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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영국 큐레이터 토크
화이트채플 갤러리 다니엘 허만 "공동체로서의 미술관"

박재용 (큐레이터)
  • 다니엘 허만
    다니엘 허만

지난 10월 29일 한국을 찾은 영국 큐레이터들의 큐레이터 토크가 열렸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영큐레이터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12년 한국 큐레이터들의 영국 방문에 이어 2014년 영국 큐레이터들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진행된 행사이다.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다니엘 허만(Daniel F. Herrmann)도 이 자리를 찾아 강연을 진행했다. 다니엘 허만은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큐레이터이자 큐레이토리얼 연구 프로그램 학장이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공동체로서의 미술관’이란 주제로 펼쳐진 그의 강연을 살펴보기로 한다.


l 공동체로서의 미술관 : 어린이, 젊은 방문객들, 공동체, 가족의 삶 속에서의 동시대 미술

우선 이 자리에 초대해주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주한영국문화원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런던에 있는 화이트채플 갤러리(Whitechapel Gallery)에서 제가 전시 기획, 교육 프로그램에 기여하는 부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특징과 개념들, 화이트채플 갤러리가 교육과 미술에 관계하는 방식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를 간단히 소개하고,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고, 불행히도 작품을 만들 기술은 없는 탓에 작가는 아니지만 미술에 관해 이야기하고 새로운 생각을 얻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생각 덕분에 함부르크에서 미술사를 공부했고, 특히 유태인 미술사학자인 애비 워버그가 세운 전통을 따랐습니다. 워버그에 따르면 미술사는 주로 유명한 남성들로 이루어진 인물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개념의 역사, 즉 우리가 어떻게 작품이라는 물체를 바라보는지에 대한 생각의 변천사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이런 생각을 따르고 있으며, 작가들과 전시를 만드는 것과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일하기 전에는 에든버러에 있는 스코틀랜드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도 일했던 적이 있고, 지금은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두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좌측은 1901년에 지어진 화이트채플 갤러리이고, 오른쪽은 1890년대와 1900년 즈음에 지어진 화이트채플 도서관입니다. 지금은 두 건물이 하나로 합쳐진 상태로, 2009년에 화이트채플 갤러리로 재개관하였습니다.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는 런던에서 미술관을 열기에 아주 흥미로운 시기였습니다. 1901년은 화이트채플 갤러리가 세워진 해인데요. 20세기가 시작된 이 해는 빅토리아 시대가 저무는 해이기도 했죠. 동시에 유럽 모더니즘이 시작된 해이기도 했습니다. 개관 후 첫 20여 년은 화이트채플 갤러리가 처음 세워지는 바탕이 되었던 빅토리아 시대의 자선과 박애 정신이 사라지는 시기였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빅토리아시대의 정신이 사민주의적 노동자 교육 운동에 자리를 내어준 것이지요.

따라서 당시 영국의 미술관들, 특히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예술 교육이란 미술에 대해서 가르치고, 미술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곧 지적인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술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관해 어떻게 이야기할지, 어떻게 다른 의견을 제시할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미술이 무엇인지를 일방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토론하고 정의내리는 것이야말로 화이트채플 갤러리가 생각하는 교육의 목표입니다. 민주주의적 절차로써의 교육, 이것이 화이트채플 갤러리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기여할 수 있는 바라고 믿습니다.

1901년 화이트채플 갤러리가 설립되던 당시의 화두, 미술관의 표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스트 런던 시민들을 위해 전 세계 최고의 작품과 작가를 선보이는 것 (The Best of the Art of the World for the People of East London)

물론 2014년 시점에서는 조금 유행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재해석했습니다.

런던 시민들과 함께 최고의 국제적인 미술을 선보이는 것 (Exhibiting the best international art with the people in London)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국제적인 기관이고자 하며, 국제적인 기관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거나, 그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와 함께 일하고, 역사를 바탕으로 작업하고,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원인 관객들, 우리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화이트채플은 문턱과도 같은 곳입니다. 항상 활기찬 곳이었고, 런던이라는 대도시에서 이민자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기도 했으며, 유럽과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런던의 ‘시티’ 지역과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의 문턱이기도 합니다.  

설립 당시에는 미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가르치는 것으로 교육을 시작했는데요.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런 방식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됩니다. 당시에도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무척 국제적이었습니다. 역시나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를 도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부에서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1923년에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유태인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는데요, 주목할 점은 화이트채플 지역의 공동체와 함께 만든 전시였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화이트채플 지역에는 상당히 큰 유태인 이민자 공동체가 모여 살았고, 미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지 등에 관한 교육에 관심이 컸습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가 운영 원칙으로써 공동체의 관심사에 맞추어 작업하고 국제적으로 가장 뛰어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전시를 개최한다는 방침을 세워나가던 시기였습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최초’를 선보이는 곳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마케팅 측면에서 아주 뛰어난 말이지만 실제로 이 말을 지켜왔습니다. 1936년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는 스페인 미술 전시를 개막했고,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영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또한 아주 뛰어난 작가, 큐레이터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미술사, 특히 영국에서 아주 중요한 전시인 리처드 해밀턴의 1956년 〈This is tomorrow〉 전도 수많은 예 중 하나입니다. 이제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운영 중인 전시 유형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가장 중요한 유형은 바로 작가가 직접 기획을 맡아 이끄는 전시입니다. 〈This is tomorrow〉 역시 큐레이터나 미술관 관장이 기획한 것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으로 만들어진 작가 집단, 작가들이 협력해 구성한 사례입니다.

동시대 미술가들의 개인전 또한 개최하고 있습니다. 1958년 잭슨 폴록을 영국에서 처음으로 소개했는데 당시 화이트채플 큐레이터와 잭슨 폴록이 협력해 기획이 이루어졌다는 점뿐만 아니라 기둥에 전기 조명이 설치되었다는 점을 강조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전기 조명을 사용한 미술관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 채광이 아름답게 들어오는 전시 공간에 대체 왜 전기 조명이 필요했을까요?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노동자 지역에 만들어진 미술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관객은 언제 전시를 보러 갔을까요? 공장이 문을 닫은 뒤에 갔던 것이지요. 물론 이때는 해가 져 어두워진 저녁시간이었을 것이고요. 따라서 전기 조명이 필요했던 겁니다. 이것이 바로 관객과의 대화라 할 수 있고, 오늘날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전시를 만드는 데 있어 관객과 대화하고 함께한다는 정신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적인 동시대 미술작가들의 전시도 개최해왔습니다. 1964년 영국에서 라우셴버그를 처음으로 소개한 전시를 진행했으며, 요셉 보이스와 같은 작가들과 함께 일하면서 미술의 범위와 정의를 넓혀나가는 것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관객과 관계를 맺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객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요셉 보이스 전시 당시에도 가장 인기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특정한 주제로 이루어지는 단체전도 진행해 왔는데요, 2000년에 열린 〈PROTEST & SURVIVE〉라는 전시는 불일치, 논쟁, 토론이라는 방법으로 함께 이야기하기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전시였습니다. 민주주의란 대립된 의견이 있어야 된다는 것인데요. 참여와 토론이 전시의 핵심이었고, 이는 지역 공동체의 협력자들과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폴 매카시의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가 두 건물을 하나로 합치던 시기에 이루어진 프로젝트인데요. 미술관 문을 닫지 않고 운영하자는 생각을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건물은 폐쇄되겠지만, 전시장은 문을 연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미술관의 문은 닫혔지만, 외부 공간을 활용해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미술관 건물 바로 옆에 있는 공장을 잠시 빌린 다음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도록 했습니다. 그 공간에 폴 매카시가 해적선을 구성했고요. 화이트채플 지역의 버려진 가게들을 빌려서 진행한 〈The Street〉라는 프로젝트도 있었고, 지역의 시장에서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에 미술관 건물을 재개장한 이후 여러 전시가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2010년 존 스태제커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영국 미술가를 새로운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개념으로 이루어진 전시였지요. 국제적인 작가들에게 작품을 커미션(제작 의뢰,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장 최근에 기획한 전시는 다다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독일 여성 작가 한나 회흐(Hannah Hoch, 1890~1978)의 개인전입니다. 다른 작가, 전시들과 마찬가지로 이전까지 영국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잊혀진 작가를 영국과 세계의 미술사로 불러와 재평가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전시라 하겠습니다. 이런 부분이 화이트채플 갤러리 전시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교육에 관해서 우리는 “공동체로서의 미술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관객을 우리와 함께 작업하는 동반자로 생각하고, 대화를 중시합니다. 이제 이런 대화의 사례들을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사민주의적 노동자 교육 운동의 전통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교육이 곧 문화라고 믿습니다. 교육은 사람들이 지적 생산수단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어떻게 해석할지를 결정할 수 있게 한다고 말입니다. 물론, 교육이 지닌 역설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독립적이 되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누군가에게 독립적이 되도록, 스스로 생각하도록 알려줄 수 있을까요? 이런 부분은 우리가 시도하는 교육이 지닌 역설이기도 합니다.

예술 작품이란 특정한 시기 문화에서 만들어진 미학적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은 경험하고 분석할 수 있으며, 이는 비판적 사고와 창조적 사고를 가능케 합니다. 이것은 또한 민주주의적인 참여에 중요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미술, 예술이란 아름다움이나 장식, 개인적 경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함께하는 경험과 긍정적 의미에서의 논쟁과 토론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민주주의적인 토론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를 위한 장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학자들, 작가들과 함께 말입니다. 미술관은 특히 창조성과 관련된 이야기의 장과 대안적 사고방식, 실험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자 합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프로그램이 목표로 하는 세 가지 방향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실험적이고자 합니다. 미술관은 학교일 필요가 없고, 미술학교일 필요도 없습니다. 실험적이어도 되고, 새로운 형식을 시험해볼 수도 있습니다. 둘째로,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프로그램은 연구조사에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더 넓은 차원에서는 미술사적 논의와 학술 분야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포괄적이면서 영감을 불어넣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합니다. 스스로에게 도전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미술, 예술에 관한 개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설명할지와 관련해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바에 도전한다는 말입니다. 미술관을 찾는 방문객들, 지역 공동체, 국제적 협력자들과 함께 마음을 맞춰 이를 이루고자 합니다.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과 대화를 함으로써 말이지요.

프로그램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장소와 프로젝트와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비롯해 1930년대부터 최신의 미술을 선보였고, 최근에는 2010년 진행한 레바논 작가 왈리드 라드의 전시도 있었습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교육 프로그램은 이런 전시와 연계해서 이루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시 기획이 진행되면, 교육 담당 큐레이터들이 전시 큐레이터들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전시를 기획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팀을 이뤄 함께 진행하는 것입니다. 1979년에 있었던 〈Arts of Bengal〉이나 에바 헤세(Eva Hesse) 개인전과 같은 전시에서도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워크숍이 진행된 바 있습니다. 지금도 2015년 여름에 개막할 기획 공모 전시를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고요. 출발점에서부터 어떻게 공동체와 함께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될지 고민 중입니다. 또한 교육 프로그램을 어떻게 지역 공동체로 가져갈지, 어떻게 전시장 밖으로 나갈 지도 고민합니다.

2013년에 〈The Spirit of Utopia〉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단체전은 대안적 교환과 대안 화폐, 환경 문제 등을 주제로 교육 담당 큐레이터들과 함께 준비를 진행했습니다. 미술관 안에 도예 공방을 만들어서 벽돌, 항아리 등을 만들기도 했고, 경제라는 개념에 대해 돈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고 네트워크로서의 예술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교육 프로그램은 네 가지 방향에 초점을 맞춥니다. (1)지역 공동체, 청소년들과 함께하며, (2)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일하고 (3)가족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4)퍼블릭 프로그램과 상영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지역 공동체, 청소년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는 말입니다. 우리와 함께 축제 등의 행사를 조직하고 기획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서 작가들과 함께 일하며 직접 큐레이터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미술 작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치는 수업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학생들과 함께 일합니다.

예를 들어, 2012년 여름에는 엘름그린 & 드래그셋(Elmgreen & Dragset)과 학생들이 함께 전시를 만들고, 공공장소에 설치한 작품도 제작했습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이 과정이 잘 진행되도록 돕고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 작가들 또한 흥미를 느껴야 합니다. 이처럼 교육 프로그램에 관해 참여자들이 이끌고(peer-led) 참여 작가들 또한 이끌도록(artist-led)하고 있습니다. 작가들과 참여자들이 작품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큐레이터가 모든 것을 다 말해주는 그런 것이 아닌 셈이죠. 또한 지역 주민들과 큐레이터가 함께 영상 작품을 감상하기도 합니다.

2014년 이루어진 〈Youth Summer & Easter Project〉는 지역 공동체 청소년들의 작업인데요, 작가와 함께 협력해 버려진 공간을 탐사하고 분필로 추상 드로잉을 그리면서 미술에서 저자 개념(authorship)을 살펴보는 동시에 어떻게 미술이 버려진 공간을 되찾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미술이 어떻게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를 헤쳐 나갈 수 있는지도 말입니다. 또한 학생들과 하는 활동을 선생님들과도 똑같이 진행합니다. 선생님들은 참가자의 수를 늘려주고 효과를 증진해줄 사람들입니다. 학생들과 미술, 예술에 관해 이야기하고 미술관으로 데려와 줄 수 있는 사람들이지요. 미술관과 협력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고요. 학교 단위나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을 커미션하는 경우에도 협력을 통해 작업합니다. ‘어린이 커미션(Children’s Commission)’이라고 부르는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을 의뢰하거나 어린이들에게 미술 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에바 로스차일드(Eva Rothchild)같은 작가들에게 연락해 미술관이 어린이들과 미술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한 발판이 될 작업을 해줄 수 있을지 물어봅니다. 이런 방식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어린이에게만 맞춘 작업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어린이를 염두에 두면 되는 것입니다. 에바 로스차일드는 미술 전시장에서 미술 작품과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을 다루었습니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미술을 통해 어떻게 친구를 사귀고 작품과 관계하는지를 주목했습니다. 에바 로스차일드는 학교에서 석 달 동안 머무르면서 작업실을 열고 아이들을 만나고 부모들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난 이들을 영상 작업에 출연시켰고, 〈Boys and Sculpture〉라는 작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보통 때 하던 작업과 비슷하지만, 연약하고 일시적인 재료로 작업을 만들었고, 작업이 있는 공간에 아이들이 들어가게 됩니다. 어떤 지시 사항도 없는 상태로 말이죠. 아이들은 공간에 들어와 일반적인 미술관 방문객처럼 움직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다 해도 된다는 내용을 전달받고, 조각을 만져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때부터, 작품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점점 더 물리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보다 열정적이게 되고, 영상의 마지막에는 작품들이 분해된 채 굴러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 영상의 아름다운 점은 아이들이 그런 조각들을 집어 들고 각자 자기만의 조각 작품을 만들어내는 장면입니다. 조각 작품의 잔해를 가지고 말입니다. 서로에게 퍼포먼스를 펼치고, 함께 퍼포먼스를 펼칩니다. 우리가 미술을 대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말을 걸고 서로의 관계를 함께 생각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이지요. 이 작품을 위해 에바 로스차일드와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었고, 미술관 방문객(아이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 행운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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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로고

[기사입력 : 201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