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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문학을 통한 교감, 민들레 프로젝트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제3회 민들레 프로젝트는 작가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홈리스들의 문학적, 예술적 소양을 일깨우고, 창작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함으로써 작가, 대중, 사회와 교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을 사업 목표로 한 기획사업으로 서울노숙인시설협회, (사)빅이슈코리아, 서울시, 주거복지재단과의 협력으로 진행되었다. 민들레 문학특강, 민들레 창작레슨, 민들레 예술문학상 공모전, 토크콘서트 등이 이루어졌으며 그중 부대 프로그램인 민들레 문학특강에 참여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과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

김윤이 (시인)
  • ‘열린여성센터’에서 현재 운영하고 있는 카페 사진
    ‘열린여성센터’에서 현재 운영하고 있는 카페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일환으로 운영 중이다.

〈금연포기〉란 시에서 김중식 시인이 말했던가. 시인도 ‘둘만 모이면 아파트 이야기’라고. 내 보기엔 이젠 한국이 자본과 성공에 목 꿰인 사람들 천지 같은데 시인인들 별수 있으랴 싶다. 현 시기 자본주의에서 심지어 학생들조차 현실의 실정을 꿰고 발맞추려 하는데, 문학이 과연 어떤 소명 하에 그 천명을 다할 것인가. 서열의 계층 계급을 일컫는 하이어라키(hierarchy)에서 나는 과연 자유로운가 등등의 자기 본연적 질문과 자괴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학생이면서 선생인 나는 두 자리를 놓고 서로 길항하고 있었다. 그렇게 현실에 대한 환멸이 날 지배할 쯤, 운명처럼 집 마련을 위한 노숙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론 다른 걸 준비하고 있었는데 취소되었고, 의미 있는 강의 하나로 프로젝트를 내내 눈여겨보다 망설임 끝에 신청한 건이 된 것이었다.
빈약할망정 내가 사회로 환원시킬 수 있는 문학의 열정이 있다면, 그리고 가르칠 수 있는 역할이 주어진다면 시와 단짝이 되어 침잠해 들어가는 황홀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때마침 그 일이 제3회 민들레 프로젝트라는 응답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운명이랄 밖에. 상업적 글쓰기는 애당초 포기하고 마음 쏠리는 일에 몰두하라는 신의 뜻인 듯이.

8월 중순 지나, 비 오는 화요일로 수업이 잡혔다. 홍제를 향한 첫 외출 날. 비가 왔다. 수업이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첫날이 떠오르는 이유가 있다. 상세히 길을 알려준 조아영 선생님 덕분에 초행길이 어렵진 않아 보였다. 홍제역 3번 출구에서 내려 09번 큰 마을버스를 타고 별미용실에서 내리라고 하였다. 첫길을 항상 엉뚱한 곳으로 가던 길치의 습성이 발동할까 싶어 일찍 집을 나섰고 별 탈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아뿔싸. 홍제역에서부터 하늘이 꾸물대더니 버스 하차 시쯤엔 기어이 굵은 빗방울이 꽂혔다. 한번 쥐면 놓을 수 없는 세상이라는 듯 하늘이 온통 휘저어놓아 땅은 물바다였다. 정신마저 추적대었다. 여긴 어디지. 사방이 빗줄기에 가려 도통 보이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목청 높은 소리가 들렸다.
 “맞아요, 거기서 보이는 골목 오른쪽으로 쭉 들어가 왼쪽이요!”
 “!……”
서대문 09번 마을버스 기사분이 버스를 세운 채 경사진 골목 입구에서 비 맞고 선 날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아무리 비가 오고 있었다지만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친절이었다. 승객을 실은 버스가 수분 간 멈춰 있었으니 말이다. 한참 후에 돌이켜보니, 버스 승차 시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초행길이라 길을 잘못 들까 싶어 ‘열린여성센터’를 내가 물어봤고 그러자 기사분은 큰 가방 하나를 든 행색으로 미루어 도움이 필요한 여성이 센터를 찾아가는구나, 판단한 모양이었다. 후줄근히 젖어 선 모습이 꽤 처량했나 보다. 운행 중인 버스를 멈추고 설 정도로. 다시 그 생각에 미치자 가슴이 짠하다. 생각지 않게 소란이 치러졌고 그로 인해 매번 날 일깨우고도 내가 다시 잊는, 사람 사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생활에 이끌려 또 망각한 것. 내 문학적 열망. 내가 진정 글을 쓰려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누가 있어 대홍수의 날처럼 지상에 물을 틀어 어리석은 인간상을 기억하라고 하는 듯이. 그때 비가 내렸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현실을 등지고 이공간(異空間)을 향해 가는 성싶었다. 비가 왔고 전체적으로 어둔 날이었으므로. 드로잉 선 작업처럼 대략 느낌이 그러하였다.

커다란 나무문의 ‘열린여성센터’는 다세대식 5층 건물구조를 하고 있었다. 첫째와 둘째 주엔 비가 왔기에 외관을 상세히 살펴보진 못했다. 그러다 뒷날, 참 알뜰히도 공간 활용을 한 형태임을 알았다. 1층의 사무실과 주방, 식당, 5층의 숙직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은 여성의 거주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룻날은 수업 도중 식사와 방의 난방 등을 물은 적이 있었는데, 따뜻하고 아늑하다고 하였다. 식사도 훌륭하다며 겨울을 날 수 있어 다행이라 하였다. 30명의 식솔을 거느린 센터선생님들의 노력 덕분으로 생긴 제반 시설이리라. 실제로 살펴본바, 선생님들 사무 보는 공간이 가장 적은 평수를 차지했다. 4개의 책상이 일 센티 틈도 없이 다닥다닥 붙은 사무실은 의자를 뒤로 밀고 앉을 수조차 없다. 여름부터 강의를 시작한 나는 번번이 복사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밀폐되어 찌는 듯한 더운 공간에선 복사기 열기를 더하는 것도 민폐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또 건물 내부 곳곳엔 기거하는 여성분들의 살림살이들 ― 모자가정(母子家庭)의 유모차, 건조대, 센터의 소형차, 분리수거함, 음식물 분리함 등 ― 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발 디딜 데 없다. 자산가치와 윤택한 거주 공간만을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겐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주거 공간인 것이다.

첫 수업은 네루다의 시부터 시작하였다. ‘어느 날, 시가 나를 찾아왔다’는 수업 명으로. 칠레 시인 네루다에 대한 소개와 이탈리아 섬 우체부와의 우정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1994)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민음사, 2004)를 토대로 수업을 진행했다. 베아트리체 때문에 시 쓰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한 순박한 마리오에 대해.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그리고 끝내는 그 자신도 시인이 되고, 혁명가가 된 인생에 대해.      
학생분들이 모두 온순한 성품이어서 수업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창작자의 입장으론 지금보다 좀 더 뛰어난 작품이 나오길 바랐고, 선생의 입장으론 그녀들이 자신의 삶과 최대한 밀착된 진정성 있는 작품을 쓰기 바랐다. 그러나 그 이유로 해서, 힘든 점이 발생하였다. ‘상처일지도 모를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끄집어내 작품화시키는가’와 ‘궁극적으로 시란 무엇인가, 은유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문제였다. 전자는 그녀들 스스로가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였고, 후자의 문제는 몇 차례의 수업 진행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갔다. 그래서 두어 달이 지나고 지금은 비록 완성되지 못한 상태여도 가닥을 잡은 그녀들이다. ‘상처’앞에서도 일정 부분은 의연해졌다.
학생이자 선생인 나로선 신기하게도 수일 전 학교 수업에서 네루다와 메타포(metaphor)에 관한 동일한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내심 내 수업을 떠올리고 있었다. 시간의 순서가 학교 수업 후 내 수업이었다면 더 상세히 가르칠 수도 있었을 걸…하면서 속생각도 하게 만든 오묘한 경험이었다. 좋은 일이다. 아무튼. 강의 마치기 전 재차 쉽게 설명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힘들다 하시면서도 끝까지 작품을 고치신 세련된 커트 외모의 60세 K 선생님. 서글서글해 보이는 호감형 인상을 풍기시며 불편한 몸으로도 늘 ‘아멘’을 전도해주신 50세 Y 선생님. 서대문시립도서관에서 내 책도 찾아보았다며 사랑스러운 눈빛을 흘린 미인형 49세 P 선생님. 속정이 깊어 매번 정갈히 과일을 깎고 커피를 준비해주신 글래머러스한 미인형 40세 H 선생님. 호리한 외양과는 달리 상당히 다부져 글쓰기에 뒷심을 보인 나와 동갑인 39세 모자가정 엄마 L선생님.(학생의 연령대가 높아 모두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드렸다.)
이렇게 다섯 분의 학생과 함께한 수업이 어느덧 여름을 지나 가을을 지나고 있으며 초겨울 기미를 보이는 11월에는 마무리 짓게 될 것이다.

인생에 희소가치가 있다면 그건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순위를 나누고 모두 성공만을 희소가치로 동경한다. 그러한 까닭에 개인의 실패는 무지와 게으름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타인의 삶은 남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아니기에, 삶 앞에선 누구나 신중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삶을 숙연히 바라볼 때라야 비로소 삶은 아주 조금 제 모습을 보여준다.   
당신이 알 수 있겠는가. 사회가 규정해놓은 인생에서 벗어나면 왜 실패라고 하는지를. 착해서 지금의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무지하고 게으르고 굼떠서가 아니라, 착하고 정 많고 심약해서라면 쉽사리 충고나 조언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나쁘게 살라고? 사람을 믿지 말라고? 약삭빠르게 살라고? 돈만? 내 것만? 남을 이용할 것만 생각하라고? ……. 그러니 우린 인생 앞에서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성공적 삶에 대해 확신에 찬 이가 있다면 그치의 말이 답습과 안일의 때 묻은 답변이리라.
나는 수업을 진행하는 도중, 50세 Y 선생님이 사별한 남편 얘기로 눈물짓는 걸 보곤 본인에게 고통인 일로 작품화하라며 더는 권하지 못했다. 10년 뒤가 상상하기 괴롭다는 H 선생님에겐 작품의 주제에 맞춰 쓰라며 더 이상 권하지 못했다. 아무리 무한 광맥 같은 실화의 경험이 있다 해도 스스로가 감당키 힘든 고통과 괴로움을 끄집어내라고 함부로 종용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그랬다. 특히 여성이기에 그랬다.
제아무리 한국 현실이 평등화되었다 한들. 과연 그러한가, 라는 의구심이 아직도 내게 작용하는데(여성도 요직과 고위 관직을 맡는 현대에 무슨 성문제냐, 라는 식의 잣대는 그야말로 성별의 외형만 판가름하는 판단일 것이다. 남성적 사회 구조, 폭력성의 부정 의식의 발로로서 드러나는 성은 아직도 건재하며 이것은 성차의 의미를 넘어서 있다. 즉, 지향성이 근대문명의 탈을 쓴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지양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 성별의 남녀가 아니라 남성적 폭력성을 가진 여성이다/아니다, 폭력성을 가진 남성이다/아니다, 란 구별이 적합하리라. 억압과 폭력의 차원으로 설명 가능한 성의 문제다.) 마치 죄지은 여자인 양 들씌우는 이 땅의 현실을 그녀들이 모를 리 없었다. 이미 마음에 자상의 흔적이 있는 여자들은 제 인생을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8주의 수업이 지나갔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시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을 사랑한다.
의심과 부정의 마음이 싹트고 진즉에 공신력 잃은 자리가 문학의 자리라고 부정의 생각을 전달하여도, 시는 그 부정과 의심조차 포함시켜 감싸준다. 강의 막바지에 접어들어 그녀들이 써낸 작품이 내게 그걸 가르쳐주고 있었다. 뚝섬에서 풀 뽑는 일을 써내기 싫어했던 H 선생님이 그걸 작품화하였고, “몇 번이고 퇴고하다 보니 글 쓰는 법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글귀가 잡히는 것 같다.”는 K 선생님이 있었고, “우리도 고상한 작업을 하는 듯하다. 자활 의지와 자존감이 생긴다.”라는 Y 선생님이 있었고, 매번 퇴고가 어렵다 하면서도 끝까지 참여하는 P 선생님이 있었다. 그리고 나와 동갑인 모자가정의 L 선생님은 “나의 상태를 적은 글을 공유하는 것이 어렵다.”라며 내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 8번째 수업에선 “나의 문제로 가둬둔 모습을 적어서 공유하고 나니 크게 느껴지던 나만의 암흑세계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어 작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라는 수업 심정을 적어 날 뿌듯하게도 해주었다. 게다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 시를 형상화했다. 결국 나를 울렸다.
(가르치는 선생으로 강의 시간에 마구 울 수는 없는 일이기에 운 것을 L 선생님은 모른다. 마음이 상당히 아팠다. 내가 그러한대 정작 그걸 시로 쓴 본인 심정은 오죽했으랴……)
나이 어린 선생이 바라보는 나이 많은 학생분들은 한 분 한 분 너무 대견하였다. 교육 과정을 장장 몇 년인지도 모르게 받고 있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어준 것이 한없이 고마웠다. 미학적 선취니, 정치한 분석이니 같은 용어를 한 방에 무색케 만든 나의 학생 선생님들께 더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밥이 무서운 법(法)’이라 했거늘. 다섯 살 딸내미를 두고도 현실에 좌절치 않고 밥벌이하고 또 공부하여 날 얼굴 붉어지게 만든 L 선생님께 많은 걸 배웠다.      
말문이 트이자,
 “선생님! 좋은 시라는 지금 시들이 모두 어려운 말뿐이에요.”
라고 서슴없이 말한 L 선생님.
 “가르침, 고마워요.”          

‘열리다’와 ‘여성’이 결합된 합성어. ‘열린여성센터’. 실패로 인한 두려움이 앞서 있는 그녀들, 닫힌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열리길 바라며 5층 강의실문을 닫는다. 


  • 강의 사진
    5층 숙직실에서 이루어진 강의는 5명의 학생분들과 나와의 교감의 시간이었다.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