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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식

[전국] 아리랑로드 2박 3일의 여정

황치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호남권 문화협력관)
  • 아우라지, 강치성 고사
    아우라지, 강치성 고사
  • 아우라지, 뗏목 뱃길 재현
    아우라지, 뗏목 뱃길 재현
  • 충주호 유람선, 남해안 별신굿
    충주호 유람선, 남해안 별신굿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이 2012년 12월 5일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한국인의 가슴 속 정서가 세계인에게 전달되고 그 깊은 울림이 넓은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리랑과 관련된 공연과 행사는 꾸준히 개최되어 왔었지만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더욱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호남 지역에서도 10월 3일부터 4일까지 광주에서 ‘제3회 광주세계아리랑축전’이 열렸고, 10월 9일 전남 여수에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아리랑이라 할 수 있는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이 한 무대에서 만났다. ‘국민 대통합 아리랑’을 내세우며 호남, 영남, 강원도의 아리랑을 한 자리에서 선보인 이 프로그램은 10월 10일 진도 공연으로 이어졌고, 21일 밀양, 23일 강릉, 24일 정선, 31일 서울 공연으로 10월 한 달간의 아리랑 대장정을 마쳤다. 전국을 순회하는 대장정과는 또 다르게 3일간 새벽부터 밤까지 굵고 짧은 장정을 펼친 아리랑로드 프로그램이 있었다. 수많은 아리랑 관련 행사 중에 주목해도 좋을 만큼 특색 있게 추진된 아리랑로드 프로그램을 기꺼이 소개한다.

아리랑로드는 강원도 정선의 아우라지에서 서울 경복궁까지 이어지는 정선아리랑 길을 따라가며, 한강 뱃길을 뗏목으로 이동했던 떼꾼들의 현장을 체험하고 아리랑의 역사를 짚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제55회 한국민속예술축제 기념 소리여행으로 기획되어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강원도 정선군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민속예술축제추진위원회,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공동 주관하였다. 아리랑로드를 기획하고 연출한 한국민속예술축제 진옥섭 예술감독이 2박 3일의 일정을 이끌었고, 채상소고춤의 명인 김운태 단장이 이끄는 ‘연희단 팔산대’가 길라잡이패로 함께 하며 요소요소에서 재능을 풀어냈다. 공개모집을 통해 선발된 50명 가까운 순례단도 동참하여 쉽게 만나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순례단의 참여는 아리랑로드 프로그램을 세상에 처음 내놓고 그들의 반응으로 평가를 받는다는 의미도 있다. 또한 정선군의 문화예술과장과 아리랑계장, 관광계장 등 3명이 동행하면서 아리랑로드 프로그램을 문화관광 자원화 하는 방안을 탐색하였다.

2014년 9월 26일 아침 6시 30분 이른 시각에 서울 양재역 서초구청 앞 대로변에 아리랑로드 포스터를 부착한 관광버스가 서 있다. 포스터에는 여정을 따라 이동할 지명이 적혀있는 고지도가 희미하게 바탕에 깔려있고, 그 여정을 따라 이동할 한강 물길이 힘찬 붓끝에서 살아나 짙푸른 색으로 생동감 있게 춤을 추고 있으며, ‘아리랑’이란 글씨가 장사익의 수려한 필체로 꿈틀대고 있다. 행사를 기획 연출한 진옥섭의 아이디어가 스며든 포스터 상단의 카피 문구도 예사롭지 않다 “이 땅의 등골에서 우러난 노래. 짙푸른 청룡꿈을 꾸나니, 어화청춘! 벗이여 가자스라”. 꽉 찬 2박 3일의 아리랑로드에 대한 기대를 주면서도 청춘의 역동성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길라잡이패와 스태프들이 탄 버스는 정선 아우라지 ‘강치성 고사’ 등 행사 준비를 위해 먼저 떠났고, 순례단이 탄 버스는 7시에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아우라지’를 향해 시동을 걸어 세 시간 반을 달렸다.
강원도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어우러진다고 이름 붙여진 ‘아우라지’에서 아리랑로드의 출발을 알리는 ‘강치성’이 11시에 재현되었다. 강원도 정선 떼꾼들의 뗏목 여정이 무사안녕 하도록 기원하며 강에서 치성을 드리는 의식이다. 떼꾼들은 뗏목에 소나무 등 중요한 물자를 싣고 정선에서 출발하여 생사를 걸고 한강 물길을 따라 마포나루까지 도착하였다고 한다. 진옥섭 감독이 아리랑의 역사와 아리랑로드에 대해 소개를 한 후, 정선군수와 지역 주민이 고사를 지내고, 정선아리랑 무형문화재 4명이 〈정선아리랑〉 노래를 불렀다. 요즘의 랩송과도 같이 재미있는 사설을 가벼운 율동에 섞어 풀어내는 〈정선아리랑〉이 흥미를 유발시켰다. 이어서 미리 만들어 놓은 뗏목에 떼꾼들이 타고 노를 저어 힘찬 출발을 하였다. 연희단 팔산대가 뗏목에 동승하여 길잡이 역할을 하며 흥을 돋우었다. 뗏목에 싣던 옛날의 태백산 황장목은 〈황장노송도〉 그림을 담아 황금보자기로 싼 보따리로 대신하여, 연희단 팔산대의 8살 안팎 어린 단원 2명이 안고 운반하는 모습으로 보여주었다. 다큐멘터리 화면처럼 옛 모습이 재현된 모습에 순례자 등 참석자들은 “너무 멋있다!”며 감탄사를 날렸다.
아우라지에 있는 ‘정선아리랑 전수관’에서 산채 비빔밥으로 점심을 한 후 버스에 탑승하여, 뗏목길의 4대 급류코스 중 첫 번째로 만나는 정선군 북면의 ‘상투비리’를 지나, 차창 밖으로 청명한 하늘 아래 강원도의 초가을 색을 만끽하며 정선군 용탄면의 ‘범여울’에 도착하였다. 뗏목길의 4대 급류코스 중 두 번째 코스인 ‘범여울’에는 〈정선아리랑〉의 전문가이자 전도사인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의 흐름이 빠른 곳이라는 뜻을 내포한 ‘여울’에 ‘범’이라는 명사가 붙었으니 범여울의 뜻을 짐작은 했지만, “호랑이가 두 마리의 새끼를 건네주다 물살이 센 이곳에서 한 마리를 잃고 슬피 울고 있어서 거친 물소리가 범의 울음소리처럼 들리고, 급류에 떼꾼들이 변을 당하기도 했던 곳이라 사람들에게도 아픔이 많은 곳”이라는 진용선 소장의 설명에 물소리가 더욱 실감 난다. “떼꾼들이 목숨을 건 뗏목 뱃길 무역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높아서 ‘떼돈 번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아침밥이 제삿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험을 감수하고 떼돈을 번 떼꾼들은 강나루 목 좋은 곳마다 자리 잡고 있는 주막에 들러 돈을 축냈기 때문에 목돈을 갖고 부자로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1960년대 호황일 때는 한강 뱃길에 100여 개의 객주가 있었고, 500여 명의 여인들이 떼꾼들의 피곤한 심신을 달래 주었다고 하니 짐작이 간다. 연희단 팔산대가 비나리 연주로 범여울의 노여움을 잠재우고 떼꾼들의 영혼을 위무하였다. 눈을 들어 멀리 보니 범여울 물길의 가장자리는 평온하고 산의 모습이 투영된 물속의 그림은 한 폭의 수채화다.
정선 출신 진용선 소장의 〈정선아리랑〉 이야기는 물이 아름다운 마을 ‘가수리’의 700여 년 된 느티나무 아래로 옮겨서 계속되었다. “정선아리랑은 정선의 산세를 닮았어요. 자연스럽게 삶의 희로애락과 한을 표현하는 소리죠. 그래서 정선아리랑은 노래가 아니라 소리, 즉 주고받는 이야기입니다.” 아우라지에서 무형문화재 4명이 들려주었던 〈정선아리랑〉을 되새겨보니 이 지역의 자연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생활 속의 소리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가수리를 떠나 제장마을에 도착한 아리랑로드 탐사단은 이곳부터 연포마을까지 래프팅으로 뱃길 탐사를 하기 위해 고무보트에 올랐다. 떼꾼들이 뗏목으로 이동하던 길을 고무보트로나마 체험하는 시간이다. 2시간 가까이 노를 저었지만 이 코스는 생각한 것보다 위험한 구간이 없어서 어렵지 않게 연포마을에 도착하였다. 래프팅 첫날이라 워밍업 수준으로 첫날의 물길을 시작하였고 본격적인 뗏목길 체험은 내일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보트의 맨 앞에서 열심히 노를 저은 정선군 문화예술과장과 계장은 〈정선아리랑〉에 대한 이야기를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로 전해주고 일행의 요청에 따라 〈정선아리랑〉 노래도 불러주었다. 아리랑의 고장 공무원으로서 보여준 사명감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어둠이 시작될 무렵 연포에 도착한 아리랑로드 탐사단은 영화 ‘선생 김봉두’ 촬영지인 ‘연포분교’ 운동장에서 돼지 바비큐와 막걸리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이어 정선아리랑 뱃길에서 마지막까지 연포나루 주막을 운영했던 이향복 할머니로부터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다. 민속학자 황루시 관동대 교수와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어 더 생생하게 전해졌다. 27살부터 28년간 주막을 운영했던 이향복 할머니가 과거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자 특별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사람들의 귀와 눈이 모아졌다. “유명한 떼꾼들은 모두 다녀갔지. 30~40대 때가 전성기였지. 떼꾼들은 모두 건달이여. 힘들게 번 돈을 주색잡기로 다 털어먹고 투자한다고 날리고 해서 밥값도 못 내고 가는 사람도 있었지. 그럴 때는 외상값 받으러 수 십리 길도 마다 않고 산 넘고 물 건너 찾아다녔지.” 진옥섭 감독과 순례단의 질문이 이어졌는데, 8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총명한 기억을 더듬어 또렷하게 답하였다. “옛날에는 물이 많아서 음력 2월부터 겨울이 오기 전까지 장사를 했지. 돈을 많이 버니까 이 일을 하기가 싫어지기도 했어. 기차선로가 놓이고 떼꾼들이 없어지면서 주막을 찾는 사람이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문을 닫게 됐지.” 정선아라리 소리를 부탁하니까 못한다고 사양하다가도 떼꾼들로부터 들었던 것이라며 19금 수준의 소리를 들려주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이가 많은데도 부지런한 근성이 남아 있어 지금은 연포주막 자리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음식을 파는 ‘연포상회’를 하고 밭일도 나가신단다. “실수나 안 했는지 모르겠어. 내년에도 또 만나려나….” 이런 말씀을 남기며 할머니는 집으로 향했다. 이향복 할머니의 이야기가 끝나고 연희단 팔산대 단원들이 개별적으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어 참석자들끼리 담소를 나누면서 별이 영롱한 강원도 골짜기의 깊어지는 초가을 밤을 보냈다.
아리랑로드 둘째 날 아침 새벽. 연포분교 앞의 강줄기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에 걸쳐진 물안개가 운치를 더했다. 오늘의 일정도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청춘의 체력을 요구하고 있다. 아침을 먹은 후 8시부터 연포에서 2일 차 래프팅은 시작되었다. 정선에서 영월까지 이어지는 ‘골안떼길’의 험난한 물길이 기다리고 있다. 뗏목길의 4대 급류코스 중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곳은 세 번째 코스인 평창군 미탄면의 ‘황새여울’이다. 황새목처럼 좁고 긴 여울의 물살이 초보 떼꾼들의 목숨을 앗아 가기로 유명했던 장소라고 한다. 그래서 떼꾼들의 위령비가 강가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황새여울에서 아리랑로드 탐사단 일행 중 두 사람이 물에 빠지는 위급 상황이 발생했다. 두 사람은 타박상을 입긴 했지만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서 다행히도 떠내려 오다가 일행들의 도움으로 구조되었다. 또 다른 보트 한 척은 큰 돌에 걸려 꼼짝을 못하고 고립되기도 하였다. 인생의 항로처럼 어려움을 만나는 순간이 있으며 이를 극복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려는 자연의 조화인가? 떼꾼들의 생사를 건 래프팅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체험이었다.
험난한 길을 벗어나면 아름다운 강원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여유롭게 즐기는 시간도 있다. 절리 형태의 암석이나 절벽에 피어있는 구절초와 들꽃, 그리고 동강 ‘어라연’의 절경은 물에 카메라가 빠질 수도 있다는 고민 속에서도 카메라를 빼 들게 유혹했다. 어라연을 지나 4대 여울의 마지막 급류코스 영월 거운리의 ‘된꼬까리’를 만났고, 황새여울 못지않은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돌발 상황은 발생했다. 다이나믹하면서도 많은 것을 느끼게 했던 4시간 반의 래프팅을 마치고 만지나루의 ‘전산옥 주막’터에 내렸다. “우리 집의 서방님은 배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다녀가셨나?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건넜으니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 내놓게” 〈정선아리랑〉의 가사에 실명으로 거론될 만큼 떼꾼들이 전산옥의 치마폭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정선 영월 사이 주막 중에서 제일 잘 나가던 전산옥 주막은 이제 터만 남아 있고, 사람들은 전산옥 주막 터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옛날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40분간 다시 노를 저어 가서 ‘섭새’에 도착해 래프팅을 마쳤다.
섭새에서 버스를 타고 제천으로 이동하면서 마지막 떼꾼으로 알려진 홍원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황새여울과 된꼬까리의 생사를 넘나들며 떼꾼으로 살았던 이야기와 전산옥 주막의 이야기는 선행학습을 한 덕에 더욱 흥미롭고 생생했다. 홍원도 할아버지도 전산옥 주막을 드나들었다며, “키는 크지 않았지만 예쁜 얼굴에 정선아라리 소리를 잘해서 떼꾼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전산옥에 대한 기억도 전해주었다. 홍원도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불렀던 애환의 소리 〈정선아리랑〉을 우리 일행에게 들려주고 버스에서 내렸다.  

부지런히 달린 버스가 4시경 충북 제천의 청풍나루터에 도착하자 탐사단은 서둘러 충주호 유람선에 승선하였다. 이제는 다시 뱃길로 아리랑로드를 이어가는 코스가 시작된다. 유람선 3층 갑판에는 ‘남해안 별신굿’ 인간문화재 정영만 명인이 굿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청풍 부근의 ‘황공탄’이라는 곳에 ‘으시시비비미여울’이 있었는데, 이곳은 영월과 충주 사이의 뗏목길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이었다고 알려졌으나 지금은 충주호가 생기면서 호수 아래에 잠겨버렸다. 그래서 지금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그 부근이라고 짐작되는 곳에서 선상 진혼제를 하기로 하였다. 정영만 명인과 전통예술의 대를 잇는 그의 아들 등 여러 명의 예인들이 통영에서부터 올라와서, 정성을 들여 떼꾼들과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굿판을 펼쳤다. 일반 승객들도 관심 있게 지켜봤고, “예술의전당에서 10만 원을 주고 봐야 하는 감동의 공연을 봤다.”고 소감을 밝히는 사람도 있었다.
유람선으로 뱃길의 마지막 여정을 끝내고 충주나루터에서 내린 후 버스에 올라 ‘제44회 우륵문화제’가 열리는 충주세계무술공원으로 달렸다. 그곳에서 저녁 7시에 연희단 팔산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야외 공연장 객석을 가득 메운 500명 이상의 관객들은 7세부터 60대까지 13명의 여성 단원으로 이루어진 연희단 팔산대의 신명나는 연주와 다양한 재주에 뜨겁게 환호하였다. 진옥섭 감독이 아리랑로드에 대해 소개한 후 재치 있는 해설로 공연의 분위기를 끌어 올렸고, 김운태 명인이 채상소고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수많은 카메라가 집중되었다. 충주의 ‘중원우수리농요단’이 찬조 출연하여 모심기 동작을 하면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후렴구를 반복하는 농요를 부른 것도 아리랑로드에 구색 맞춤이었다.

아리랑로드의 마지막 여정인 셋째 날도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충주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버스에 오른 일행은 충주시 엄정면의 ‘목계나루’터에 도착했다. 조선 후기의 5대 강나루로 명성을 떨치던 목계나루는 이제 생명을 다하였고 이곳 출신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 시비가 더 유명해진 곳이 되었다. 비록 옛날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아리랑로드 탐사단은 그 흔적을 찾아가 역사의 현장을 재현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중원목계문화보존회’ 회원들이 목계나루터에서 고사를 지낸 후, 독에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놓고 두드리며 소리를 하는 ‘충주어르레이’ 공연을 하였다. “어리랑 어리랑 어러리요” 후렴구가 이 지역 아리랑의 색깔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어서 강가에 설치한 황포돗배에서 과거 목계나루에 배가 들어왔을 때 물건을 거래하던 장면을 노래와 동작으로 재현하였다. 아리랑로드의 길라잡이패도 강에 띄워놓은 뗏목에 올라 공연을 이어갔다. 한 사람은 정선에서부터 이곳까지 뗏목을 타고 내려온 것을 알리는 〈정선아리랑〉을 노래했고, 한 사람은 이곳을 떠나 경기도의 물길로 뗏목이 흘러가는 것을 생각하여 경기민요 〈한강수타령〉을 불렀다. 정선에서 내려온 배가 경기도로 가는 길목인 중원(충주의 옛 이름)에서 만나 함께 공연하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충주를 떠난 일행은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에 도착하여 두물머리 강가에서 펼쳐진’ 〈인제 뗏목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였다. 두물머리는 강원도 정선에서부터 뗏목을 타고 정선 조양강, 영월 동강, 충주를 거쳐 한양까지 가는 남한강 물길과, 강원도 인제에서부터 뗏목을 타고 춘천 소양강을 거쳐 한양까지 가는 북한강 물길의 두 물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강원도 인제로부터 이곳까지 와서 공연하는 것을 보게 되니 아리랑로드를 확장시킨 것 같은 느낌이다. 넓은 두물머리 강변의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강릉원주대 강등학 교수의 아리랑에 관한 강의가 이어졌다. “대원군 시절 경복궁 중건을 위해 뗏목을 운반하면서 떼꾼들에 의해 〈정선아리랑〉 등이 경복궁에까지 흘러들어왔고, 사당패들이 〈아리랑타령〉으로 대중화시키면서 경복궁과 단성사는 아리랑 전파의 기폭제가 되는 장소가 되었다.”는 설명도 들었다. 아리랑로드를 탐사하면서 마지막이 가까워지는 시각에 아리랑에 대해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받은 것은 순례단에게 깊이를 더해주는 선물이었다. 강등학 교수의 강연이 끝나자 대금산조 명인 원장현의 국악가족인 원나경이 은은하게 수를 놓은 흰색 한복을 입고 해금을 든 채 두물머리 강변 바위에 선녀처럼 내려앉았다. 해금 연주로 우리나라의 다양한 아리랑을 연곡으로 듣는 시간은 정갈하면서도 풍성한 상차림을 받는 기분이었다.

두물머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아리랑로드의 코스에 속한 경기 남양주 ‘덕소’에서 점심을 한 후 아리랑로드의 종착점인 ‘경복궁’ 흥례문 광장으로 향했다. 토요일 교통 체증으로 인해 뗏목 뱃길의 종착지인 ‘마포나루’까지 가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경복궁에서는 ‘궁중문화축전행사’가 열리고, 그 행사의 일환으로 연희단 팔산대의 아리랑 공연과 기접놀이 등이 4시부터 5시까지 펼쳐졌다. 먼저 연희단 팔산대가 광화문에서부터 흥례문 광장의 무대까지 길놀이를 하며 관객을 이끌었다. 무대에서 진옥섭 감독의 사회로 아리랑로드의 여정을 관객들에게 보고한 후 연희단 팔산대의 공연이 펼쳐졌다. 무대 주변을 꽉 채운 관객 중에는 외국인도 많았으며 공연에 신명을 보태며 흥겨워했다. 연희단 팔산대 공연에 이어 대형 깃발을 돌리며 기운 넘치는 재주를 보여준 ‘기접놀이’가 펼쳐질 때도 색다른 볼거리에 관객들은 환호하였다. 쉼 없이 흐르는 한강 물길처럼 부지런히 내달아온 3일간 아리랑로드의 알찬 여정은 경복궁에서의 마지막 무대를 끝으로 마무리하였다.
순례단들은 “아리랑로드의 역사적 현장을 체험하고, 그곳에서 그 시대의 실존 인물을 만나 생생한 이야기와 아리랑의 소리를 듣고, 전문가를 통해 깊이를 더하고, 수준 높은 공연을 보면서 눈과 귀와 입과 마음까지 행복한 시간이었다. 풍광도 좋고 날씨까지 좋아 복 받은 시간이었다. 빡빡한 일정에 래프팅도 하며 몸은 피곤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어화청춘! 벗과 함께 다시 한 번 떠나고 싶다!”고 소감을 밝히며, 여러 사람에게 전파하여 많은 사람이 좋은 기회를 나누기를 바랐다. 이런 프로그램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의 지원도 검토해 봐야 하지만,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정선군을 비롯하여 아리랑로드 코스의 영월군, 평창군 그리고 강원도에서 문화상품으로 적극 추진하는 방안을 기대하는 것 같다. 스페인 순례자의 길로 잘 알려진 ‘산티아고 가는 길’처럼 먼 훗날 아리랑로드가 민중의 생활 속 산 역사를 체험하는 스토리 로드로 재탄생할 수도 있는 날을 기대해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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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로고

[기사입력 : 201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