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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2015 국제공연예술전문가시리즈
Paul Handley(폴 핸들리)

두송희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
  • 폴 핸들리(Paul Handley)
    폴 핸들리(Paul Handley)

폴 핸들리(Paul Handley)는 현재 영국 국립극장의 제작감독이며 영국 모틀리(Motley) 극장의 디자인 강좌 대표이다.
영국의 비영리극장뿐만 아니라, 웨스트엔드의 상업극장에서도 제작감독으로서 수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고전과 창작 작품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5년 국제공연예술전문가시리즈’ 무대제작감독 워크숍에 초청강사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공연제작의 창의성’을 주제로 많은 작품의 사례를 통해 기술자문, 창작 작품 매니지먼트, 재정자문 등 제작감독으로서의 역할과 작업방식을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의 성장 과정부터, 현재 영국 국립극장 제작감독까지 그의 인생 여정을 인터뷰로 담아본다.
 
Q. 보통 연극을 꿈꾸는 이들은, 책이나 영화, 연극을 어렸을 때부터 접하며 동경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감독님은 어렸을 때 어떤 모습이셨나요?

어렸을 때 항상 소설가나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경험한 야생에서의 모험에 대해 쓰고 그다음에는 이 시대의 위대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쓰려고 했습니다. 아마도 저는 자아도취에 빠진 젊은이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극장은 별로 없고 주로 보리밭만 있는 곳에서 자랐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했고 모험을 좋아했습니다. 10대 청소년기에 미국에서 잠시 일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에 런던 로열코트 극장에서 샘 셰퍼드가 극본을 쓴 연극 〈마음의 거짓말〉을 보게 되었고, 샘 셰퍼드가 각본을 쓰고 빔 벤더스가 감독한 영화 〈파리, 텍사스〉를 본 이후부터 샘 셰퍼드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아주 번화한 거리에 있는 이 작은 극장에서의 공연은 제가 미국 중서부에서 경험했던 분위기와 장소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연극이 지니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잠재력에 대하여 눈을 떴습니다. 이때가 1987년이었습니다.
그 후 3년간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할 때 많은 각본들을 읽으면서도 제가 후에 연극 사업에 몸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고, 모험적인 예술가, 작가, 영화 제작자로 살 것이라고 상상하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런던에서 살아가는데 드는 경제적 상황이 저의 꿈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Q. 구체적으로 ‘극장’, ‘연극’에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짧은 기간 미국 중서부의 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고, 그때 자동차로 아이오와에서 미주리, 캔자스까지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을 가로질러 여행하였습니다. 영국으로 귀국한 후 미국의 광활한 풍경을 그리워하던 중 런던 슬론 스퀘어의 로열코트 극장에서 샘 셰퍼드의 작품인 〈마음의 거짓말〉을 보면서 그 풍경을 재발견했습니다. 그 후 영문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대학으로 진학하였고 수많은 희곡을 읽었습니다. 저는 대사와 사랑에 빠졌고 연극이 가지고 있는 협업적 성격이 그와 같은 대사와 어우러지면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샘 셰퍼드와 같은 작가들을 만나고 헤럴드 핀터와 같이 위대한 극작가와 함께 일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일상적 생활 속에서 사무직을 전전하던 중 일간지인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에서 런던 슬론 스퀘어의 로열코트 극장의 무대 출입구 문지기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일자리는 아주 하급 일이었지만 기술자들, 행정가들, 유명한 배우들, 감독들, 작가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통과하는 문 옆에 앉아서 그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 저를 흥분시켰고,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창조적 기업에 대한 기대감도 생겼습니다. 저 자신이 창의적인 독창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었지만 이때부터 창의적인 노력이 반드시 혼자만의 모험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극의 핵심은 바로 에너지와 다양한 재능들이 집합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과정을 통해 창의적인 독창성을 구현하는 데 있습니다.
 
Q. ‘연극’에 대한 꿈이 어떤 계기를 통해 발전되고 실현되었나요?

로열코트 극장이 1956년 창립된 이래 영국의 문화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검열에 맞서 투쟁하고, 영국의 재능 있고 위대한 극작가들, 감독들, 배우들을 발굴, 양성하고, 사회를 투영하여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들을 토론했습니다. 또한 희곡을 표현하기 위하여 연극 연출, 상연, 조명, 음향의 통일성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항상 강조하면서 연극의 양식과 표현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습니다.
저는 무대 출입구 문지기에서 시작하여 무대에서 설치하는 일을 했고, 스튜디오 극장인 ‘시어터 업스테어즈’의 기술감독을 거쳐 제작감독이 되었습니다.
무대 출입구 문지기 시절 초기에 무대 출입구에 앉아 초조해하는 에이전트와 작품이 제작되지 않아 화난 작가들의 전화에 답하고 있는 저에게 장치제작감독이 다가와 문학에 대한 꿈을 좇아 일선 업무 부서에서 일자리를 찾을 것인지, 아니면 무대 뒤에서 노동을 하면서 적어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생계를 유지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빗물이 새는 아파트에 월세로 살고 있었는데 월세도 밀려 있었고 통조림으로 식사를 때우는 데 지쳐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후자를 택하였습니다.
급료로 받은 빳빳한 50파운드 지폐를 사랑했지만 제 가슴 한편에서는 꿈을 포기한 것을 애통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꿈이란 것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앞에 백지 한 장을 놓고 조용한 책상에 혼자 앉아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을까요? 그 후 몇 년이 지나면서 저는 그런 것이 20대초에 갖게 되는 제한된 인식처럼 창의력에 대한 편협한 시각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연극의 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전체적으로 영향을 주는 과정에 모든 사람을 참여시키는 집단적 창의력에 있습니다. 최고의 연극은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최고의 연극 매니저는 모든 백 스테이지의 역할들을 작품에 훌륭하게 녹아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무대 출입구 문지기 일이 행운이었다고 한다면, 직장생활에서도 많은 행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어려운 일들도 있었습니다. 훌륭한 제작감독은 창의적인 생각들을 공연으로 구체화하는 데 있어서 일상적인 문제들을 냉정하게 분석하기보다는 자신의 예감과 신념에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Q. 국립극장 제작감독으로서, 전체적 구상의도와 감독님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국립극장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이 제작되고 있고, 다른 극장들에 비해 훌륭한 구조와 조직을 갖추고 있습니다. 공연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 운영되는 3개의 공간에서는 계속해서 공연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공연의 의도가 영국 사회의 총체적인 스펙트럼에 호소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고전 연극, 새로운 연극, 도전적인 연극, 과장된 희극, 그리고 때로는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들을 폭넓게 보여줍니다.
창의적인 팀에게 결코 ‘노’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평판을 가진 것이 직장생활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몇몇 기술자들은 제가 ‘노’라는 말을 내뱉게 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연극 제작에서 감독과 디자인 팀의 창의적인 포부를 만족시켜줄 만큼 재원이 넉넉한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바로 여기에서 어떤 타입의 제작감독으로 인식되는지가 결정됩니다. 궁극적으로 제작자의 편에 서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예산을 사수하는 제작감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제작자는 원통하겠지만 예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감독과 설계 팀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예술가들의 제작감독이 될 것인가죠. 후자의 경우, 일자리는 오래 유지되지 않습니다.
꼭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두 가지 모두를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핵심은 투명성입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작자에게는 숨겨 놓은 건실한 예산이 있다고 확신시키면서 예술가들에게는 모든 돈을 다 써서 재정이 바닥났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산을 투명하게 다루려면 제작감독은 프로젝트 지출의 모든 양상을 고려하여 드러나지 않는 수요까지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감독과 설계 팀의 신뢰를 얻는 것도 가치 있는 일입니다. 또 다른 추측을 하거나 관계를 향상시키려 애쓰기보다는 세부사항까지 관심을 두면서 올바른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다면 과정이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20여 년간 제작감독으로 일하면서 얻은 경험에서 보면, 때로는 부족한 재정이 보다 창의력 있는 해결책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감독이나 디자이너가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이디어들이, 제한된 재원으로 인하여 세세한 부분까지 검토되는 과정에서 그 진정한 값어치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노’라고 여러 번 말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노’라고 말하면 이 말이 훨씬 더 부드럽게 들릴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거절당한 제안 외에 어떠한 답도 없을 경우에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지만, 여러 대안이 제시될 때에는 그들의 에너지는 가능한 해결책들을 분석하는 쪽으로 재빨리 이동합니다.
 
Q. 제작감독으로서의 어려움과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조율하면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까요?

로열코트의 소극장인 업스테어즈극장에서 상영된 공연을 제작하는 데 사용한 예산에 대하여 지금 되돌아보면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습니다. 영국의 헤럴드 핀터와 같이 저명한 극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이 업스테어즈극장에서 초연되는 것에 대해 행복해 했습니다.
업스테어즈극장의 창의성에 대한 평판은 사실 그 작은 극장에서 공연된 작품에 근거한 것입니다. 저를 사로잡고 있는 생각은 반드시 더 많은 예산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더 충실하게 구현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명백한 의도와 아이디어를 가진 작품에 큰 예산이 주어지면 쓸데없는 군더더기들이 더해져서 원래의 작품성을 떨어트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업스테어즈극장은 융통성 있는 스튜디오 공간으로 면적은 12m×10m입니다. 좌석 수가 수익을 창출할 정도이고, 화재 대피용 비상구가 확보되어 있다면 극본, 감독,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에 맞도록 어떤 형태로도 관람석을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변형 가능성은 예산 때문에 호화로운 무대장치를 할 수는 없지만 공연에 따라 관람객들을 다양한 객석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집니다. 관람석 바닥 전체를 진짜 잔디로 깔거나 극장 전체를 코너 맥퍼슨의 연극 〈거기〉에 나오는 아일랜드 시골의 술집이나, 타렐 알빈 맥크래니의 〈성가대 소년 (Choir Boy)〉에 나오는 북미 지역의 학교 강당과 같은 특정한 장소나 건물로 바꾸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제가 업스테어즈극장에서 제작감독한 초기 연극들 중 하나가 1995년 공연된 조 펜홀의 〈창백한 말(Pale Horse)〉이었습니다. 극장 가장자리를 따라 교회에서 빌려온 작은 의자들을 놓아 관객들이 앉도록 했습니다. 극장 바닥은 버려진 마루판으로 덮은 후 중앙에는 흙 한 덩어리를 올려놓았습니다. 극장의 벽 하나에는 유리잔으로 꽉 채운 선반들을 설치했고 또 다른 벽에는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큰 창문을 만들어 놓았고 극장 건물 바깥쪽에는 커다란 조명을 설치했습니다. 이처럼 단순하며 비용이 많이 안 드는 요소들을 도입하여 현대식 바의 내부공간에서 아파트, 공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무대를 변형시킬 수 있었습니다. 주연 배우 레이 윈스턴에게 보라색 조명이 집중적으로 비추어지고 바닥에 있는 흙에서 부연 먼지가 올라오면서 이 작은 방은 순식간에 고독하고 고통 받는 한 남자가 중앙에 있는 거대한 축구장으로 변했습니다.
 
Q. 조명, 음향, 무대 등 다른 분야와 의견충돌이 있을 때, 어떻게 협업하시고 의견을 조율하시나요?

연극을 만드는 창의적인 협업이 언제나 능률적인 것은 아닙니다. 저의 임무는 각 분야가 다른 분야들과 함께 작동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또한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해왔는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연극 하나를 제작하는 데에는 언제나 다양한 여러 길들이 있고, 이들 모두 예산을 초과하거나, 또는 실현시키는 데 스케줄이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무엇을 성취할 수 있고, 없는가에 대한 선택을 할 때 제작감독은 전반적인 비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Q. 최신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영국의 웨스트엔드의 현재 제작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영국에서 연극 제작은 점점 전문화되고 있습니다. 25년 전 제가 처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을 때에 무대 작업자들은 술을 좋아하며 다양한 삶을 사는 호탕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테이지 디자인이 점점 더 공학적이며 첨단 기술화되고 건강과 안전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제작되고는 있지만 경기 침체와 함께 정부가 예술지원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면서, 작은 극장들과 상업적 제작자들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는 비용 때문에 고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국립극장은 대단한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국립극장 무대에 올라갈 공연 아이디어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하는 스튜디오부터 시작하여 작품들이 시간적으로 여유 있게 개발되고 있으며 재정 또한 대부분의 다른 곳보다 넉넉합니다. 감독들과 극작가들은 원하는 배우들과 기술을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원래 아이디어에 맞게 작품을 개발시킬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감일에 대한 어떤 압박감도 받지 않으며 또한 제작감독이 그들에게 설명을 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여유 있는 인큐베이션이 〈워 호스〉, 〈한밤중 개에게 생긴 이상한 일〉 등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작품들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런 작품들이 탄생할 때, 심지어는 어느 정도 진행이 된 단계에 있을 때에도 아무도 후에 그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흥행 성공을 위한 처방전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린아이를 키울 때 그들이 자라서 어떻게 될 것인지 상관없이 시간, 인내심, 관심, 믿음, 탄력성이 필요한 것과 같이 연극 제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극 제작은 관객이 돈을 내고 공연을 보러 오기 전까지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정부 보조금과 엄청난 공연 수익금, 특히 〈워 호스〉 등과 같은 공연이 벌어들인 수익금 덕분에 국립극장은 세계 최고급의 R&D(Research and Development)를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20년간 제작감독으로서 많은 역할을 하셨는데,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지금은 국립극장의 프로그램이 짜인 상태입니다. 저는 경력을 설계하는 일에 흥미를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조건과 인간의 자멸에 대한 비정상적인 욕구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거나, 생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하는 새롭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따분하게 느껴지는 일에는 점점 더 흥미를 잃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단계가 오면 다른 일을 할 생각입니다. 예술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커리어를 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부심을 갖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Q. 한국에서 강의를 하게 되신 것에 대한 소감 한 말씀 해주세요.

한국을 방문하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여러분들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뿐입니다. 한국의 문화를 탐구하고 이해하기를 갈망해 왔기에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간 런던에 많은 한국 음식점들이 문을 열어서 어린아이들까지도 김치를 알고 있으며 한국 힙합 음악도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워크숍과 강연을 통하여 극장의 기술진들과 제작감독들에게 주어진 일을 단순히 기술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넘어서 창의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합니다. 연극 제작의 창의성은 감독, 디자이너, 작곡가 같은 소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도 6명보다는 50명의 창의적인 지성이 합해질 때 훨씬 더 힘이 커지고, 성공에 가까워지게 될 것입니다.
연극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종종 심각한 이야기들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은 연극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