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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프랑스] 테러, 그럼에도 축제를
: 프랑스 테러, 그 후 그들의 이야기

김은지 (프랑스 통신원)
  • 프랑스 테러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김은지
    프랑스 테러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김은지


l 낯선 총소리, 그리고 분노

2015년 1월 7일에도 파리의 아침은 여느 때처럼 차분했다. 상쾌한 겨울바람이 도시를 감쌌고, 매주 수요일 초등학교에서 진행되는 예술 체육 활동이 끝난 참이어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골목길로 쏟아져 나왔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공원에서 노부부가 강아지를 데리고 햇살을 만끽했다.
오전 11시. 총성이 하늘을 갈랐다. 파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수십 대의 구급차와 경찰차 그리고 사람들의 두려움과 울음소리가 파리 시내를 가득 메웠다. 총 1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시사만평지 ‘샤를리엡도 Charlie Hebdo’ 테러는 그렇게 파리를, 프랑스를, 세계의 일상을 찢어놓았다.


  • 샤를리엡도 테러 추모 ©문화커뮤니케이션부 공식홈페이지
    샤를리엡도 테러 추모 ©문화커뮤니케이션부 공식홈페이지

프랑스는 분노했다. 문화, 예술, 정치, 경제, 국방, 보건, 교육 등 분야를 막론하고 만평하거나 그것을 읽는 것에 자유로운 프랑스인들은 샤를리엡도 만평가들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생각을 말하고 글로 쓸 자유, 내가 살아가는 땅에서 그 자유를 존중받을 권리를 공격당했다 여기며 분노했다. 1월 11일, 그 자유를 외치며 7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펜과 종이를 들고 표현의 자유를 공격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향해 두렵지 않노라 외쳤다.
그러나 테러로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촛불과 꽃들이 빛을 잃기도 전에 파리 시민들은 더 크고 깊은 충격 그리고 슬픔과 마주해야 했다.
2015년 11월 13일. 가족들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연인과 커피를 마시고, 직장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들과 콘서트를 즐기던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는 500여 명에 달했다. 분노를 느낄 시간도, 고통을 외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파리는 침묵 속에서 충격을 감내해야만 했다. 365일 전시와 공연, 축제가 열리는 이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는 박물관, 미술관, 영화관, 도서관 등을 모두 폐쇄했고, 공연과 축제를 무기한 연기했다.


l 변화된 일상, 그리고 연대

굵은 빗줄기 속에서 서로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피카소 미술관 입장을 기다리는 할아버지와 손자, 관람객이 뜸한 루브르 지하 벤치에 자리 잡고 드로잉하는 소녀, 바퀴 달린 피아노를 옮겨가며 마레 지구 곳곳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콩쿠르 출전 비용을 모금 중이라며 수줍게 모자를 내미는 젊은 성악가의 세레나데 등 파리 골목 곳곳에 늘 자리해 있던 이러한 일상은 테러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다.
서로의 위로가 필요했던 시민들은 각자의 조각을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 테러의 충격과 공포에 지배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픽디자이너이자 아트디렉터인 죠아킴 롱생(Joachim Roncin)은 샤를리엡도 테러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Je suis Charlie 내가 샤를리다.’라는 문구를 올렸다. 그는 희생자들과 그 가족을 위한 존중이자, 테러가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를 꺾지 못했음을 말하고 싶었다. 이 문장은 단 몇 분 만에 프랑스를 넘어 세계 연대의 상징이 되었다.
독일의 한 피아니스트는 바타클랑 극장 앞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직접 자전거로 피아노를 옮겨와 존 레넌의 ‘Imagine’을 연주하였다. 연주 후 그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함께 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 공연을 시작으로, 많은 아티스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바타클랑 극장과 자유의 상징인 레퓌블릭 광장에 모여들었다.
정부 역시 연대를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는데, 최우선으로 지원 결정이 내려진 분야는 문화와 예술이었다. 지난 1월 샤를리엡도 테러 직후, 프랑스 문화커뮤니케이션부는 공식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 및 출판계 종사자, 그리고 문화예술인들 중 직간접적으로 테러의 고통을 겪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심리상담과 치료를 제공하며, 개인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행정 및 경제적 지원(희생자 자녀 돌봄 및 가정 학습 지원, 장례지원, 치료를 위한 병원 수송 등), 향후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정부 차원의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한 바 있다.
11월 파리 연쇄 테러 당시 미국 록 그룹의 공연이 열리고 있던 바타클랑 극장(Bataclan)에서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탓에 전년 대비 80% 이상 관객이 급감한 프랑스 공연예술계는 긴급 성명을 내고 기획 및 연출가, 배우, 예술행정가들은 문화예술 부흥을 위해 정부 지원을 호소하게 된다. 이에, 플뢰르 펠르랑(Fleur Pellerin) 문화커뮤니케이션부 장관은 테러 발생 3일 후인 16일 아침 연설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음악이 계속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공연예술을 위해 노력하는 여러분들이 연극을 만들고, 공연장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우리 프랑스인들 역시 공연장에 가는 것을, 그리고 그 공연이 주는 기쁨, 함께 즐기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를 화합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테러라는 야만적 행위에 맞서, 문화는 우리를 막아주는 가장 튼튼한 방패, 예술가들은 최고의 병사들이다. 그 누구도 문화를 통해 연대하는 우리를 막지 못할 것”이라며 5천만 유로의 특별기금을 공연예술계에 긴급 지원한다고 밝혔다.

l 삶을 지지해 주는 문화예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테러를 두 번이나 겪었던 파리 11구 주민들은 골목길마다 무장한 군인과 경찰들의 경계 속에서 오늘을 살아간다.
바타클랑 극장 인근 주민이자, 두 자녀를 둔 샤를로뜨 씨는 “내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이 땅에서 비극이 일어나 한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남편과 나는 분노했고 슬퍼했지만 그 날, 그 거리에 내 아이들과 함께 서 있지 않았던 것에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는 학교에 다녀온 후, 연극을 보러 함께 가자고 하더라. 학교에서 테러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두렵지 않다고 했다. 슬프고 힘들수록 더 많은 사람과 즐겁고 행복한 일들을 함께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딸아이에게 위로받은 기분이었다.”라고 말했다.
갤러리에서 아트디렉터로 근무하는 지젤 씨는 “테러 직후, 프랑스 미술 시장이 크게 위축되었다. 수개월 전부터 진행하던 전시들이 모두 취소되었고, 갤러리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활력을 찾아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테러 발생 일주일 후부터, 갤러리들이 모여있는 이 거리는 작품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다시 북적이고 있다. 다시 살아가야 할 에너지와 위안을 주는, 예술은 그런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프랑스인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오늘 이 순간을 살아가게 하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총소리를 두려워하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그들의 생명력은 아름다운 것을 가치 있게 여기고 함께 나누며 서로의 삶을 지지해 주는 문화와 예술에서 비롯된다. 두 번의 테러가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l 다음 세대를 위한 노력, 축제


  • 헨느음악제 ©음악제 공식홈페이지
    헨느음악제 ©음악제 공식홈페이지


프랑스 전역에서 주말마다 개최되는 축제는 평균 20여 개. 테러 이후 한 달간 대부분의 축제가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는데, 이들 중 가장 먼저 문을 연 대규모 축제는 헨느음악제 ‘Rencontres Trans Musicales de Rennes’였다. 파리 서쪽에 위치한 인구 21만의 도시 Rennes에서 아마추어 뮤지션, 음악산업 종사자, 음악 팬 60,000명이 참여해 테러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고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축제 창립자이자 총감독인 베아트리스 마세(Beatrice Mace)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테러가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축제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과 시청을 찾아갔다. 우리는 만장일치로 축제를 열기로 결정했다. 시장님은 ‘우리는 계속 진행할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우리의 결정은 테러 희생자들을 잊기 위함이 아니라 계속 살아가기 위함이다.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 역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축제에 참여할 것임을 알려왔다. 이것이 우리가 축제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헨느음악축제를 시작으로 파리 근교 뱅센 숲에서 열리는 일렉트로닉 음악 축제, ‘The Peacock Society festival’,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영화 페스티벌 ‘Cine Junior’, 지중해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니스카니발 ‘Carnaval de Nice’와 망통 레몬축제 ‘Fete du Citron’, 프랑스의 자존심, 칸국제영화제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de Cannes’, 파리의 여름을 여는 프랑스 최대 음악축제 ‘Fete de la musique’,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프랑스혁명기념일 축제 ‘Fete Nationale Francaise’, 매년 10월 파리 도심 박물관, 도서관, 시청 등에서 펼쳐지는 24시간 문화예술축제 ‘Nuit Blanche’, 1852년 시작해 매년 세계에서 400만 명이 찾는 리옹 빛 축제 ‘Fete des Lumieres’ 등 올해도 1,600여 개의 크고 작은 축제가 계획되어 있다.
테러 이후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간을 피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결국 기쁨의 순간을 공유하는 것, 아름다운 것들을 더욱 가까이에서 함께 보고 즐기고 보존하는 것에 서로의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인들에게 축제는 문화와 예술, 전통과 역사의 집합이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연대의 장이다. 축제는 모든 세대가 함께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프랑스인들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일도, 파리는 예술의 심장이다. 지속적인 테러 위협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은 가족들과 축제를 즐기고, 공연장에 가고, 전시회에서 오후 시간을 보낸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며, 문화와 예술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정신을 이어나갈 것이다.


  • 라데팡스 재즈페스티벌 ©김은지
    라데팡스 재즈페스티벌 ©김은지
  • 레퓌블릭 광장콘서트 ©김은지
    레퓌블릭 광장콘서트 ©김은지
  • 파리필하모닉 ©김은지
    파리필하모닉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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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6.02.22]