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호보기
  • 구독신청
  • 구독자의견
  • 아르코발간자료
  • 인쇄
  • 맨위로 이동

문화정책 이슈

문화유산공간의 상업적 활용,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장소성 기반 문화기획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 방안 모색을 위한 제언

송희영 (서울예술대학교 예술경영 전공 교수)

최근 문화유산공간의 ‘장소성’을 활용한 문화기획이 활기를 띠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조선시대 궁궐에서 제공되는 고궁 문화상품을 들 수 있다.1) 그중 비교적 대중적 친화성이 높고 정례화된 행사를 꼽자면 수문장 교대의식과 복식체험, 그리고 5대 궁에서 계절별로 열리는 고궁음악회 등이 있다. 이밖에 금년 여름, 광복 70주년을 맞아 특별히 마련된 ‘광복 70년 문화유산 활용 축제’가 경복궁과 덕수궁에서 8월 한 달 여간 새롭게 선보였다. 이 행사는 타이틀에 ‘문화유산 활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문화유산 활용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도와 인식의 변화를 반영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광복 70년 문화유산 활용 축제’는 기존의 고궁음악회 형식에 국가적 큰 기념의 의미를 가미한 대규모 야간공연과 미디어 파사드 쇼, 인문학 강좌 등 다양한 예술 장르와 미디어 테크놀로지 실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 구성으로 고궁문화재의 활용도를 확장하여 보여 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했다. 반면에 “궁궐 문화유산의 ‘장소적 의미’의 창의적 구현”이라는 기획의도에 명시된 ‘문화유산의 장소성 개념’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인 수준에 그친 아쉬움을 남겼다. 금번 ‘광복 70년 문화유산 활용 축제’ 참관을 계기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고궁 문화유산공간을 활용한 문화상품 기획 관련 주요 이슈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재 활용 이슈가 공론화된 것은 2007년 전후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주관 하에 2006년 「문화재 활용을 위한 정책기반 조성연구 보고서」에 이어 2007년 12월, 문화재 활용 관련 주요 사안과 국내외 문화재 활용 사례를 집결한 『문화재 활용가이드 북』이 편찬되었다. 이를 계기로 문화재청은 문화재 활용 담론을 주도하면서 관련 정책을 본격적으로 가동하였다. 이후 2008년도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고궁 문화유산은 기존의 시설 및 경관 중심 관광상품에서 전통음악과 춤, 뮤지컬, 심지어 비보이 공연과 퓨전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공연콘텐츠 중심 대안 문화공간으로의 대 전환을 성취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2) 그동안 고궁 문화행사는 양적, 질적 성장을 해왔고 내국인들의 여가문화 향유 기여도,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한 국가 이미지 상승 외 관광산업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친 점이 인정된다. 그러나 한편, 필자는 우리나라의 고궁 문화유산공간 활용 문화기획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콘텐츠 기획 과정에서 문화유산자원이 보유하고 있는 ‘장소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거론하고자 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광복 70년 문화유산 활용 축제’를 예를 들어 부연하자면, 감상자의 입장에서 개별 공연마다의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 구성과 수준 높은 연주자들의 기량 및 준수한 공연 진행 관리 등 문제시 될 만한 특이사항은 없었다. 그러나 ‘광복 70주년 기념’이라는 기념제가 요구하는 공연 콘텐츠적 특성과 옥외(야외)무대, 특히 고궁이라는 옛 왕조의 흥망성쇠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건축물의 역사성을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 부분이 약점으로 평가된다. 연주회의 경우, 콘텐츠 면에서 경복궁 혹은 덕수궁 옥외 무대가 아니어도 평소 국립국악원이나 국립극장 무대에서 감상 가능한 기존의 고궁연주회의 반복 형태는 연주자들의 예술창작 향상이나 관람객들의 재방문 유도와 같은 전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미디어 파사드의 경우, 덕수궁 석조전 외벽에 조명과 음향을 입히는 프로젝션 매핑 작업에 광복 이후 한국사를 스토리텔링한 시도가 참신했고 조명 및 음향, 영상기술은 수준급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덕수궁이라는 건물의 역사성과 개연성이 약하고 광복 70년이라는 국가적 기념제와 부합하는 전 국민적 공감을 일으키는 보편적이고 합의된 형태의 스토리 라인 구성을 이루지 못한 점은 해결 과제라 생각된다. 앞으로의 개선을 위해 야간조명(미디어 파사드) 쇼의 원조에 해당하는 프랑스의 ‘송에뤼메에르(Son et Lumière)’ 우리말로 ‘빛과 소리의 축제’로 흔히 번역되는 '송에뤼메에르(Son et Lumière)'3)의 사전적 정의를 참조해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Larousse 사전에 따르면, 송에뤼미에르는 “빛과 음악, 음향 효과를 곁들여 오래된 건물의 역사를 추적하는 야간공연 또는 쇼”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오래된 건물의 역사를 추적”한다는 대목이다. 창작자의 새로운 해석과 실험적 시도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야외공간에 위치한 역사문화유적 건물의 외벽을 상대로 수행되는 야간조명쇼의 최초 기획의 핵심은 해당 건물과 관계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혹은 은폐되어 있던 역사를 찾아내 드러내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 활용의 목적은 지역민들의 문화적 자부심 고양과 지역의 역사·문화자산을 관광 자원화하여 경제적 이익과 문화관광산업 활성화를 추구하기 위함이다. 문화유산 활용 이슈는 21세기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 과정에서 등장한 역사도시 조성사업과 맥락을 같이 한다.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제조업의 퇴조로 동반 추락해가는 도시산업 재생 전략의 대안으로 문화유산에 잠재된 경제적 가치 창출 효과에 주목하여 왕궁과 고성, 유서 깊은 저택 등 자국의 문화유산 공간을 문화상품화 하여 관광시장에 공급하는 문화관광산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문화유산의 상업적 활용 역사가 비교적 앞선 이들 유럽조차도 “문화유산은 활용할수록 훼손된다.”는 보존주의와 “문화유산 활용은 문화재 보호의 적극적인 수단이다.”라는 실용주의 사이의 첨예한 대립이 팽팽히 이어졌고(문화재청, 2007:11) 사실상 현재에도 문화유산의 상업화 논쟁을 둘러싼 긴장관계는 국내외 모두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문화유산을 앞세운 문화유산관광(Cultural Heritage Tourism) 진흥정책으로 관광객 유치 및 고용창출, 경제적 효과와 지역 이미지 개선과 브랜드 가치 제고에 효과적이며 그에 힘입은 문화유산 활용 정책이 오히려 문화유산의 보존을 지원하고 촉진한다는 믿음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는 추세이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역사문화자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작업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큰 역할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도시들은 현재 전 세계로 팔려나가는 똑같은 생산품이자 점점 더 피상적인 체험이 되어 가는 위기에 처했다”(올바슬리, 도서출판 책술 옮김, 2012:36)라는 비판과 함께 문화유산의 상업적 활용 이슈는 문화유산의 고유성 상실의 위협에서 기인한 변질, 훼손, 품격 저하라는 부정적 견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도시 조성을 포함한 문화유산을 활용한 문화유산관광에서 해당 도시(지역) 고유의 문화정체성을 구현하는 일이 최우선적인 사안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은 어떻게(어디로부터) 생성되는 것인가? 정체성은 다른 사람(집단)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여 표현하게 해주는 문화․사회적으로 형성된 특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장소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문화지리학자인 존 앤더슨은 정체성은 장소에 의해 규정된다고 하였고,(존 앤더슨, 이영민 외 옮김, 2013). ‘장소성과 무장소성’ 이론을 창안한 에드워드 렐프는 “사람은 곧 자신이 살고 있는 장소이고, 장소는 곧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렐프, 김덕현 외 옮김, 2014:108)”이라는 주장을 편 바 있다. 따라서 정체성이란 “세계 속에서 자신이 속해 있는 장소를 표현하는 일(Richards; Shouten, 2007:35)”로 정의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장소는 개인 혹은 집단의 정체성 형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다음은 정체성의 형성 경로에 대한 질문에 대한 탐색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개인 혹은 집단의 정체성이 그들이 속해 있는 장소를 표현하는 일이라고 전제했을 때, 정체성이란 다름 아닌 장소의 기억을 드러내는 일, 장소에 묻혀 있는 기억을 불러내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알라이다 아스만은 이를 가리켜 ‘장소의 아우라, 즉 장소가 갖는 기억의 가치를 찾는 일(아스만, 2012:412)’이라고 보았다. 여기서의 기억은 개인의 기억이 아닌 집단적 기억이다. 집단적 기억이란 한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공동의 기억으로 집단의 단결과 결속력에 기여하는 수단이자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진정한 공동체란 기억공동체(제프리 K. 올릭, 강경이 옮김, 2011:57)”라는 로버트 벨라와 그의 동료 학자들의 주장처럼 집단기억은 정체성의 다른 표현과 다름없다.

문화재청이 발간한 『문화재 활용가이드 북』에 따르면 문화재 활용이란 “문화재를 단순히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가치나 기능 또는 능력을 살려 지속 가능하게 이용하는 행위”이며, 또한 “문화재가 지닌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경관적 가치나 기능 또는 능력을 살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문화재청, 2007)”로 정의된다. 한편 문화유산이란 한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집단기억이 응축된 상징물로서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어 준 모든 자산(피에르 노라, 김인중 외 옮김, V, 2010:407)”으로 이해할 때, 문화유산을 활용한 문화기획, 혹은 문화유산의 상업적 활용 행위는 문화유산에 응집되어 있는 지역 공동체의 기억을 수집, 보존하고, 재현하는 일이며 그러한 일련의 전체 과정이 곧 문화유산의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일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문화유산은 시대마다 새로운 해석과 끊임없는 의미 부여를 통해 그 가치를 쇄신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공동체의 정체성을 구현하고, 그를 통해 결속력과 화합을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문화유산공간을 활용한 프로젝트 기획 과정에 문화유산 속에 잠재되어 있는 장소성, 즉 문화유산을 통해 전승되고 있는 우리 한국인의 문화정체성을 구현하는 세부적인 연구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문화재청(2006), 문화재 활용을 위한 정책기반 조성연구
문화재청(2007), 문화재활용가이드북
송희영(2015), 지역의 역사문화자원 활용 공연콘텐츠사례연구, 2015 한국문화경제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자료집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 채연숙 옮김(2012), 기억의 공간, 그린비
에드워드 랄프, 김덕현 외 옮김(2001), 장소와 장소성 상실, 논형
에일린 울바술리, 독서모임 책술 옮김(2012), 역사도시 투어리즘, 눌와
제프리 K. 올릭 엮음, 강경이 옮김(2011), 기억의 지도, 옥당
존 앤더슨, 이영민외 옮김(2013), 문화․장소․흔적, 한울아카데미
피에르 노라, 김인중 외 옮김(2010), 기억의 장소, 제5권, 도서출판 나남
Greg Richards(2007), Cultural Tourism:Global and Local Perspectives, Chaper 2, Frans Schouten, Cultural Tourism: Between
Authenticity and Globalization, Routledge, NY
Raphael Samuel(1996), Theater of Memory, Verso, NY
Stephen P. Hanna, Amy E. Potter et al.(2015), Social Memory and Heritage Tourism
Methodologies, Routledge, NY
http://www.larousse.com


1) 고궁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5대 궁궐 외에 조선왕조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셔둔 종묘와 고종의 잠저(潛邸)이자 흥선 대원군의 사저였던 운현궁을 포함한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에서는 매년 5월 세계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가 진행되며, 운현궁에서도 시즌 별 다양한 상설기획공연과 야간개장 행사가 왕성하게 펼쳐지고 있다.
2) ‘고궁음악회’라는 타이틀의 고궁 문화행사가 시작된 역사는 1970년대부터이다, 전통음악 외에도 서울시향에서 매월 실시한 덕수궁 야외공연 등 이미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2008 하이서울페스티벌 봄 축제’가 ‘5월의 궁’ 이라는 주제 아래 덕수궁,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을 주 무대로 펼쳐져 문화공간으로서의 고궁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으며, 국립국악원이 이끄는 ‘창경궁의 아침’도 같은 해인 2008년에 시작되었다. ‘창경궁의 아침’은 현재까지 7년 째 같은 타이틀을 유지하며 두터운 매니아 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2010년 시작된 ‘창경궁 달빛기행’과 더불어 성공한 고궁문화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3) 우리말로 ‘빛과 소리의 축제’로 흔히 번역되는 ‘송에뤼메에르(Son et Lumière)’는 “음향효과와 함께 조명을 터트리는 쇼”라는 뜻을 담고 있다. 1950년대 프랑스 루아르 강 세계문화유산 지역에 밀집되어 있는 고성에서 처음 시작되어 전 세계로 유포되었으며, 현대 디지털 기술 발달에 힘입어 더욱 진보된 수준을 선보이며 현재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의 고성 및 저명한 역사유적지를 중심으로 하계 휴가철의 최고 인기 관광 여가 상품으로 성행되고 있다.


송희영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예술경영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하고 1987년부터 공연기획 현업에 종사하며 클래식음악, 국악, 현대무용, 예술축제기획 및 국제교류 등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1996년 삼성문화재단 맴피스트 문화예술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뉴욕대학교(NYU)에서 예술경영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지역의 기억문화유산을 활용한 공연콘텐츠 사례 연구- 프랑스 방데 역사테마파크 퓌뒤푸를 중심으로'로 문화콘텐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공연산업의 창의적 확장 방안 모색을 위한 지역의 문화유산과 공연기획을 융합한 도시재생 및 문화콘텐츠 기획 연구에 학문적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주요관심 분야는 지역문화콘텐츠기획, 공연예술축제기획, 예술경영이며, 주요 저서 및 논문으로는 「공연예술경영, 무엇을 어떻게 할까?」, 「공연예술축제기획(공저)」, 「문화연구와 문화콘텐츠(공저)」, ‘퓌뒤푸 시네세니 연구(논문)’ 등이 있다.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5.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