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

스페인의 거리는 항상 배낭을 멘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이유는 유럽과 이슬람의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와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는 지리적 조건, 그리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스페인의 축제가 있기 때문이다. ‘축제’하면 스페인, ‘스페인’하면 축제를 떠올린다. 스페인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주민들의 주도적이고 열정적인 참여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축제로는 팜블로나의 투우 축제(Sant Fermin)와 부뇰 지방의 토마토 축제(la tomatina), 발렌시아의 불꽃 축제(las Fallas) 등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매년 8월 15일, 스페인 북동쪽 카탈루냐 지방의 유서 깊은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업 사이클링 설치미술 축제인 그라시아 축제(Fiesta de Gracia)가 있다.

올해로 198회를 맞는 그라시아 축제는 일반적인 종교 축제나 지역특산물 축제가 아닌 ‘의식’으로서의 의미성과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닌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기획부터 제작까지 함께 준비하는 축제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 축제의 메인 행사인 ‘거리설치미술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제작되는 작품이 아니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활용품(recycle)을 이용하여 만든 업-사이클링(up-cycling) 작품으로 온 동네를 가득 채운다. 플라스틱병, 폐지 등 사람들에게서 버려진 쓰레기들은 예술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고, 평범하던 동네는 문화예술의 전시장으로 변신한다. 주민들에게는 예술을 경험하고 도전하는 기회의 장이 되며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온 아이들에겐 교육의 장이 된다. 작품에 참여한 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타 지역 사람들과 축제를 찾은 수많은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이렇듯 그라시아 축제는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일상적인 장소에서 소통하며 즐기고 그 즐거움을 나누는 ‘인간적인 축제’이다. 그라시아 축제는 이렇다 할 특징 없는 1,200여 개의 축제가 넘쳐나는 ‘축제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연 축제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먼저 삶이 곧 축제인 스페인의 문화를 알아보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예술을 살펴보고자 한다.

l 문화예술의 도시 스페인

얼마 전 모 방송국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스페인 편〉의 방영으로 스페인은 전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전 세계 관광수익 2위(1위 미국), 유럽 관광수익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스페인은 바르셀로나의 가족 대성당(La sagrada familia), 카사 밀라(Casa mila),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la Alhambra), 세비야의 플라멩코(Flamenco), 투우(Corrida de Toros) 등 다양한 문화유산의 종합 도시이며, 돈키호테(Don quixote), 피카소(Picasso), 후안 미로(Juan miro),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안토니오 가우디(Gaudi), 알모도바르(Almodovar) 등 세계적인 예술작품과 예술가를 배출해낸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문화예술 도시이다. 또한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등 세계적인 축구팀을 자랑하며 F1의 알롱소(Alonso), 테니스의 황제 나달(Nadal) 등 각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스페인은 먹거리로도 유명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그 나라의 문화를 알기 위해선 그 나라의 특산물, 즉 음식을 꼭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를 자랑이라도 하듯 세계적인 레스토랑의 최고 순위를 뽑는 영국의 요리 월간지 『레스토랑』에서 만든 ‘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 50’에 스페인 레스토랑 세 곳이 10순위 안에 오를 정도로 스페인의 음식문화는 뛰어난 경지에 올라 있다. 카탈루냐 지역 지로나에 위치한 엘 세예 데 칸 로카(el celler de can roca)가 2위, 바스코 지역 산 세바스티안(sant sebastian)에 위치한 무가리츠(Mufaritz)가 3위, 그리고 아르삭(Arzak)이 8위로 선정되었다.

l 유럽의 뉴욕(New York) 바르셀로나(Barcelona)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스페인은 가히 음식 천국이라 불릴 만큼 맛있는 음식이 많고, 그 음식을 즐길 줄 아는 민족이다. 하루에 식사를 다섯 번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스페인은 저녁식사를 보통 9시에 시작하며 2시간 이상 계속된다. 식사 시간 내내 웃고 떠들며 마치 파티를 하듯 현재를 즐긴다. 타파스(Las Tapas), 핀초스(Los Pinchos), 해물 파엘라(La Paella), 하몽(El Jamon), 올리브(La Oliva), 감자튀김(Patata bravas) 등과 함께 와인, 맥주, 코냑, 럼 등 다양한 술을 즐긴다. 히피를 연상케 하는 자유로운 옷차림의 사람들, 광장이나 길거리 한복판의 젊은 악사들, 그들의 연주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애정행각을 하며 행복해하는 연인들의 모습, 가우디의 ’구엘 공원’을 무대 삼아 플라멩코 춤을 추는 아름다운 무희들, 잔디에 누워 책을 보며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과거보다는 미래를, 미래보다는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이곳, 바로 유럽의 뉴욕(New York)이라 불리우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스페인을 한번 방문한 사람들은 마치 마약처럼 스페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l '그라시아(Barrio de Gracia)'라는 동네 그리고 '축제(Fiesta de Gracias)'

바르셀로나 시내의 중심인 카탈루냐 광장(Plaza de Catalunya)에서 그라시아(Barrio de Gracia) 지역을 향해 가는 길(Passeig de Gracia)엔 가우디의 건축물 카사 밀라(Casa mila)와 함께 구찌, 샤넬, 루이비통 등 명품 매장으로 가득하다. 한 20분쯤 걸었을까. 작은 상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주 평온하고 일상적인 이곳이 바로 그라시아 지역이다.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있고 영국의 펍(Pub)과 같은 작은 바(Bar)가 있는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매일같이 펼쳐지는 크고 작은 축제 덕분에 향수병을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3월이면 마차와 말을 타고 온 동네를 돌며 길거리에 사탕을 뿌리는 메레세 축제(Fiestas de la Merece), 사랑하는 남자에게 책을, 여자에겐 장미꽃을 선물하는 산 조안 축제(Fiestas de Sant Joan) 등 바르셀로나의 대표적 축제는 바로 이곳 그라시아 지역에서 개최된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그라시아 축제(Fiesta de Gracia)이다.

매년 8월 15일에서 21일까지 열리는 이 축제는 올해로 198회를 맞는다. 가장 축제다운, 가장 아름답다는 이 축제는 예술을 거리로, 사람을 거리로 불러 모은다. 유학시절 중 어느 날 한여름 밤 더위에 지쳐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이끌려 마을회관 같은 곳에 도착했다. 낯익은 동네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먹을 것을 나누며 작품을 만들던 모습에 반해 나도 같이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처럼 재료도 소박하다. 마시고 버린 플라스틱 물통, 낡은 청바지, 구멍 난 운동화 등 1년간 틈틈이 모은 재활용품을 이용해 형태가 만들어지고 그 위에 아름다운 색을 입혀 훌륭한 작품으로 재탄생된다. 축제기간이 다가올수록 주민들의 손놀림은 빨라지고 동네 전체가 들뜨기 시작한다.
동네별로 각기 다른 주제와 상상을 뛰어넘는 예측불허의 작품들은 찾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뜨거운 여름, 선선한 바람이 불고 어둠이 찾아오는 오후 8시 30분부터 시작되는 다양한 이벤트와 공연은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거리마다 펼쳐지는 먹거리 장터에는 집에서 직접 만든 스페인 전통음식들과 시원한 생맥주가 있어 축제를 찾는 이의 출출한 배를 채워준다. 축제 기간 내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는 이곳엔 매년 15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문득 나도 친구들과 함께 김밥과 과일 꼬치를 팔아 유흥비를 마련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l 시민이 만든, 시민을 위한 축제

축제는 시민으로 조직된 축제 조직위원회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일 년 내내 축제를 위한 각종 사전 행사와 홍보가 진행되며, 축제 프로그램 기획과 참가자 모집은 공모와 신청을 통해 투명하게 선정된다. 시민 참여 행사로 ‘축제 포스터 콘테스트’와 축제 기간에 시민들이 직접 축제 모습을 사진에 담아 전시하는 ‘축제 사진 콘테스트’ 등이 있으며, 축제가 끝날 무렵 축제 메인 행사인 ‘거리설치미술제’ 최고의 작품을 시민과 전문인으로 구성된 평가단이 대상, 금상, 은상으로 선정하여 상금과 상패를 수여한다. 상금은 상을 받은 동네의 공동 기금으로 지역과 주민을 위해 사용되며, 내년 축제를 위한 예비비로 이용한다.

그라시아 축제의 198년 역사는 누구의 강요도, 의무도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유럽의 문화를 논할 때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축제를 빠뜨릴 수 없는 이유다. ‘축제’로 전 세계를 평정한 스페인은 우리에게 ‘문화는 곧 삶’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말한다. 축제란 21세기 문화예술의 핵심이자 국가 수입과 경쟁력 강화의 원동력이라고. 하지만 나 스스로가 즐기지 못하는 축제라면 단순한 행사나 정책으로 그칠 뿐이다.
문화에 갈증을 느껴 유럽으로 휴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스페인을 추천하고 싶다. 뜨거운 태양과 바다, 맛있는 음식과 볼거리들, 그곳에서 축제를 즐기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