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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최정화 - 총, 천연색
문화역서울 284 전관, 광장 일원(9.4~10.19)

박준수 (미술평론가)
  • 문화역서울 284 전경
    문화역서울 284 전경
  • 〈꽃등〉
    〈꽃등〉
  • 〈꽃천지〉
    〈꽃천지〉
  • 최정화 - 총, 천연색 포스터
     

높이 솟아오른 일곱 개의 색색 기둥이 (구)서울역사의 익숙한 외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전시가 열리는 서울역은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 그 안에서도 중심부에 위치한다. 서울역 버스환승센터에는 서울시의 모든 지역과 주변 광역시를 연결하는 모든 버스 노선이 거쳐 간다.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고속열차는 모두 서울역을 거쳐 가며, 1980년대 명절마다 귀성전쟁을 치르며 ‘민족대이동’으로 대서특필되던 기사에 등장하는 사진 역시 서울역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1981년 사적 제284호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로도 기차역이라는 일상 공간의 기능을 여전히 유지하던 (구)서울역은 그 기능이 신역사로 이전된 후 2011년 ‘문화역서울 284’라는 명칭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일제강점기 갑작스러운 근대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던 (구)서울역의 외형은 그대로 복원되었고, 외형이 담고 있던 우리의 역사와 기억 역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한 세기에 가까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 일상적, 효용적 공간에 최정화는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치밀하게 엉성한” 플라스틱 제품들을 잔뜩 들여놓았다.

핸드메이드 공예 페스티벌에서 무용 공연까지 크고 작은 문화예술 활동이 이루어지던 ‘문화역서울 284’는 2011년 출범 이래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축제를 벌이고 있는 듯하다. 건물의 외벽에 걸린 수많은 대형 광고 포스터를 포함하여 곳곳을 빽빽이 차지하고 있는 말 그대로 총천연색의 작품들은 어둡고 차분한 색조의 (구)서울역사 건물을 화려하게 뒤바꾸어 놓았다. 약 한 세기에 가까운 기간 동안 서울역은 제시대와 한국전쟁, 경제성장 등 수많은 부침을 겪어왔다. 1960년대 이후 치밀하고, 편리하며, 속도가 빠르고, 대규모였던 대한민국의 고속성장은 그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고, 1920년대의 건축 이래 한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최정화의 개인전은 그런 의미에서 공간과 작가의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낸다. 최정화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고속성장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는 플라스틱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초고속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등장한 소비 지향적인 싸구려 문화, 짝퉁, 값싸고 편리한, 가난하던 시절 국민들의 삶 속 깊숙이 들어앉아있던 플라스틱 물품들이 그의 작업을 대표한다. 같은 시기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가 배어있는 (구)서울역사는 이러한 의미에서 최정화의 작업에 매우 적합한 장소이다. 2013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최정화의 개인전 《연금술》은 매우 오랜만에 열린 국내 전시이자, 정상적인 형태(전통적인 시각에서 말하자면)의 미술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이었다. 이후 약 1년여 만에 문화역서울 284에서 다시 한 번 열리고 있는 《총, 천연색》은 대구미술관에서의 전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연금술》이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white cube)의 전시로, 마치 인류학 박물관의 분류와 아카이빙(archiving)의 인상을 남겼다면, 문화역서울 284의 《총, 천연색》은 전시공간과 개념적으로 보다 밀접하게 연결된 관계를 보여준다.


〈꽃궁〉
〈꽃궁〉
〈꽃의 뜻〉
〈꽃의 뜻〉


티 없이 순수한 자연색과는 달리, 이번 전시에서 최정화가 제시하는 총천연색은 철저하게 제작된 인공 색채이다. 완전한 자연색인 ‘천연색’에 관형사 ‘총’을 더한 총천연색에 대해 이번 전시의 민병직 전시감독은 속세의 문화, 인간 세상을 자연의 본연이라는 개념에 추가하였다고 말한다. 인공의 색채와 자연의 그것이 한데 어우러지고, 나아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것을 지칭하려 했다는 ‘총천연색’의 의도는 서울역의 문화적 특수성과 다소 전통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예술계 내에서의 최정화의 위치와 잘 어우러진다. 수도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하면서도 서울역은 ‘서울 시민이 아닌’ 타 지역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거쳐 가는 곳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역의 위상은 중심부인 동시에 주변부로서 기능하는 시시각각 변하는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작가 최정화는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아이콘’이었으나, 2013년 대구미술관에서의 개인전 이후 당시 전시된 작품들을 이곳에서 소장하기 이전까지 한국 미술관들의 컬렉션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작가였다. 이처럼 대조적인 위상의 공존은 더 나아가, 전시공간의 사회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이번 전시가 수반할 수밖에 없는 문제까지도 아우르고 있는 듯하다.


  • 〈꽃의 매일〉
    〈꽃의 매일〉

앞서 언급하였듯, 1922~1925년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구)서울역은 가장 많은 승객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의 중심이었으나, 2004년 1월 (신)서울역사건물의 등장과 함께 (구)서울역사의 철도교통의 기능은 완전히 종료되었으며, 교통의 거점은 남쪽으로 약 100여 미터 남짓 이동하였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이기에 가장 많은 관대함을 기대하며 서울역에 모여있던 노숙인들 역시 서울역 신역사 건물 쪽으로 이동하였다. 교통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편리하고 쾌적해진 곳으로, 이전보다 더 편리하고 현대적인 시설을 이용하며 방향을 조금 바꾼 것뿐이지만, 서울역에서 ‘생활’을 하던 노숙인들은 그들의 (임시)터전 전체를 이동하였다. 서울 시내에서 가장 많은 노숙인들이 모여있던 곳인 서울역 지하철 2번 출구 앞에 이번 전시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대규모의 작업인 〈꽃의 매일〉이 설치되었다. 서울의 이곳  저곳을 향하기 위해 서울역을 지나치는 시민들은 모두 한 번쯤은 빨강-초록색의 거대한 기둥에 눈길을 빼앗기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전시 관람객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거대한 플라스틱 기둥 〈꽃의 매일〉은 8월부터 진행된 ‘모으자 모이자 프로젝트’의 한 부분인 노숙자참여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이곳에 거주하던 노숙인들은 약 1개월간 초록색과 빨간색 플라스틱 바구니를 연결하며 이 거대한 작품의 제작 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였다. 어느덧 서울역의 대표적인 풍경이 된 듯한 노숙인들의 예술 참여는 (구)서울역사 건물 전면에 선언하듯 걸린 “당신도 꽃입니다”를 예술프로젝트로 승화시킨 듯 보인다. 최정화의 작업은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 일상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예상치 못한 재미와 아름다움을 주고자 하였으나, 그럼에도 문화역서울 284의 ‘문화’가, 그중에서도 미술이 만들어내는 심미적 위화감을 한 번에 치유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곳을 바라보는 모두에게 “당신도 꽃”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자신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통해 작업에 직접 참여하였음에도 이번 전시가 만들어 놓은 예술적 공간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 있는 이들에게도 ‘꽃의 매일’이 주어졌으면 한다.

 

(사진: 문화역서울 284, 박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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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