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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독일] 다문화, 현대미술, 성공적!

최정미 (독립 큐레이터, 디스쿠어스 베를린 대표)
  • 료머+료머의 <Fusionistas>, 2015
Photo: Alice Pedroletti
    료머+료머의 〈Fusionistas〉, 2015 (Photo: Alice Pedroletti)
  • 포드비엘스키 컨템포러리 ©포드비엘스키 컨템포러리
    포드비엘스키 컨템포러리 ©포드비엘스키 컨템포러리

처음 유럽여행 왔다가 여권에 방문국 입출국 도장이 일일이 찍혀 있지 않아 조금은 실망하는 이들을 가끔 본다. 이는 솅겐 조약(무비자 방문 협정) 때문인데 이 조약에 서명한 26개국 안에서는 별다른 절차 없이 입국이 가능하다. 자동차로 국경을 넘을 때 도로 표지판이나 차 번호판을 보고서야 다른 나라에 온 것을 알 때도 종종 있다. 최근 독일연방통계청(Statistisches Bundesamt)에 따르면 현재 독일 거주 인구는 약 8,130만 명이고 이 중 귀화한 독일 국적 취득자 외에 외국인 거주자 수는 820만 명이란다. 2014년에는 약 60만 명 정도의 외국인이 독일로 이주했으니 이는 2013년과 비교하면 약 6.8% 증가한 셈이다. 대략 전체인구 10% 이상이 외국인으로 등록되어 있다. 베를린 인구는 현재 국적과 상관없이 350만 명 정도라고 한다. 1990년 분단의 벽이 허물어진 후 약 270만 명이 베를린을 떠났고 290만 명 정도가 들어 왔다고 한다. 독일에서 인구 증가와 물갈이가 이처럼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곳은 없다. 지난 4년간 해마다 약 4만 명 정도가 베를린으로 이주했으며 여전히 상승 추세라고 한다.    

베를린에서 거주하는 외국인은 크게 이민자, 유학생, 살지는 않지만 등록된 거주지가 있는 철새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중앙지역인 미테를 비롯하여 이슬람 이민자 밀집지역인 크로이츠베르그나 베딩, 클러버의 메카인 프리드리히스하인 지구 등에는 전 세계에서 온 예술가, 창작인이 그야말로 떼거리로 몰려 살고 있다. 작정하고 오는 이민자나 유학생 외에 잠시 들렀다가 맘에 들어 눌러살게 된 경우도 꽤 된다. 거리를 걷다 보면 출신국 혹은 고향을 짐작하게 하는 독어 외에 대략 ‘댕글리시’라 불리는 독어식 영어, 미영국어, 중국어, 스페인어, 불어 등이 자주 들린다. 대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다, 없다’의 연속이다. 꼭 사피어 워프의 가설이 아니더라도 언어가 의사소통 외에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뭐 거창하게 이민자들이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지 않고라도 개인이 알게 모르게 사회 변화에 일조하는 것은 쉽게 감지된다. 예술계는 특히 통일 후 거의 지진 같은 변화를 겪게 된다. 분단 시절 동서독에서 운영되던 연극극장, 음악당, 오페라 하우스, 미술관, 박물관은 폐쇄되거나 통합되기보다는 계속 운영되고 있다. 시민은 두 배가 안 되었는데 위에 열거한 시설은 갑자기 확 늘어 난 것이다. 주말 부부가 살림을 합치면 겹치는 가재도구들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 대부분이 시, 주연방 예산으로 운영되니 재정적 부담이 여간한 게 아니다. 부담이 가긴 하지만, 매해 늘어나는 인구와 관광객 덕분에 관광문화 관련 사업은 꾸준한 성장 하고 있다. 독일문화원 정보에 의하면 베를린 경제력의 20% 정도가 문화 관련 사업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다른 직업군과는 달리 노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동성이 많은 분야라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각종 매체 보도에 따르면 약 2만 명 정도 현대미술 작가들이 산다고 한다. 여기에 약 470여 개 갤러리, 약 200개 전시장, 약 600개의 미술전시관에서 직·간접적으로 종사하는 미술전문인까지 포함하면 대략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작가를 대상으로 저렴한 작업실 공급 외에 무료 법률 상담, 세무 자문, 임대차 관련 자문 등 작가들에게 미술계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BBK(Berufsverband Bildender Künstler Berlin e.V.)는 이들을 위한 로비 활동도 한다.

이러한 베를린에 어떤 예술가가 활동하고 있을까? 주제가 주제인 만큼 외국인 혹은 이들이 주요 멤버로 운영하는 공간, 작가를 대략 소개한다.

한국인이 아닌 작가로는 국제적으로 왕성히 활동하며 한국에도 알려진 현대미술 작가 중 캔디스 브라이츠, 볼프강 틸만스, 제레미 쇼, 올라푸어 엘리아손, 시프리앙 가이야르(Candice Breitz, Jeremy Shaw, Olafur Eliasson, Cyprien Gaillard)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작가 부부 료머+료머(Römer+Römer)는 컴퓨터 이미지와 점묘주의 표현기법의 접목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 초대되기도 하였다.

베를린 베이스로 활동하는 작가로는 리 갤러리에서 개인전 중인 설치작가 강동환, 런던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김진언,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양혜규,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 일맥아트프라이즈 수상작가 양진우, 한국의 감성과 독일적 사고의 미디어 아티스트 최찬숙 등이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박기진 작가에 이어 부산문화재단에서 올해 처음으로 쿤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에 작가를 보냈는데 그 주인공은 김대홍 작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파견된 바 있는 김덕영, 김아영, 김홍철, 나현 작가는 이미 베를린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전시 기획자층도 두껍고 넓다. 전 모리미술관 관장이었으며 시드니비엔날레 등 많은 대형 전시감독이었던 데이비드 엘리엇(David Elliott), 뉴미디어 아트가 주요 프로그램인 비영리 공간 모멘툼(Momentum) 대표 레이첼 릿츠 볼로흐(Rachel Rits-Volloch),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비영리 공간 아우토센터(AUTOCENTER) 공동대표인 욥 반 리프란드(Joep van Liefland), 8회 비엔날레의 총감독 후안 에이 가이탄(Juan A. Gaitán) 등을 들 수 있다.

스웨덴 출신으로 스톡홀름과 베를린에서 갤러리 노든하케(Galerie Nordenhake)를 운영하는 클레스 노덴하케(Claes Nordenhake), 원성원 작가가 2014년 개인전을 한 사진전문 갤러리 포드비엘스키 컨템포러리(Podbielski Contemporary)의 피에르 앙드레 포드비엘스키(Pierre André Podbielski)씨는 컬렉터이자 건축가이며 부모는 프로이센과 폴란드 출신이다.
예술과 파티를 분리할 수 없는 베를린 이미지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폴란드 출신 마틴 콰데(Martin Kwade) 씨가 운영하는 콰드랏(KWADRAT)은 지난 5월에는 한국작가 최서완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런던과 뉴욕에 전시장을 둔 블레인 서던 갤러리(Blain Southern Gallery), 변원경 대표가 운영하며 문을 연 지 5년 만에 진취적인 전시 프로그램으로 선명한 프로파일을 구축한   안도 파인아트, 타냐 레이튼 갤러리(Tanya Leighton Gallery) 등 갤러리 외에 크고 작은 비영리 공간 또한 수없이 많다.

독일식 썰렁한 농담 중 “창작인으로 베를린 도로를 포장해도 된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창작인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렇게 많고 다양한 예술가들이 뚜렷한 문화의 색이 없다는 뼈있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베를린이 생소한 것을 잘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생긴 사회가 된 것이기도 하다. 흔히 독일 사람들이 원칙주의자고 융통성과 순발력도 없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썰렁한 독일인이 세계에서 가장 핫하고 열린 예술의 도시 베를린을 만들어 놨다. 독일과 베를린으로 향하는 창작인의 발길은 아마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 Berlin Museumsinsel
    Berlin Museumsinsel
  • 최찬숙 전시 전경 ©최찬숙
    최찬숙 전시 전경 ©최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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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