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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교류

롬복한국문화원 레지던시 참가기

박희정 (시조시인)
  • 문방이슬람중학교 학생들과 마음을 띄워 보내는 시간을 가졌다.
    문방이슬람중학교 학생들과 마음을 띄워 보내는 시간을 가졌다.
  • 마디나툴울룸 고등학교 1, 2학년의 특강 시간
    마디나툴울룸 고등학교 1, 2학년의 특강 시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해외레지던시 프로그램지원에 선정되어 인도네시아를 다녀왔다. 기획형 해외레지던시 프로그램과는 달리, 작가가 레지던시 기관을 찾아 초청장을 받아야 했고, 새로운 나라, 장소에 대한 선정과 타당성을 자발적으로 찾아서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인도네시아를 선정한 것은 우리나라와의 국제교류가 활발하다는 점, 한국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점, 특히 롬복은 대자연과 인간의 정서가 원초적이라는 점 등이 선정의 이유였다.

롬복한국문화원이 있는 롬복 꼬방(Lombok Kopang)은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덜 닿아 자연미가 살아있는 지역이다. 토속적인 정취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담긴 휴양지로 나의 창작에 커다란 변화를 심어주리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롬복의 주거 문화, 전통복식 문화, 교육, 민족 정서 등을 읽으며 우리의 정형시로 창작하고자 야심차게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8월 17일부터 9월 3일까지 롬복에서 교육, 기행, 창작에 초점을 두고 해외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롬복한국문화원이 문방초등학교, 문방이슬람중학교 부설기관이라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학 수업을 진행했다. 《신나는 문학 놀이, 즐거운 생각 놀이》 수업은 텍스트(동화)를 통한 문학적 상상, 창의적 생각을 나눔으로써 문학 수업의 즐거움과 한국과 롬복의 서정을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 몸, 내 마음, 세상의 집, 음식 등 접하기 쉬운 주제로 문학을 접목하는 열린 수업을 진행했다. 또한 학생들이 창의적 글쓰기를 통해 자연, 일상,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계기가 되었고 한국 학생과 한국 학교의 실상에 대해 질의응답을 하며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외국인 방문은 있었지만, 이렇게 나처럼 문방이슬람중학교에서 문학 수업을 한 것은 처음이라며 학교 선생님, 장학사 등 관계자들이 참관하기도 했다.
 
사립형기숙학교인 마디나툴울룸(Madinatul ulum) 고등학교에서 한국 고등학생의 학교생활, 공부, 진학 등에 대해서 강의를 했다. 고등학생인지라 한국에 대해 나름대로 알고 있었고 관심도 있고 공부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어느 여학생이 자신을 만난 사실을 꼭 기억해달라고 해서 마음이 짠했다. 평소 나는 학생들과 수업하며 일상을 보내는 날들이 많아 그들에게 시선을 놓지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이 학생들에게 다양하게 생각하고 토의하고 상상할 수 있는 창의적 문학 수업을 지속적으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레지던시 프로그램 진행하는 내내 들었다.

내가 머문 롬복한국문화원은 조용한 마을이다. 새벽 기도 소리에 잠을 깨고 닭울음 소리에 하루를 여는 마을, 집 앞 넓은 저수지에 연보랏빛 부레옥잠이 피어있고 가장자리에는 야자수, 아카시아망기움(Acacia mangium)이 쭉쭉 뻗어 있는 낭만의 마을이다. 그 저수지에는 간간이 사람들이 들어가 고기를 잡기도 하고 고동을 주워 먹을거리를 준비한다.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여유와 낭만을, 고기 잡는 사람에게는 생계를 제공해주는 저수지다. 〈고기잡이〉, 〈닐라(lila)〉, 〈지켜주는 눈빛〉, 〈비오는 시간〉, 〈오리와 야자수〉 등은 저수지를 바라보고 쓴 작품이다.
롬복 꼬방은 모계 사회로 형제들이 다닥다닥 붙어살며 한 집안 가족이 많은 편이다. 사람 사는 훈기가 가득하다. 일상의 일이 모두의 일이 되고 사소한 일도 공유하게 된다. 꼬방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두 귀가 즐거웠음을! 한 끼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아침 장을 보는 일, 채소를 사면서 흥정을 하는 일, 이웃의 크고 작은 일을 함께 공유하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따스했다.
 
롬복 사람들의 생활 공간, 일상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시의 소재가 되었음이 즐겁다. 〈롬복 아이, 착한 아이〉는 나무만큼 커가는 아이와 자연의 지식을 얻는 아이를, 〈엄마마을〉은 모계사회로 이루어진 일상을, 〈40제 지내는 사람들〉은 죽은 자를 위해 40제에 마을 사람들이 기도하는 의식을, 〈지혜의 선〉은 아기가 태어나면 두 손과 발, 허리에 끈으로 둘러놓고 손 싸개, 양말로 감싸며 나쁜 기운을 액땜하고 지혜롭게 자라라는 삶의 지혜 등 롬복의 전통은 인간 중심이었다. 〈축제같은 날〉, 〈저수지 총각들〉, 〈사랑 빗기〉에는 젊은 아빠, 총각들의 신명이 들썩댄다.
그들의 삶의 현장은 가내수공업을 통해 땀과 열정으로 이어졌다. 찍어내고 말리고 구워내는 시간 동안 혼연일체 되는 사람들과 이심전심의 열정은 불길만큼 뜨거웠다.(〈가마의 열정〉), 그런가 하면 롬복은 마을마다 공사 중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아빠 덕으로 한층 씩 벽을 쌓으며 오래도록 집을 짓는 사람들(〈꿈꾸는 집〉)을 통해 한국은 롬복의 희망이기도 했다. 커피의 나라 롬복! 롬복 커피는 쌀과 커피를 섞어서 만든다. 솥을 걸어놓고 불을 때며 까맣게 볶아 빻으면 된다. 어느 정도 곱게 빻는가에 따라 커피 가루가 둥둥 뜨기도 한다. 그러나 롬복 사람들은 그 찌꺼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이야기를 하며 기다리면서 커피를 마신다.(〈롬복 커피〉, 〈커피 볶는 시간〉, 〈루왁 커피(luwak)〉, 〈슬픈 커피〉) 커피 한 잔을 놓고 주고받는 여유가 커피 향만큼 우련했다.   
롬복은 오토바이 나라다. 집집마다 차는 없어도 오토바이는 있다. 분실의 우려가 있어 집안에 잘 두고 탄다. 학교 갈 때도, 시장 갈 때도, 볼일이 있거나 가족 나들이를 갈 때도 오토바이를 탄다. 4명 가족이 아빠를 중심으로 앞뒤로 꼭 붙어 타는 경우도 많다.(〈오토바이 나라〉) 출퇴근 시간이면 도로는 오토바이와 차량으로 곡예의 시간을 맞는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은 두려움이고, 설렘이고, 기대이고, 도전이다. 롬복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적도의 나라, 휴양의 나라, 낭만의 나라, 힐링의 나라에서 내 영혼에 등불을 켠 점이다. 우리의 문학, 정서, 시상을 다른 나라에서 쓰고 가르치며 겁도 없이 한 달간을 시조시인으로 즐긴 날들이 축복이었다. 롬복! 나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한 나라, 내 생각의 실마리를 가닥가닥 풀어준 나라, 내 의식의 세계는 자연 앞에 한 점 빈땅(Bintang, 별)이었다.


  • 용꼴란(Nyongkolan)</b>-결혼 후 시가행진하는 모습
    용꼴란(Nyongkolan)-결혼 후 시가행진하는 모습으로
    마을의 축제를 이룬다.
  • 수까라라(Sukarara)</b>-방직, 직조, 염색을 하는 전통 직물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수까라라(Sukarara)-방직, 직조, 염색을 하는
    전통 직물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 칼싸움 축제의 장이 열리는데 어마어마한 관객 앞에 승부는 치열했다.
    칼싸움 축제의 장이 열리는데
    어마어마한 관객 앞에 승부는 치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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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