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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유럽에서 더 활약하는 한국 작곡가, 류재준

김소민 (음악 칼럼니스트•한겨레신문 객원기자)
  • 〈2015 서울국제음악제〉 첼리스트 백나영과 함께
    〈2015 서울국제음악제〉 첼리스트 백나영과 함께
  • 〈2013 서울국제음악제〉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와 함께
    〈2013 서울국제음악제〉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와 함께

예술가가 자신이 생존한 시대에 세인들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은 축복이다. 뛰어난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인들로부터 외면받다가 뒤늦게야 재평가를 받거나, 그마저도 없이 외롭게 잊혀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 작곡가, 류재준

그런 관점에서라면 작곡가 류재준은 축복받은 예술가다. 유럽에서 연간 100회 이상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고, 로열 필을 비롯한 세계적인 악단들이 그의 작품을 연주해 음반을 발매할 예정이다. 폴란드 정부는 지난해 10월 자국의 문화예술 발전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이들에게 부여하는 최고의 영예, 1급 문화훈장 '글로리아 아르티스(Gloria Artis)’를 그에게 서훈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창작 활동 본거지가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위촉과 연주는 대부분 국외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우리의 작곡가’에 대해, 자국의 문화 자산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지하고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 그를 만나기 위해 작업실을 찾았다. 훈장의 무게에 짓눌리기 싫은지, 그는 수훈에 대한 축하 인사를 건네자 “상은 보통 상금이 함께 주어져서 좋은데 훈장에는 상금이 없다.”며 농담으로 운을 뗐다.

Q. 지난해 10월 폴란드 정부로부터 1급 문화훈장 ‘글로리아 아르티스’를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예술가가 다른 나라 정부로부터 최고 수준의 인정과 존경을 받은 영예로운 일인데요.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였는지요?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해온 일이 국외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사실 국내에서는 이 만큼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아니었지요.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에서 먼저 인정과 존경을 받으면 그제서야 조금씩 인정해주는 습성을 보입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의 경우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부터 이미 자신의 음악을 하고 있었거든요.

Q. 지난해 하반기에 〈현을 위한 신포니에타〉, 〈마림바 협주곡〉 등의 신작을 잇달아 세계 초연해 호평받았습니다. 현재는 어떤 곡을 쓰고 계신지요?

서울국제음악제 위촉으로 〈두 대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판타지〉를 작곡하고 있습니다. 파가니니가 한 대의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한 〈24개 카프리스〉의 주제를 풀어헤쳐 보면 굉장히 많은 것들이 숨어 있어요. 그 요소들을 가져와,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제 스타일의 음악을 만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음악적 연계라고 할 수 있겠죠. 파가니니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바이올린 음악 작곡가로서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에요. 후대의 작곡가들 중에 바이올린 음악을 작곡함에 있어 파가니니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는 없을 겁니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음악에는 원초적이고 야성적인 매력이 있어요. 그와 함께 바이올린 음악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이 곡은 서울국제음악제 개막 다음 날인 5월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SIMF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일리야 그린골츠, 백주영이 초연할 예정입니다. 이후 3월부터는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가 위촉한 〈첼로 소나타〉를 작곡해야 합니다. 저는 과거에도 노라스의 위촉으로 〈첼로 협주곡〉을 작곡한 적이 있는데, 당시 거액의 위촉료를 지불하며 자신을 위해 써달라고 했어요. 이번에는 노라스가 위촉료를 좀 더 흔쾌히 주더군요. (웃음) 이 곡은 한국에서도 올해 9월 21일에 첼리스트 김민지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연주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현재 대략 2019년까지의 작곡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

Q. 지난해 11월에는 프랑스 브르타뉴 심포니 오케스트라 초청으로 선생님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됐지요?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조선의 빛’이라는 부제 아래 프랑스와 한국 대표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행사였습니다. 브르타뷰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한국 작곡가로서 저를 초청했고요. 제 작품 중 〈바이올린 협주곡〉(지휘 서진, 바이올린 백주영, 브르타뉴 심포니 오케스트라)이 2회, 클라리넷 오중주(클라리넷 김한 등)가 1회 연주됐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과거 작곡가들의 작품이 연주됐습니다. 제 작품에 관한 강연 요청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을 굳이 말로 설명해야 할 필요를 못 느꼈고, 말로써만 이해되는 음악이라면 뭔가 잘못된 거라 여겨서입니다.

Q. 청중의 반응은 어땠나요?

주최 측에서는 “현대음악 연주회에서 이렇게 좋은 반응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이례적이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Q. 현대음악 초연에서는 연주자들이 얼마나 잘 소화해내는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작곡가가 원하는 바와 연주자들이 악보를 보고 표현해내는 바가 다를 수 있습니다. 현대음악은 연주가 엉뚱한 길로 빠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연주자가 그 곡에 대해 가지는 경험과 제대로 된 안내를 받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연주자들이 제 곡을 연주하도록 하되 그 곡이 처음 연주될 때는 제가 원하는 소리를 반드시 이끌어내려 합니다. 연주자들은 소속을 자유롭게 옮기기 때문에 어떤 악단에서든 한 번이라도 제 작품을 제대로 연주해본 적이 있다면 다른 곳에서 연주될 때 프런티어가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Q.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3월부터 협주곡 음반을 녹음하지요. 제안을 받고 녹음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2008년 〈신포니아 다 레퀴엠(Sinfonia Da Requiem)〉을 폴란드 바르샤바 베토벤 음악제에서 세계 초연했을 때 반응이 좋았던 모양이에요. 로열 필이 영국 초연을 하고 싶다고 연락해와서 2011년 런던에서 필하모니아 코러스와 함께 공연했습니다. 이후 2014년 로열 필의 자체 프로젝트로 제가 쓴 관현악곡 전곡을 녹음하고 싶다고 제안해왔어요. 로열 필 역사상 생존 작곡가의 관현악 작품 전곡 녹음을 제안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바이올린 협주곡〉을 먼저 녹음하자고 했는데, 이 곡은 낙소스에서 이미 음반이 나와서 10년간은 다른 곳에서 음반을 낼 수 없게 묶여 있어요. 그래서 〈마림바 협주곡〉과 〈첼로 협주곡〉, 그리고 서곡 〈장미의 이름〉을 먼저 녹음하게 됐습니다. 녹음은 3월에 진행되고 유럽 초연(연주 타피올라 신포니에타) 및 음반 발매는 9월에 이뤄질 예정입니다.

Q. 상반기에 또 다른 주요한 무대가 있는지요?

3월 10일에 핀란드 시벨리우스홀에서 열리는 지휘자 오코 카무의 70세 기념 연주회에서 카무의 지휘,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의 협연, 라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저의 〈첼로협주곡〉이 연주됩니다. 3차 개정판으로는 세계 초연입니다. 오코 카무는 핀란드에서 국민 영웅으로 대접받는 위대한 지휘자입니다. 핀란드 출신의 훌륭한 작곡가들이 많은데,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연에서 제 곡을 선택해줘 기쁩니다.

Q. 로열 필 같은 유명 악단과 오코 카무 같은 거장 지휘자의 선택을 받는 것은 모든 작곡가의 꿈일 듯합니다. 비결은 뭔가요?

반대로 ‘선택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작곡가가 아닌 연주자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연주하기에 불편한 곡은 선택되지 않을 겁니다. 즉, 기술적으로 연주에 문제가 되는 부분이 없어야 하고 파트보까지 완벽히 정리돼 있어야 합니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경우 리허설 횟수가 증가하면, 단원들에 지급하는 임금 등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연습실 리허설 1번, 드레스 리허설 1번 정도로 녹음 전 연습이 다 끝납니다. 그러곤 곧장 녹음에 들어가는 거죠. 제일 좋은 음악은 작곡가 자신이 들어서 좋을 뿐 아니라, 연주자들이 행복한 음악이라고 봅니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되는 작품이라면 청중 역시 좋아하리라 생각합니다. 제 경우 최근 〈마림바 협주곡〉을 쓰기 위해 마림바 연주자에게 악기를 빌려다 놓고 직접 배웠습니다. CD 200장, 악보 200개가량을 가져와 3개월간 그것만 봤고요. 악기에 대해 모르면서 곡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또한, 작곡은 작곡가 혼자서 하는 게 아닙니다. 연주자에게 악기에 관해 궁금한 것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도한 효과가 나는지 확인하고, 의견을 들어보는 일이 매우 힘들지만, 꼭 필요합니다.
또한, 음반 사업은 전적으로 비즈니스 관점에서 다뤄집니다. 그들이 녹음할 곡을 선택하기 전에는 그 음반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판단이 섰을 거예요. 현대음악의 경우 한 오케스트라에서 먼저 녹음하면 향후 5~10년간 다른 오케스트라가 그 곡으로 음반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콘텐츠가 마음에 들면 선점하려는 의도가 있을 겁니다.

Q. 오는 9월 핀란드 타피올라 신포니에타가 〈마림바 협주곡〉을 위촉 유럽 초연합니다. 보통 연주 이후에 수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같은 작품도 시대별로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데요. 작년 서울에서의 세계 초연 당시와 다른 버전인가요?

지난번 세계 초연 이후 수정을 끝낸 뒤 첫 번째 에디션을 출판했습니다. 보다 여러 곳에서 연주되려면 악보 출판이 이뤄져야 하는데, 출판 전의 곡 수정 작업에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또한,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 파트를 피아노로 편곡한 악보가 없으면 리허설이 불편하기 때문에, 현재 피아노 편곡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Q. 얼마 전에는 국내에서 작곡 마스터클래스도 여셨습니다. 대부분의 국내 음악학교들이 작곡을 도제 시스템하에서 교육하기 때문에 다른 작곡가에게 배우는 마스터 클래스는 드문데요.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제게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을 비공개로 지도한 적은 있지만, 제가 한국을 떠나 있는 일이 잦아서 만남이 여의치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공개적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어느 날 문득 젊은 작곡가들과 작품을 공유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곡가에게는 자기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매우 막막하고 힘든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이번 마스터클래스에 학생만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졸업생들, 기성 작곡가, 대학에서 작곡을 가르치는 강사들도 있었어요. 모두 자신의 작품을 다른 이들 앞에서 보인 뒤 의견을 듣고, 남들의 곡에 대해 의견도 제시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 권혁주, 첼로 연주자 김민지, 마림바 연주자 한문경, 김은혜 등이 참석하여 참가자들의 곡에서 연주 상 불가능한 부분이 있으면 왜 그런지 눈앞에서 보여줬고요. 학교에서 경험하기는 어려운 것들이죠.

Q. 끝으로 후배 작곡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한 가지는 실험과 실제 연주를 구분해야 한다는 겁니다. 현대적인 기법을 실험해볼 수는 있지요. 그러나 현실적인 연주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반드시 쇠막대로 피아노 현을 긁어야만 하는가’하는 것이죠. 악기를 망가뜨리는 주법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데 과잉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현악기의 경우 연주자가 천문학적인 가격의 고악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에게 ‘활 등으로 현을 때려서 연주하라’고 하면 그 곡을 연주하려 할까요?
다른 한 가지는, 다른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을 들어보라는 겁니다. 많은 젊은 작곡가들에게서 남의 곡을 듣기보다 자기 곡을 쓰고만 싶어 하는 경향이 눈에 띕니다. 음악을 듣는 것은 작곡가 아니 음악가로서의 기본이죠. 자신은 남의 곡을 안 들으면서, 남들더러 내 곡을 들어달라고 하는 것도 놀부 심보죠. 서로의 곡을 전심전력으로 들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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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