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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교류

극지 아라온 호 레지던시 승선기

이나미 (소설가)
  • 북극해의 모습
    북극해의 모습
  • 아라온 호 전경
    아라온 호 전경

원래 아라온 호 북극 탐사 1, 2항차를 모두 참가할 예정이었다.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경유해 놈 항구에서 헬기를 타는 까닭에 필히 미국 B1/B2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출발 예정일보다 비자가 하루 늦게 나왔다. 아뿔싸! 부득이 1항차를 포기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8월 하순 2항차에 합류했다.
면적이 무려 한반도 100배라는 얼음 왕국, 지구 상 마지막 청정지역, 세계지도의 정 중앙, 지구 상 꼭짓점에 널찍이 펼쳐진 북극권. 북극곰과 거대한 해빙(海氷), 해양 포유동물들과 순록, 사향소, 북극여우, 늑대들이 먹이사슬을 이루며 살고 있고 극야(極夜) 때면 오로라가 출현, 하늘에 거대한 빛의 주렴이 드리워진다는 북극. 시애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만 해도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북극에 대해 상상만 할 뿐이었다.
시애틀과 앵커리지 호텔에서 각각 1박 후 비행기 탈 때마다 옷차림이 점점 두툼해졌다. 아직 8월 하순인데 북극권을 향해 거슬러 올라갈수록 기온차를 피부로 절감하다 알래스카 최북단 항구 배로우에 도착하자 절정에 다다랐다. 아직 여름이고 백야라는데 음울하게 내려앉은 하늘에선 싸라기눈이 내려 가져간 겨울옷을 죄 껴입어도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서울을 떠난 지 3박 4일 만에 드디어 북위 66.5도 너머 북극권에 도착한 것이다.
앵커리지에서 배로우까지는 직행 거리 2시간도 채 안 걸리는데 알래스카의 몇몇 도시를 경유하느라 무려 6시간 가까이 걸렸다. 완행버스는 타본 적 있지만 완행비행기는 난생처음 타본 것이다. 알래스카의 도로나 철도가 여의치 않아 경비행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보니 크고 작은 도시를 그물망처럼 이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급유하며 승객을 기다렸다 태우기를 반복했다. 중앙아시아, 극동 아시아 땅 넓은 러시아 구석구석 다녀봤지만 완행비행기는 처음이라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시골 간이역 느낌의 배로우 공항은 컨베이어 벨트도 수동이라 눈길을 끌었다. 황색 피부에 눈매가 찢어지고 광대뼈가 튀어나와 몽골인을 연상케 하는 이누이트 족이 마치 뻐꾸기시계에서 뻐꾸기가 튀어나오듯 짐 가방을 일일이 손으로 내주었다.
이윽고 헬기장, 잠자리처럼 가볍고 날렵한 4인승 헬리콥터를 타려니 처음엔 두려웠는데 막상 타니 80년대식 케이블카 같아 이내 마음이 안정됐다. 이륙한지 2분쯤 됐을까? 항구 앞바다에 정박한 쇄빙 연구선 아라온 호가 한눈에 들어왔다. 빨간 몸체에 하얀 선실, 노란 크레인 연구 장비가 선명한 아라온 호의 헬기 데크에 내리는 순간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아 드디어 북극에 왔구나…’ 자랑스러운 우리 쇄빙 연구선 아라온 호 승선 기회가 주어진 것에 새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쇄빙선의 최첨단 연구 장비와 시설을 안내받는 선상 투어를 마치고 저녁 식사 후 한데 모여 자기소개 겸 탐사 연구 주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회가 있었다. 1항차는 해빙 구역을 찾아다니며 얼음 위에 내려 연구 작업을 하는 게 주가 되었다면, 2항차는 얼음을 피해 캐나다 영해인 보퍼트 해역에서 해저 지층 구조와 해저 지형, 가스하이드레이트 구조를 탐사하는 지구물리, 지층과 해양 대기에서의 메탄 분출과 순환 연구, 해양 생물에서 유용한 자원을 채집하는 바이오 분야 연구를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해빙을 피해 다닌다는 건 결국 북극곰을 볼 기회가 없다는 걸 의미해 적잖이 실망스러웠지만 어쩔 도리는 없었다.
드디어 출항, 끝없이 출렁이는 짙고 푸른 바다, 하늘, 구름……. 선창 밖 풍경은 매일 똑같지만 유일하게 변화무쌍한 건 구름, 내내 구름이 화두였다. 청정지역이라 하늘을 수놓은 구름은 그야말로 갖가지 형상과 빛깔로 하루에도 몇 차례 변했다. 북극해 역시 남다르게 느껴졌다. 공자 왈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보며, 시간은 강물과도 같아 밤이나 낮이나 멈추지 않는다며 세월 유수를 탄식함과 동시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한 바 있다. 청록빛 잉크를 쏟아부은 듯, 악어거북 등처럼 삐죽삐죽 솟아오른 물무늬가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봤던 알래스카의 크고 작은 산맥의 축소판 같고…, 바람이 거세면 수천수만의 백파(白波)가 마치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 같아 헬기 데크나 선교에서 수시로 바다를 응시했다. 난간 하나 사이로 생과 사가 존재하는구나 싶게 위협적으로 따라붙는 짙푸른 바다 역시 또 다른 화두였다.     
캐나다 영해로 들어서는 순간 선내 방송에서 한 시간 조정된다는 안내와 동시에 배 안의 모든 벽시계가 한 시간 빨라졌다. 어라? 순식간에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이었지만 3주 뒤 탐사 마치고 놈 항구로 돌아올 때 내 인생에서 유예된 한 시간을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 자위했다.
보퍼트 해역의 연구 정점에 도착하자 다중빔 해저 측심기며 천부 영상 탐지기, 수중 음향 탐지기 등이 조율한 순서에 의해 가동되면서 과학자들과 연구원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하루 3교대, 분초를 다퉈가며 시료를 채취, 분석하고, 해저 지형이 그려지는 컴퓨터 모니터를 24시간 관찰하고, 다중 탄성파 탐사 내내 에어건은 잘 터지는지, 테일 부이는 잘 따라오는지…. 저마다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운 좋게 오로라도 관측했다. 초저녁부터 구름 한 점 없어서 오로라를 볼 가능성이 있다던 항해사의 말에 내심 기대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늘에 장밋빛, 배춧빛 거대한 주렴이 늘어지는가 싶더니 빛의 띠는 왕복달리기를 하듯 하늘을 가로지르거나 춤추며 교란작전을 폈다. 거대한 빛의 커튼이 횃불처럼 타오르며 한바탕 군무를 추고 사그라졌지만 아쉬운 맘에 고개가 떨어져라 하늘만 바라봤다. 오로라가 사라진 반대편 하늘에 백야의 붉은 노을기가 엷게 남아있었다. 백야와 극야의 교차 시점에 그토록 휘황한 오로라를 본 건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탐사 도중 캐나다 측 연구선 아문젠 호와 상호 50km 이내에는 탐사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에 따라 오후 한나절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선장님과 수석 과학자의 배려로 유빙 지역에 들어갔다. 거대한 유빙들이 서서히 떠내려 오다 배에 부딪히면 쿵쿵 적잖은 충격이 가해졌다. 나는 선수(船首)에 매달려 다년빙과 1년빙을 관찰했는데 얼음은 켜켜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얼음 나이테에 따라 짙은 수박색, 에메랄드빛, 옥빛이라 평소 검푸른 줄만 알았던 바다 물빛이 저리도 아름답구나…… 빨려들 것 같았다.       
사흘간 폭풍으로 모든 작업이 중단된 가운데 함박눈, 진눈깨비가 몰아치는 성난 바다에서 롤링과 피칭을 거듭하며 의연하게 전진하는 아라온 호에게 맘속으로 경의를 표했다. 끝으로 보퍼트가 내게 준 선물은 북극고래였다. 다중 채널 탄성파 탐사 도중 선교에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던 나는, 선수 우현 바로 아래까지 접근한 고래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렸다. 햇빛에 반사돼 짙은 브라운 톤의 등을 드러낸 고래는 거대한 잠수함 같았는데 MMO(Marine mammal observer) 여성 생물학자 말로 2살쯤 된 아기고래란다. 다 자란 어미는 무게가 무려 100톤, 몸길이 18~19m라니 얼마나 클지 상상이 안 된다.
고래를 목격한 후로 북극해에 대한 내 인식은 또 달라졌다. 저 깊고 푸른 물속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가. 엄청난 동·식물 플랑크톤과 물고기, 해양 포유동물들…….
그러나 지금 전인미답의 북극이 병들어 신음 중이며 시간이 많지 않다고 세계 해양 과학자들은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다. 북극해는 지구의 열과 이산화탄소의 중요한 저장고라서 인위적으로 혹은 자연적으로 기후 변화를 조절할 수 있는 완충 지역이자 에어컨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한 해양 과학자는 북극을 지구를 위한 카나리아에 비유했다. 광부들이 갱도에서 산소 부족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척도로 카나리아 새를 이용하는 데서 비롯된 말일 게다.
매년 폭설과 한파, 폭염 등 이상 기후로 고생하면서도 이러한 현상들을 방관하다가 미래 후손들이 어떤 재앙을 겪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이제라도 심각성을 깨닫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만이 북극의 눈물을 닦아주고 나아가 건강한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길일 것이다. 


  • 아라온 호에 승선중인 필자
    아라온 호에 승선중인 필자
  • 아라온 호에서 찍은 오로라 ⓒ이종서
    아라온 호에서 찍은 오로라 ⓒ이종서
아르코로고

[기사입력 : 201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