ‘날개’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미정) 등 5편을 준비했어요.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면서도 미국 관객들이 재밌어할 만한 소재들로 뮤지컬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컴포트 우먼〉에 이어 〈그린카드〉가 지난해 7월 워크숍을 거쳐 오는 7월 오프브로드웨이에 오를 예정입니다. 〈컴포트 우먼〉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린 덕에 〈그린카드〉에 대해 뉴욕 공연계에서 관심을 많이 가져 주더라고요. 한국에서도 초청 제안을 받아서 논의 중입니다.

Q.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뉴욕으로 유학 왔는데요. 뮤지컬 연출가를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머니가 뮤지컬 팬이었던 덕분에 저는 3~4살 때부터 공연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5살 때 뮤지컬 〈캣츠〉를 보고 완전히 매료됐습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춤추던 고양이들은 지금도 지울 수 없는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얼마 뒤 부모님께 〈캣츠〉 DVD를 선물 받아서 수백 번 돌려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직접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악기도 여러 개 다룰 수 있고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어서 음악적으로 자신이 있었던 것도 뮤지컬 연출가의 꿈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뮤지컬은 제겐 맹목적인 신앙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뮤지컬 연출가라는 꿈을 가진 이후 국내에서 개막하는 뮤지컬은 다 보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인기 있는 작품은 하나같이 라이선스 뮤지컬이더라고요. 한국에서 창작 뮤지컬로 성공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의문을 가졌어요. 그래서 본고장인 뉴욕에 가서 창작뮤지컬을 성공시켜 한국으로 다시 가지고 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주변 친구들과 함께 소규모 뮤지컬을 만들어 구민회관에서 공연하는 등 뮤지컬 연출가라는 꿈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프로듀서인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에게 무작정 찾아가서 조언을 듣기도 했고요. 결국 친구들이 수능 준비하는 동안 저는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던 중 작고한 전 성균관대 연극영화과 김용태 교수님이 제 열정을 보고 뉴욕시티칼리지에 추천을 해주셨습니다.

Q. 〈컴포트 우먼〉 공연 이후 유학생 신분이면서도 전미 연출가 및 안무가 협회(SDC)의 가입 허가를 받았는데요. 한국인으로는 처음이고 협회에서 최연소인데요. 앞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전미 연출가 및 안무가 협회(SDC)에서도 저 같은 경우는 유례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협회에 가입한 이후 아무래도 현지 극장이나 프로듀서들이 제 작품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앞으로 작업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는 브로드웨이에서 아시아인들이 출연하는 작품을 많이 올려서 아시아인을 대표하는 연출가가 되고 싶어요. 뉴욕에 오고 나서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아시아 창작자들이 극소수라는 것을 알았어요. 아시아 창작자들은 아시아를 소재로 한 좋은 작품을 계속 내놓지 않기 때문에 아시아 배우들의 일이 없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저는 아시아적 소재도 재미만 있다면 브로드웨이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연출가로서 이제 시작이지만 궁극적인 꿈은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권위 있는 토니상을 받고 싶어요.

Q. 미국으로 떠난 동안 한국에서 창작뮤지컬 제작 붐이 일었는데요. 이번에 잠깐 머무르는 동안 접한 한국 뮤지컬계에 대한 소감은 어떤가요?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올 생각입니다. 그래서 평소 한국 뮤지컬계 소식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공연 몇 편을 보기도 했는데요. 제가 한국 상황에 대해 얘기하는 게 다소 주제넘긴 하지만 뮤지컬의 역사가 너무 짧다 보니 배우 개런티나 제작방식 등이 아직은 합리적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워낙 한국 배우들의 가창력이 뛰어나서인지 공연이 하나의 통일성을 가지고 진행되는 게 아니라 마치 콘서트처럼 노래를 듣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한국 뮤지컬 시장과 관객에 대해서는 제가 더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 뮤지컬 <컴포트 우먼> 공연
    뮤지컬 〈컴포트 우먼〉 공연
  • <그린카드> 워크숍
    〈그린카드〉 워크숍

(사진: 디모킴 뮤지컬 공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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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6.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