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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아르코 공공미술 시범사업 ‘지역재생+예술’

2014~5 바이칼 노마딕 레지던시
민낯으로 마주하던 시간들

김현주 (2014 바이칼 노마딕 레지던시 프로그램 기획자)
  • <한 줌의 도덕(Minima Moralia)> 전시 전경 ©홍진훤
    〈한 줌의 도덕(Minima Moralia)〉 전시 전경 ©홍진훤


2015년 2월을 러시아에서 보내게 될 줄 2015년 1월엔 확실치 않았다. 2015년 1월, 러시아에 다시 가서 전시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될 줄 2014년 해가 길던 여름 알혼섬에선 짐작하지 못 했다. 떠나야 할 이유가 하나씩은 있었던 우리들은 짐을 꾸렸고, 잠행하듯 기차를 타고 호수로 향했던 게 지난여름 일이다. 바이칼 호수면 뭔가 숭고하고 특별할지 모른다, 마음은 부풀었지만 그건 치기라 짐짓 가리며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 자고 일어나 먹고 배회하고 또 배회했다. 그곳이 다른 공간인 건 눈 뜨면 쉬이 보게 된다. 하지만 다른 시간에 놓였단 건 며칠 배회하고, 배회하고 그러고 한밤이 되어서야 지는 해를 보고 알게 되었다.
노마딕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준 건 예술에 대한 대단한 자각 그런 거창한 게 아니었다. 다만 여기 있었다면 미처 깨닫지 못할, 환기 정도. 저 너머 풍경을 유심히 보게 된다거나,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 이름 모를 풀들이 보이고, 흩어져 있는 대상물에 호명을 하며,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게 만드는 정도만의 부박함이 다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배에서 모두 절반만 믿는 마음으로 동전을 던졌다. 진심을 다하면 다시 올 수 있다 하였다. 그리고 겨울에 호수가 얼면 썰매 타러 와야 한다고 흰소리를 나누었다. 2월이 좋지 않겠냐고, 전시장 좀 알아봐 달라고 러시아 작가 야나에게 말했다. 그땐 그 정도가 다였다. 거의 농담, 약간의 기대, 하지만 모스크바도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아닌, 바이칼 호수 아닌가. 살며 한 번만 다녀온다 해도 이상할 리 없는, 생경했지만 이내 그리워지고만 여행길 동무 같은 곳.
그런데 그 바람이 자라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홀려서 쫓고 당기다 보니, 어느새 러시아 미술관에서 보낸 초청장을 쥐었다. 아니, 쥐고 말았다. 여름 지나 늦가을의 일이다. 그리고 1월, 겨울엔 딱 한 달만 취항한다는, 이르쿠츠크 직항편을 타고 가 미술관 측과 회의를 하고 러시아 작가들을 만났다. 그리고 2월, 13명의 러시아 작가, 8명의 한국 작가가 모여 러시아 이르쿠츠크 국립 미술관 수카초바에서 한러국제교류전 〈한 줌의 도덕(Minima Moralia)〉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1명의 기획자와 21명의 작가가 모여 만든 전시가 아니다. 살을 찌우고 키운 건 채 다 열거하기 힘든, 많은 이들이다.

2014년 바이칼 노마딕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햇수로 3년 차였다. 1년, 2년 차 기획자와 작가들의 움직임이 켜가 되어 3년 차에 옹이 졌다. 그리고 자칫 교분과 친교의 자리로 자족할 수도 있었을 전시의 밀도와 농도를 높여준 건 이르쿠츠크주 총영사관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이 실물로 매듭지어진 것이고 길목마다 통역해준 정겨운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만큼 타국의 문화에 아낌없는 관심과 이해를 전하던 러시아 미술관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수백 명의 사람이 오픈일에 참석해 주었고 곱게 한복을 입고 환대해 준 고려인들이 있었다.
기실 〈한 줌의 도덕〉의 출발은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하지 않음이었다.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하며, 또 탐험가들도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지금 나는 나의 여행기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쓴,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인용했던 기획서의 역설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만들었다. 모험 대신 타자와의 대면, 그리고 한 줌의 도덕을 택하겠다는, 무모함의 얼굴 뒤엔 모험과 타자를 향한 정제되지 않은 호기심, 도덕이 거추장스러울 욕망이 자리한다. 거주라는 말이 자리해야 유목의 개념이 살아나듯 주어진 역설을 받아안는 게 노마딕 레지던시 프로그램이지 않을까.
그러므로 짧을 수 있지만, 삶에서는 선연할 시간 동안 서로의 민낯을 보고, 대화하여 의미를 나누며, 침묵한다면 이를 존중하는 틈새가 이 프로그램이고 우리에겐 러시아, 바이칼 호수, 알혼섬이 그런 곳이었다. 비(非)생산, 반(反)생산으로서의 생산의 다른 시간과 다른 방식을 고민해보자는, 말장난 같아 보이는 기획자의 독백을 고독해지지 않게 만들어 준 작가들이 함께했고 못 하나, 테이프 하나 붙일 수 없는 고전미 있는 18세기 건물을 빈 듯 채운 듯하여 오는 발걸음의 의미를 더해준 작품들이 있었다. 작품으로 수렴하는 예술적 의미를 구하는 러시아 작가들과 의미의 자장을 작품 밖으로 넓혀 보려는 한국 작가들의 시도가 공명했다. 많은 이들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온 텐트를 신기해했고(전진경, 〈어두운건 무섭다〉), 풍경을 품은 그림이 풍경 속으로 환속되는 작품(안경수, 〈바람부는 날〉)에 감탄했다. 대상의 자취만이 남은 판화 앞에 발길을 멈추고(황연주, 〈숨어있는 꽃〉), 낯선 오브제의 조합에 당황하지 않고 의미를 물었으며(정재철, 〈수슬릭의 일기〉), 흔들리는 나침반을 보며 잠시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김승영, 〈나침반〉). 설국에 익숙한 이들도 그 환경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는 남녀에 눈길을 멈추고(유비호, 〈위안의 숲〉),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의 도처함에 위안을 받았다(홍진훤, 〈가장 처음의 처음시간 #01〉). 전시장을 돌아 나오는 발길은 바이칼 노마딕 레지던시 3년간의 시간이 담긴 기록 영상(정성훈,  〈바이칼 노마드〉) 앞에서 잠시 멈춰 교류라는 단어에 의미를 덧대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건 예술도, 전시도, 작품에 대한 것도 아니라 그곳, 바이칼, 알혼에 대한 얘기다. “알혼섬은 겨울이 아름답습니다. 여름만큼, 아니, 여름보다, 더.”


  • <한 줌의 도덕(Minima Moralia)> 전시 전경 ©홍진훤
    〈한 줌의 도덕(Minima Moralia)〉 전시 전경 ©홍진훤


[기사입력 : 201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