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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교류

게르 투 게르
자연이 절이다

강석경 (소설가)
  • 고비사막의 불타는 절벽 풍경
    고비사막의 불타는 절벽 풍경
  • 유목민 부부가 선물한 전통복장 델을 입고
    유목민 부부가 선물한 전통복장 델을 입고

몽골은 1991년 소련의 붕괴로 공화국이 되기 전까지 20세기 내내 외부 세계와 단절돼 있었다. 나 같은 한국인에겐 어릴 때부터 들어온 몽고반점, 몽고간장 등의 이름으로 몽골이 기억에 새겨져 있다. 그것이 내 무의식에 끈처럼 연결되었나 보다. 한몽 수교 뒤로 몽골이란 이름을 들으면 머리가 상상으로 부풀었다. 10년 전 몽골서 흉노고분군을 발굴했던 고고학도가 나에게 몽골에 오라고 한 적이 있었으나 사정이 생겨서 좋은 기회를 놓쳐야 했다. 언젠가 꼭 몽골을 가리라 했는데 이제야 여기 첫발을 디뎠다. 원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신청하여 지원을 받았다.

울란바토르는 서울처럼 수많은 외국 상호들이 가득한 국적불명의 도시다. 하긴 중심가에 이국적인 복장의 마르코 폴로 동상이 한 손에 책을 들고 서 있으니 쿠빌라이칸 시대의 국제도시를 재현하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오직 칭기즈칸을 정체성으로 하여 공항 이름부터 많은 건물 이름에 붙어있고 2만 투그릭에서부터 5백 투그릭까지 거의 모든 지폐에 칭기즈칸 초상이 박혀있다.
울란바토르에 온 지 일주일이 되자 박물관도 거의 보고 흥미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통역 안내를 맡은 코디네이터에게 이틀간 키릴 문자를 배웠지만 가르치는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진도는 더 나가지 않았다. 울란바토르에 와서 제일 많이 본 것은 한 건물 건너 붙어있는 KARAOKE 상호. 한국에서도 내 발로 노래방에 간 적이 없으니 무엇을 할까.  
나는 탈출하듯 일주일간 고비사막 투어를 다녀왔다. 갑옷처럼 가시를 두른 고슴도치를, 미어캣처럼 두 발을 들고 서서 망을 보는 작은 동물도 처음 보았다. 밤마다 은하수 아래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헤아리고, 새벽에 일어나 게르 밖으로 나서면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막이 원초의 땅처럼 펼쳐지는 감동을 맛보았다. 고비에서 이 모든 것을 보고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니 아파트와 매연이 가득한 도시가 괴물 같았다. 영혼이 마르는 것 같았고 이 무미한 도시를 떠나 동방박사처럼 빛을 찾아 나서고 싶었다.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은 깨닫기 위해서가 아닌가.

문득 가이드북에서 본 ‘게르 투 게르’가 생각났다. 유목민의 집에서 거주하며 몽골 문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는 프로그램. 이렇게 돌파구를 찾았다. 울란바토르에서 버스를 타고 5시간 뒤 샨사르에 도착, ‘게르 투 게르’서 보내준 차로 길 아닌 초원으로 들어서니 이제야 제 길로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트였다. 30~40분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다가 군데군데 몇 채의 게르를 지나자 낡은 차는 초록 지붕의 목조 가옥 앞에 멈추어 섰다. 부속 건물 같은 작은 게르 한 채도 가까이 있었다. 게르가 있는 동편으로는 둔덕같이 낮은 야산이 솟아있고 반대쪽으로는 야트막한 흙산이 초원을 감싸고 있었다. 집 뒤로 멀리 한 채의 게르와 말우리가 있을 뿐 이 집 앞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더 이상 민가도 길도 없을 듯했다.
안경을 쓴 여주인이 손님을 맞는데 건강하고 활달해 보이는 모습이 유목민이라기보다 한국 아파트의 이웃처럼 세련되고 친숙한 인상이었다. 실내에 들어서니 주황색 바탕에 문양이 있는 유목민들의 전형적인 반닫이가 한가운데에 놓여있고 그 위에 불단을 만들어 불상과 탕가 엽서들을 유리 액자 속에 넣어두었다. 옆의 반닫이 위엔 거울과 약간의 화장품, 딸인 듯한 젊은 여성의 독사진이 놓여있었다. 한국의 의대에 유학 중인 예비 의사 막내딸이라고 했다.  
나는 게르가 아니라 거실 겸 방인 이곳에 머물렀다. 집 앞에 태양열 장치가 되어있어 휴대폰을 충전시키고, 날이 저물자 희미한 불이 나마 전등을 켰다. 오지에 사는 유목민들도 태양열을 이용해 TV를 보며 세상과 소통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날이 어두워서 돌아온 바깥주인 작드더르즈씨는 마르고 키가 크며 선량해 보여서 한눈에 호감이 갔다. 그는 손님에게 반가움을 표하느라 몽골어로 말을 걸며 유목민의 비상식량인 튀긴 빵을 수테차에 적셔 먹었다. 그것이 저녁식사였다. 먹어야 할 것만 먹는 군더더기 없는 소박한 식사를 보니 상이 미어져라 차려놓고 버리는 한정식의 낭비가 반생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슴푸레한 빛 아래서 하루의 양식에 감사하며 식사하는 그의 모습이 성실하게 살아온 자의 초상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6시 40분. 소 떼가 있는 곳에선 어느새 부부가 나와서 소젖을 짜고 있었다. 낡은 델을 작업복으로 입고 소젖을 짜는데, 내가 해보려 하자 자리를 내주었다. 낮은 의자에 앉아 소 젖꼭지를 찾아 엄지와 검지로 잡으니 미지근한 살의 촉감이 낯설었다. 소젖 짜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수랭은 아침에 끓인 첫 우유를 붓다의 불단에 올렸다. 으름(버터)과 타락(요구르트)과 뱌슬락(치즈)을 만드는 신성한 흰 우유를. 두 손 모아 붓다에게 경배하고 이어 국자에 우유를 담아 밖으로 나갔다. 수랭은 아침 해를 향해 초원에 서더니 선서하듯 왼손을 올려 들고 입속말로 기도를 시작했다. 천지에 무사를 비는 기도이리라. 하늘의 천신 탱게르, 대지의 지모신 에트겡에흐께 하루도 빠짐없이 구하는 자비와 축복, 오늘은 맑으나 내일은 천둥이 칠지도 모르는데 사랑하는 가족과 가축들을 보살펴 주십사고.  
기도가 끝나자 오른손에 들고 있던 국자의 우유를 허공에 뿌렸다. 신성한 우유를 바치며 만물을 달래는 것이다. 몽골인의 샤머니즘은 자연에 대한 경배라 자연이 곧 절이었다. 길을 가다가 외딴곳에 세워진 푸른 천이 감긴 오보는 이정표 역할도 하는데, 그 아래 쌓인 돌무더기는 모두의 염원이 담겨있어 십자가나 어떤 종교의 표식보다 감동을 주었다.
점심으로 보즈(찐만두)를 만든다고 부엌에서 할머니와 만두를 빚는 수랭의 손이 눈을 끌었다. 수랭의 손가락을 펴보니 손마디가 울퉁불퉁하고 손가락도 휘어져 있었다. 관절염 같았다. “도우터, 메디신”하는 걸 보니 딸이 약을 보내준다는 말이었다. 가슴이 찡했다. 그날 어스름이 깔리는 초원에서 세 아이를 키운 초로의 여인이 사명인 듯 소젖 짜는 광경은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기도하는 농부보다 더 성스러웠다.

9월에도 낮엔 무덥지만 밤이 되면 열린 창으로 바람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겨울이 다가오는 소리인지 모른다. 8월에도 눈이 내린 곳이 있다던데. 일찍 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살그머니 문밖으로 나서니 밤하늘에 별들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낮에는 태양에게 겸손하게 자리를 내주었지만 만물이 꿈꾸는 밤은 그들의 차지였다. 별자리는 더 이상 찾지 않고 나는 홀로 밤의 세계에 초대된 듯 황홀하게 은하수를 들여 마셨다. 자신의 소우주에 자족하여 몽골의 밤하늘을 누비지 못한 사람들을 가엽게 여기리라.

나는 부부를 따라 유목민의 게르 두 곳을 방문했다. 거기서 발효된 말젖 아이락을 맛보았다. 알코올도수가 있어 먹지 않으려 했으나 유목민이 권하면 거절하지 말라고 교육받았다. 약간 시큼하지만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두 살짜리 아이는 아버지가 주는 아이락 한 사발을 단숨에 마셨다. 몸에 좋은 온갖 천연유제품을 먹으니 유목민 아이들은 거의가 우량아고 몽골 여자들도 체격이 좋다.
전날 방문한 유목민은 세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갓 20대가 된 둘째 아들이 전통복장 델에 긴 장대를 쥐고 말을 탄 채 들판으로 양을 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늠름하여 내가 젊은 여자라면 반했을 것 같았다. 나도 유목민으로 태어났다면 저 자연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리라. 공부를 하지 않으면 어떤가. 엘리트가 되는 것이 최상은 아니다. 아르항가이의 유목민 게르에서 일주일 머물 때는 총명한 네 살짜리 뭉흐자야와 놀면서 시간을 잊었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유목민이 살아가는 원천은 가족이었다. 어여쁜 뭉흐자야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에게 초원을 물려주기 위해. 몽골의 허허벌판에선 명예도 권력도 무용하다.
그날 7시가 넘어 작드더르즈 씨는 나를 차에 태워 여러 곳을 보여주었다. 구불구불 산길을 넘어 차를 세우니 양우리와 창고 같은 작은 건물이 안쪽에 있었다. “윈터 캠프” 유목민들은 양과 염소의 목초지를 따라 철마다 거처를 옮겨 다닌다. 내가 머물고 있는 그들의 여름 집에서 20여 분 걸어가면 야산 아래 스프링 캠프가 있다. 산 위의 이곳은 추운 겨울에 양을 돌보며 지낼 곳이다. 다른 사람이 터를 잡은 곳이 아니라면 어디든 게르를 세워 살 수 있는 유목민들. 쿠빌라이 황제만 여름 궁전 겨울 궁전을 가진 것이 아니다. 무소유의 자유야말로 유목민의 특권이 아닌가.
지역의 자연환경 파수꾼이기도 한 작드더르즈 씨가 그날 내게 보여주려고 한 것은 특별한 것이었다. 산을 넘어 다시 평원을 달리니 고원이 멀리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둔덕처럼 솟았으나 평평한 정상에는 하얀 표석이 한 점 꽂혀 있었다. “템플” 작드더르즈 씨가 손으로 하얀 표석을 가리키며 고원에 난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신성한 무엇에 다가서는 듯하여 침묵했다. 정상에 차를 세우니 그제야 스투파가 확연히 나타났다. 탑만 있는 무인의 절이었다. 성역의 표시로 스투파 주위에 철책을 쳐놓았고, 뒤로 오보도 두 개 세워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정적만 고여 있고 넘푸른 하늘 아래 흰 탑만 의연히 서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이 고원에 탑이 오롯이 서 있다니. 하늘 아래 경배하리라. 고원이 멀리서 보일 때부터 나는 무언의 소리를 듣고 마음속으로 겸허하게 오체투지했다.
호수로 가려고 작드더르즈 씨를 따라 숲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말 네 마리가 나뭇잎을 헤치고 걸어 나왔다. 옅은 갈색의 몸채에 까만 갈기를 가진 말이 내 앞으로 걸어오는데 나는 자리에 가만 멈추어 섰다. 말들은 패밀리처럼 모두 우아하고 기품이 있었으며 신화의 주인공 같았다. 나는 외계인으로 동화의 세계에 잘못 들어선 듯했고, 자연의 주인인 그들을 위해 길을 비켜주어야 했다.
어느새 하늘에 노을이 깔려 문득 고원을 향해 돌아서니 고원 아래로 수십 마리의 말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 평온한 귀가였다. 광막한 자연 속에 두 사람만 빼곤 인간이라곤 보이지 않았고, 온통 말과 새 천지였다. 더없이 완전한 풍경이었다. 낙원이 거기 있었다. 고원 위에서 스투파도 자연의 주인들을 내려다보는데, 해탈이 거기 있었다. 


  • 자루에서 수분이 빠진 요구르트 덩어리를 실로 끊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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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기에서 여우사냥을 마친 독수리를 안고 있는 모습
    울기에서 여우사냥을 마친 독수리를 안고 있는 모습

[기사입력 : 201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