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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홍콩] 프리스페이스 해프닝
(自由約, Freespace Happening)

이승미 (중국 통신원)
  • ‘프리스페이스 해프닝’ 홍보 사진 ©WKCD
    ‘프리스페이스 해프닝’ 홍보 사진 ©WKCD
  • 묘목공원 안내 투어 ©WKCD
    묘목공원 안내 투어 ©WKCD

세계의 많은 대도시가 그 도시를 대표할 만한 공원을 가지고 있다. 밀도 높은 도심 속에서 넓은 풀밭과 인공 숲을 제공해 바쁜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물론, 이곳에서 일어나는 문화예술 이벤트는 시민들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잔디밭에 앉아 뉴욕필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뉴욕 센트럴파크, 서펜타인 호숫가를 산책하다가 갤러리에 들러 구경할 수 있는 런던 하이드파크, 벚나무 아래서 살사 파티가 열리는 도쿄 요요기 공원 등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원에는 아름다운 조경과 함께 거리의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시민들이 다양한 예술을 경험하게 하고, 나아가 사회의 문화적 유연성을 높이는 힘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홍콩은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대표할만한 공원이 없다. 밀도 높은 도심 속 공원 면적 자체가 부족하고, 현존하는 공원들마저도 스포츠 시설 위주로 설계되어 나무 그늘 한 점 없는 운동장이 대부분인 데다가, 녹지가 있어도 관상용 조경과 보도를 분리해 접근을 물리적으로 막아놓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게다가 공공장소에서 허가받지 않은 공연은 대부분 불법이다 보니, 공연 도중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하는 경우가 많아 폭넓고 수준 있는 거리공연문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서구룡문화구(西九文化區,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건설 프로젝트에는 이러한 공간과 문화의 필요성에 특히 초점을 모았다. M+미술관 등의 문화시설이 들어서는 부지를 둘러싸는 서구룡해안프롬나드(西九龍海濱長廊, West Kowloon Waterfront Promenade)의 조경은 대형 문화예술 이벤트를 수용하는 것은 물론,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즐길 수 있는 야외문화공간을 목표로 설계했다. 또한, 이 공원에서 ‘스트리트 컬쳐(Street Culture)'를 촉진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실행 중이다.
서구룡해안프롬나드가 완공되려면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하기에, 서구룡문화구는 지난 8월에 이 부지에 임시 묘목공원(苗圃公園)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몇 년 후에 완성될 문화지구에 심을 나무를 미리 구매해, 그 뿌리를 잘 감싸서 땅에 임시 고정시키는 방법으로 가지런히 정렬해놓았는데, 덕분에 쉬어갈 그늘 한군데 없던 허허벌판에 제법 그럴듯한 인공 숲이 우거졌다. 그리고 이곳에서 야외공간 이벤트 '프리스페이스 해프닝(自由約, Freespace Happening)'을 열어 시민들을 초대했다. 이는 서구룡문화구가 청년봉사단(協青社, Youth Outreach)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로, 지난 9월 12일에 두 번째로 열렸다. 묘목이 숲처럼 둘러싼 중앙 잔디밭에서는 음악회와 수공예품 시장이 열렸고, 바깥쪽을 에두르는 해안가에서는 스트리트 댄스, 스트리트 워크아웃을 비롯한 각종 공연과 워크숍 등이 열렸다.

| 스트리트 컬쳐의 플랫폼

앞서 언급했듯이, 이 행사에서 '스트리트 컬쳐'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다. 홍콩의 거리예술문화가 번성하기 어려웠던 까닭은 여러 가지다. 공연장소 부족, 공공장소에서 공연을 제한하는 법규제, 그리고 거리예술을 구걸행위로 치부하던 낡은 인식 등이 주요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시민들과 예술가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데, 공공장소에서의 공연을 규제하는 법이 거리공연문화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에 홍콩 정부는 2010년부터 여러 군데 장소를 지정하고, 해당 장소에서 공연하는 것을 허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제도만으로는 부족해 독일이나 영국처럼 거리공연 자격증제도를 도입하자는 여론이 모였고, 정부는 현재 오디션을 통과한 버스커(busker)들에게 공연자격을 주는 제도를 추진 중이다.
이 ‘프리스페이스 해프닝’ 행사에서 ‘School of Hip Hop’의 스트리트 댄스, 일종의 거리 스포츠 쇼인 ‘Street Workout Battle’ 등 스트리트 컬쳐를 기반으로 하는 공연을 정규 편성하고 있는 것은 물론, 행사장 한편에 오디션장을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나이, 국적, 예술 장르에 상관없이 누구나 즉석 오디션을 통해 공연이 시민들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 행위라는 것만 인증되면 이곳 프롬나드에서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는 자격을 받을 수 있다. 덕분에 이 공원을 따라 걷다 보면 잔디밭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어린 소녀부터 팬터마임을 선보이는 외국인 마이머(mimer), 노래방 기계를 켜고 전통가요를 부르는 나이 지긋한 신사 등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 이머시브 연극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Bananaeffect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공연
    Bananaeffect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공연
  • 올가 청의 공연(중앙 잔디밭)

이 행사 프로그램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공연 중 하나가 Bananaeffect의 연극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이다. Bananaeffect는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로, 홍콩에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re)을 소개하고 알려왔다. 이머시브 연극은 무대와 관객석의 명확한 구분이 없고, 장면의 전환에서는 관객들이 장소를 이동하여 관람하기 때문에, 관객이 적극적으로 연극에 참여의 주체가 되는 인터랙티브 연극(Interactive Theatre)이라고도 불리는데, 2000년도 초중반 영국에서 시작되어 세계의 많은 연극인에 의해 실험되어왔다.
이머시브 연극의 선구 그룹인 Punchdrunk의 대표작 〈Sleep No More〉의 경우, 관객들에게 기괴한 하얀색 가면을 씌우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이와 비슷한 장치로 관객들에게 우스꽝스럽게 생긴 노란 안경을 나누어 준다. 관객들은 지정된 시간에 공원 입구에 모여 이 안경을 받아 관람을 시작하고, 공원 곳곳에 대기 중인 미치광이 모자장수, 흰 토끼, 하트 여왕 등을 찾아 이동하는 앨리스를 따라 부지런히 이동해야 한다. 묘목으로 이루어진 공원의 인공 숲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이상한 나라’를 연출하기에 그럴듯한 배경이 된다. 카메라를 들고 배우들을 쫓아다니는 관객 중에는 이 ‘새로운’ 연극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꽤 있었는데, 극의 중간부터는 여기저기서 호기심에 모여든 어린이 관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이 밖에도 ‘묘목공원 안내 투어’를 통해 안내자와 함께 공원을 거닐며 묘목 종류와 그 특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프리스비 잘 던지는 법을 가르쳐주는 워크숍도 있어 큰 인기를 끌었다. 중앙 잔디밭 공연장에서는 뮤지션이자 화가로도 활동 중인 아티스트 시청(施春, C Chung)과 싱어송라이터 올가 청(鍾宛姍, Olga Chung) 등의 공연이 있었고, 출연진 리스트에는 없었던 홍콩의 록밴드 ‘Supper Moment’가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이 무대의 출연진들은 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거나 비주류 장르의 예술가들이 대부분임에도 관객들이 꽤 많이 모였는데, 돗자리를 깔고 앉은 노부부와 마음껏 풀밭을 뛰는 아이들, 또래 친구들과 인디밴드 공연을 보러온 10~20대 젊은이 등 다양한 관객들이 여유를 가지고 공연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두 번째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프리스페이스 해프닝’은 앞으로도 매달 두 번째 일요일에 열릴 예정인데, 날씨가 좋은 10월에는 특별히 10, 11일 이틀 동안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 상영 프로그램이 더해져 존 레넌과 밥 말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Nowhere Boys〉와 〈Marley〉를 상영한다고 하는데, 시민들의 반응이 좋으면 이러한 프로그램을 더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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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