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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일본 신국립극장에서 재일코리안 3부작 올리는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

장지영(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 <야끼니꾸 드래곤> (2016)
    〈야끼니꾸 드래곤〉 (2016)
  • <예를 들어 들에 피는 꽃처럼> (2007)
    〈예를 들어 들에 피는 꽃처럼〉 (2007)
  • <파마야 스미레> (2012)
    〈파마야 스미레〉 (2012)

                                                                  ⓒ谷古宇正彦


일본 신국립극장이 올해 재일교포 2.5세 극작가 겸 연출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정의신의 작품 세 편을 잇달아 올리는 ‘정의신 3부작’을 기획했다. 일본에서 ‘자이니치’로 불리는 재일코리안(한국 및 조선 국적을 모두 포함)을 소재로 정의신이 그동안 신국립극장에서 선보였던 작품들, 즉 2008년과 2011년 공연된 〈야끼니꾸 드래곤〉과 2007년 초연된 〈예를 들어 들에 피는 꽃처럼〉 그리고 2012년 초연된 〈파마야 스미레〉를 3~6월 공연하는 이례적인 기획이다. 세 편 가운데 〈예를 들어 들에 피는 꽃처럼〉은 일본 여성 연출가 스즈키 유미가 연출을 맡았고, 나머지 2편은 정의신이 직접 연출한다. 최근 한일관계가 좋지 않고 한류 붐은커녕 헤이트 스피치가 판치는 일본에서 공연계 최고 권위를 가진 신국립극장이 이번 기획을 선보인 것은 일본 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 (사진 제공: 신국립극장)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
    (사진 제공: 신국립극장)

정의신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간사이 지방 히메지 출신인 그는 현재 한국 연극계에서 가장 친숙한 일본(어) 극작가 겸 연출가다. 매년 그가 쓰거나 연출한 작품이 2~3편 이상 공연될 정도다. 특히 그는 〈야끼니꾸 드래곤〉 등 여러 작품을 통해 한국에서 관심 밖이었던 재일 한국인 문제를 환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지난 3월 7일 ‘정의신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야끼니꾸 드래곤〉을 막 무대에 올린 그를 도쿄 신국립극장에서 만났다.

Q. 일본 신국립극장에서 이번에 〈야끼니꾸 드래곤(용길네 곱창집)〉(3월 7~27일), 〈예를 들어 들에 피는 꽃처럼〉(4월 6~24일) 〈파마야 스미래(제비꽃 미용실)〉(5월 17일~6월 5일) 등 소위 재일코리안 3부작을 한꺼번에 무대에 올리게 됐는데요. ‘정의신 3부작'을 올리는 소감에 대해 이야기해 주십시오.

내가 신국립극장에서 지난 몇 년간 올렸던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덕분에 3년 전쯤 미야타 케이코 신국립극장 연극 부문 예술감독이 그동안 올렸던 작품 3편을 묶어서 한꺼번에 공연하면 좋겠다고 제안하면서 이번 기획이 이뤄졌습니다. 한국에서도 공연됐던 〈야끼니꾸 드래곤〉은 1970년대 초반, 〈예를 들어 들에 피는 꽃처럼〉은 1950년대, 〈파마야 스미레〉는 1960년대를 다루고 있어서 일본 역사교과서에는 실려 있지 않은 이름없는 재일코리안의 삶을 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부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일본에서 재일코리안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데다 세대를 거듭하며 귀화 등으로 재일코리안의 수(현재 30만 명)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왜 일본에 살 수밖에 없었는지 일본인에게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Q. 최근 한일관계도 좋지 않은 데다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를 자주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신국립극장이 재일코리안 소재의 ‘정의신 3부작’을 공연하는 것은 정말 특별하고 소중한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신국립극장이 재일코리안의 반일(反日)연극을 상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극우주의자의 주장을 읽기도 했는데요. 이번에 3부작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부담감은 없었나요?

신국립극장은 모르겠지만 나 자신은 이번 3부작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부담을 느낀 것은 없습니다. 게다가 내 작품들은 반일연극이 아닙니다. 일본 사회에서 소외됐던 서민들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요즘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들 작품을 공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미야타 케이코 감독은 “인터넷상의 그런 의견이 일부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 극장과 스태프는 ‘공연은 정치적 활동이 아니라 예술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기획할 때와 공연하는 지금 작품과 관련해 어떤 압력이나 비판을 받은 적도 없고요. 오히려 〈야끼니꾸 드래곤〉이 이번에 3번째 공연이지만 개막 전에 이미 티켓이 매진된 상태입니다. 개막 첫날부터 극장 앞에 취소되는 티켓을 구하기 위해 줄이 매우 길게 늘어섰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많은 일본인이 이 작품을 기다리고 있으며 공연을 본 후 깊은 감동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라고 강조했다.)


  • ‘정의신 3부작’ 가운데 처음 무대에 올라간 <야끼니꾸 드래곤> ⓒ谷古宇正彦
    ‘정의신 3부작’ 가운데 처음 무대에 올라간 〈야끼니꾸 드래곤〉 ⓒ谷古宇正彦


Q. 재일코리안을 소재로 한 연극을 쓰게 된 것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동기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는데요. 초창기 희곡을 보면 사회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는데,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재일코리안을 소재로 한 작품을 쓰게 됐나요?

내 가족과 주변의 소외당한 사람들 이야기를 조금씩 희곡 안에 넣긴 했지만 작정하고 재일코리안 문제를 다룬 것은 〈야끼니꾸 드래곤〉이 처음이었습니다. 3부작 가운데 〈예를 들어 들에 피는 꽃처럼〉이 〈야끼니꾸 드래곤〉보다 먼저 쓰긴 했지만, 솔직히 재일코리안 문제를 다루려고 했다기보다는 신국립극장이 당시 기획한 ‘3개의 비극-그리스로부터’의 일환으로 프랑스 작가 라신의 〈안드로마케〉(1667년)를 한일관계에 빗대어 쓴 것이었습니다. 헥토르의 부인인 안드로마케를 비롯해 트로이 여인들이 트로이전쟁 후 그리스에 끌려갔는데, 규슈의 댄스홀을 배경으로 조선에서 일본에 온 뒤 돌아가지 못하는 여급 등의 이야기를 담았죠. 이에 비해 간사이 지방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용길 가족의 모습을 그린 〈야끼니꾸 드래곤〉은 당시 재일코리안이 겪던 학교 왕따, 북송, 2세들의 직업 문제 등 우리 가족을 비롯해 재일코리안의 삶을 깊이 취재한 끝에 쓴 것입니다. 나는 연극도 기록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 작품을 통해 재일코리안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Q. 2008년 신국립극장 주도로 한국 예술의전당과 공동제작된 〈야끼니꾸 드래곤〉은 당시 양국에서 연극상을 휩쓸었고, 주역을 맡았던 신철진과 고수희는 한국 배우로는 처음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요미우리 연극상 남녀 주연상을 휩쓸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2011년 재공연에서도 초연의 성과 때문에 한일 양국에서 티켓 구하기 전쟁이 벌어졌을 정도였는데요. 그래서 이번에 일본에서만 3부작을 공연하는 것에 대해 한국 연극 팬들이 많이 아쉬워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3부작 가운데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무엇입니까?

이번에 배우들이 완전히 바뀐 〈야끼니꾸 드래곤〉도 한국에서 다시 공연하면 좋겠지만요. 굳이 한 작품을 꼽으라면 〈파마야 스미레〉입니다. 예전에 히라야마 히데유키 감독의 영화 〈신씨, 탄광 마을의 세레나데〉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규수 지방의 탄광 일대를 오랫동안 취재했습니다. 그때 일제 시대 탄광으로 대거 끌려왔던 조선 노동자들이 여러 이유로 해방된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남았다가 60년대 폐광 이후 공항 건설 등 간사이 지방의 대형 공사에 노동력으로 일부 유입되는 흐름을 포착할 수 있었죠. 규수 지역 탄광을 배경으로 재일코리안 가족을 다룬 〈파마야 스미레〉는 〈야끼니꾸 드래곤〉의 전편에 해당하는 셈이지요.

Q. 재일코리안은 한국과 일본의 경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과거 인터뷰에서 재일코리안에 대해 버려진 사람들이란 뜻의 ‘기민(棄民)’이라고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재일코리안의 존재가 엄연히 있는데도 한국이나 일본 모두 모른 척했습니다. 1965년 한일 협정을 맺을 때 보호받아야 할 대상에서 제외됐죠. 재일코리안은 양쪽에서 모두 버림받았던 거죠. 2012년 한국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재일한국인 등 재외국민의 선거권이 인정되긴 했지만 그 전까지 양국에서 선거권을 비롯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법적으로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Q. 앞으로 재일코리안에 대해 쓰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그동안 재일코리안을 소재로 쓴 작품은 7~8편 됩니다. 사실 재일코리안보다는 내 가족과 주변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요. 앞으로 새로운 작품을 쓴다면 일본에 처음 왔던 내 조부모님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내 할아버지는 일본에 노동자로 왔다가 일제 시대 헌병으로 나갔던 내 아버지 때문에 해방 이후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죠. 이번에 신국립극장에서 기획한 3부작의 앞 이야기에 해당합니다.

Q. 최근 재일코리안의 삶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도 한국에서 여러 편 발표했습니다. 〈적도 아래의 맥베스〉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나에게 불의 전차를〉이 대표적인데, 하나같이 인간애와 화해를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일본 제국주의 피해를 입은 한국 입장에서는 쉽게 화해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내가 한일 양국 사이에 존재하는 만큼 두 나라가 화해하기를 늘 바랍니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화해를 일부러 의도하기보다는 관객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할 뿐입니다. 내가 이런 작품을 쓴 것은 재일코리안들처럼 역사의 거대한 파도 속에 어쩔 수 없이 휩쓸려가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어요.

Q. 2006년 〈행인두부〉와 2007년 〈겨울 해바라기〉에 이어 2008년 〈야끼니꾸 드래곤〉이 한국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은 이후 거의 매년 2~3편의 작품이 공연될 만큼 한국에서 인기 있는데요. 자신의 작품이 이렇게 한국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인기의 이유를 나 자신에게 물어보니 대답하기가 어렵네요. 솔직히 내 작품이 왜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지 궁금해요. 다만 내가 늘 연극의 소재로 삼는 것이 가족의 이야기인데,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를 떠나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야끼니꾸 드래곤〉만 하더라도 처음 공연할 때는 재일코리안 가족을 소재로 한 특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미국과 호주 등에서 이 작품이 리딩 공연으로 읽혀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보면서 이 이야기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세계 각지의 난민이나 이민자들과도 일맥 소통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 <야끼니꾸 드래곤>의 남자 주인공 하성광 배우(용길 역)와 정의신
    〈야끼니꾸 드래곤〉의 남자 주인공 하성광 배우(용길 역)와 정의신

Q. 한일 양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한국에서 언어 문제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습니까? 아무래도 일본어에 비해 뜻을 확실히 전달하기 어려웠을 텐데요.

내 가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배우긴 했지만, 귀로 외운 단어에서 조금 나아진 정도죠. 그렇지만 한국에서 즐겁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저를 신뢰하고 우정을 나눈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한국 연극계에서 저를 단순히 외국인 연출가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요.

Q. 한국과 일본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각각의 특징이나 차이점을 느끼나요?

어느 나라를 가든 배우는 배우예요. 일반인과 구별되는 배우만의 아우라가 있어요. 굳이 양국 배우를 비교하자면 한국 배우들은 에너지가 강한 편이라고 소문나 있는데요. 다만 제가 느끼기엔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연극 교육을 받은 한국 배우들의 경우 머릿속에서 계산해서 연기를 하기 때문에 감정을 단계적으로 밟아 간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히려 일본 배우들이 연극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않아서인지 폭발적으로 감정 연기를 끌어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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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6.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